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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장(聘丈)께서 안강(安剛)땅에서 칠십사년(七十四年)을 살다 서거(逝去)하셨다. 안해와 나는 고인(故人)의 유품을 정리하고자 유택(幽宅)을 방문하였다. 3남2녀중 막내였던 안해는 그 어느때보다 비통한 슬픔에 잠겨있었다. 유택을 방문한날 전에없이 날이 흐렸는데 서남쪽에 이상한 선홍빛이 비치고 있었다. 기이하게 여겨 안해에게 물으니 ‘무지개 아닌가 ?’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허나 무지개는 본시 비온뒤 날이 개이면 뜨는 것.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무지개라니 ? 더더욱 이치에 맞지 않아 의아해하였다.
빙장의 자택 서남쪽에 본래 주인(主人)의 허락없이 드나들지 못하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허나 이제 주인없는 방이 된 것은 마찬가지니 사촌처남의 도움을 받아 열쇠를 구해 문을 열고 들어갈수 있었다. 방안에는 대개는 고인이 생전에 사용한듯한 이런저런 잡다한 집기 따위가 다소 정리가 안된채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는데 대개는 낡고 후진것들이라 활용의 가치가 있는 것은 거의 없어보여 대개는 다른 유품들과 함께 폐기,소각하기로 했다.
다만 방 한구석 작은 사물함을 여니 거기서 한 책자가 나왔다. 낡은 책자였는데 안에는 한자(漢字)가 깨알같이 빼곡이 쓰여있었고 무엇보다 지금은 쓰지 않는듯한 고어(古語)가 간간이 눈에 들어왔다. 장수는 대충 세어보니 50장도 족히 넘어보였는데 아무래도 뭔가 범상치 않으보여 책을 습득하여 경성(京城)으로 돌아왔다. 이후 평상시 친분이 있던 친우(親友)인 경성대 사학과 교수 엄태진과 서진(西眞大) 한문학과 교수 종희원에게 연락을 취해 한번 곡절을 조사해보도록 부탁했다. 이에 두 친우가 서지학(書誌學)의 권위자 유봉춘 교수를 추천하여 그를 찾아가 보았다. 유교수가 책을 살펴본뒤 ‘아무래도 이전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를 필사(筆寫)한 듯 하다.’ 하였고 ‘추론컨대 최소한 500년 이상이 지난 옛적일을 적어놓은 것 같다’ 말하였다. 그 근거로 옛적 화려(華麗)시절에 쓰는 언어(言語)가 간간이 보임을 말하였다.
책의 내용이 범상치 않아 폐기처분하지 않고 보존키로 하였다. 또한 은밀히 유교수와 여러차례 연락을 취하며 안의 내용을 번역해 보기로 했다. 번역에는 유봉춘 교수 외에 애초에 찾아갔던 친우인 종희원과 서태원 교수가 참여하였으며 이들의 추천을 받은 또다른 고서번역가(古書飜譯家) 정현발 교수가 참여하였다. 안의 내용은 상당수가 고어에다가 마모되어 알아볼수 없는 글자도 제법 있어 일부는 맥락을 살핀뒤 임의(任意)로 의역(意譯)하였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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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여와(女媧)님이 계셔 흙을 빚고 물로 반죽을 해 사람 열명을 만들었다. 모두 아들이라 번식할 방법이 없자 천상(天上)에 상소(上疏)를 올려 상제께서 선녀 열명을 손수 내려보내주시어 이들이 아들 열명과 혼인하여 각기 자손을 열명씩 낳았다. 아들 열명이 천지사방으로 퍼져 각기 여인을 만나 또 자손 열명을 낳고 또 그 자손들이 각기 사방으로 퍼져 여인을 만나 또 자손 열명을 보니 이런식으로 사방에 무리가 퍼져 어느덧 백만인도 더 되었다. 오호장군(五虎將軍)이 있어 이름을 손례(孫禮),원광(元光),신지(信知),도민(都敏),유상(柳想)이라 하였는데 천지 사방으로 군사를 보내 세력을 평정하니 투항하는 소국(小國)이 30여개에 달했고 조공을 바치며 복속을 청하는 부족이 50여족에 달했다. 이로서 천지대국(天地大國)의 세력이 천지사방에 수천리도 넘게 퍼져나갔다.
처음 요제(堯帝)가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의 법도를 가르쳤다. 다음 순제(舜帝)가 땅에서 올라와 땅의 이치(理致)를 가르켰다. 우(禹)는 본래 요제의 후궁이 서손(庶孫)과 사통하여 낳은 아들이었는데 후사가 없어 삼제(三帝)가 되어 농본(農本)과 치수(治水)의 일을 가르쳤다. 천지대국의 세력이 사방 수천리에 달하고 백성의 수가 백만도 넘으니 물산은 풍족하고 백성들의 삶은 윤택하여 저마다 태평성대라 칭송하여 격앙가(激昂歌)를 불렀다.
지명국(志明國)은 남동해 바다로 천리이상 떨어진 작은 섬나라인데, 풍속이 미개하고 문화가 발달하지 못하여 스스로 조공(朝貢)과 미녀를 바치며 복속을 청해왔다. 천년동안 이 도리(道理)가 크게 바뀐 것이 없는데 나중에 지명국이 스스로 신궁(新弓)을 개발하였는데 전에없던 기이한 무예였다. 길고 가느다란 봉(棒)같은것에 작은 쇠구슬같은 것을 넣은뒤 고리같은 것을 당기면 튀어나오는데 그 어떤 천하장사가 맞아도 당해내지 못하고 즉사하였다. 이에 마침내 대군(大軍)을 조직하여 천지(天地)를 범하려 들었다.
대국(大國)이 천년동안 전란이나 변란한번 없이 풍년이 계속되어 태평성대를 누렸는데 이제와서 남동 오랑캐의 침입을 받으니 모두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어떤이들은 ‘지명이 본래 오래전부터 스스로 복속을 청해오다 이제와서 천년의 도리를 스스로 깨트리고 대국을 범하니 이는 실로 의자(義子)가 계모(繼母)를 범하는 패륜과 다름없도다’ 격분하였다. 마침내 대군이 황도(皇都)로 진격하니 대국의 천년사직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 대국의 황족과 수많은 공신,명문가는 물론 백성들까지 수많은 이들이 왜국(倭國)의 만행에 학살당했다. 분개하여 비통해마지않는자가 없을 지경이았다. 지명이 마침내 대국의 영토 대다수를 차지하고 말았다.
