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 대학원생인 클로이 파르도는 "한국을 소비하는 것은 쿨(cool)하다"고 여긴다. 유행 좀 안다는 친구들은 삼성·LG 신제품이 출시되면 SNS에 품평을 올린다. 서울로 '원정 쇼핑'도 간다. 파르도는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은 혼란스러운 나라였는데 요즘은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곳이 됐다"고 말했다.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대형 클럽 '프린스 찰스'는 이 도시 20~30대 인기 아지트다. 지난해 4월 이곳에서 '코리아 롤러디스코' 파티가 열렸다. 파티장엔 1000여 명이 몰려 북새통이 됐다. 파티를 기획한 사람은 베를리너 미셸 닉나프(27). 그는 "미국·일본을 주제로 한 파티도 열어봤지만 한국만큼 대박이 나진 않았다"고 했다. 브루노 브루니(38)씨는 지난해 여름 베를린에서 비빔밥과 김치버거가 주 메뉴인 한국 음식점을 열었다. 그는 "개장 초 문을 열면 3~4시간 만에 준비한 재료가 모두 팔릴 만큼 장사가 잘됐다"고 했다.
한국 제품 쓰고 한국 와 쇼핑 "코리아를 소비하는건 쿨한 일"
올해 스물한 살 성년(成年)이 된 한류(韓流)가 대한민국이란 브랜드에 '쿨'한 맵시를 입히며 '제3 한류'로 도약하고 있다. 한류 스타를 향해 "오빠(oppa)"를 외치며 열광하던 팬들 뇌리에 한국은 멋진 나라, 이른바 '코리안 쿨'(Korean Cool)이란 이미지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기사 더보기
지난해 4월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문을 연 '오이지(Oiji)'는 요즘 뉴요커들에게 가장 '핫(hot)'한 음식점이다. 유명 매체들이 '집밥 스타일 한식을 제대로 소개하는 곳'(월스트리트저널), '뉴욕의 모던한 한식당 중 최고의 맛'(이터 eater.com)이라고 호평하면서 밥때면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성황이다. 히트 메뉴는 매운 돼지고기볶음에 강된장이 곁들여 나오는 쌈밥. 유명 요리 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출신 오너 셰프인 김세홍·구태경씨는 "이제 뉴요커들은 음식도 진짜(authentic)를 맛보고 싶어한다"면서 "불고기, 비빔밥, 바비큐엔 이미 익숙하다. 육회, 들깨탕, 꼬리찜, 삼겹살 김치찜처럼 지금 서울에서 한국인들이 먹는 오리지널에 열광한다"고 전했다.
비빔밥·불고기는 옛날 스타일, 들깨탕·꼬리찜 등 오리지널 찾아
◇스시 대신 쌈밥…김치 벨트 아십니까?
K푸드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7~8년 전만 해도 스시(초밥)를 즐기는 것이 가장 '패셔너블'했다면 요즘 뉴욕과 베를린에선 쌈밥, 김치볶음밥이 '유행을 좀 안다'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비빔밥, 불고기는 구(舊)메뉴다. 육회를 거리낌 없이 즐기고 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맥'까지 인기다. '서양인들은 매운 음식 못 먹는다'도 옛말이 됐다. 고추장, 된장 같은 한국 전통 양념은 없어서 못 판다.
K푸드를 이끄는 주역은 유명 요리 학교 출신의 20·30대 한국인 오너 셰프들이다. 이들은 생계형으로 출발한 한식당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바꿨다. 위치부터 다르다. 정식당, 단지, 곳간 등 각광받는 한식당들은 한인 타운인 32번가를 벗어나 웨스트빌리지나 첼시, 브로드웨이 주변에 문을 열었다. 발효 음식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K푸드 열풍을 뒷받침했다. 미국 건강 전문지 '헬스'가 한국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하면서 '한국 음식은 건강하다'는 이미지가 확립됐다. 미슐랭 3스타 식당인 '장 조지'나 '르 베르나르댕'은 김치와 사찰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를 개발했고, 미국 식당인 '더 더치(The Dutch)'는 한우 안창살구이를 곁들인 김치볶음밥을 선보였다. '김치 벨트'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한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퀸즈 플러싱의 한식당가를 가리킨다. ▷기사 더보기
지난 10일 미국 댈러스시(市) 버라이즌극장 앞에서 한 무리의 10대 미국인 소녀들이 울고 있었다. 한국 9인조 남성 그룹 엑소(EXO)의 첫 미국 공연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마이애미에서 왔다. 취소 표나 빈자리가 나오면 꼭 내게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엑소는 이날부터 뉴욕, LA 등 북미 5개 도시 투어를 시작했다. 티켓 5만장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80달러(약 8만원)짜리 티켓은 경매 사이트에서 3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작년 10월부터 애너하임 등 북중미 6개 도시에서 열린 빅뱅 투어엔 8만7000명이 몰렸다.
