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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 버젼입니다.
4월말 쯤 되자, 옷이 얇아질 정도의 꽤나 따스한 날씨가 지속되는 듯 하다.
뭐, 나로서는 감사해야되는걸까.
너무 추운 날씨도, 너무 더운 날씨도 아닌 이런 적절한 시기에 출국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에…그러니까, 엄마가 도착하면 전화하라 그랬지?"
{뚜르르르…뚜르르…(달칵)…Hello? who's calling? }
"아, 엄마. 나 세연이."
{…아, 도착했니?}
"응. 지금 막 비행기에서 내렸어. 이제 어디로 가면 돼?"
{…어디보자, 한국은 지금 이 시간엔 학교에 있을 시간이니까. 학교로 찾아가면 되겠다.}
"…아, 북산고등학교? 이리로 가면 되지?"
{그래. 잘…갔다오렴.}
"…응. 엄마도 잘지내."
{…그래.…(뚜우우---)}
"후우…. 자아, 그럼 찾아가볼까?"
북산고등학교.
서서히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라 이제 청소를 하고 집에 갈 생각에 한껏 들뜬 표정들이 보이는 학생들 사이로 백호와 다른 농구부원들은 일찍 수업을 마치고 강당에 모여 평소와 같이 하루분의 연습을 하고있는 중이었다.
능남에게 승리를 거둬, 드디어 해남과 같이 전국대회를 나가게 되어서인지 더더욱 연습에 힘과 기합이 넘치는 듯 보였다.
늘 하던대로 1,2학년과 3학년이 서로 연습경기를 겨루었는데, 백호가 그 사이 꽤나 성장을 해 이젠 제법 자신의 실력을 보일 수 있을 정도가 되어 3학년이 꽤나 곤혹을 치루는 듯했다. 거기에 서태웅의 실력은 이젠 도저히 후배라고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기에.
"삐----잇, 잠깐타임. 쉬었다 가자."
안경선배 준호의 호루라기 소리에 모두들 꽤나 지친 듯 숨을 헐떡이며 제각기 휴식시간을 가졌다.
"오우, 강백호. 이젠 제법 선수 티가 나는데? 후훗."
"아, 한나선배. 움하하핫- 뭘 이 정도가지고 천재이신 이 몸에게는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구요~"
"하여간, 조금만 띄워주면 기세등등해진다니까? 에휴, 아. 그런데 백호야."
"네에?"
"전부터 궁금한게 있었는데…. 너네 가족말이야."
"…가…족이요?"
"응, 그래. 가족. 소연이 말로는 너 혼자 사는 것 같다고 하길래. 정말이야?"
"…아, 그… 네."
"뭐야? 진짜? 어머니랑 아버지는?"
"어머니랑 아버지가 이…혼을 했거든요. 누나가 있긴 있었는데, 엄마랑 같이 떠났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뭐, …아하핫, 그래서 혼자 산다는…그런애기?"
"아, 그…렇구나. 언제부터?"
"엄마랑 이혼하신게 제가 초등학생 때였으니까…. 그 뒤로 아빠랑 살았었는데, 아버진 제가 중학생 때 돌아가셔서 그 뒤로 …뭐, 그냥 혼자 살았어요."
"…힘들진 않았니?"
"…아뇨, 뭐. 조금이지만 생활비 정도는 엄마가 보내주기도 했고, 알바를 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금껏 알아서 잘 살아왔어요. 하핫-"
"만나고싶진 않아? 엄마랑 누나."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그는 뒷머리를 슬쩍 긁적거리면서 왠지 조금 먼 곳을 바라보듯 멍하니- 다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택시가 멈추고, 그녀는 기사에게 택시비를 쥐어주며 차 안에서 조심히 짐을 들고 내렸다.
"헤에, 드디어 도착~ 아, 북산고교가 여기구나. 좋았어~"
어깨를 넘길정도의 웨이브 진 붉은 머리를 한 손으로 슬며시 귀 뒤로 넘기며 그녀는 당당히 북산고교의 정문을 들어섰다.
"한국은 오랜만이라서 익숙하긴 해도 역시 길 찾기는 어렵단 말이지."
그녀는 두리번 두리번 운동장을 지나쳐 가는 도중 흘깃흘깃- 자신을 신기한 듯 쳐다보는 학생들을 느끼곤 그 중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애들아."
"에, 네?!"
"내가 이 학교 지리를 잘 몰라서, 아, 혹시 강백호라는 학생 아니? 모르면 어쩔 수 없구."
"가, 강백호요? 지금 시간이면 아마, 체육관에…"
"아, 체육관. 알았어. 고마워."
싱긋- 웃으며 돌아선 그녀는 가만히 생각해보더니
'그런데, 백호가 유명한가? 아니면 백호랑 아는 학생이였나?'
백호의 행방을 묻자마자, 그가 어디에 있는지를 단번에 말해내자, 그녀는 잠시 그런 생각을 가졌다. 곧 아무렴 어때 라는 편한 마음가짐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녀는 다시 한번 우뚝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았다.
"저, 저기- 미안한데, 그 체육관은 어디에 있어?"
남학생은 예쁘게 생긴 외모에 빈틈이 없을 것 같은 그런 그녀의 생각보다 아방한 모습에 멍해져있다 곧 정신을 차리곤 길을 안내해 주었다.
170cm의 키에 쭉 뻗은 다리, 잘빠진 몸매에 귀엽다기 보단 역시 성숙하다고 할 수 있는 외모를 가진 세연은 어디를 가든 눈에 띄이긴 했지만 특히나 그녀의 어깨를 넘는 새빨간 웨이브 머리가 가장 눈에 띄었다. 옆을 슬쩍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인상에 남을 정도였다.
"…어? 여긴가? 공 팅기는 소리가 나는데?"
그녀는 체육관 입구쪽으로 다가가자, 문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어 들어가진 않은 채 자신의 앞쪽에 서 있는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여기서 뭐하는거야?"
"…아, 누구…?"
'우와…백호처럼 빨간머리. 예쁘다아….'
"아, 나? 난 강세연이라고 해. 안녕? 훗. 그런데 여기서서 뭐하는거야?"
"아, 농구 연습하는 거 구경하는 거예요."
세연은 여학생의 이름표에 적힌 이름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싱긋 웃었다.
"소연이? 이름 이쁘네. 근데, 농구라고? 정말?"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농구라는 말에 환희 웃으며 기뻐하는 질문에 소연은 살짝 당황했다.
"아, 네. 농구 좋아하세요?"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지. 하고 있거든. 훗."
그녀는 그런 말을 한 후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부원들이 열심히 볼 넣는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녀는 자신이 찾는 빨간머리가 보이지않자 고개를 갸웃하고는 코트 바깥 쪽에 서 있는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세연은 싱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돌연 갑자기 인사를 받은 한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아, 네- 라고 대답했다.
"누구…시죠?"
"아, 만나러 온 사람이 있는데, 여기에 없는 것 같아서요."
"…아, 누구를 찾아 오셨죠?"
"강…백호라고. 아세요?"
"백호요? 우리 부원인데, 지금은 잠깐 다른 부원이랑 같이 심부름을 보냈어요. 다른 부원이랑 싸움이 나서 진정하고 오라고요. 그런데, 백호랑 아는 사이세요?"
"아, 전 강세연이라고 해요. 백호의 친누나되는 사람이예요."
그녀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한나는 그녀의 말에 놀라 눈이 커진 채 되물었다.
"누, 누나요?!"
한나의 큰 외침에 줄곧 골 연습을 하던 부원 모두 그리고 입구쪽에서 구경하던 강당 전체의 사람들이 모두 그녀들을 쳐다보았다.
준호가 다시 한번 호루라기를 부르고 휴식시간을 갖는 동안 채치수가 그쪽으로 다가왔다.
"…하아, 하…무슨 일이야."
한나는 땀흘리는 채치수에게 얼른 수건을 쥐어주며 대답했다.
"그게…"
치수는 옆에 서 있는 붉은 머리의 여성을 보며 궁금했는지 한나에게 다시 물었다.
"누구지?"
"백호녀석의 누나라네요."
"뭐?!"
이번엔 채치수의 큰 목소리에 다른 부원들이 깜짝 놀라 다가왔다.
"뭐,뭐야 채치수? 뭔일 났냐?"
"안 그래도 큰 목소린데, 왜 소릴 지르고 그래요? 백호녀석이 있었다면 고릴라괴성…응?"
정대만과 함께 걸어오며 말을 건네던 송태섭은 자신의 눈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보며 눈이 커졌다.
"…누, 누구?"
"아, 안녕하세요. 백호의 누나. 강세연이라고 해요."
"…네에?! 누나요? 그, 그것도 백호녀석의?!"
정대만의 놀란 질문에 세연은 여전히 싱긋- 웃을 뿐이었다.
"아, 아니…이런 여자분이 어떻게…"
"백호의 누나일 수가…"
치수도 놀란 나머지 그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 북산고교 농구부는 누가 주장이죠?"
"…아, 저, 접니다."
"아…역시."
"역시?"
"아뇨. 왠지 처음 봤을 때 딱 그럴 것 같아서요. 키도 월등히 크시고…"
그러자 정대만이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얼굴도 딱 대장감이죠?"
"…(빠직)"
열이 받은 치수가 정대만에게 욱해서 뭐라 할려던 차에 세연이 그런 치수의 손을 덥썩 잡더니 웃으며 말했다.
"네. 무척 듬직하신 것 같아요. 정말 농구선수로선 타고나신 것 같아요."
그녀의 행동과 발언에 모두 깜짝 놀라고, 본인 채치수는 얼굴이 붉어진채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아, 그…가,감사합니다."
"쳇, 고릴라주제에 얼굴 붉히지 말라고 징그럽게…"
질투난 정대만의 소심한 태클에도 치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잡고있는 자신의 손에 시선이 갈뿐.
"그러고보니 …세연씨도 빨간머리네요?"
한나의 질문에 곧 손을 놓으며 대답했다.
"아, 네. 저희 가족 전체가 빨간머리인 건 아니고, 저랑 백호만 그런거예요. 염색. 어렸을 때 같이 했거든요."
"그나저나, 안 믿기네요. 그런녀석에게 이렇게 예쁜 누님이라니."
태섭의 말에 정대만도 곧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했다.
"그러고보니, 나이가?"
"아, 19살이예요."
"그럼 저희랑 동갑이시네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악수를 청해오는 정대만에게 세연 역시 싱긋- 웃으며 손을 마주잡았다.
"반가워요. 저…모두 이름을 알려주실래요?"
"쳇, 이런 여우녀석이랑 그렇게나 같이가기 싫다고 말했는데…"
"…싫은 건 이쪽이다. 바보."
"뭐야?! …어? 소연아~"
"아, 갔다왔어? …아, 태웅아"
백호를 본 후 서태웅을 보며 눈이 하트로 변하던 소연은 질투난 백호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 백호야. 그것보다 너한테 손님이 오신 것 같은데."
"손님? 나한테?"
소연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안으로 들어서는 백호다.
백호가 안으로 들어서자 부원들에게 둘러싸인 누군가가 잘 보이지 않아 비집고 들어갔다.
"나한테 누가…"
"…어? 백호야."
"……내, 내가 꿈을 꾸나?"
방금 자신의 이름을 부른 여자를 보며 백호는 꿈인가 싶어 눈을 비볐다.
그러나 아무리 비벼도 사라지지않는 형체.
"백호야~ 보고싶었어!"
곧 백호에게 다가가 와락 그를 껴안는 그녀 덕에 백호는 입을 벌린 채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누…누나?!!!!!!!!"
백호의 고함에 세연은 잠시 허그를 풀곤 백호의 얼굴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응. 나야. 세연이 누나."