대중원(大重原)은 옛 한(漢)나라 공신가문의 자손인데 이후 노(盧)나라가 세워지자 선대(先代)에서 바른말을 하다 오히려 모함을 받아 좌천되었다. 이후 요서(遼西),진평(陳平)땅을 맡아 다스리고 있었는데 왜인이 중원을 차지했을때도 거리가 멀어 세력이 미치지 못해 별도의 독자노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나이 50이 되도록 장가들지 못해 후사를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지역의 민정(民政)을 살피던길에 화살을 맞고 쓰러져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였다. 나이가 이때 19세였는데 얼른 관청으로 데리고 가 의원을 불러 상처를 치료케하니 일주일만에 병이 나았다. 이후 곡절을 물으니 말하기를 ‘소첩은 본래 농사를 짓던 평범한 농민의 딸로 위로 언니가 셋있는 4자매중 막내였는데 산적떼가 들이닥쳐 저희 언니들을 모두 겁탈하고 저 혼자만이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와 살았나이다. 오갈데없는 처지로 이제 대인(大人)의 은혜를 입었는마 만약 첩실로 삼아주신다면 견마지로를 다하겠나이다’ 하였다. 원국이 처음에 ‘나는 늙었고 낭자는 어리니 당치않소이다’ 하며 거절하였다. 그러자 여인이 관아를 떠나지 않고 사흘을 농성하며 받아줄 것을 청하였다.
이때 중원이 꿈을꾸니 기이한 차임을 한 중년(中年)의 부인(婦人)이 나타나 말하기를 ‘그 아이는 본래 천상의 선녀로 천상에서 상제의 아끼는 기물을 파손한 죄로 잠시 벌을받아 인간계에 내려온자요. 이제 내가 천관(天觀)을 살피니 마땅히 그대의 배필로 궁합이 맞는 짝인즉, 혼인을 이루면 가문을 오랫동안 번성케할 자손을 볼것이오’ 하였다. 원국이 처음에 의심하며 믿지않자 부인이 금장(金杖)을 들어 중원의 오른쪽 어깨를 쳤다. 놀라 깨어나보니 꿈이었는데 깨어나고도 부인에게 맞은곳이 여전히 아팠다. ‘기이한 꿈’이라 여기고 마침네 낭자의 뜻을 받아들여 부인으로 맞이했다. 무인년(戊寅年) 갑오일(甲午日)의 일이다.
부인을 맞이하였으나 막상 3년이 지나도록 손(孫)을 보지 못하였다. 이에 중원이 고민하며 ‘아무래도 내가 잘못생각한것인가. 이미 내 나이가 50을 넘겼고 몸이 예전같지 않은데 어찌 지금 자손을 본단말인가 ?’ 탄식하였다. 부인이 이에 위로하며 ‘인근의 천태산에가서 백일치성을 드리고 오겠나이다. 분명 훌륭한 혈손을 볼것입니다’ 하였다. 이후 부인이 의관을 정제하고 목욕재계후 천태산에서 백일치성을 드린뒤 내려왔다. 이후 동침한뒤 얼마지나지 않아 비로소 회임을 하였다. 중원이 기뻐서 어쩔줄을 몰랐다. 열달후 비로소 출산을 하는데 출산전야에 원국이 전에없이 심기가 좋지않아 잠을 이루지 못해 잠시 밖으로 나와보았다. 밤에 나와보니 비는 오지 않는데 날만 흐려 달도별도 보이지 않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몹시도 괴이한 바람이 심하게 몰아쳐 나뭇가지가 꺾이고 먼곳의 초가지붕이 날아오는일까지 있었다.
다음날 비로소 부인이 출산을 하였는데 건강한 아들이었다. 이때 지역에 옥련보살이란 용한 무인(巫人)이 있어 중원이 아이의 사주팔자를 알아보고자 했다. 헌데 보살이 아이의 사주를 본뒤 사흘을 답을 주지 않았다. 중원이 기다리다못해 다시 찾아가 따지기를 ‘마땅히 점을 보았으면 손님에게 비답을 주어야할것인즉 어찌 그대는 말이 없는가 ?’ 하였다. 허자 보살이 무릎꿇고 말하기를 ‘한낱 미천한 무당이 어찌 천지도리를 다 깨달을수 있겠나이까. 다만 공자의 사주는 미천한 쇤네가 이전에 보지못한 기이한 사주라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하였다. 중원이 더욱 기이하게 여겨 ‘대체 내가 나이 50을 넘겨 본 아들의 사주가 어떻기에 그런말을 하는가. 좋으면 좋은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모두 사실대로 고하라’ 하니 보살이 답하기를 ‘만약 태평성대에 태어난 아기라면 국가와 사직에 보탬이 되고 백성들의 삶을 평안케할 귀한 사주이나 만약 난세에 태어났다면 세상을 한층 더 어지럽고 혼란스럽게 만들 그런 사주이옵니다’ 하였다.
이때가 대국(大國)이 동남방의 왜적(지명국)한테 그 넓은땅을 다 빼앗기도 다만 요서,진평은 왜인들이 차마 범하지 못하고 옛 한나라의 자손들 일부가 피난오고 망명와서 그 명맥을 유지하며 살뿐이었다. 젊은이들은 앞날이 불확실하여 모두 방황할때이고 지명국인 이때 천하를 다 차지한후 국호(國號)를 태을국(太乙國)이라 새로 지었는데 옛 한나라의 자손들을 모두 핍박하고 중용하여주지 않아 앞날이 그저 막막한 시절이었다. 결코 태평성대라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니 중원이 고민하며 ‘허먼 이 아이를 죽이기라도 해야한단말인가 ?’ 하자 보살이 거듭 무릎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미천한 쇤네가 어찌 공자님의 운명에 대해 그런 망극한 일을 권하겠나이까. 모든 것은 공(公)의 결단하심에 달려있을 따름입니다.’ 하였다.