K팝을 많이 듣는 사람일수록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생각
K팝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작년 10~12월 중국·미국·브라질 등 14개국 6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류 실태 조사'에서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1위는 K팝(20.1%)으로 한식(12.1%)과 IT산업(9.7%)보다 훨씬 높았다. 아이돌 중심의 K팝, 그 끈질긴 생명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수출까지 되는 가수 육성 시스템
"자동차는 미국서 만들었지만 이젠 한국이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아이돌 음악도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지만 한국이 완성시켰다."
작년 10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빅뱅'의 북미 투어 콘서트 리뷰에서 '압도적인 공연(overwhelming K-pop carnival)'이었다며 K팝을 이렇게 평했다. K팝 중심엔 아이돌 댄스 음악이 있다. 외모와 재능을 갖춘 10대 연습생을 뽑아 3~5년간 훈련시켜 완벽한 군무(群舞)와 노래를 소화하는 가수로 길러내는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다. K팝 축제 KCON(K콘서트)을 총괄하는 CJ E&M 신형관 상무는 "아이돌 시스템은 일본에서 시작됐지만 한국에서 급속히 발전시켰다"고 했다.
이런 시스템은 장기간 전속 계약이 필수다. '노예 계약'이란 비판도 있지만, 신 상무는 "장기 전속 계약이 없었다면 '칼군무'를 소화하는 가수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정착시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가수 육성 체제는 수출까지 되고 있다.
작년 미국서 데뷔한 남성 5인조 그룹 'EXP'나 브라질의 '챔스(Champs)'는 모두 현지인들로 이뤄진 그룹이다. 한국 아이돌 같은 트레이닝을 거쳤고, 제작자들까지 "한국 K팝 육성 시스템을 그대로 본떴다"고 밝히면서 NBC 등 현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기사 더보기
유니 홍(43·사진)은 '코리안 쿨'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재미 교포 저널리스트다. 그가 쓴 '코리안 쿨: 세계를 사로잡은 대중문화 강국 코리아 탄생기'가 이코노미스트·가디언 등 주요 매체의 서평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뉴욕에 사는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한류(Korean Wave)가 아니라 왜 '코리안 쿨(Korean Cool)'인가?
"파도(wave)는 일시적인 반면 쿨은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쿨한 사람을 모방하고, 따라 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 물건, 국가가 쿨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그들이 하는 모든 게 마법처럼 보인다."
-한류를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20세기에는 미국이 가장 쿨한 국가였다. 그래서 '미제'는 언제나 고객의 지갑을 열 수 있는 키워드였다. 세계는 캐딜락과 말보로와 리바이스를 갈구했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쿨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국가다."
-툭하면 북한이 핵 위협을 하는데도 한국이 쿨하다고 여길까?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존재는 한류에 드라마틱하게 기여했다. 한반도 상황이 전 세계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오히려 주목도가 높아졌다. 한국은 세계에 남아 있는 최후의 분단국가로, 남과 북의 극명한 대조는 신화적이기까지 하다. 선과 악, 번영한 국가와 가장 가난한 국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이 깔려 있는 나라와 인터넷이 아예 없는 나라의 대결이기도 하다. 한류가 전체주의 정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고나 할까. 미국도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상대하던 1989년 비슷한 전략을 썼다. 파나마 바티칸 대사관으로 숨어든 노리에가를 잡기 위해 대사관 앞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미국 록음악을 크게 틀어댔다. 노리에가는 결국 투항했고 이 사건은 '아메리칸 쿨'의 상징이 됐다."
-한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K팝과 K드라마의 성공은 첫째, 한국의 완벽주의와 끊임없는 노력이 낳은 높은 제작 퀄리티에 있다. 둘째, 세계가 오랫동안 미국 팝 컬처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 다른 대중문화의 등장을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대중문화는 여전히 1등이지만, 더 이상 과거 같은 독점적 지위를 시장에서 누리진 못할 것이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연결하면서 미국 문화에 대항하는 게 가능해졌다. 한국은 그럴 준비가 돼 있는 국가다."/양지호 기자
컬럼비아 대학원생인 클로이 파르도는 "한국을 소비하는 것은 쿨(cool)하다"고 여긴다. 유행 좀 안다는 친구들은 삼성·LG 신제품이 출시되면 SNS에 품평을 올린다. 서울로 '원정 쇼핑'도 간다. 파르도는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은 혼란스러운 나라였는데 요즘은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곳이 됐다"고 말했다.