"누, 누나가 …어, 어떻게 여길…"
"미국에서 방금 막 날아왔어~"
자신을 보며 활짝 웃는 누나를 보며 백호는 떨떠름하니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분명 자신의 누나였다. 변함없는 얼굴, 변함없는 목소리, 변함없는 성격, 변함없는 행동.
헤어진지 4년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누나는 키와 몸, 그리고 조금의 생김새를 빼곤 옛날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누,누가 날아오래? 이제서야 날아오면 누가 반길 줄 알고…?!"
고개를 푹 숙인 백호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세연은 그저 백호를 꼭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많이 늦었지. 미안해. 엄마를 혼자두고 오기 힘들어서…"
아무말도 못한채 그저 고개만 숙이고 있는 백호를 세연은 살며시 등을 어루만졌다.
"나머진…집에가서 이야기하자. 알았지?"
"…쳇."
백호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며 세연은 싱긋- 웃으며 손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어린애야? 다 큰 사내녀석이 왜 이렇게 잘 울어?"
"남말하긴… 어렸을 땐 자기가 더 많이 울어놓고…"
주변 부원들은 그 둘을 보며 살며시 웃었다.
'남매라…그런가? 닮긴 닮았네.'
"아, 백호야. 그런데 태웅이는?"
"네? 몰라요. 왔긴 왔는데 같이 들어오진 않았어요. 하여튼, 그 여우자식…"
한나와 백호의 대화에 세연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태,태웅이…?"
"있어. 서태웅이라고 같은 부원인데 여우처럼 눈이 쭉- 찢어… 우왓!"
백호의 엉덩이를 걷어찬 태웅이덕에 백호는 그만 앞으로 엎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넘어진 백호보다 더 놀란 사람은 세연이었다. 동생이 넘어져서가 아니라 서태웅을 보고서…
"태, 태웅…아?"
"…!…"
태웅은 세연을 보고 깜짝 놀란 듯 평소의 포커페이스가 흐트러졌다.
"…강…세연?"
"…저, 정말 서태웅? …하, 뭐야~ 너. 이름 막 부르는 건 여전하구나?"
그러나, 정작 본인들을 제외한 부원 모두가 이 광경을 보고 더 놀라고 있었다.
백호의 천적인 태웅이가 백호의 누나와 아는 사이라니….
"으으…서…태웅!!!"
백호의 외침따윈 이미 태웅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오로지 세연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도 이 학교 학생이었어?"
"…어…떻게 된거야."
"동생녀석을 만나러 왔어."
"…동생?"
"응. 강백호. 너네 같은 부원이라며? 잘됐다. 아, 아니. 잘 안된건가? 헤헷-"
"저기…세연씨? 태웅이랑은 아는 사이예요?"
한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아,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냈는걸요."
"어렸을 때부터?"
"네. 제가 중학생 때, 그리고 태웅이가 초등학생 때 만났어요. 원래 제가 태웅이 누나랑 친한 친구라서 자주 집에서 같이 놀고 그랬거든요. 아! 태웅이한테 처음으로 농구를 가르쳐준게 아마 저일거예요."
"그, 그럼 그때부터- 농구를?"
"그건 저도 놀랐네요. 그때 이후로 농구를 안 했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열심히 하고 있었구나? 농구부원이라니. 훗. 자랑스러운걸?"
태웅이의 누나인 태연이랑 워낙 친하다보니 집에 자주 놀러가곤 했는데, 어느날 태연이의 방에서 놀다 누군가 난폭하게 쾅- 하며 문을 열어제꼈다. 그게 태웅이였다. 다짜고짜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태연이에게 무언가를 묵묵히 따지러왔었는데, 참 인상이 남았던게 어린 놈이 무표정이라 참 재밌다고 생각했었다. 누나와 한참 싸우던 태웅이는 그제서야 나를 바라보곤 나에게 삿대질을 했었다. 참 맹랑한 꼬마였었다. 난 왜 그런줄도 모르고 고개를 갸웃거렸고 태웅은 나에게 딱 이 한마디를 했었다. '…이름. 뭐야?' 그땐 나도 모르게 당황해 강세연이라고 대답을 해줬고 태웅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방을 나갔다.
나중에 태연이에게 들어보니, 내가 맘에 들어서 그런거라고 했었다. 관심있는 사람의 이름 외에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나. 아무튼, 그런 태웅이가 참 귀여워서 더욱 자주 놀러갔었다. 어떤날에는 태연이가 그런 말도 했었다. '넌 요즘 태웅이 보러 우리집에 오는 것 같다.' 고. 훗. 뭐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때 당시 백호는 한창 사춘기였는지 또래 여자아이에게 관심을 갖고 한창 호열이 애들과 놀러다니느라 늘 심심했는데, 태웅이는 언제나 날 반겨주며 놀아주었기 때문이다. 카드게임이나 밖에 나가서 농구를 하곤 했는데 내가 초등학교 때, 반한 운동이 농구였기 때문에 자주 태웅이에게 내가 배웠던 것, 보았던 것 등을 알려주곤 했다. 의외로 태웅이는 그게 적성이 맞았는지 언제부턴가 자주 농구로 놀기 시작했고 난 그게 무척 맘에 들었다. 백호녀석은 같이 농구하자고 하면 언제나 그런 걸 왜 하냐고 투덜되었었고, 태웅이는 말을 잘 들었기 때문에. 게다가 같이 농구를 하면 언제나 내 땀을 닦아주거나 물을 챙겨줬다. 자기도 숨을 헐떡거리면서도…그게 참, 귀여웠다. 그리곤 저녁이 되어 늦은 시간이 되면 언제나 우리집까지 데려다줬는데… 그게 꼭 어린 보디가드 하나가 생긴 기분이라 참 좋았었다.
그런 친동생처럼 귀여워했던 태웅이가 백호랑 같은 학교라니, 거기다 어떻게 된건지. 둘 다 농구부원이라니 세연이는 이보다 기쁠 순 없다고 생각했다.
"뭐, 뭐야! 누나가 어떻게 이 여우랑 아는 사이야?!"
"…."
태웅이는 그저 멍하니 세연을 바라봤지만, 아마 태웅이도 백호와 비슷한 질문을 눈에 담고 있는 듯 했다. '어떻게 이 원숭이의 누나일 수가 있냐고…'
"너네 둘한테 말했었는데? 기억 안나? 백호, 너한테 그랬잖아. 요즘 너보다 더 동생같은 착한 애랑 농구한다고…, 그리고 태웅이한테도 말했는걸? 나한테 말 안듣는 남동생 하나 있다고…. 기억 안나?"
"…으악! 그, 그 놈이 이 여우?!"
"…하아."
둘을 바라보며 세연인 난처한 듯 웃었다.
"너네 둘이 성격이 극과 극이라서 왠지 만나면 싸우기만 할 것 같아서… 애초에 소개를 안 해줬던거거든."
세연의 말에 여기 있는 모든 부원들이 수긍하는 듯했다.
실제로도 지금 저 둘은 만나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사이였기 때문에.
"그런데, 태웅이는 이해가 가지만 백호. 넌 왜 농구부에 들어간거야?"
"…에?"
"너 분명 옛날에 내가 같이 하자고 했을 때, 그딴 걸 왜 하냐고 했었잖아. 갑자기 돌변한 이유가 뭐야?"
"…아, 그건…"
백호는 뜸을 들이며 소연이가 서 있는 쪽을 슬쩍 바라봤다. 물론, 세연은 그 순간을 놓치지않았고, 흐~응. 하며 대충 짐작이 간다는 듯 어깨를 으슥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넌 정말…"
세연의 말에 백호는 살짝 얼굴을 붉히곤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미국에 간다더니."
"응?"
"…그렇게 갑자기… 떠나놓고, 왜…"
태웅이는 주먹을 살짝 그러진 뒤 세연을 향해 다시 한번 말했다.
"…대체, 왜 그렇게 …네 멋대로야?"
"태…웅아."
"저…빨간 원숭이를 만나러…왔다고. 그럼, 난…? 안 만나도 돼?"
다른 부원들은 태웅이가 이토록 말을 많이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태웅이가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는 적은 백호와 싸울 때 이외엔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더 놀라웠다.
당사자인 세연은 낮설지 않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표정엔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깊이 드러나있었다.
"…태웅아."
"…짜증나. 너."
세연은 태웅을 잘 알고 있다.
포커페이스지만 사실은 예민하고 감정적인 아이라는 것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표정을 없애고 감정을 더욱 숨기려한다는 것을…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차갑게 말을 내뱉는 태웅이가 실은 자신한테 섭섭함을 토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거 아냐. …백호를 만나러왔지만, 오랜만에 한국에 다시 왔는걸… 널 찾아서라도 다시 한번 만나려고 했어. 뭐… 실제론 그 수고를 덜었지만. 훗."
"…."
평소의 백호라면 태웅이를 향해 쏘아붙였겠지만 왠지 누나를 향한 같은 섭섭함을 자신도 느꼈기 때문에 차마, 지금은 뭐라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냥 보고싶었다고 한마디만 해주면 안돼?"
세연은 태웅을 보며 살며시 웃었다.
태웅은 여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꽉 그러쥐었던 주먹에서 힘을 빼며 세연을 쳐다보았다.
"…보고싶었어."
순순히 그녀가 원하는대로 대답해주는 태웅을 보며 농구부원들 뿐만 아니라, 강당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백호도 평소의 여우가 아니라는 둥, 놀란 듯 했다.
소연이는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며 그저 지켜보고 있었고, 오늘도 역시나 태웅을 응원하러 왔던 여학생들은 뜻밖의 태웅의 모습에 다들 호들갑을 떨고 난리를 피웠다.
"…아, 죄송해요. 잠시 백호만 만나러 온건데, 일이 커졌네요. 모두 연습 중이었는데 …죄송해요. 소중한 연습시간을 허비하게 해서."
세연이 고개숙여 난처한 듯 사과하자, 한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웃어보였다.
"아뇨. 어차피, 이쯤에서 해산하려던 차였거든요. 그쵸? 치수선배."
"…아, 그래. 괜찮습니다."
"호호호~ 다들 여기 모여 뭐하나요?"
그때 마침, 안선생님이 부활동을 살피러 강당에 들어오셨다.
"아, 안선생님."
"안…선생님?"
"…호? 세연양이 아닌가요?"
그녀는 뜻밖의 인물을 만나자, 놀라워하면서도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안선생님도 기억이 난 듯, 아는 체를 해보였다.
"선생님! 여기 학교 선생님이세요?"
"그렇답니다. 그런데, 어찌 세연양이 여기에?"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던 동생이 이 아이거든요. 그래서 만나러…"
세연은 옆에 있던 백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안선생님은 놀란 듯 꽤나 눈을 크게 뜨며 바라보았다.
"호? 백호군이었군요. 이거 참, 우연도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호호"
"훗. 다행이예요. 선생님이 감독이신거죠? 그럼 제 동생의 실력 안 봐도 기대되는걸요?"
"저, 저기… 두 분이서 아는 사이세요?"
한나의 질문에 세연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저 어렸을 때 선생님을 만난 후로, 농구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던데다가 집에도 자주 놀러갔었는걸요."
"…그래요. 어떻던가요? 미국은."
모두 미국이란 단어가 나오자, 농구와 연관되어서인지 다들 귀를 쫑긋하니 집중해왔다.
"…음, 역시 선생님 말이 맞았어요. 하지만, 배우는 것으론 어쩌면 그쪽이 더 좋을지도…"
"그래요. 호호. 잘 배우고 왔다니 다행이군요."
주변 부원들은 세연을 바라보며 뭐랄까, 보통여자가 아니라는 사뭇 그런 직감을 받았다. 농구 쪽으로도 상당히 기대가 되지만, 그녀의 주변인물들을 봐서도 뭔가….
"아, 선생님. 저 당분간 한국에서 지내게됐어요."
"그런가요? 호호. 자주 놀러오세요."