이때 중원은 옛 한나라 공신가문의 자손으로 대국(大國)이 패망하자 피난와 살고있는 임무웅(林武雄),도이현(都利賢)의 무리와 교류하였는데 하루는 무웅이 찾아와 말하기를 ‘대국이 일찍이 천년사직을 이어오면서 사해만민을 천지도리로 교류함에 사소한 변란한번 없었고 물산이 풍족하여 자자손손 태평성대를 누렸으며 50여개국의 투항과 복속을 받아 천지를 번성하게 하였소. 헌데 이제 한낱 동남방 귀신 (東南方 鬼神 : 지명국,혹은 왜인들을 그와같이 부르기도 한다)들의 침탈을 받아 백성들의 삶은 피폐하게 되고 무도한 귀신들이 옛 진나라,한나라의 자손들을 모두 핍박하여 그 자손마저 끊기게될 지경에 이르렀소이다. 또한 옛 대국의 천지법도는 모두 저버리고 한낱 오랑캐의 무도(無道)함으로만 백성을 핍박하고 있으니 이런 나변이 어찌 고금동서에 또 있을수 있으리이까. 공께서 또한 옛 한나라 공신의 자손으로 어찌 이런 천지나변을 보고만 있으시오. 마땅히 칼을들어 왜인의 무도한 침탈을 응징하고 한국(漢國)을 부흥시켜야할 것 아니오이까 ?’ 하였다. 이에 대중원이 손사래를 치며 말하기를 ‘공들의 비분강해함을 이해하고도 남으나 이 작은고을에서 독자세력만 유지하고 있는 처지로 무엇을 할수 있으리이까. 태을국(지명국이 국호를 이와같이 바꿈)이 예전엔 한낱 동남방 오랑캐였으나 지금은 대국천지를 모두 차지하여 그 영토가 이미 수천리에 달하고 백만인의 투항을 받아 그 세력의 강성함을 이제 천지에 당해낼자가 없소이다. 나는 단지 이곳 요서,진평의 작은 고을만을 다스리는 태수(太守)로서 세력은 단지 동서 50여리에 불과하며 백성은 1천인도 채 되지 않소이다. 이 작은 세력으로 대체 무엇을 할수 있으리이까. 다만 이 한목숨과 자손만을 온전히 보존키를 바랄뿐이오’ 하였다. 이에 도이현이 다시 반박하며 말하기를 ‘혹 공은 선대에 한나라 간신의 모함을 받은것에 앙심이 있어 중원을 다시 도모하는 것을 꺼리는것이오이까 ?’ 하니 다시 중원이 말하기를 ‘선대의 일은 어디까지나 선대의 일일뿐 그만한 일로 여태 서운한 마음을 가질 졸장부는 아니오이다. 다만 작은 세력에 불과한 내가 능력밖의 무모한일은 도모하고 싶지 않을뿐이오. 다만 이 한목숨과 자손만을 온전히 보존하게 되길 바랄뿐이니 공들은 내게 굳이 무모한일을 권하지 마시오’ 하니 임무웅,도이현등이 모두 답답함만을 가진채 물러났다.
또 공(公)이 한편으로는 요서인인 김의태(金義太),오흥(吳興)등과 교류하였는데 이때 은밀히 불러 나이 50을 넘겨 어린신부를 얻어 자손을 얻었으나 무인이 불길한 예언을 전해주었음을 말하며 고민을 토로하였다. 의태는 딱히 대안이 없어 술을 나누며 공을 위로할뿐이었는데 오흥이 한가지 지혜를 발휘하였다. ‘실은 근자에 우리집에 내 어린 첩실과 사통한 나이든 노비가 있소. 원래는 법도대로 매를치고 광에 가두어 굶겨죽일 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계책이 있소. 내 비록 어린 첩실이 있었다고는 하나 지금 그와같이 마음이 떠났다면 더 붙잡아두어 무엇하겠소. 공의 아이를 은밀히 그네들에게 주어 적당한 재물을 나눠준디 천리밖 멀리 도망가 살라 은밀히 권하겠소. 그런 천한것들의 손에 아이가 자란다면 사주가 좋든 나쁘든 무슨 의미가 있겠소. 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그 아이가 귀하게 된다면 그것도 그 아이 팔자요 나쁜사주대로 불우한 미래가 펼쳐진다면 이 또한 그 아이의 팔자가 아니겠소 ?’ 하였다. 듣고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제안이라 하여 아이를 일단 오흥에게 넘겨주었다.
오흥이 중원의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간뒤 은밀히 집사(執事)를 시켜 광문을 열어주라 했다. 그리고 적당한 음식과 약간의 황금을 그네들에게 넘겨주게 한뒤 아이와 함께 멀리 달아나라 권하고 자신은 모르는일로 하라 하니 집사가 주인의 뜻대로 하였다. 이때 오흥의 집 늙은하인의 이름은 엄홍(嚴弘)이라 했고 첩실의 이름은 주연(朱蓮)이라 했는데 집사가 음식과 황금과 아이를 건네주며 ‘주인은 모르고 나혼자 독단으로 한일’이라 하니 이미 그 뜻을 눈치채고 서로를 마주본뒤 집사가 준 음식과 황금과 아이를 건네받고 천리밖 멀리 달아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엄흥은 이름을 무안(務安)으로 바꾸고 주연은 이름을 성옥(成玉)이라 바꾸고 요서땅 서남쪽 70여리 떨어진곳으로 달아나 숨어 살았다. 아이의 이름을 엄등(嚴登)이라 지은뒤 농사를 지으며 신분을 숨기고 살았는데, 세월이 흘러 아이가 15살이 되었다. 이때 무안은 이미 나이들어 세상을 떠났고 성옥 혼자 아이를 키우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아이는 자라서 농사일을 돕지 않은채 이웃 마을의 무뢰배,한량들하고만 어울려다녔다. 이에 성옥이 아이를 불러 꾸짖어 말하기를 ‘네 아비와 내가 비록 나이차이는 많이 났으나 하늘이 정해준 연분이 있어 너를 거두어 지금껏 함께 살았거늘 너는 지금와서 집안의 생계를 돕지도 않고 성실한 일을 하며 살아갈 생각도 하지 않은채 무뢰배들과 놀러만 다니니 하늘에 있는 네 아비도 통곡을 하실게다.’ 하였다. 이때 엄등이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들은뒤 ‘제게도 살아가는 방도가 있으니 상관 마소서’ 하였다. 시간이 흘러도 아이의 행실이 고쳐지지 않자 다시 성옥이 불러 회초리까지 들며 엄히 꾸짖자 오히려 엄등이 말하기를 ‘세상이 날더러 수군대기를 내 부모가 친부모가 아닐것이라 하는데 아무래도 그 이치가 맞는 듯 하오이다. 어찌 어미가 되어 자식을 이리 모질게 대할수 있소이까’ 하고는 집을 뛰쳐나가 일주일동안을 밥을 먹지않고 냇가의 물로 대신 배를 채우며 슬피울었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고쳐지지 않자 다시금 성옥이 아이를 불러 말하기를 ‘네가 갈수록 어긋나기만 하고 도무지 바르게 살 생각을 하지 아니하니 너를 거둔 보람이 없을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네 아비를 뵐 면목도 없도다. 내가 이와같이 살아 무엇하랴’ 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니 오히려 엄등이 탄식을 한뒤 발길로 걷어차며 말하기를 ‘너는 역시 나를 낳아준 어미가 아닌게 분명하도다. 오늘로서 연을 끊겠다’ 하고 발길질로 300대를 때린뒤 달아났다. 그리고 마을에서 좀 떨어진 움막에서 살며 인근의 무뢰배,한량들의 도움을 받으며 낮에는 야채밭에서 도둑질을 하며 밤에는 노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때 대중원은 세상을 떠났고 그와 함께 아이의 앞날을 근심하던 임무웅,도이현등이 수소문 끝에 엄등의 행방을 찾아왔다. 그리고 놀라 탄식하며 말하기를 ‘네가 본래 귀한 가문의 자식이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키울수가 없어 다만 주변의 하인에게 잠시 너를 맡긴것뿐인데 이렇게까지 어긋나있으면 어쩌란말이냐 ?’ 하면서 엄등의 근본(根本)을 일깨워준뒤 너의 본래 성이 대씨(大氏)라 일러주고 ‘네 아비 다음대의 돌림자가 ’둥글 원(原)‘이었으니 중자(中字)를 원(原)으로 하고 마지막 글자에 ’국(菊)‘자를 붙여주마. 국화는 예부터 절개(節槪)와 충의(忠義)를 상징하니 너는 앞으로 네 이름자에 한치의 부끄럼이 없도록 살도록 하라’ 하였다. 이때부터 엄동의 이름이 ‘대원국(大原菊))’이 되었는데 임무웅,도이현이 떠나고나서 엄등은 혼자 사흘을 슬피운뒤 어디론가 떠났다.