베를린 한복판에 있는 대형 클럽 '프린스 찰스'는 이 도시 20~30대 인기 아지트다. 지난해 4월 이곳에서 '코리아 롤러디스코' 파티가 열렸다. 파티장엔 1000여 명이 몰려 북새통이 됐다. 파티를 기획한 사람은 베를리너 미셸 닉나프(27). 그는 "미국·일본을 주제로 한 파티도 열어봤지만 한국만큼 대박이 나진 않았다"고 했다. 브루노 브루니(38)씨는 지난해 여름 베를린에서 비빔밥과 김치버거가 주 메뉴인 한국 음식점을 열었다. 그는 "개장 초 문을 열면 3~4시간 만에 준비한 재료가 모두 팔릴 만큼 장사가 잘됐다"고 했다.
한국 제품 쓰고 한국 와 쇼핑 "코리아를 소비하는건 쿨한 일"
올해 스물한 살 성년(成年)이 된 한류(韓流)가 대한민국이란 브랜드에 '쿨'한 맵시를 입히며 '제3 한류'로 도약하고 있다. 한류 스타를 향해 "오빠(oppa)"를 외치며 열광하던 팬들 뇌리에 한국은 멋진 나라, 이른바 '코리안 쿨'(Korean Cool)이란 이미지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기사 더보기
지난해 4월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문을 연 '오이지(Oiji)'는 요즘 뉴요커들에게 가장 '핫(hot)'한 음식점이다. 유명 매체들이 '집밥 스타일 한식을 제대로 소개하는 곳'(월스트리트저널), '뉴욕의 모던한 한식당 중 최고의 맛'(이터 eater.com)이라고 호평하면서 밥때면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성황이다. 히트 메뉴는 매운 돼지고기볶음에 강된장이 곁들여 나오는 쌈밥. 유명 요리 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출신 오너 셰프인 김세홍·구태경씨는 "이제 뉴요커들은 음식도 진짜(authentic)를 맛보고 싶어한다"면서 "불고기, 비빔밥, 바비큐엔 이미 익숙하다. 육회, 들깨탕, 꼬리찜, 삼겹살 김치찜처럼 지금 서울에서 한국인들이 먹는 오리지널에 열광한다"고 전했다.
비빔밥·불고기는 옛날 스타일, 들깨탕·꼬리찜 등 오리지널 찾아
◇스시 대신 쌈밥…김치 벨트 아십니까?
K푸드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7~8년 전만 해도 스시(초밥)를 즐기는 것이 가장 '패셔너블'했다면 요즘 뉴욕과 베를린에선 쌈밥, 김치볶음밥이 '유행을 좀 안다'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비빔밥, 불고기는 구(舊)메뉴다. 육회를 거리낌 없이 즐기고 소주에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맥'까지 인기다. '서양인들은 매운 음식 못 먹는다'도 옛말이 됐다. 고추장, 된장 같은 한국 전통 양념은 없어서 못 판다.
K푸드를 이끄는 주역은 유명 요리 학교 출신의 20·30대 한국인 오너 셰프들이다. 이들은 생계형으로 출발한 한식당의 이미지를 고급스럽게 바꿨다. 위치부터 다르다. 정식당, 단지, 곳간 등 각광받는 한식당들은 한인 타운인 32번가를 벗어나 웨스트빌리지나 첼시, 브로드웨이 주변에 문을 열었다. 발효 음식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K푸드 열풍을 뒷받침했다. 미국 건강 전문지 '헬스'가 한국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하면서 '한국 음식은 건강하다'는 이미지가 확립됐다. 미슐랭 3스타 식당인 '장 조지'나 '르 베르나르댕'은 김치와 사찰 음식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를 개발했고, 미국 식당인 '더 더치(The Dutch)'는 한우 안창살구이를 곁들인 김치볶음밥을 선보였다. '김치 벨트'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한인들이 주로 모여 사는 퀸즈 플러싱의 한식당가를 가리킨다. ▷기사 더보기
지난 10일 미국 댈러스시(市) 버라이즌극장 앞에서 한 무리의 10대 미국인 소녀들이 울고 있었다. 한국 9인조 남성 그룹 엑소(EXO)의 첫 미국 공연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었다. "마이애미에서 왔다. 취소 표나 빈자리가 나오면 꼭 내게 달라"고 애원하기도 했다. 엑소는 이날부터 뉴욕, LA 등 북미 5개 도시 투어를 시작했다. 티켓 5만장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80달러(약 8만원)짜리 티켓은 경매 사이트에서 30만원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작년 10월부터 애너하임 등 북중미 6개 도시에서 열린 빅뱅 투어엔 8만7000명이 몰렸다.