"정말요? 그럼, 저 여기에 가끔 농구하러 와도 되나요?"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물론 가능하죠. 호호, 그렇죠? 치수군."
"아, 예. 괜찮습니다."
"아, 그럼. 채…치수 주장님? 당분간 부탁드릴께요."
"아, 네에…"
세연의 말에 살뭇 얼굴을 붉힌 채치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대만은 괜히 그 옆에서 비아냥거렸다.
"왜 얼굴은 붉히고 난리냐?"
"아, 저 다른 부원분들도 잘 부탁드립니다."
세연의 환한 웃음에 대만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아, 물론이죠. 하하-"
"대만선배. 표정에 다 드러난다구요?"
"이 녀석이-!"
태섭의 말에 금방 정신을 차린 대만은 태섭의 머리를 툭 건들였다.
"저, 그럼 해산한다고하니 먼저 돌아가볼께요. 그래도 되죠?"
"아, 네. 그럼 내일뵈요. 세연씨."
"네에. 백호야. 가자."
모두와 인사를 나눈 뒤 세연은 락커룸에서 가방을 챙겨나오는 백호와 강당을 나서려했다.
"…같이 가."
"태웅아?"
"뭐얏? 야. 여우! 니가 왜 우리랑 같이 가?!"
"…시끄러. 멍청이. 너랑 같이 간다고 안 했어."
"아, 어쨌든! 니가 왜 우리 누나랑 같이 가?!"
"…괜찮지?"
"아, 응. 물론 괜찮지. 뭐 어때 백호야. 같이가자."
"쳇! …왠일로 오늘은 남아서 연습 안 하나보지? 흥-"
"…연습?"
"…오늘은 패스. 몸이 안 좋아. 선배한테 오늘은 그냥 간다고 애기했어."
"몸? 어디 아픈거야?"
"신경쓰지마."
"헹, 보나마나 꾀병일테지!"
"멍청이. 내가 너냐."
"뭐얏-?!"
"백호야. 태웅아."
"아앗- 소연아~"
마침 다가온 소연에 의해 백호는 웃으며 소연을 반겼다.
"이제 가는거야?"
"응. 소연이 너는?"
"나도 이제 오빠랑 가려구. 아, 저…안녕히 가세요. 태,태웅아 너도…"
"응. 그래. 치수군이 오빤가봐? 듬직한 오빠를 둬서 좋겠는 걸? 아, 치수군이라고 해도 되죠? 동갑이니까."
"아, 네. 뭐- 상관없습니다."
"쿨해서 좋은걸요? 훗."
세연의 말에 또다시 살풋 얼굴을 붉힌 치수는 딴 곳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뭐야. 고릴라주장. 왜 저렇게 우리누나 앞에서 설설기어?'
백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치수를 바라보다 다시 해벌레하며 소연을 바라봤다.
"너도 잘가. 소연아."
"응. 백호 너도."
"그럼 가자. 백호야."
"응. …앗, 뭐야 결국 이 여우랑 같이 가는…"
"싫으면 넌 따라오지마."
"뭐얏! 그건 내가 할소리다!!!"
셋이서 교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소연은 힘없이 웃었다.
"왠지 …부럽다. 저 언니."
"…응? 부럽긴, 시끄럽겠구만."
치수의 말에 풋- 하고 웃은 소연은 그저 멍하니 아직도 티격태격하는 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냥… 마냥 부러워."
"…하아, 너도 참. 가자."
"응."
"…아침마다 시끄러워. 알람시계가 따로없어."
"훗. 변함없구나. 너흰. 그래도 지각하면 안되니까."
"일요일에도 깨우니까, 마귀할멈."
"푸핫- 마귀할멈? 아직도 그렇게 불러? 태연이 난리칠텐데."
"…하아-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더 시끄러워졌어."
'하하호호- 아주 둘이서 쿵짝쿵짝 잘도 맞구만? 나 같은건 보이지도 않나보지?'
점점 외톨이가 되가는 듯한 뉘앙스에 백호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아, 참- 백호야. 그러고보니 호열이 애들이랑은 아직도 친해?"
"…아? 당연하지."
"그래? 그럼 같은 학교에 온거야?"
"응. 그녀석들은 왜?"
"아니, 오랜만이니까. 한번 만나고 싶어서…."
"뭐, 그녀석들은 한가해서 언제나 나타나곤 하니까, 가만히 기다려도 지들 알아서 얼굴 보일텐데 뭐."
"그래? 아, 그러보니 나 너네 학교로 진학할까해."
"뭐?!"
"…?!"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도 하고, 너네랑 같이 다니면 재밌을 것 같아. 안 그래도 엄마가 한국에 간 김에 이번엔 한국에서 마저 학교를 다니라고 그러셨거든."
'으아… 왠지, 우리 누나가 학교까지 같이 다니면 뭔가 큰 소동이 일어날 것 같은데. 거기다 내가 그 소동에 휘말릴 것 같기도 하고…!!'
'…날파리들이 꼬여. …절대 안돼.'
"절대 안돼." "안돼 누나!"
"에…?"
동시에 비슷한 말을 내뱉은 두 사람은 본인들이 더 어이없는지 땀을 삐질 흘리며 서로를 바라봤다.
"너네 …뭐하는거야?"
"아, 아니. 아무것도. 것보다 누나. 안돼 그것만은."
"…바보의 말에 동참하긴 싫지만. 안돼. 학교는."
"왜에? 왜 안되는데?!"
"아, 몰라- 귀찮아질 것 같아!"
"…말 들어."
"…이 학교 못 다니게 하면. 나 다시 미국갈꺼야."
세연이 이토록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엄마에게서 백호를 잘 돌보라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 가까이 지내면서 백호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학교는 잘 다니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거기다 역시 학교를 다시 다닐거라면 아는 사람들과 함께 다니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누, 누나아…"
"…하아."
그녀보다 월등히 덩치가 큰 그 둘도 세연에게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세연의 한마디에 저리도 쩔쩔매는 걸 보면, 그녀를 미국으로 돌려보내긴 싫은가보다.
"훗- 그럼 오케이 한거지?"
결국, 둘에게서 승낙사인을 받은 세연은 오는 길에 태웅과 헤어지고 백호와 단 둘이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하네. 이 집은."
"…아, 뭐 그렇지."
"으이구, 청소 좀 하지."
"에이,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뭘 바래? 누난."
세연은 방에 들어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거실에서는 백호가 한창 tv를 보고 있었다.
"재밌어?"
"뭐, 그냥 그래."
"…그래."
백호는 tv에서 눈을 떼곤 옆에 앉은 세연을 흘깃- 쳐다봤다. 그리곤 다시 tv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슬쩍 말을 꺼냈다.
"…할 말 있구나. 누나."
"…어?"
"…하여간, 누난 옛날부터 꼭 할 말이 있을 땐 뜸을 들이더라? 언제 말할려고? 간보고 나서?"
"아, 그랬나?"
"뭔데?"
"…미안해. 아버지랑 널 방치해둬서."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데 뭐."
"그치만, 적어도 아버지 장례식 땐 …왔어야 했는데."
"…뭐, 그건… 좀 섭섭하더라. 헷-"
"미안… 너도 알잖아. 엄마. 차마 가자고 할 수 없었어."
"…알아."
"그리고, 백호 너한테 더욱 미안해."
"…나?"
"혼자 뒀잖아. 외로웠지?"
"별로… 라고 말한다면, 거짓말인거 티 나려나? 하핫-"
"…."
"농담이고, 실은 호열이 녀석들 때문에 외로울 틈도 없었어. 워낙 시끄러운 녀석들이잖아. 하긴 그래도…"
"…"
"좀… 보고싶긴 하더라. 일찍 좀 와주지."
"응. …미안. 그리고 고마워 백호야."
"뭐가?"
"보고싶어 해줘서. 나한테 실망해서 나 안 보려할 줄 알았어."
"…내가 무슨 어린앤가."
"응. 너 어린애인걸?"
"뭐?! 누나!"
"사실이잖아? 너 소연인가 하는 여학생 좋아하지? 걔 앞에서 쩔쩔매기는~ 우물쭈물하다 놓친다?"
"…그, 그건-! 내, 내가 알아서 할거야."
"그래. 뭐, 또 차이거나 하진 마. 쪽팔려."
"윽…!!"
"아, 저기 백호야. 우리 이사가지 않을래?"
"이사?"
"응. 좀 더 넓은 곳으로 가자."
"학교는?"
"아, 괜찮아. 이 근처로 이사갈 거니까."
"그치만…"
"알아. 아버지 때문이지? 그러니까, 더 이사 가자는거야. 언제까지 여기에 머물 순 없잖아."
"…."
"누나 말…알겠지?"
"…그래. 알았어."
"우와~ 역시 내 동생이라니까?"
세연은 백호를 덥썩 안으며 기뻐했다.
뭐, 백호가 워낙 덩치가 있으니 안았다기 보단 백호에게 안겼다. 가 맞겠지만.
"하아, 하여간, 누나는 못말린다. 진짜."
"내가 뭘?"
"그나저나, 그 여우녀석이랑 친하게 지내지 좀 마."
"태웅이? 왜?"
"아, 몰라. 그 자식 맘에 안 들어."
"니가 맘에 안 드는 애가 어디 한 둘이니?"
"아무튼…"
"싫거든요? 니 연애사 나보고 터치하지 말라며? 그러니까 이것도 내 문제니까. 너도 신경 끄세요?"
"이거랑 그거랑 다르지!"
"아 몰라몰라 내 맘대로 할꺼야. 그리고 태웅이가 얼마나 착한데? 말도 잘 듣고."
"말도 안돼. 그 여우녀석이?!"
"괜한 참견 하지말고, 잠이나 자!"
"…누, 누나!"
방으로 쏙~ 들어가버린 세연을 보며 백호는 한숨을 내쉬며 거실에 이불을 깔았다.
누구 누난지, 정말 고집 한번 드럽게 세네… 라며 툴툴거리며 백호는 잠자리에 들었다.
"어? 태웅아!"
"으잇…여우녀석!"
"…가자."
워낙 지각이 일상이던 백호를 세연은 어거지로 깨워 학교갈 준비를 하곤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집 앞에 낮익은 사람이 서 있었다.
"어랍쇼? 웬일이냐. 잠 많은 여우가?"
"…잘 잤어?"
"응. 잘 잤지. 그런데, 정말 놀랐어. 학교 같이가자고 미리 말하지. 많이 기다렸어?"
"…아니."
백호는 아예 상대조차 하지않고 세연에게 말을 걸며 걷는 태웅을 보며 백호는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아, 태웅아. 너도 우리랑 같이 점심 먹을래? 나 도시락 쌌거든."
"누나!!"
"…응."
"좋아. 기대해. 내가 오랜만에 솜씨 발휘 했거든. 아, 너 보니까. 태연이 보고싶다. 언제 한번 너네집 가도돼?"
"그래."
"일단, 우리 이사한 뒤에 놀러가야겠다."
"…이사?"
"응."
[우뚝]
"어? 왜그래?"
"…또. 가려고?"
"…어?"
"…이번엔, 어딘데?"
태웅이가 걸음을 멈추며 세연에게 따지듯 물어왔다. 그런 태웅의 반응에 놀란 건 오히려 세연. 그 모습을 보던 백호는 심드렁하니 말했다.
"뭔소리하는거야? 누나가 가긴 어딜 가. 이 근처로 이사가거든? 바보여우."
[움찔]
태웅은 백호의 말을 듣긴 들은건지. 몸을 움찔하며 긴장을 늦추는 듯 했다. 온 몸에 맥이 빠진 듯 태웅은 조그만 한숨을 내뱉으며 세연의 손을 잡았다.
"…미안. 가자."
"…아, 응."
"으앗! 여우 너! 소,손 안놔?!"
백호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일절 무시를 한 채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태웅과 세연은 학교로 향했다.