원국이 이후 천지유랑(天地流浪)을 떠났는데 처음 남서쪽으로 50여리를 가다가 혜암(慧巖)이란 마을에 이르렀다. 마을어귀에 복면을 쓴 한 괴한이 있었는데 원국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하기를 ‘여기서 나와 칼싸움을 세 번해서 모두 이기면 너를 살려보낼것이나 이기지 못하면 목을 메겠다’ 하였다. 원국이 본래 무슬을 배운 것은 아니나 무뢰배,한량들과 돌아다니면서 힘을 좀 쓰게 되었고 잔꾀도 좀 있었다. 괴한이 느낌은 사나워보였으나 그리 지혜가 있어보이지 않아 결국 세 번을 모두졌다. 이윽고 원국앞에 무릎꿇고 말하기를 ‘제가 지금까지 이곳에서 숱한이들을 접하였으나 이렇게 무예가 뛰어난 대인(大人)은 보지 못하였나이다. 복종을 청하니 거두어주소서’ 하였다.
사내의 이름은 왕유(王維)라 하였는데 사연을 들어보니 이와같았다. 본래 면과 포를 파는 장사를 해 돈을 번 왕서방이란이의 외동아들이었는데 부친이 젊은 후처를 들였는데 계모가 집안의 하인과 바람이 났다. 부친이 외출한사이 불륜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고 이들을 단칼에 베어버린뒤 쫏기는 신세가 되어 이후 마을어귀를 가로막고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잡아 도적질을 해왔다는 것이다. 원국이 자신의 일을 말하며 왕유에게 함께하지 않겠는가 하니 왕유가 곧 이를 따랐다.
둘이 함께 다시 유랑을 떠나 서쪽으로 다시 70리를 더 갔다. 이번엔 모석(毛錫)이란 마을에 이르렀는데 이곳에서 한 사내가 이들을 막고 말하기를 ‘나는 옛적 한(漢)나라때 명장 황석(黃石)의 자손인데 여기서 나를 이기면 보내주지만 이기지 못하면 목을 베겠다’ 하였다. 이에 원국과 왕유가 함께 망설이다 원국이 꾀를내어 ‘내가 맨손으로 불을 일으키는 재주가 있는데 너는 이와같이 할수 있겠느냐 ?’ 물었다. 원래 원국이 한량,무뢰배를 따라다닐 때 술사(術士)들의 수법을 좀 배운게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사내가 원국이 맨손으로 불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반신반의하자 다시 원국이 왕유와 함께 사내를 데리고 가서 한 기둥 있는곳에 이르러서는 ‘내가 저 기둥안에서 사기그릇을 빼내올터인데 너는 할수 있겠느냐 ?’ 하였다. 사내가 여전히 의심하지 원국이 다시 그와같은 재주를 보여주었다. 이에 사내가 무릎꿇고 ‘높으신 어른을 몰라 뵙고 함부로 망령되이 행동하였나이다. 원컨대 소인을 거두어주신다면 충심으로 따르곘나이다’ 하였다.
이후 원국,왕유가 다시 사내를 데리고 인근 주막으로 데려가 사연을 들었다. 사내의 이름은 흑동(黑動)이라 하였는데 사연이 이와 같았다. ‘아까 한나라 명장의 자손이라 한 것은 소인이 미련하여 거짓을 말한것이지만 선대때부터 대대로 한나라와 노나라땅에서 농사를 짓던 평범한 한족(漢族) 출신인 것은 사실이오이다. 왜적(倭敵) 오랑캐가 천지(天地)를 뺴앗은후 식민(植民)을 하며 과도한 세금을 거두고 급기애 내 어린 누이동생 여섯의 목숨을 모두 앗아갔소이다. 불행히 죽어간 내 누이들의 원혼을 생각하면 태을국(太乙國)을 당장에라도 때려없고 왜적놈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갈기갈기 찢어 그 고기를 씹고 싶소만 힘이 없고 방도가 없어 한탄과 술로 세월을 보내다 그래도 생계는 유지해야겠기에 간간이 이렇게 길가는 나그네의 재물을 빼앗으며 살고 있었소이다’ 하였다. 원국과 왕유가 혹등의 사연을 들으니 가슴아픈 일인지라 술을 먹여 위로한뒤 ‘함께 따르지 않겠는가 ?’ 하니 흑동이 감읍하여 마침내 따르기로 했다.
함께 길을 가다 개울가에 수많은 자갈이 있는 것을 보고 원국이 지혜를 발휘에 한가지 안을 내놓았다. 우리 셋이 앞으로 함께 하기로 헀으나 이제 마땅히 서열이 있어야 할터인데 우리 셋이 모두 동갑이니 그리할 수는 없고 다만 저 자갈을 한꺼번에 많이 주워올리는대로 순서를 정하기로 합시다 하였다. 왕유, 흑동이 모두 동의하였다. 먼저 흑동이 한번에 자갈 50개를 들어올렸고 이어 왕유가 70개를 들어올렸으며 나중에 원국이 자갈 100여개를 한번에 들어올리자 마침내 이로서 서열울 정하였다.
