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사람들은 비가 오면 유행가자락을 흉내 내지 않아도 공치는 날이다 그간 밀린 잠을 자던지 아님 바뻐서 해먹지 못한
부침개와 이슬이를 친구삼아 공동의 대화로 피로를 풀기도 한다
나도 오늘은 느긋하게 읽던 책이나 마저 읽고 음악이나 듣자고 오디오에 씨디를 걸어 놓고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웠다
좀 있으려니 "아줌마 " 하면서 아랫집 새댁이 부침개 한 접시를 갖고 들어온다 .
"아줌마 모처럼 쉬시는 것을 방해 했네요. 수줍은 듯이 소박한 웃음도 한 접시 들고 온다
세상사를 한참 씹고 있는데 새댁이 갑자기 질문을 한다
아줌마는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하며 살았느냐고 느닫없는 질문을 한다 .미움의 골을 어떻게 평평한 옥토로 만드느냐고 ,
아 ! 이 새댁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구나 즉시 간파할 수 있었다 .
나는 이 젊은이에게 나이 먹은 선배로서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까 잠시 생각했다 .그러다 " 노래를 하세요" 하고 말 했다 .
" 아니 아줌마 미워서 죽겠는데 눈을 흘기고 욕을 하는 것이 아니고 노래를 해요? 이해 할수 없다는 투로 어이 없어 한다 .
나는 내 옛날 이야기를 한다 부끄럽고 내 놓지 않고 싶은 옛 이야기를 .
나는 청춘에 홀로 되신 시어머니를 모시는 외 며느리다 .
사업에 실패한 남편을 구제한다는 어줍지 않은 원대한 포부를 갖고 신혼살림을 시작 했다
열일곱에 시집오셔서 열아홉에 아들 하나 출산하고 스물하나에 홀로 되신 소설에나 나옴직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어려움을 모르던 철부지 며느리는 혼자 좌충우돌이였다.
매일이 너무 힘든데다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아내를 시골의 어머니에게 맏겨놓고 외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
나 혼자 감당하게엔 너무나 어려운 시집살이 , 친정이 한 동네였기에 정말 숨소리 한번 크게 내보지 못하고 사는 생활에
매일이 울고 싶었다 .허나 나는 울면 진다는 생활철칙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진학을 포기할 때 나는 책상에다 죄우명을 적어 놓고 매일 세번씩 외웠다
1 절대 울지 않는다
2 절대 뒤돌아 보는 어리석은 짓 하지 않는다
3 절대 남과 비교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절대로 남편은 물론 타인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어찌 보면 비 인간적인 생각이였겠으나 그 때의 나를 지켜주는 힘이였다
아주 절망적이던 어느날 도망을 가버릴까 ? 진저리가 처질 정도의 유혹에 나는 더 절망 했다
그 절망이 절망스러워서 나는 아주 슬픈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노래를 낳고 노래의 꼬리가 이어젔다 .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면 아주 구슬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려가면서 ,
노래의 내용은 어떻던간에 음이 가라앉은 조용한 멜로디를 , 구노의 아베마리아 , 남몰래 흐르는 눈물서부터 시작하면
끝은 언제나 눈물젖은 두만강으로 마감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세상은 그리 절망도 도망 갈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보리밥이라도 먹는데 , 보리밥도 못 먹고 남편을 여의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든 것을 우리 시어머니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다 혹시나 억지 말씀이나 또 외아들에 대한 질투로 괴롭힘을 당 할 때
" 어머니는 이런 사랑 저런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살았으니 얼마나 불쌍한 분인가 하고 돌려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젊음은 내게 많은 오기와 함께 용기를 주었다
나는 미망 속에서 깊게 잠식되는 안개를 뜷고 환한 햇살 속에 있는 듯한 착각속에 들어 있었다 .아니다 해 볼것이다
여기서 좌절은 나를 배반 하는 것이다.나는 그때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 했다 .
속이 많이 상하는 날은 부지깽이로 부뜨막을 깨저라 두드리고 줄거운 날은 아이를 가운데 두고 시어머니와 온 가족이 손벽을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노래야 말로 큰 치료제였다 별로 눈 안마주치고 싶은 상황이래도 아이를 가운데 두고 함께 억지로 손벽을 치다보면
미운 마음이 어느 순간에 사라지는 것이였다 노래야말로 가장 동화시키는데 빠른 길이였다 .
처음엔 죄송스러워서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던 소리가 시간이 지나면 무의식상태에서 나도 살아야 겠다는 듯이 큰 소리로 부르게 된다
고추를 따면서도 소형라디오를 허리에 차고 따라 부르고 축사를 청소하면서도 라디오를 따라서 부르고
노래가 있는 곳은 힘이 훨씬 덜 들었다 .
이북의 김일성주석의 한 정책이 주민들이 협동농장에서 일을 하면 항상 음악을 틀어 놓는 일도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래를 부르면서 화를 삭히다보니 세월이 흐르고 남편도 제자리에 돌아오고 시어머니와도
미운정 고운정 들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딸이냐고 물을 정도로 동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
한나절을 새댁과 대화를 하면서 노래의 장점을 누누히 일렀지만 얼마나 주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사람이 살면서 한 두번의 고비는 넘게 되어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
요즘에 정신의학적인 치료에 노래가 많은 비중을 찾이하고 있는것을 보면 나 혼자 내린 진단과 처방이라도
참으로 슬기롭게 대처 했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누구에게나 노래를 하라고 권한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서 슬기롭게 힘 든 시절을 잘 넘겼기에
첫댓글 모진 세월을 노래로 잘 건너오셨네요. 장하십니다. 노래를 자주 부르겠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네 고맙습니다. 그런데 질곡에서 벗어나니 전처럼 노래가 불러지질 않더군요 확실히 노래는 저를 지켜주는 힘이였나봅니다 .
ㅎㅎ 저도 노래를 자주 부르는 편입니다.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늘 휘파람을 부는 사람은 행복해서 휘파람을 부는 것이 아니라 휘파람을 불기 때문에 행복해진 거다' 라고요. 화이팅입니다요^^*
그럴거예요 휘파람도 슬픔을 숨길수가 있으니까요 . 읽어주시고 댓글 얹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저도 일할때도 운전할때도 곧잘 노래를 하지만 속상하고 슬플때도 노래를 합니다 정해논 철책은 아니지만 제 버릇이랍니다 세상 어느약으로도 처방하지 못하는 고급스런 치료제가 노래인것같습니다 잘 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