교문에 들어서자, 등교를 하는 학생들은 모두 일제히 셋을 바라봤다.
아가씨를 지키는 보디가드 둘? 아무튼, 유명하다면 유명한 백호와 태웅을 나란히 양쪽에 끼고선 등교를 하는 여자라, 심상치 않은 느낌에 모두들 그 곳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교복은?"
"오늘 사러가려고, 일단 학교에 수속을 밟는게 먼저일 것 같아서."
"에, 그럼 누난 오늘 수업 안 하겠네? 그럼 그 동안 뭐할거야?"
"음~ 점심시간 될때까지 강당에서 농구 연습이나 하려구."
"…같이 있어줄까."
"…어?"
태웅의 말에 세연은 놀란 듯 잠시 쳐다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 넌 수업들어야지."
"수업은 무슨, 여우녀석 잠만 잘게 뻔하구만…."
"흥. 너나잘해."
"자자, 그만들 싸우고 교실로 들어가세요. 난 교무실 좀 가야되서."
"같이 가 줄까."
"고맙지만 사양할께. 나 혼자서 할 수 있어."
어린애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보호받는 느낌에 한편으론 기쁘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사양한 세연은 왜 아까부터 태웅이 같이 있어줄까, 같이 가 줄까. 등 같이있으려는 의도를 모른 채 그저 해맑게 거절했다.
"당연하지. 누나가 애냐? 그리고 니가 뭔데 같이 가줘? 가려면 가족인 내가 같이 가야지!"
"백호야. 왜그래. 걱정해준건데."
"…위치 알아?"
"아, 뭐어… 물어서가면."
"그럴바엔 데려다줄께."
"야. 여우. 너 오늘따라 말 많다?"
"…하아, 시끄러. 넌 이제 꺼져."
"뭐얏?!"
"자자, 둘 다 어서 올라가. 그럼 난 가볼께. 나중에 점심 때 보자."
싱긋- 웃으며 손을 크게 흔든 세연은 재빠르게 반대쪽 방향으로 사라져갔다.
"하아…"
태웅은 한숨을 내쉬며 옆에 있는 백호를 노려봤다.
그러자, 괜히 움찔한 백호는 영문도 모른채 째림을 받아야했다.
"뭐,뭘봐?!"
"…방해꾼."
그 말을 남기고선 태웅은 서서히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저 여우녀석."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호는 곧 종치는 소리에 자신도 허둥지둥 얼른 계단을 올랐다.
"앞으로 제가 세연학생의 담임이 될 선생님이예요. 잘 부탁해요."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동생이 백호군이라고…?"
"네, 동생녀석이 말썽을 좀 피우더라도 잘 좀 봐주세요. 속은 여린 아이니까."
"어휴, 어쩜 남매인데. 정말 세연학생은 똑부러지네요. 앞으로 열심히 다녀봐요."
싹싹하게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한 후 세연은 교무실을 나왔다.
"하아, 백호가 그렇게 성적이 안 좋나? 품행은 어떨지 몰라도 실은 좋은 아이인데."
성적으로 학생들을 파악하려는 선생들이 그닥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동생을 생각해 부지런히 인사를 하고 나온 세연이였다.
"자아, 그럼 체육관에 가볼까?"
"이형기 시인의 낙화에는 세속적인 것을 초월한 달관의 세계를 주제로 하고 있어요. 개화, 낙화, 그리고 결실로 이어지는 자연의 법칙과 만남, 헤어짐, 그리고 더 큰 만남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법칙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왠일로 태웅은 졸지도 자지도 않고 국어교사의 말에 경청하듯 멍하니 칠판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만남, 헤어짐…그리고 더욱 큰 만남.'
국어교사의 말을 속으로 다시 한번 되새김질 했다.
"여기서 인생의 의미가 꽃에 드러나는데, 정신적인 성숙을 향한 인내라는 의미로 의인화 표현을 쓴 시랍니다. 인간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중의적으로 표현했죠. 누가 한 번 읽어볼…"
[드르륵…]
"…."
"아, 태, 태웅군? 뭐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태웅은 선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 자, 잘 읽었어요."
"…지금."
"네? 태, 태웅군?!"
태웅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교실을 빠져나가버렸다.
"…하아, 웬일로 오늘은 안 자나 했더니. 결국."
"하아, 역시 덩크는 여자에겐 좀 무리인가…."
"…굳이 덩크를 할 필요는 없잖아."
"어? 태웅아."
강당 입구에서 기대어 지켜보고 있던 태웅을 보며 세연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미국에선 어떤 포지션을 맡았는데."
"아, PG(포인트가드)야."
"흐~응. 너 답네."
"…그거 칭찬이야?"
"…물론."
"나도 알아. 포인트가드는 그렇게 슛이나 득점에 중점을 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쯤은, 그치만 가끔은 시원하게 덩크를 넣고 싶을 때도 있거든. 다른 슛은 다 할 줄 알아. 사령관이나 다름 없는 PG인걸. 작전이나, 속공 전개, 패싱력, 슈팅력. 모두 잘해야 되는걸 뭐."
"…그럼, 넣고 싶을 땐 넣어야지."
"뭐?"
태웅은 성큼성큼 볼을 들고 서 있는 세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두 다리를 끌어안고 위로 들어올렸다.
"…으앗, 태, 태웅아!"
"…넣고싶다며."
"그,그치만… 나 키도 커서 무거울텐데?!"
"…난 더 커. 너 하나 못 들면 쓸모없는 키니까."
"태, 태웅아."
"…뭐해? 내리꽂아."
"…풋. 알았어."
그녀는 활짝 웃으며 골대를 향해 볼을 내리 꽂듯이 넣었다.
[철~렁]
골대가 울릴정도의 덩크를 한 세연은 만족한 듯 태웅을 내려봤고, 태웅은 살며시 세연을 내려주었다.
[짝!]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세연은 싱긋- 웃었고, 태웅은 평소의 포커페이스에서 조금 웃어보였다.
"아, 태웅이 넌 포지션이 뭐야?"
"…뭘까."
"뭐야. 맞춰봐라는 소리야? 음… 포워드 아님 가드일 것 같긴 한데, 넌 원래 슛하는 걸 좋아해서… 아, 모르겠다. 커서는 너랑 농구해 본 적이 없잖아."
"…근접했어."
"음, 그럼… 스몰포워드인가? 아님 슈팅가드? 아, 스몰! 스몰포워드지?!"
"…(끄덕)"
"그쪽이 너에게 더 맞을 것 같아서, 슈팅가드는 대부분 중장거리가 많은데다가, 가끔 시합에서 셔틀이 될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넌 포워드가 맞는 것 같아."
"…옛날이랑 변함없군."
"응? 뭐가?"
"농구라면 사족을 못쓰지."
"…그치만, 재밌는걸?"
세연은 정말 기쁜 듯 환히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태웅도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너한테 배웠구나. 내가."
"…뭘?"
"농구라면 사족을 못 쓰는거."
"그래? 기쁜데."
"…미국가면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려고 했었어?"
"…이 정도면 된 줄 알았어. 미국에 가도 이 정도면…"
"…?"
"미국에 가서 널 만나 내 농구실력이 어느정도 성장했는지.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왜."
"안감독님께서 조금 더 뒤로… 미루자고, 윤대협을 이기면 그 때 생각하자고 그래서."
"…태웅아. 있잖아. 미국은… 참 넓더라. 미국사람들은 농구를 참 좋아해. 물론 미식축구라는 스포츠도 좋아하지만, 그런 곳에서 배우려니 가슴이 벅찼는데, 그곳은 참 선이 명확했어. 재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잘하는 자와 못하는 자. 그것이 너무 뚜렷해서 좀 실망했어. 농구는 스포츠잖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곳은 오직 경쟁만이 살길인 것 같아서, 살벌하더라구. 여러 기술도 익히고 눈도 즐거웠지만 역시 난 잘하는 것보단 즐기는 게 더 옳다고 생각해."
"…."
"난 그래서 너한테 농구를 가르쳐준거야. 나처럼 농구를 즐거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이젠, 굳이 미국에 가지 않아도돼. 언젠가는 가겠지만."
"…그래?"
"니가 왔으니까."
"…훗. 보고싶은데? 얼마나 성장했는지?"
- 야. 여자.
[콩-!]
- …읏. 아파! 여자.
- 요 꼬맹이가 말하는 것 좀 봐? 누나한테 뭐? 여자?
- 흥, 누나라는 생물 자체가 쪽팔려.
- 이게!
- 그것보다, 아까 그 여자. 친구야?
- 맞을래? 누나친구한테 여자라고?
- 여자야.
- 하아, 그래 친구다. 그래서 뭐?
- 다음에 또 데려와.
- 뭐? 이게 어디서 명령질이야?
- 누나로써 동생에게 도움되는 일 한번이라도 해.
- 하, 뭐?
- 안 데려오면 가만 안둬.
[다다다다다~]
- 하, 저걸 동생이라고!
며칠 뒤, 하교를 한 태연은 세연이를 데리고 집에 왔다.
- 여기서 좀 쉬고 있어. 나 내 방에 좀 갔다올께.
- 응.
거실에 앉아 tv만 멍하니 쳐다보던 세연의 앞에 누군가 다가와 앉았다.
- 에, 넌…
- 서태웅. 기억해.
- 아, 그래 서태웅. 태연이 동생이지?
- (끄덕) 갖고싶진 않았지만.
- 풋. 누나를? 귀여워라.
- 저런 여자랑 놀지 마.
- 에? 그럼 나 심심한데?
- 내가 놀아주지.
- 정말?
- (끄덕)
- 근데, 태웅아. 누나 이름 기억해?
- 강세연.
- 세연이 누나라고 불러야지.
- …싫어. 누나라고 안해.
- 왜? 나 싫어?
- 좋으니까, 누나 안한다고.
- …그게 무슨?
- 누나라는 생물은 좋아할 수 없어.
- 응?
- 난 니가 좋아. 그러니까, 누나 하지마.
- 음… 그래 뭐. 상관없어.
기억하지도 못할, 기억나지도 않을 그런 작은 고백이었지만,
씹히라고 한 말 아니야. 이 둔한 여자야.
"엥? 왜들 이리 강당에 모여있어?"
"아, 강백호. 저기 좀 봐."
"뭔데요? 한나선배."
드리블. 드리블. 드리블. 드리블. 패스. 패스. 패스. 슛.
"우와~ 또 들어갔어. 태웅아!"
"…응."
어느샌가 구경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단 사실도 잊은 채 둘은 너무나도 즐겁게 농구를 즐기고 있었다.
세연이 PG답게 리드를 하며 기술을 선보이면서 태웅에게 적절한 패스를 하면 태웅은 그에 응하듯 가볍게 바톤을 이어받아 현란한 기술을 선보인 뒤 자연스럽게 골을 넣는다.
"대단하지않아? 저 둘. 저렇게 호흡이 잘 맞을 수 있다니. 꼭 10년은 같이 한 팀을 한 사람들 같단말야."
"…저,정말."
백호는 자신도 모르게 한나선배의 말에 수긍하였다.
한나와 백호뿐만 아니라, 이미 치수와 대만, 태섭 그리고 소연이, 그 외에도 여러 학생들이 그 둘의 호흡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들뜬 마음으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정말 재밌…아,"
"…?…"
"어,언제 이렇게 사람들이…"
"정말 잘하는데요. 둘이. 태웅인 예전부터 알았지만, 세연씨도 굉장해요."
"아, 고마워요."
"사람들이 주변에 몰려들길래 뭔가 하고 와봤더니 둘이서 연습을 하고 있어서 놀랐어요."
"아, 그게 저도 이렇게 사람들이 모인 줄 몰랐어요."
"…그만큼, 몰입했단거겠지."
치수가 웃으며 다가와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야, 세연양은 여자치곤 굉장한데요?"