K팝을 많이 듣는 사람일수록 한국을 선진국이라고 생각
K팝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이 작년 10~12월 중국·미국·브라질 등 14개국 6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류 실태 조사'에서 '한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1위는 K팝(20.1%)으로 한식(12.1%)과 IT산업(9.7%)보다 훨씬 높았다. 아이돌 중심의 K팝, 그 끈질긴 생명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수출까지 되는 가수 육성 시스템
"자동차는 미국서 만들었지만 이젠 한국이 더 좋은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아이돌 음악도 미국에서 먼저 시작했지만 한국이 완성시켰다."
작년 10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빅뱅'의 북미 투어 콘서트 리뷰에서 '압도적인 공연(overwhelming K-pop carnival)'이었다며 K팝을 이렇게 평했다. K팝 중심엔 아이돌 댄스 음악이 있다. 외모와 재능을 갖춘 10대 연습생을 뽑아 3~5년간 훈련시켜 완벽한 군무(群舞)와 노래를 소화하는 가수로 길러내는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다. K팝 축제 KCON(K콘서트)을 총괄하는 CJ E&M 신형관 상무는 "아이돌 시스템은 일본에서 시작됐지만 한국에서 급속히 발전시켰다"고 했다.
이런 시스템은 장기간 전속 계약이 필수다. '노예 계약'이란 비판도 있지만, 신 상무는 "장기 전속 계약이 없었다면 '칼군무'를 소화하는 가수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정착시킬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가수 육성 체제는 수출까지 되고 있다.
작년 미국서 데뷔한 남성 5인조 그룹 'EXP'나 브라질의 '챔스(Champs)'는 모두 현지인들로 이뤄진 그룹이다. 한국 아이돌 같은 트레이닝을 거쳤고, 제작자들까지 "한국 K팝 육성 시스템을 그대로 본떴다"고 밝히면서 NBC 등 현지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기사 더보기
유니 홍(43·사진)은 '코리안 쿨'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재미 교포 저널리스트다. 그가 쓴 '코리안 쿨: 세계를 사로잡은 대중문화 강국 코리아 탄생기'가 이코노미스트·가디언 등 주요 매체의 서평을 받으며 화제가 됐다. 뉴욕에 사는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한류(Korean Wave)가 아니라 왜 '코리안 쿨(Korean Cool)'인가?
"파도(wave)는 일시적인 반면 쿨은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쿨한 사람을 모방하고, 따라 하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 물건, 국가가 쿨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그들이 하는 모든 게 마법처럼 보인다."
-한류를 국가 브랜드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20세기에는 미국이 가장 쿨한 국가였다. 그래서 '미제'는 언제나 고객의 지갑을 열 수 있는 키워드였다. 세계는 캐딜락과 말보로와 리바이스를 갈구했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 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쿨함'을 만들어내고 있는 국가다."
-툭하면 북한이 핵 위협을 하는데도 한국이 쿨하다고 여길까?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존재는 한류에 드라마틱하게 기여했다. 한반도 상황이 전 세계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서 오히려 주목도가 높아졌다. 한국은 세계에 남아 있는 최후의 분단국가로, 남과 북의 극명한 대조는 신화적이기까지 하다. 선과 악, 번영한 국가와 가장 가난한 국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이 깔려 있는 나라와 인터넷이 아예 없는 나라의 대결이기도 하다. 한류가 전체주의 정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고나 할까. 미국도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상대하던 1989년 비슷한 전략을 썼다. 파나마 바티칸 대사관으로 숨어든 노리에가를 잡기 위해 대사관 앞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미국 록음악을 크게 틀어댔다. 노리에가는 결국 투항했고 이 사건은 '아메리칸 쿨'의 상징이 됐다."
-한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다.
"K팝과 K드라마의 성공은 첫째, 한국의 완벽주의와 끊임없는 노력이 낳은 높은 제작 퀄리티에 있다. 둘째, 세계가 오랫동안 미국 팝 컬처의 대체재가 될 수 있는 다른 대중문화의 등장을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대중문화는 여전히 1등이지만, 더 이상 과거 같은 독점적 지위를 시장에서 누리진 못할 것이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연결하면서 미국 문화에 대항하는 게 가능해졌다. 한국은 그럴 준비가 돼 있는 국가다."/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