이후 남서로 140여리를 더 가서 무진(霧津)이란 마을에 이르렀다. 강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곳에 한 집채가 있었는데 크지는 않았으나 정갈하고 정돈되어 있어 분위기가 사뭇 평온해보였다. 뭔가 범상치 않음을 느껴 원국,왕유,흑동 3인이 다가가 하룻밤 묵을 것을 청하였다. 안에서 한 사람이 나왔는데 젊은 청년이 사뭇 선비같은 복장을 하고나와 ‘먹을것이 없소이다’ 하고는 문을 잠그고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이에 흑동이 화가나서 ‘이 집에 불을 질러버리겠다’ 하니 반응이 없었다. 다시 왕유가 격노하여 ‘이 집앞에 용변을 볼터이니 그래도 좋으냐 ?’ 하였다. 이윽고 사내가 화가나서 나와서는 ‘자꾸 귀찮게하면 관아에 신고하겠다’ 하였다. 이에 원국이 두 아우를 만류한뒤 사내에게 나가가 사뭇 정중한 말투로 ‘우리가 이 집을 밖에서 대충 보니 뒤에 작은 별채가 있어 묵을방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고 이미 부엌에서 고기 삶는 냄새와 밥짓는 향이 나고 있는데 어찌 먹을것이 없다 하시오이까 ? 객을 핍박하기를 이와같이 하시니 오히려 그대를 관아에 고변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도록 하겠소이다’ 하였다. 이에 마침내 사내가 의관을 정제한뒤 무릎끌고 절하며 이와같이 말했다.
‘소인의 이름은 노탄(盧坦)이라 하였는데 어려서 전란통에 부모를 여의고 먼친척에 의탁하여 지금껏 살아왔나이다. 당숙께서 제가 어릴 때 앞날이 걱정되어 한 무자(巫者)를 찾아가 물으니 말하기를 ‘병오(丙午)년 삼짓날이 되면 마땅히 이 아이를 거두어줄 참 주군(主君)이 올것이니, 그때까지 옛 선현의 도리를 배우며 몸가짐을 바로하라’ 하였습니다. 이후 당숙께서 돌아가신뒤 혼자 낮에는 뽕나무와 담배농사를 짓고 밤에는 옛 선현의 서책을 읽으며 공부한지 어느덧 10년 세월이 흘렀나이다. 올해가 마침내 병오년이니 이윽고 옛 무자의 예언대로 참 주인이 오실날이라 믿었습니다. 원컨대 안으로 드시어 좌정하여 주시오소서‘ 하였다. 이후 술과 고기를 후하게 대접하며 사흘을 이곳에 머물며 담화를 나누며 함께하기로 맹서하였다.
이후 방망산(防忘山)에 함께 들어가 산채를 짓고 무리를 모으니 옛적 왜인들에게 핍박을 받았거나 가난,전쟁,흉년,질병으로 식솔을 잃은이 500여인이 모여들었다. 이후 무리의 이름을 천동단(天動團)이라 짓고 앞날을 도모하기로 하였다.
도당(徒黨)을 조성하고 앞날을 의논하니 먼저 노탄이 말하기를 ’방망산에서 50여리 떨어져 있는 모산성(毛山城)이란 곳은 한윤(韓潤), 유운(劉云)이란 이가 지키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옛적 한나라 공신가의 자손이나 세가 불리해 어쩔수없이 태을국에 투항한 집안입니다. 겉으로는 태을국에 충성하는척 하지만 마땅한 힘이나 세력이 없어 차마 도모하지 못한채 양쪽의 눈치를 보며 기회주의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마땅히 깨볼만한 세력입니다‘ 허였다. 원국이 ’어떤 계책이 있는가 ?‘ 하고 물으니 ’태을국 조정에서 왔다고 하면 복종하지 않을자들이니 옛적 거란의 잔당들이 세운 우승국(遇承國)의 사신들이 왔다 속여 병사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한윤과 유운을 베고 백성들을 투항케 하면 충분히 차지할수 있습니다‘ 하여 원국,왕유,흑동 3인방이 모두 옳다여겨 시행토록 하였다.
맹방(孟方)이란 자를 거란의 사신으로 변장시킨뒤 50여 무리와 함께 한윤,유운을 만나게 했다. 한윤,유운이 의심치않고 이들을 안으로 들여보낸뒤 회담을 하는척 하고 바로 무기를 뽑아 단칼에 한윤을 베었다. 유운이 놀라 반격을 시도하나 이미 때가 늦어 맹방이 먼저 칼로 유운을 찔러 이겼다. 이후 원국,왕휴,흑동이 본진(本陣)의 병사를 이끌고 밀고 들어가니 바로 모산성이 함락되었다. 500여 백성의 무리가 투항하였다.
모산성을 차지한 원국,왕유,흑동 3인은 다음엔 종간성(宗間城)의 전해(田解)라는 이를 깨트릴 계책을 의논하였다. 먼저 노탄이 말하기를 ’종간성의 전해는 전형적인 샌님 스타일이나 그 옆에는 이동(異同)과 반섭(潘涉)이라는 책사가 있어 항상 교활한 책략을 내놓는 자들입니다. 계책으로는 그들을 깨트릴수 없사옵니다.‘ 하였다. 원국이 근심하여 ’허면 어떤 방도가 좋겠는가 ?‘ 하고 물으니 오탄이 오히려 씨익 웃으며 말하기를 ’원래 계책과 생각이 많은 이들은 역으로 단순한 방식으로 깨트릴 때 통하는 법입니다. 생각이 많은 이들을 역으로 방심하게 만들면 될것입니다‘ 하였다. 왕유 또한 의아하며 묻기를 ’그게 대체 무슨소리인가 ?‘ 하였다.
다시 노탄이 말하기를 ’왕유와 흑동 두분 장군께서 우선 우리의 사납고 힘센 병사 100여인을 이끌고 종간성의 좌우 성문으로 가서 마치 조만간 야습을 할것처럼 소란을 피우십시오. 그럼 처음엔 적이 계책이 있을까 두려워 쉽게 도발하지 못할것입니다. 허면 이때 우리가 오히려 적의 허점을 이용하여 공격하면 능히 이길수 있을것입니다.‘ 말했다.