"아, 대만군…이라고 불러도되죠?"
"물론."
"고마워요. 치수군과 준호군 그리고 대만군 모두 동갑이니까, 편히 말놔요."
"그럴까. 그나저나, 잘하던데?"
"예전부터 해왔으니까, 아. 태섭군도 포인트가드죠?'
"에? 어떻게…?"
"아, 어제 첫날에 여기 왔을 때 연습들 하고 있었잖아요. 그때 치수군, 대만군, 태섭군 연습하는 거 보고 알았어요. 백호랑 태웅인 그때 없어서 잘 몰랐지만."
"그럼, 내 포지션도 알아?"
"응. 대만군은 슈팅가드지? 3점슛을 주로 하던걸? 대만군 덕에 태웅이의 포지션을 좀 더 알기 쉬웠어. 치수군은 센터지?"
"…아."
"그럼… 백호는 뭐지?"
"쳇, 다른 사람 껀 다 알면서 동생 껄 모르냐. 그… 뭐시냐. 센터 비슷한 거."
백호가 투덜대며 다가오자, 한나는 평소의 그 부채로 백호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읏… 한나선배. 아프다구요~"
"넌 아직까지도 자기 포지션 이름 하나 못 외워?"
"…아, 센터 비슷한게 아니라 주로 센터 옆에서 받쳐주는 걸 말하는거지? 파워포워드."
"…그, 그래. 그거 파워포워드!"
"헤에, 생각보다 너한테 딱 맞는 포지션인걸?"
"그,그런가?"
"응. 그럼 주로 리바운드를 위주로 하겠구나. 근접한 거리에서 쓰는 점프슛이나, 레이업슛 또는 덩크 위주겠고."
"…헤, 누나 많이 아네?"
"니가 너무 모르는거야!"
"읏! 한나선배 아프다니까요!"
"…근데, 다들 수업은 어쩌구…?"
"뭔 소리를 하는거야? 벌써 점심시간이라고! 그래서 내가 데리러 온거잖아."
"…흥. 안와도 돼."
"이잇…여우가!"
"앗, 벌써 그렇게…?"
"…후훗, 세연씬 정말 농구를 좋아하나봐요?"
"…아, 네. 이상하게 농구를 하면…시간 가는 줄 몰라서."
"헤에, 태웅이랑 비슷하네요. 이 녀석도 농구하느라 늘 시간가는 줄 모른다니까요?"
"…아. 그래요? 훗."
"그나저나, 누나. 배고파."
"아, 미안."
"둘이서 먹는거야?"
"…그러고 싶은데, 이 여우가…"
"태웅이도 같이 먹으려구요."
"아, 혹시 도시락 싸온거예요?"
"아. 네."
"우와, 궁금한 걸? 세연씨 요리 잘하나봐요?"
한나의 물음에 세연은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
"아뇨. 잘하긴요…평범한걸요?"
"우왓…나도 먹고싶다! 세연이가 만든 도시락이라니…"
"하여튼, 대만선배. 어른스럽지 못하다니까."
대만의 부러움이 담긴 말에 태섭이 옆에서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곧바로 대만이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흥. 넌 안 먹고싶다 이거냐?"
"…아니, 뭐."
"…아, 저 그럼 다 같이 드실래요? 오늘 많이 준비했거든요."
"어머, 정말요? 그래도 돼요?"
"그럼요."
한나는 기쁜듯이 웃으며 반겼고 세연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다른 분들도 괜찮으신가요?"
"…아, 감사히…."
치수도 마다하지 않고 오케이했고 대만과 태섭은 둘 다 당연히 찬성했다.
"물론! 당연히 좋지!"
"헤헤, 한나도 좋다니까…나도 오케이."
"백호야. 태웅아. 괜찮지?"
"아…뭐, 상관없어."
워낙 왁자지껄한 걸 좋아하는 백호이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했다.
"…칫."
"…응?"
"맘대로해."
"…아,응."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지 태웅은 살짝 굳은 얼굴로 틱틱거리듯 대답했다.
'뭔가 …불만이라도?'
세연은 살짝 당황했지만 곧바로 모두를 향해 말을 꺼냈다.
"아, 그런데 수저랑 젓가락이 모자라서."
"그렇네요. 수저는 그렇다치고, 젓가락이라도 있으면…"
"…오빠."
"아? 소연아."
"자, 여기-"
소연은 검은 비닐봉지에 들은 것을 치수에게 내밀었다.
그 안에는 젓가락들과 생수가 들어있었다.
"…아. 고맙다."
"뭘, 이 근처가 바로 매점인 걸. 다 같이 도시락 먹는다길래 금새 사왔지."
"우옷! 역시 소연이~"
"아, 소연양도 같이 먹어요."
"…아, 정말요?"
"응."
그렇게, 결국 모두 모여 도시락을 꺼내어 먹었다. 세연의 도시락은 생각보다 꽤나 많은 층을 이루고 있는 도시락이었고, 한나는 그걸 보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 이걸… 셋이서?'
"생각보다 많죠? 이래봬도 저랑 백호가 꽤나 먹성이라…"
"백호는 이해가 가지만, 세연씨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아뇨. 정말이예요."
"그나저나, 이 도시락 진짜 맛있는데?"
"그러게요. 이번엔 대만선배 말에 찬성."
"아, 정말? 치수군은 입에 맞아?"
"…아. 네. 굉장히…"
"아, 말 놓으라니까. 훗."
"…그럼, 세연씨도 저한테 말 놓으세요. 그래야 저도 편하게 언니라고 부르죠."
한나의 말에 옆에 있던 소연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요. 세연언니."
"아, 그래? 그럼 이제 모두에 말 놓는다?"
"그러세요~"
여자 셋이 뭐가 그리 죽이 척척 맞는 하하호호 떠들며 맞장구를 쳐댔다. 남자들도 그 모습을 보면서 키득키득 따라 웃었다. 한편 묵묵히 세연의 옆에서 밥을 먹던 태웅은 갑자기 세연의 팔을 툭- 건드렸다.
"…응?"
"반찬."
"…아."
태웅의 말에 모두 웃던 것을 그만두고 태웅이 쪽을 쳐다봤다.
"야야. 니가 애냐? 직접 집어먹…"
"반찬."
대만의 핀잔에도 들은체 만체하며 태웅은 세연을 향해 말했다. 그에 대만이 살짝 울컥했지만 선배니까 참자 참아- 하며 본인의 마음을 다스렸다.
"아, 내가 집어줄께."
지켜보고있던 소연이 우엉나물을 집어 따로 퍼낸 밥 태웅의 밥 위에 얹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태웅은 젓가락을 들어 툭- 그것을 제지했다.
"…아."
"…."
소연이 잠시 놀란 듯 멍하니 태웅을 쳐다봤고, 세연은 그 옆에서 소연이 집어준 우엉나물을 자신의 밥 위로 가져간 뒤 말했다.
"태웅이는 우엉나물을 별로 안 좋아해. 그래서 그런거지? 태웅아?"
"…."
"자. 니가 좋아하는 계란말이. 만족해 이제?"
"…우물우물."
세연이 얼른 태웅에게 반찬을 집어줌으로써 무언가 서늘한 분위기가 지나간 듯 했다. 속으로 세연은 휴우,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겉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 소연을 향해 위로하듯 말했다.
"원래 태웅이가 좀 까다로워서…"
"아…네."
아무래도 석연치않은 소연이었지만 곧 밝게 웃으며 넘어갔다. 그러나, 곧바로 백호가 감히 소연이의 친절을 무시했니 어쩌니 하면서 태클을 거느라 또다시 시끌벅적해졌지만.
"후아~ 잘 먹었다!"
"괜찮았어?"
"응.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
세연의 물음에 백호가 웃으며 대꾸했고, 모두가 백호의 말에 동조하듯 대답했다.
"맛있었어요."
"맞아. 진짜 요리 잘하는데?"
"고마워."
"여기. 물."
태웅은 생수를 집어 세연에게 건넸고, 세연은 태연히 그걸 받아 마셨다. 그러나, 다른 부원들은 태웅이 남을 챙기는 그런 의외의 모습에 역시나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아, 잘 마셨었어. 태웅아."
"…응."
태웅은 세연의 물을 도로 다시 받아 그걸 자신이 또 꿀꺽꿀꺽 마셨다. 태웅의 행동에 세연 본인은 아무렇지 않아했으나, 역시 다른부원들은 신경이 쓰였다.
어찌됐든, 도시락을 다 먹은 부원들은 조금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점심시간을 활용해 다시 농구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코트 외에 그들의 모습을 보며 서 있던 세연은 옆에있는 소연에게 말을 걸었다.
"…질문 하나 해도 돼?"
"…네? 아, 네."
"…음. 이상형이 어떻게 돼?"
"네? 이, 이상형이요?"
"응. 그냥 궁금해서…"
"아, 음…그게."
소연은 얼굴을 붉히며 쭈뼛쭈뼛 말을 더듬거렸다.
"…그럼, 농구를 잘하는 사람이 좋아? 아니면 농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
"아, 그게… 물론 잘하면 좋겠지만, 역시 좋아해주면 좋겠어요."
'…아하하, 결국은 둘 다 좋다는거네.'
"그럼… 태웅이가 이상형인건가?"
"네에?!"
"…왜 그렇게 놀래? 태웅인 잘하면서도 농구 좋아하잖아. 그래서 한 말인데?"
"놀랄만 하죠. 정곡을 찔렸으니~"
"에?"
"소연이 태웅이 좋아하거든요~"
"하,한나 언니!"
"왜~? 맞잖아?"
"그, 그래도…!"
'아…그랬구나. 그래서 아까전에.'
"백호가 소연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아, 저도 백호 좋아해요."
"…아, 그,그래."
태웅이를 좋아하는 것과 백호를 좋아하는게 확실히 다르다는게 보인다. 에효, 우리 백호 어쩌지? 또 차이려나?
"저…언니."
"응?"
"태웅이랑 잘 아는 사이잖아요."
"아, 뭐…그렇지."
"그럼 …태웅이의 이상형도 아세요?"
"아, 글쎄. 그런 애긴 안해서, 대부분 태웅이랑 있으면 농구애기나 태웅이 누나 애기밖엔… 그외엔 사소한 거 뿐이라서."
"…아, 그래요. 그, 그럼 혹시… 누굴 좋아한다든지."
"…그건, 나보다 소연이나 주변 부원들이 더 잘 알지 않아? 그동안 난 같이 있지 못했으니까."
"…아, 그렇…네요."
'그치만, 같이 지내온 우리보다 왠지 …언니가 더 알 것 같아서 …너무 친해보여서.'
"그나저나, 우리 소연이 되게 귀엽다. 내 여동생 삼고싶어."
"에? 그런… 언니가 더…"
"진짜라니까? 치수군이 부럽다아~ 나도 여동생 갖고 싶었거든."
'전 …언니가 더 부러운걸요.'
"그치만, 널 여동생 삼았다간 …백호가 가만있질 않을테니까."
"에? 백호가요?"
"아, 참- 나 이번에 이 학교로 진학하게 됐어."
"우와- 그럼 여기서 같이 다니는거예요?"
"응. 한나하고 소연이. 앞으로 잘 부탁해-"
"물론이죠."
"네에!"
"아, 오늘 교복사러 가는데, 같이 가 줄래? 보답으로 뭐 사줄께."
"에, 공짜로도 같이 가줄 수 있는데."
"아니, 그럼 내가 너무 미안하니까. 아무튼, 같이 가주는거지?"
"좋아요."
"소연이는?"
"아, 저두요. 오빠한테 말해두고 올께요."
"고마워."
곧 점심시간이 끝나는 종소리와 함께 부원들은 다시 교실로 돌아갔고 세연은 잠시 외출을 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로 하여 태웅이 역시 교실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세연이 잠시 외출을 나간 것은 백호와의 의논 하에, 같이 살기로 한 집을 새로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백호가 그리 비싼 집으로 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아무래도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그 단칸방 같은 곳에 계속 백호를 두기는 좀 그랬는지 세연은 이사를 하자고 했지만, 백호는 돈이 걸려 세연에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집을 구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세연은 …생각이 좀 달랐다.
이미, 엄마와 애기를 나눈 뒤였던데다가 백호에게 그동안 못해줬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려 했던 그녀이기에 좀 더 큰 것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집선물이라는게 너무 통이 큰게 아닌가 싶으나, 워낙 세연의 성격이 그렇다보니.
"우와, 이 집 너무 멋져요."
"그쵸? 그렇지만, 둘이 살기에는 너무 크진 않으실까해서."
"아, 그렇네요. 그치만 두명이든 세명이든 비슷한거니까."
"그럼, 이 집으로?"
"네. 이게 맘에 드네요."
세연은 결국, 저질렀다.
둘이 살기엔 꽤나 크다고 할 수 있는 주택으로.
돈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직 백호에게는 말해줄 수 없었지만.
"뭐? 셋이서 같이 교복을 사러가기로 했다고?"
"응! 여자들끼리 친해질겸~해서."
백호의 되물음에 세연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같이 하교하기로 되어있었기에 태웅 역시 그 옆에서 살풋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
"있어. 나한텐. 친해지겠다는 건 좋은거잖아."
태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연은 맞받아쳤다. 그녀의 말에 태웅은 입을 다물고 뚫어져라 그녀를 바라보았고, 세연 역시 지지않으려고 태웅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안돼?"
"…하아."
세연이 살짝 기죽은 듯이 묻자, 태웅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알았다는 듯 손짓을 했다.
"헷, 그럼 미안하지만 오늘은 둘이서 먼저가."
"내가 뭣하러! 나 혼자서 집에 갈거야!"
"원래 호열이랑 같이 집에 간다며. 그러고보니 호열이 애들이 안 나타나네? 보고싶은데."
"걔네 요즘 알바한다고 바빠. 저번주 부턴가? 나한테 말했었어. 저녁 알바라서 곧장 가야되니까 못 기다려준다고."
"아, 그렇구나."
"그럼 나 먼저간다."
"응~"
세연은 백호를 보낸 후 아직도 가지않고 서 있는 태웅을 쳐다봤다.
"안 가?"
"하아, 넌… 왜 그렇게."
"응?"
"…너무 친해지지마. 누구든간에."
"에?"
"넌 정에 약하니까."
태웅은 그렇게 말한 후 돌아서 강당을 나갔다.
세연은 태웅의 말 뜻을 이해하곤 풋- 하고 웃으며 한나와 소연이에게로 향했다.
"뭐? 사줬다고?"
"그렇다니까. 이쁘지?"
소연은 세연과 한나와 교복점에 들른 뒤, 쇼핑을 했던 것인지 무언가 양손에 쇼핑백을 들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장 오빠에게 이것저것 세연이 사준 물건들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예쁘긴한데. 받아도 되는건가?"
"그게… 가격이 상당해서, 나도 부담스러워서 괜찮다고 거부했는데, 결국…"
"흠."
"세연언니는 너무 착하지만, 너무 남한테 잘해주는 것 같지않아?"
"…그런가."
"아, 오빠것도 있는데. 운동화!"
"뭐?"
"언니가 묻길래 오빠 신발 사이즈 알려줬거든, 난 궁금해서 그런건가 싶었는데. 이렇게 운동화를…"
"…하아, 성격이 너무 좋은거 아닌가."
"하핫, 그치?"
"고맙긴하지만… 그래서 어떤 운동화지?"
'내심…궁금했구나?'
소연은 얼른 치수에게 종이가방을 내밀었고 그는 가방안에 든 상자에서 신발을 꺼내어보았다.
"이, 이 운동화는…"
"왜?"
"아, 아니. 잡지에서 보던 운동화라…"
"정말?"
"응."
"역시, 운동하는 사람이라 그런건가, 스포츠 용품을 잘 고르더라구."
"…응."
채치수는 운동화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담스러워서 돌려줄까도 생각했지만 잡지책을 보면서 꽤나 갖고 싶었던 물건이기에 그는 한참을 망설였다.
한편, 치수군 뿐만 아니라, 대만은 고급시계를 선물 받았고, 태섭은 값이 상당히 나가는 진짜 보석이 박힌 피어싱을 선물 받았다.
"뭐? 한나선배랑 소연이 뿐만 아니라, 셋한테도 선물을 해줬다구?"
"응."
"…대,대체 뭐하러? 굳이 그 셋한테…"
"뭐 어때."
"그, 그래서… 무슨 선물 해줬는데!"
"음, 한나에게는 구두. 소연이에게는 투피스, 치수군에게는 운동화, 대만군에게는 시계, 태섭군에게는 피어싱. 그리고 이건… 니꺼."
"(그래서 한나선배랑 소연이랑 같이 간거군.) …에? 내꺼?"
"응. 풀어봐."
"…흠흠, 뭐, 뭐지?"
내심 기대를 가지고 펼쳐보자 그것은…
"뭐, 뭐야…? 이건?"
"뭐긴 뭐야. Key."
"…아, 아니. 열쇠라는 건 나도 알겠는데. 무슨…열쇠?"
"우리 집 키야. 선물."
"…하…하하. 지, 집이 선물?"
"응. 니 이름으로 집을 샀어. 맘에 들거야."
"…고, 고맙긴한데. 그것보다 돈이 어디서 나서…"
"그건… 걱정 안해도 돼."
"…아, 뭐어…그렇다면야 다행이긴한데."
백호는 누나가 준 선물이라 기쁘긴한데 약간 얼떨떨한 그런 상태였다.
"아빠에겐 죄송하지만, 이제 우리…보금자리를 옮기도록 하자. 이해해주실거야."
"…응."
세연의 말에 백호는 살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백호의 반응에 세연 역시 희미하게 웃었다.
"아, 그리고 백호야. 내일 토요일이잖아. 참고로, 이번주 일요일에 이사가기로 했어."
"뭐어?! 그렇게 빨리?!"
"응. 결심했으면 곧장 행동으로 옮겨야지."
"우우…힘든데."
"남자가 투덜대긴. 그리고 누나는 공짜로 선물 안해."
"…에?"
"다 이유가 있으니까 주는거야. 참고로 백호 너도 마찬가지."
"뭐어?"
"오늘부로 이 반에서 같이 공부하게 된 강세연이라고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싱긋-)"
"우오오오-"
"…하여튼, 남자들이란."
세연의 인사에, 남학생과 여학생의 반응이 극히 교차하면서 세연은 곧 자리를 지정받아 자기자리에 앉았다.
"안녕. 대만군. 같은 반이라서 다행이다."
"아아, 그러게. 우리학교에서 다닌다는 건 한나한테 들었지만 설마 우리반일줄은."
"그러게."
곧 수업이 시작하고 세연은 선생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으나, 대만은 멍하니 그런 세연을 쳐다보고 있다가 문득 주변시선 모두가 세연에게 향해 있는 것을 느꼈다.
'우와…진짜 예쁘다.'
'흥. 쟤가 바로 강백호 누나라고. 그건 알기나해?'
'뭐? 강백호 누나?'
'야야, 그러고보니 머리색도 닮았다.'
'이야. 나도 저런 누나 갖고 싶다.'
'그러게. 강백호 누나치곤 아까 성격 되게 싹싹하던데.'
'동생은 차이는게 전문인데, 그 동생의 누나치곤 지나치게 예쁜거 아냐?'
'아냐. 강백호도 생긴건 제법 괜찮아. 싸움이 취미라는 거랑 성격이 문젠거지.'
'야. 그래도 요즘 강백호 농구하고나서 바뀌지않았냐?'
'…하긴, 요즘 많이 달라졌더라. 싸움도 안하고 시비도 안 걸어.'
대만은 저런 웅성거림 속에서도 꿋꿋이 선생님에게 집중해있는 세연을 보면서 잠시 웃었다. 어떻게 보면 강한거고, 다르게보면 둔한거고… 쿡. 그나저나, 인기가 너무 많아도 안 좋네.
곧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3반에는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1학년, 2학년, 3학년. 가릴 것 없이 모두 세연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이미 전교에는 세연이 그 강백호의 누나이며 서태웅과 아는 사이, 또는 친한 사이라는 등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있었다. 그러니 전교생들이 이리 몰려드는 것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다. 물론, 세연 본인은 백호와 태웅이 얼마나 이 학교에서 떠들썩한 녀석들인지 짐작조차 못했기에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야야. 저 빨간머리 여학생이 강백호 누나라며?"
"그렇다니까."
"와씨, 완전 이쁘다."
"동생이랑 딴판이래."
"저 여자가 요즘 태웅이랑 붙어다닌다는 그 여자야?"
"그렇다니까. 요즘 등교할때나 하교할때나 착 달라붙어서는…"
"어우, 머리색 뿐만 아니라, 어쩜 하는 짓도 불여시같니?"
"그러게나 말이야. 어떻게했길래 태웅이가 상대해주는거지?"
"그러니까, 태웅이는 원래 여자는 상대도 안하는데!"
"정말로 강백호 누나야?"
"응. 맞아."
"머리는 염색이지?"
"응. 백호랑 같이 했어."
"미국에서 왔다는게 사실이야?"
"응."
"정말로 농구 잘해?"
"…글쎄. 그건 본인 입으로 말히긴 좀…"
"그럼, 진짜 농구한다는게 사실이구나!"
"응. 그건 사실이야."
세연은 꼬박꼬박 학생들의 질문에 모든 대답을 해주고 있었다. 오히려 지켜보고있는 대만이 숨이 넘어갈 정도로 학생들의 관심과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태웅이랑 친해져요?"
"…에, 그건 태웅이 본인에게…"
"얘. 그런 건 물어서 뭐해, 뻔하잖아? 엄청나게 꼬리쳤겠지."
"그럼 나도 꼬리치면 넘어올까요?"
여학생들의 짖궂은 질문에 가만히 보고있던 대만은 급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정작 세연은 태연히 그녀들을 둘러보며 대답해주었다.
"글쎄. 난 꼬리가 없어서 그런 건 못해. 너넨 꼬리가 있는가봐? 그럼 열심히 꼬리쳐봐. 훗. 지켜볼께."
세연은 정말 재밌다는 듯 해맑게 웃어보였다.
"무,뭐야?! 지금 장난해?"
남학생들은 옆에서 또,또, 서태웅 들러리들이 시끄럽게 떠든다며 투덜대고 있었고 대만은 의외의 세연의 반응에 흥미롭게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난…진심인걸? 혹시, 모르잖아. 너네가 정말 열심히 태웅이에게 꼬리친다면 말 한번 걸어줄지도?"
"…하아!"
"그런데, 얘들아. 난 굳이 그러지않아도 태웅이가 상대해준다는 건. 그만큼 너네와 나의 차이 아냐?"
"뭐, 뭐?!"
"그러니까, 이런 바보같은 짓은 작작하라는 소리야. 이럴수록 너네와 나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 뿐이니까."
"풋, 큭큭… 맞는 말이네."
"맞아맞아."
주변 남학생들이 모두 세연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꼴좋다는 둥, 맞는 말이라는 둥. 키득키득 웃어댔다. 그덕에 오히려 그 여학생들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지더니 잽싸게 반을 나갔다.
정대만 역시 세연을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다시 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모두들 다 자기반으로 돌아가거나 자기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장난 아니던데? 내가 다 속이 후련하더라니까."
"헤에, 언니 제법하시는데요?"
"아, 그래?"
"그럼요. 지금까지 서태웅 팬들한테 그런식으로 한방 먹여준 건 언니가 처음일걸요?"
"흐-응. 태웅이가 생각보다 인기가 많은가보네."