노탄의 계책대로 왕유와 흑동이 종간성의 좌우성문으로 가서 ’조만간 야습을 할 것이다‘하며 계속 소란을 피웠다. 자연스레 전해에게 보고가 들어갔는데 이동과 반문이 바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적이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리는게 분명합니다. 야습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를 속이는 계책이고 우리가 야습을 한다는 소문에 긴장하여 계속하여 방비를 하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지칠것이기에 그때 허점을 이용 공격하려는 계책입니다. 우리가 적의 전략을 역이용해야 합니다.‘ 하였다. 전해가 다시 묻기를 ’대체 어찌하면 좋겠는가 ?‘ 하니 반섭이 답하기를 ’저토록 대놓고 야습을 하겠다고 떠벌이는 것은 결국 야습할 뜻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한동안은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성안에서 크게 잔지를 베푼뒤 푹 쉬게 하십시오. 그리고 적이 계속 야습을 한다고 떠들어대다가 스스로 지쳐 물러날때쯤 그들의 뒤를 치면 능히 이겨 깨트릴수 있습니다‘ 하였다. 전해가 껄껄 웃으며 이동과 반섭을 격려하며 말하기를 ’그 옛날 신출귀몰 하였다는 공명(孔明)과 장량(張良)이 살아돌아온들 어찌 그대들만 하겠는가 ?‘ 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의 계책대로 병사와 백성들에게 배불리 술과 고기를 먹이고 일찌감치 잠들어 푹 쉬게 하였다. 적들이 잠들자 마침내 좌우에서 왕유와 흑동이 성문을 깨트리고 기습하니 단숨에 종간성을 함락시킬수 있었다. 뒤늦게 격노한 전해가 이동과 반섭을 불러 단칼에 목을 베어버린뒤 혼자만의 힘으로 왕유와 흑동을 대적하려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투항의 뜻을 밝혔으나 오히려 노탄이 말하기를 ’전해는 옛적 노나라 충신의 자손이면서도 옛 중원의 도리(道理)를 부흥(復興)시킬 생각을 아니하고 왜적에게 아첨하여 지금껏 그 생령을 이어왔습니다. 죽임조차 아까운 자이옵니다‘ 하였다. 원국이 그 말을 듣고 전해를 산꼭대기 높은 암자에 끌고가 그곳에 가두고 물과 음식을 주지않아 굶어죽게 하였다.
당산(堂産)땅에 엄백호(嚴白鎬)를 토벌(討伐)하기로 하였다. 엄백호는 지역의 이름난 부호였다. 먼저 노탄이 말하기를 ’엄백호는 소유하고 있는 전답과 임야만 7천여평에 달하고 집에는 3년을 쌓아놓고 먹고살수 있는 양식과 보화가 하나가득합니다. 이를 우리의 재정기반으로 삼으면 반드시 대업(大業)을 이루는 기틀이 될것이니 먼저 도모하소서‘ 하였다. 원국이 다시 근심하여 묻기를 ’이번엔 과연 어떤 계책이 있는가 ?‘ 하니 다시 노탄이 말하기를 ’엄백호 역시 옛적 진(陳)과 한(漢)의 계보를 있는 명문가의 자손으로 허나 왜국이 중원을 평정한뒤엔 벼슬을 버리고 오직 재야(在野)의 부호(富豪)로만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나이다. 이제 주공께서 큰 뜻을 품었으니 엄공(嚴公)을 불러 좋은말로 잘 설득하소서‘ 하였다. 노탄이 옛 동료중 글하는 선비였던 이문(李門)과 진창(晉昌)을 불러 약간의 선물을 갖고 엄백호를 찾아가 설득하도록 하였다. 이문과 진창이 마침내 엄백호를 찾아가니 오히려 엄백호는 ’내가 비록 옛적 중원의 고매한 피를 받았다하나 이미 세상에 뜻을 버린지 오래요, 또한 오늘날 사정이 이전과 같지 않가고 하나 중원의 혈통을 이어받은 몸으로 어찌 한낱 도적과 손을 잡겠는가. 또한 내가 이미 3년먹을 재물이 있고 대지와 임야가 풍부한데 이런 선물이 다 무슨 소용이 있단말인가‘ 하며 돌려보내려 하였다. 원국이 뒤늦게 보고를 받고 낙담하자 노탄이 다시 위로하며 설득하였다.
’엄백호의 집사(執事)중 백승(白承)이란이가 있어 본래는 엄공에게 충성을 다하는이나 내심 세상에 대한 야심이 있는이라 들었습니다. 백승을 잘 설득하면 중간에 우리편으로 끌어들여 엄공의 재물을 우리것으로 못하더라도 중개인이 되어줄수 있을것입니다‘ 하였다. 하여 다시 백승을 은밀히 본거지로 불러 뜻을 함께 의논할 것을 청했으나 백승이 역사 거절하였다. 노탄이 한숨을 쉬며 다시금 고민을 하다 마침내 결심하고 원국을 찾아가 말했다. ’이미 두 번을 찾아가 좋은말로 설득하였으나 거절당하였으니 하늘의 이치는 이미 다 했다고 봐야할것입니다. 이제 무력(武力)(을 쓴다한들 명분이 없다 할수 없으니 공연히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였다. 이윽고 병사를 이끌고 엄백호의 집을 찾아가 불을 지르고 엄백호를 살해하였다. 하인 백여인이 투항하고 엄가의 가솔은 모두 몰살시켰다.
이때에 어느덧 원국,왕유,흑동 3인을 따르는 무리가 1천을 넘었다. 하루는 노탄이 다시 원국을 찾아와 간하기를 ’이곳에서 남서로 50여리 떨어진곳에 마천(馬川)과 송암(松巖)이란곳이 있는데 땅이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하며 특히 광산이 일곱 개나 되어 그곳의 광물을 채취하면 우리의 대업에 아주 든든한 기반이 될것이옵니다. 다만 이곳은 오래전부터 궁씨(弓氏)성을 가진 씨족이 700여 무리와 함께 독자세력을 구축하고 있어 우리에게 복속시키기 쉽지 않을것입니다. 한번 설득해 보겠습니다.‘ 말하자 원국이 다소 회의적으로 ’씨족으로 뭉쳐서 독자세력을 확보하고 있다면 복속을 시키기 쉽지 않을터인데 무리할필요가 있는가 ?‘ 하였다. 노탄이 거듭 설득하기를 ’우리의 대업이 성공하자면 앞으로도 보다 많은 물산과 재물이 필요한데 엄백호의 터전을 차지한것만으로 부족합니다. 마땅히 궁씨의 땅을 빼앗아 터전을 잡지 않으면 백년의 후회가 될것입니다‘ 거듭 간하니 일단 노탄의 계책대로 시행하게 하였다.