토요일인지라, 학교 수업을 일찍 마치고 모두 연습을 하러 모인 부원들에게 대만은 좀전에 반에서 일어났던 일을 애기해주자 모두가 흥미로워했다.
세연은 살짝 태웅을 바라보며 태웅의 인기에 대해 말을 꺼냈다.
"어휴, 난리라니까. 연습시간이나 시합만 되면 어떻게 알고 왔는지 따라와서는 L.O.V.E. 서태웅이라고 외쳐댄다니까."
"아아. 그래. 그거 어떻게 안되나? 좀."
"나. 언제더라? 시합중에 드리블하다가 걔네 응원에 깜짝 놀라서 공 놓칠뻔 했다니까?"
"헤에, 그 정도야?"
세연은 좀 더 관심있게 태웅을 바라보았다.
정작 주인공인 태웅은 무슨 얘기인지 관심조차 보이지 않은 채 농구공을 휘릭~ 하며 손가락으로 빙빙 돌려대고 있었다.
"그럼, 나 이러다 보복이라도 당하려나?"
"아, 그럴지도. 저도 꽤나 시달렸던 때가 있었거든요. 그저 알고 지내는 선후배 사이일 뿐인데도."
세연의 말에 한나가 맞장구를 쳤다.
"뭐얏? 한나씨.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한테 말해주지!"
"으휴- 됐어. 그 정돈 아니었으니까."
태섭의 걱정이 담긴 표정에 한나가 작은 한숨을 내쉰 뒤,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했다.
"음…그럼, 난 당분간 태웅이랑 가까이 하면 안되겠네?"
'삐끗- (휘청)'
세연의 말을 들은 것인지, 공만 빙글빙글 돌리고 있던 태웅은 순간 몸이 휘청거리더니 손가락으로 지탱하고 있던 공을 삐끗하여 결국,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뭐?"
"아, 듣고 있었어? 그냥, 갑자기 나의 신변보호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
태웅은 멍하니 세연을 바라보았고, 세연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풋- 아하하, 바보- 그 말을 믿어? 내가 그럴 사람이야?"
"…"
태웅은 세연의 말에 곧장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세연의 손목을 휙- 낚아챘다. 그리곤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런 장난치지마."
"…화났어?"
"…제길."
태웅은 세연의 손목을 다시 놓아주며 농구공을 주워들고 골대를 향해 볼을 내리 꽂았다. 골대가 휘청거릴정도로 아주 세게.
"아…화났다."
한나의 말에 세연은 난처한 듯 웃어보였다.
"저녀석. 세연이 널 진짜 좋아하는 거 아냐?"
"…."
"동생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대만의 말에 부원 모두가 세연을 바라보았다. 마침, 백호와 소연은 생수를 사러 매점에 심부름을 간 상태라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아, 내일 모두 시간 되요?"
"에? 나는 되긴 되는데."
"아, 저도요."
"뭐, 연습하는 걸 빼곤 시간이 남긴 하지만."
"나도."
대만, 한나, 치수, 태섭 모두 시간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실은 준호군에게도 부탁할까해서 안경케이스를 선물하긴 했는데, 안타깝게도 오케이 사인을 못 받았고, 여러분은 다행히 시간이 된다고 하니 부탁 좀 드릴께요."
"에? 그러고보니 선물! 맞다. 그거 모두에게 다 돌린거?"
대만의 말에 한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신 대답했다.
"맞아요. 세연언니가 저랑 소연이한테 자세히 물어서 고민해가며 고른거예요. 태섭이 네 껀 내가 골랐고."
"아, 역시~ 너무 맘에 들더라. 역시 한나라니까♥"
"돈 엄청 들었을걸요? 치수선배껀 메이커상품에, 대만선배껀 명품에, 태섭이 네껀 진품이니까. 거기다 소연이 옷이랑 제 구두도."
"아, 좀 부담이 가던데…"
치수의 말에 세연은 싱긋- 웃으며 대꾸하였다.
"그래서 부탁드릴게 있다는 거예요."
"부탁?"
"내일 백호랑 제가 이사를 하거든요."
"어머? 진짜?"
"응. 그래서 내일 짐 나르는 걸 좀 도와주셨으면 해서, 한나랑 소연이는 짐정리♡"
세연이의 말에 모두가 역시나- 라는 생각을 가졌다.
뭐, 어찌됐든 세연은 남모르게 말을 돌린 셈이긴 하나, 그 누구도 눈치를 채진 못했다.
백호가 치수에게 잡혀 남아서 특훈을 받기로 되어있어 토요일 오늘은 태웅과 세연 둘이서 하교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태웅이 너도 내일 도와줘. 알았지?"
"…응."
"공은 맘에 들어?"
"…아니."
사실, 그들의 선물만이 아니라, 태웅이의 선물 또한 당연히 준비하였고, 늦은 시간이라 한나에게 물어 그의 집앞에 살짝 선물만 내려놓고 온 세연이었으나, 워낙 백호가 태웅을 싫어하다보니 또 투덜댈 것이 뻔해 백호에겐 태웅의 선물에 대해 쏙 빼고 애기하였던 것이다. 참고로 태웅에겐 농구공을 선물하였다.
"어? 진짜? 꼼꼼히 따져보고 고른건데. 그럼 바꿔줄까?"
"…응."
"뭘로 해줄까."
"…1분 동안 정지."
"뭐?"
"그냥 가만히 있어."
"무슨…"
"…받아갈테니까."
태웅은 그 대답을 끝으로 세연을 자신의 품안에 가두었다. 세연은 잠시 버둥거렸지만 곧 잠잠해졌고, 태웅은 눈을 꼭 감고서 세연을 끌어안고 있다가 살며시 눈을 뜨며 그녀를 살짝 품안에서 떼어내어 바라보았다.
세연의 빨간머리에 손을 갖다대어 조금씩 손을 내려 세연의 얼굴을 감싸쥐었다. 얼굴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마, 콧잔등에 입술을 갖다대며 조금씩 내려가 그녀의 입술에 맞닿았다. 그저 그냥 그녀의 입술에 조각을 끼워 맞추듯 자신의 입술을 꼬옥 갖다대고 있을 뿐이었다. 두 손은 혹여나 아플까 어깨를 꽈악 그러쥐진 못하고 조심스럽게 살며시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역시… 좋은냄새가 난다. 부드러워.'
그녀의 향을 느끼며 태웅은 세연의 입술이 무척 부드럽다고 느꼈다. 자신이 그동안 생각했던 그녀의 느낌과 비슷해 그는 흡족한 듯이 입가에 미소가 살며시 번졌다.
그리고 잠시… 1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태웅은 살며시 입술을 떼어냈다.
"…받았다."
"…뭐? 너어-"
"…."
"…하아, 그래서 이젠 맘에 들어?"
"(끄덕)"
"…풋- 하여튼, 가자. 집에."
태웅은 앞서 걸어가는 세연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자신의 손안에 가두었다. 세연이 또다시 웃음을 터트리자 태웅은 더욱 손을 꽈악 잡았다.
"으아~ 힘들다아!! 다녀왔습니다-"
"응. 어서와."
"아, 힘들어- 글쎄 고릴…흐억! 누, 누나 뒤에 달고 있는 거 뭐, 뭐야?!"
"얘가 뭘 그리 놀래."
"안 놀라게 생겼어?!"
"보면 몰라. 태웅이잖아."
"그게 아니라!! 으익, 서태웅!! 당장 누나한테서 떨어져!!!"
자신을 반기는 누나의 뒤로 태웅이 딱 붙어 누나의 어깨위에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백호는 한마리의 원숭이처럼 발광을 해댔다.
"흥."
태웅은 콧방귀를 끼며 오히려 세연의 허리를 두 팔로 꼭 끌어안았다.
"태, 태웅아."
"이…이 자식!!! 서태웅!!!!!"
곧장 백호는 태웅에게 달려들었고 태웅 역시 백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드디어 또다시 둘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작작 좀 싸워. 너넨 같은 팀이잖아. 자. 이제 손내려."
세연의 말에 백호와 태웅은 머리 위로 올리고 있던 두 손을 내렸다.
"적어도 운동선수라면 몸싸움만은 피해야지. 다른 건 몰라도 난 그건 절대 용서못해."
"아, 알았어. 누나-"
"…."
"좋아. 이제 일어서."
둘은 그제서야 꿇고 있던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자아, 이제 밥먹자!"
세연은 그 둘을 향해 싱긋- 웃으며 말했고, 둘은 어정쩡하게 걸음걸이를 하며 몸을 움직였다.
태웅은 밥을 다 먹고 잘 시간 쯤 되어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
"…누나. 역시 저 여우, 누나를 노리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래?"
"그래?라니! 뭘 그렇게 태연하게!"
"뭐 어때, 누군가 나를 좋아해준다는 건 무척 기쁜 일이잖아."
"…저기 누나, 옛날부터 누난 너무 정에 한해서 무르다고 할까. 좀…"
"알아. 니가 무슨 걱정하는지. 사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 워낙 난 정에 약하니까."
"그거 고치는 게 낫지않아? 누나가 상처받기 쉬운거잖아. 그런 거."
"그치만…헤어질 때 받을 상처가 너무 무서워서 만나는 걸 거부하는 건…너무 바보같잖아."
"…뭐, 누나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리고 태웅이는 이미 늦었는걸."
"누나. 저 여우녀석. 진심인 것 같은데…."
"응. 그럴지도."
"그럼 소연이는…"
"…훗. 아이구 우리 착한 백호~"
"웃- 뭐야!"
세연은 백호의 양볼을 두 손으로 비비며 말했다.
"바보야. 넌 어쩜 그렇게 날 닮았어?"
"내, 내가 뭘!"
"너나 나나, 본인 생각보다 남 생각을 먼저하는 성격은 똑같구나."
"무슨…"
"소연이도 소연이지만, 넌 아무렇지않아? 너야말로 진심이잖아. 소연이에게."
"나, 난…괜찮아."
"진짜?"
"그, 그럼! 이 천재 강백호가 그런 일 하나로…하나…로"
"괜찮을리가 있나."
"…여우녀석. 어떡할거야?"
"…글쎄. 나도 모르겠다. 과연 내가 어떻게 할까…."
"좋아…해?"
"…응. 좋아해."
"…지,진짜로?"
"응. 진짜 좋아해. …백호 널."
"… …윽, 누나아!!!!"
"풋- 바아~보!"
둘은 밤새 투닥거리며 TV와 함께 밤을 지새웠다.
"후아아아암~"
"여어- 아주, 늘어지는구나."
"아…그럼 어떡해. 누나랑 밤새 떠들어대느라 거의 잠을 못 잤다고."
"헤에, 그런 반면에 누님은 멀쩡하신대?"
"다들 저 얼굴에 속는거야. 누나가 얼마나 잘 먹고 건강한데. 나보다 힘도…"
"그건 아니다. 동생아."
백호의 머리를 툭- 건들이며 과일을 내오는 세연을 보며 호열은 얼른 접시를 받아주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야, 그나저나 누나는 미국갔다온 사이 더 예뻐졌는데?"
"워낙 물이 좋잖아."
"풋- 크큭!! 아, 정말. 누난 너무 솔직하다니까."
"호열이 넌. 변함없고?"
"나야 뭐."
"아직도 여자가 끊이질 않는다거나, 아님 담배를 계속 피우고 있다거나, 빠칭코를 한다거나, 그것도 아님 여자들을 울린다거나, 싸움을 못 끊고 있다거나 하진 않고?"
"…아하…하, 뭐랄까 누난 정말 예뻐진 것 같아."
"I thank you. Stop Or I'll beat you up. Okay?"
"…뭐어? 야. 누나가 뭐라는거야?"
세연이 웃으며 영어로 말을 하자 백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열에게 물었다.
"나라고 알겠냐? 너나 나나 영어실력이 비슷한데."