이때 궁씨가는 원래 진(陳)이나 한(漢)나라와 인연이 없고 왜인(倭人)이 중원을 차지한뒤에도 복속하지 않아 다만 별도의 세력을 지탱하고 있을뿐이었다. 노탄이 직접 가소 장로(長老) 궁돈(弓敦)을 만나 설득하였다. ’우리는 옛적 한족(漢族)의 터전을 빼앗고 백성을 핍박하는 왜적(倭敵)을 섬멸하고 대업(大業)을 이루고자하오. 궁씨가 본래 한이나 노에도 속하지 않았으나 만약 우리의 일에 손을 잡으면 훗날 대국(大國)을 세운뒤 집안을 공신각(功臣閣)에 봉하고 세금을 면제하여 그 광영이 자손만대 이르게 할터이니 부디 손을 잡아주시오‘ 하였다. 궁돈이 말하기를 ’우리가 예부터 이곳에 터전을 잡아 중원에 복속한 일도 없었고 태을국(太乙國 : 왜인들이 중원을 차지한뒤 세운 국명(國名)과도 이미 적정한 타협점을 보아 독자세력을 유지할수 있도록 해주었소. 지금와서 굳이 다른이들과 손을 잡을 까닭이 없소이다‘ 하였다. 노탄이 거듭 설득하기를 궁씨가의 여인들을 우리 세력의 남자들과 혼사시켜 그 자손들로 하여금 대국의 공을 세우게 하면 훗날 그 자손이 더욱 광영될터이니 어찌 이를 마다하려 하시오. 부디 혼사로 동맹을 맺읍시다’ 하였다. 궁돈으 거듭 거절하기를 ‘혼인동맹은 옛적 중원 열국(列國)시대에 자주 있었던 이치라 하나 오히려 동맹으로 인한 평화부다는 후사문제로 인한 분란만 거듭된 것으로 알고있소. 더 취할 이치가 없소이다.’ 하였다. 노탄이 거듭 답답하여 설득하며 ‘대업이 성공되면 비옥한 토지 일부를 그대들에게 내어줄터이니 부디 협조해주시오.’ 하였다. 허나 궁돈이 거듭 ‘땅은 이곳 송암과 마천의 물산으로도 우리 자손들이 천년을 먹고살수 있을터이니 더 이상의 땅은 필요없소이다’ 거듭 제안을 거절하였다.
마침내 원국이 보고를 받고 노하기를 ‘호의로써 거듭 협치(協治)를 청하였는데 번번히 거절하다니 망령된 노인네를 용서할수 없도다’ 하며 몸소 병사를 이끌고 출병하려 하였다. 노탄이 만류하였으나 듣지않고 왕유,흑동과 함께 마침내 500의 군사를 이끌고가 마천과 송암을 쳤다. 이때 궁씨가에 궁복(弓福), 궁홍(弓弘), 궁진(弓眞) 3형제가 있어 목책(木柵)을 쌓고 적을 대비하려 하였는데 오히려 원국이 먼저 알고 왕유,흑동에게 화공을 쓰게하여 마침내 모두 멸살시켰다. 궁선(弓宣)과 궁재(弓在)는 둘 다 힘이 장사로 육촌간이었는데 급조한 활과창을 들고 마침내 원국의 세력에 맞서려 하였으나 역시 역부족으로 전사(戰死)하였다. 마침내 원국이 500의 무리로 궁씨일족 700인을 모두 쓸어버리니 성인 남성들은 모두 불에 태우고 노인들은 파묻었으며 어린 여성들은 모두 무리들에게 넘겨 겁탈한뒤 죽이라 하였고 어린아이들은 모두 불에 구워먹었다. 그 끔찍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목멱산(穆覓山)에 홍우(洪遇)라는 이가 있어 산채를 짓고 300의 무리와 함께 살았다. 원국의 무리가 갈수록 세력이 커지니 경계하는 마음이 있었다. 은밀히 서한을 보내 만날 것을 청했다. 홍우가 본래 글을 몰라 서찰은 글을 아는 측근이 대신 써서 보냈다. 원국이 노탄을 불러 대책을 의논하니 ‘홍우는 글을 모르고 무식하나 천하장사라 들었습니다. 반드시 우리를 유인하려는 술책이 있으니 주공(主公)께서 가지 마시고 다른 대책을 세우십시오’ 하였다. 원국이 다시 노탄에게 물으며 대책을 의논하니 일단 왕유를 원국이라 속여 대신 보내기로 했다. 왕유가 먼저 홍우의 산채를 찾아가니 홍우가 말하기를 ‘먼저 나와 씨름 세판을 해보자. 모두 이기면 그때 생각해 보겠다’ 하였다. 이에 왕유가 응하니 세판을 모두 유(維)가 이겼다. 홍우가 짐짓 부끄러워 다시 내기를 제안하기를 ‘황소 열 마리를 먼저 옮기는자가 이기는 것으로 시합을 해보자’ 하였다. 거리는 산채의 끝에서 끝까지로 하는걸로 하였는데 대략 일각(一刻)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시합을 하니 이번에도 모두 왕유가 이겼다. 홍우가 다시 내기를 걸기를 ‘이번엔 나뭇단 50짐을 옮기는 것으로 하자. 내가 지면 그때 복속을 하겠다’ 하였다. 거리는 역시 일각이 조금 넘는것이었는데 역사 이번에도 왕유가 이겼다.
홍우가 짐짓 부끄러워하며 즉근 심재(沈在)와 동만(童敏)을 불러 말하기를 ‘일단 못이기는체 하고 저자에게 술과 음식을 배불리 먹여라. 그후 밤에 해치우도록 하자’ 하였다. 그리고 왕유를 후히 대접하는척 하며 음식을 먹였다. 왕유가 속임수가 있을까 의심하여 술은 다 먹지 않고 상당수를 버려 옆예 쏟아부었다. 그리고 취한채 무리가 내어준 방으로 들어가 누우니 마침내 깊은밤에 심재와 동민이 자객으로 들어왔다. 왕유가 본래 속임수가 있을 것을 의심해 대비하고 있었기에 단칼에 두 사람을 모두 베었다. 홍우가 마침내 놀래 스스로 무릎꿇고 사죄하였다.
왕유가 돌아가서 경위를 설명하니 노탄이 원국에게 말하기를 ‘홍우의 계책을 우리가 막을수 있었으나 다만 우리가 가짜를 보낸 것이 탄로나면 홍우가 다시 반(反)할것입니다. 다른 방도를 쓰소서’ 하였다. 이후 흑동과 함께 10여인을 데리고 가서 다시 홍우를 만났다. 홍우가 먼저 술을 내어 대접하는데 노탄이 술에 몰래 약을 탄뒤 먹이니 홍우가 쓰러졌다. 흑도잉 홍우를 벤채 무리앞으로 나와 ‘너희 두령이 이미 죽었으니 모두 항복하라’ 하니 목멱산의 무리도 모두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목멱산마저 떨어지니 원국,왕유,흑동의 세력은 어느덧 방망선에서 목멱산까지 50여리에 이르렀다.
이때가 태을국(太乙國)은 7대 보명천황(普明天皇)때였는데, 황위(皇位)에 오른지는 10년이 조금 넘었다. 원국의 세력이 점점 커져가자 관백(官伯) 승도(承道),도일(都日)등을 불러 대책을 의논하였다. 우선 양주의 다이묘 흑천(黑川)과 신견(信見)에게 명하여 원국의 세력을 막으라 하였다. 원국에게도 당연히 보고가 들어가 책사 노탄과 함께 대책을 의논하였다.