"…으휴, 공부 좀 해라!"
"[그건 고마워. 하지만 그만두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때린다. 알았지?]"
"고, 고릴라?!"
"이런 내용이다."
"응. 비슷했어. 즉,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한테 맞기 싫으면 그만둬. 알았지? 호열아."
"…하핫, 이거야 원. 무서워서…그치만, 요즘은 담배나 빠칭코 외엔 하지 않는걸."
"담배는 몸에 해로워. 끊어. 그리고 빠칭코는 정신에 해로워. 관둬."
"예이~예이~ 하여튼, 누난 여전하다니까."
"아, 그나저나, 일찍 왔네. 치수군."
"음- 지각하는 건 싫으니까."
"언니! 저도 왔어요."
"아, 소연아~ 와줘서 고마워. 일단 다른 사람들이 오려면 멀었으니까. 과일 좀 들어."
"소, 소연아~"
"백호야. 오늘 이사한다며? 좋겠다아- 구경하고싶네."
"무, 물론 가능하지!"
"정말?"
헤벌레- 하기는, 하여튼 백호녀석. 호열이는 혀를 끌끌차며 백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왔다아!"
곧 대만과 한나, 태섭, 태웅이 서로 만나 같이 왔는지 다 같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 그들에게 도움을 받아 차에 짐을 싣고 이 근처로 구했던 집으로 이동을 했다.
"우와, 이 집이야?"
"좋은데? 엄청 넓다!!"
"둘이 살기엔 큰 거 아냐?"
"…누나!"
"왜? 좋잖아."
"…윽."
집 구경을 실컷한 뒤 그들은 힘을 내어 짐들을 모두 집안으로 들어옮겼다. 역시 농구를 하다보니 체력이 좋아 수월하게 이사는 진행되었다.
"세연아. 이거 어디다 두면 돼?"
"아, 저쪽 거실에."
"오케이-"
"우와, 역시- 대만이짱! 힘 좋다~"
"아, 내가 원래…"
"빨리 비켜요. 선배. 걸리적거려."
"뭐야? 서태웅 너 이자식 선배한테!"
"후우- 그 정도 칭찬가지고."
"송…태섭!!"
가끔, 뭐어…서로간의 기합을 올리기 위한 작은(?) 다툼이 있긴 했지만, 일단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어머, 이거 이쁘다아- 여기 넣으면 되요?"
"응. 거기 넣으면 돼."
"이런 건 어디서 구해요?"
"아, 그건 미국에서-"
여자들끼리의 담소도 적절히 하다보니, 어느새 이사를 끝낸 건 저녁이 다 되어갈 쯤 이었다.
"으아…몸살 나는 거 아닌가 몰라."
"늙었군요."
"뭐얏? 송태섭! 너도 아까 끙끙거렸잖아!"
"선배에 비하면 뭐-"
"이게!"
"아,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아, 아니! 별로- 하하,"
"아. 다들 배고프겠다. 뭐 먹고싶어?"
"이런 날은 원래 중국집이긴 한데."
"그럼, 중국집으로 할까."
결국, 중국집으로 결정되어 세연은 주문을 하였고, 생각보다 배달이 빨리와 다들 시장한 배를 금새 채울 수 있었다.
"우와, 진짜 잘 먹었다."
"그러게. 더는 배불러서 못 먹겠다."
"아, 후식 내오려고 했는데…"
"오우, 후식은 오케이지."
"배부르다며."
"모르냐? 밥배, 후식배 따로있는거? 그런게 인간이다."
"…멍청한 놈."
대만과 치수는 가볍게 말을 주고 받았다. 세연이 과일을 깎으러 부엌으로 들어갔고 마침 호열이도 물을 좀 더 마실겸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아, 왜? 물 마시게?"
"응."
"자아."
"감사-"
시원하게 물을 들이킨 호열은 냉장고에서 과일을 꺼내는 세연을 쳐다보았다.
"한국 오니까, 어때?"
"…으~음. 좋아."
"재밌어?"
"응. 생각보다. 그런데, 다른 애들은 같이 안 왔어? 다 같이 올 줄 알았는데."
"음- 안 그래도 그녀석들 누나 왔다는 말에 오고싶어하는거 막고 왔어. 걔네 알바가 full이라서 빼낼 시간도 없거든."
"헤에, 다들 바쁘구나. 그래도 보기 좋다."
"나도 보기 좋은데?"
"응?"
"백호녀석, 밤을 샜니 어쨌니 해도 역시- 그런건 오랜만이니까. 그녀석, 누나가 와서 꽤나 좋은가봐.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이렇게 같이 웃고 떠들며 밤을 보낼 수 있다는게."
"…그렇구나. 백호가…"
"…농구는 아직도 계속해?"
"응. 물론."
"쿡, 그러고보면 누나 동생은 맞나봐. 백호녀석."
"…에?"
"그딴 걸 왜하냐 했으면서 소연이때문에 농구를 시작하긴 했지만, 끊지 못한다는 건…"
"그래. 그만큼 푹 빠졌다는 증거니까."
"그렇지 뭐."
"…어디 보자."
갑자기 세연은 냉장고에서 손을 떼고 호열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하는거야?"
"우리 호열군이 얼마나 컸는지 좀 보려고."
"뭐어-? 내가 애냐."
"왜에? 옛날엔 많이 재보고 그랬잖아? 풋- 농담이구. 꽤나 어른스러워진 것 같아서."
"…뭐 나이를 먹으니까."
"너 옛날에 나 처음 봤을 때 얼마나 어이없었는지 알아?"
"그, 그 애길 아직도 꺼내냐."
"생각해보면 웃기니까. 다짜고짜 지 여친을 하라니…"
"…그, 그래서 백호한테 많이 깨졌잖아. 그럼 된거지."
"그래도 너 꽤 귀여웠어?"
"아, 그런 칭찬은 사양이야. 나 간다. 윽- … 서, 서태웅?"
"비켜."
"…아,"
호열은 태웅의 말에 순순히 몸을 비켜주었고 곧 태웅을 스윽- 쳐다보더니 다시 사람들이 모여있는 거실로 향했다.
"태웅아?"
"귀여워?"
"어? 아아. 어렸을 때."
"…지금은."
"그야…지금은 컸으니까. 귀엽다고 하면 실례겠지."
"…난 괜찮아."
"…에?"
"너라면 그런 말… 참아줄 수 있어."
"…아, 훗. 그러고보니 태웅이 넌… 독점욕이 강하지?"
"…."
"뭐든 하고 싶은건 다 해야하고, 이기고 싶으면 꼭 이겨야되고, 갖고 싶으면 가져야 되고."
"…그래서?"
"음- 나쁘지 않아."
"…그럼. 널 갖고 싶은데, 그것도 나쁘지 않아?"
태웅은 세연의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장난치듯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우리 태웅이는, 아직 더 커야겠다."
"…뭐?"
"사람은 갖는다고 표현하면 안돼. 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말이거든."
"…."
"날 갖는다는 건. 내가 어떤 감정이든 억지로 날 네 것으로 하겠단 거잖아."
"…!…"
"내가 널 좋아하지 않아도 …날 갖기만 하면 돼? 그걸로 만족하는거야?"
"…."
'그럴리가…없잖아. 네가… 네가 날 안 바라보면 …아무 소용이…'
"…싫어? 내가?"
"이건 싫고 좋고 하는 얘기가 아냐. 아직 그런 면에서 태웅이는 좀 더 커주어야겠단 얘기야."
세연의 말에 태웅은 세연을 살며시 끌어안았다.
"…태, 태웅아?"
세연은 태웅의 몸에서 미세한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시합에서 진 뒤 견딜 수 없는 패배감에 몸부림치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왜, 왜그래?"
"…클테니까. 가지말고… 기다려."
"…."
"아직…안 좋아해도 되니까, 다른 사람도… 좋아하지말고."
"…태웅아."
"…싫어하진 마."
세연은 태웅의 등에 팔을 둘러 꼭 끌어안으면서 등을 다독거렸다.
"…싫어할리가 없잖아."
너무 좋아서, 네가 너무 좋기 때문에…
…그래서 더욱 조바심이 난다고.
내가 널 먼저 봤는데, 먼저 좋아했는데, 먼저… 바라봐주길 바랬는데.
그런 널 다른 놈이 가로채갈까봐 …이렇게 초조한데.
슈퍼루키? 대단한 신인? 알게 뭐야.
너 앞에만 서면 …그런건 다 부질없는데.
다른 놈이 널 쳐다보는 것도 싫고, 널 좋아하는 것도 싫고 다 싫어.
넌 이런 걸 독점욕이라고 한다해도 …그래도 좋은데 어쩌라고.
"…도망치기만 해봐."
"…."
"가만안둬…."
"…어, 소연아?"
세연은 곧 태웅에게 팔을 풀고 소연을 발견하곤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 저… 도와드리러 왔는데. 저, 저 방해가 된 것 같아서…"
"소, 소연아."
소연은 곧 다시 거실로 돌아가버렸다.
'어쩌지?'
"…아, 태웅아. 일단 거실로 돌아가있어. 나도 곧 갈께."
"…."
그날은, 그렇게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뒤섞여 곧 후식만 먹고 모두 뿔뿔이 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백호야…."
"응? 왜에-"
거실 바닥에 앉아 한창 게임을 하고 있던 백호는 자신의 바로 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자신을 부르는 세연을 향해 잠시 게임을 중단하고 돌아보았다.
"넌 많이 좋아해봤지?"
"뭐, 뭔 소리야?"
"옛날부터 고백도 많이 하고 또 많이 차였었잖아."
"그, 그 얘길 왜 해!"
"…좋아하는 거 쉬워?"
"뭐? 쉬울리가 있나."
"어려워?"
"당연하지. 이 천재 강백호가 유일하게 못 이룬건데."
"칫, 지는 농구도 아직 멀었으면서- 뭘."
"금방 따라잡을거야!!"
"아- 예."
"근데, 그런건 왜 물어?"
"…내 생각이 옳은가 싶어서."
"뭐? 뭔 생각?"
"태웅이와 난… 생각이 좀 다른 거 같아. 맞출 순 없으려나."
"뭐하러 그런 여우랑?"
"그리고 소연이를 …울리지 않으려면."
"소, 소연이가 울었어?!"
"바보야. 울었다는 게 아니라, 울지 않게-"
"아…아씨, 놀랬잖아!! 근데, 소연이가 왜 울어?"
"아, 몰라."
"하여간, 누나 생각을 전해야 남이 알아 줄 거 아냐. 그렇게 꼭꼭 담아두면 뭐 어쩌라고."
"전해? 어떻게?"
"…하아? 바보야? 사람이니까, 대화로 전해야지. 원래 대화가 잘 돼야 뭐든…"
"아, 괜찮다. 그거. 근데, 그게 네가 남 말할 처지니?"
"뭐얏! 내가 왜?!"
"넌 말보다 머리가 먼저 나가잖아."
"머,머리?"
"네 주특기 있잖아. 박치기-. 뭐어… 그래도 제법 좋은 생각이야. 인정."
"그치? 거봐 역시 난 천재라니까~"
"…백호야. 원래 진짜 천재는 티내지 않는 법이라니까."
"난 티낼래. 최초로!"
"…널 누가말려."
* * * * * * * *
제가 가상의 인물을 집어넣은 스토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편의 만화와는 살짝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요. 그리고 한국식 버젼으로 글을 썼기 때문에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의 일상이 나옵니다. 그럼 아직 미숙한 첫글이지만, 아무쪼록 재밌게 봐주세요.^^
첫댓글 오,,,, 재밌게 잘봤어요 ㅋㅋㅋ
다음편 너무 기대됩니다!!!
재마나게 잘 봤어요~ 백호가 혼자 사는게 좀 그랬는데..가상이라도 누나와 어머니까지 있다니..좋던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