노탄이 먼저 말하기를 ‘이미 신(臣)이 모든 대책을 마련해 놓았으니 주공(主公)께서는 근심 마소서’ 하였다. 그리고 왕유와 흑동에게 명하여 100의 무리를 거느리고 가서 양주 인근 일곱마을을 치되 노인과 여성 그리고 어린아이들부터 죽이라 하였다. 왕유와 흑동이 명을 받은대로 노인과 여성,어린아이들을 먼저 잔혹하게 죽이니 장정들이 이로서 충격을 받아 실의에 빠졌다. 다이묘 흑천과 신견이 병사를 모집하려 들었으나 응하는이가 없었다. 왕유와 흑동이 본진의 군사를 몰아 양주성을 치니 비로소 함락되고 흑천과 신견은 모두 달아나버렸다. 천황이 격노하여 이들의 목을 베고 대장군 권성(權成)을 불러 원국의 세력을 치려했다.
이때 원국의 세력은 스스로를 ‘천동단(天動團)’이라 하였는데 널리 격문을 띄워 말하기를 ‘우리는 옛적 천지도리로 세운 한족(漢族)의 중원땅을 무도하게 빼앗은 저 늑대와 승냥이만도 못한 잔혹한 왜적 오랑캐를 징벌하기 위험아니 옛 진(陳)과 한(漢)과 노(盧)의 후예들은 모두 일어나 천지대명(天地大命)을 받으라. 따르지 않는자는 모두 왜적(倭敵)의 잔당으로 간주하여 그 삼족이 묻힐땅이 없을 것이다’ 하였다. 이후 곳곳마다 가며 마을을 치고 장정들이 포로가 되면 모두 팔다리를 자른뒤 불에태워 죽이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모두 납치하였다. 이후 노탄이 다시 원국에게 말하기를 ‘주공께선 신이 개발한 인육포(人肉砲)’를 쓰시옵소서. 마땅히 그 효과가 있을것이니 왜의 대군을 섬멸할것이옵니다.’ 하였다.
처음 왕유와 흑동이 의아해서 묻기를 ‘옛부터 인육포(人肉砲)라는 것은 들어본적이 없는데 대체 그것이 무엇입니까 ?’ 하였다. 노탄은 다만 씨익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이후 무리에게 명하여 우선 발석거(發石車)와 야포(野砲) 형태의 무기 수십대를 만들라 했다. 이후 다시 무리에게 명하여 인근 마을에서 젊은 여성과 아이들을 납치해오라 명했다. 이로인해 인근 인주(仁主)고을 여인 253인과 아이 147명, 상치현(相致縣)의 여인 153인과 아이 89명, 지우현(支優縣)의 여인 145인과 아이 78명, 정남현(定南縣)의 여인 361명과 아이 237명, 구수현(具修縣)의 여인 78명과 아이 52명, 노당현(魯唐縣)의 여인 309명과 아이 198명, 남명(男明) 고을의 여인 97명과 아이 57명을 납치해왔다. 이후 인근의 성에 발석거와 야포를 들이대고 말하기를 ‘항복하지 않으면 인육포를 쏘곘노라’ 엄포를 노았다. 성안의 병사와 장정들이 처음 의아해하며 상황파악을 못하니 일단 본보기로 아이와 여인들 각기 발석기와 야포의 발사대안에 넣고 성을향해 쏘아댔다. 이후 수많은 여인과 아이들의 시신이 성문안으로 쏟아지니 장정과 병사들이 모두 놀라 두려움에 떨었다. 또 어떤이들은 포탄대신 쓰인 여인과 아이들이 자기가족임을 뒤늦게 확인하고 비탄에 잠기기도 했다. 적들이 망연자실하여 더이성 무슨수를 쓰지 못할 때 병사를 몰아 이윽고 모두 함락시켰다.
이후에도 인근 다섯고을에서 여인과 아이 500여인을 납치 발석거와 야포를 이용 쏘아대고 대룡성(大龍城)인근 아홉고을에서도 여인 400여명과 아이 350여명을 납치 발석거와 야포로 쏘아대니 병사들이 모두 놀라 달아다거나 비통에 잠겼다. 이우 함안성(咸案城)과 정두성(鄭頭城)을 함락시킬때도 이와같은 방식을 썼다.
하루는 노탄이 다시 원국을 찾아와 간하기를 ‘왜적(倭敵)이 중원을 정벌한 이래 옛 선현(先賢)의 도를 모두 어그러뜨리고 오직 자신들의 신도(神道)를 세워 헛귀신이 창궐하게 만들어 천지순결을 어그러뜨렸나이다. 이제 주공께서 마땅히 대의(大義)로써 옛 중원의 도리를 다시 부흥케하고자 하셨으니 마땅히 중원땅에 왜적이 세운 신토를 모두 불살라 없애시오소서. 피로써 정벌한뒤 헛귀신과 허무맹랑한 헛소리를 모두 불살라 없애신뒤에 그곳에 새로운 도리를 심어놓으면 마땅히 옛 선현의 도리와 공맹(孔孟)의 이치가 부활하여 천지사방이 고요해질것입니다.’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마침내 왕유,흑동과 따르는 무리들이 모두 감읍하여 절한뒤 ‘마땅히 옛 선현의 도리를 바로 세우소서’ 하였다.
이후 왕유,흑동에게 밀지를 전혜 계책을 밝히니 왕유와 흑동이 각기 10여명 정도의 부장을 불렀다. 부장(副長)들은 각기 5-7인 정도의 무리로 조를짜서 먼저 예(禮),양(梁)땅의 신도를 불사르기로 했다. 왜인(倭人)들은 신토에서 보통 일주일에 한번정도 정기집회를 가졌는데 신토는 각 시,군,현마다 작은곳은 5-6개 큰 지역은 10개도 넘게 설치되어 있었다. 먼저 예주당 부원고을에 있는 신토를 찾아가 폭약을 미리 묻고 집회가 있는날을 예정하여 폭파시키니 50여인이 죽거나 다쳤다. 다시 도현(都賢)고을 신사에 폭약을 묻고 집회날 터트리니 이번엔 70여인의 사상자가 났다. 왕유의 부장중 엄승(嚴承),계인(係印)이라는 이가 있어 이먼엔 목산(穆山)과 지평(指坪)땅의 신토 5-6곳을 불살라버리고 그곳의 신주들을 박살낸뒤 불상을 모두 불에태워 땅에 묻어버렸다.
함주(咸州) 지역에 원익(原益),고흥(高興)이라는이가 있었는데 지역의 신토를 모두 총괄(總括)하는 일종의 제사장이었다. 흑동의 부장 배주(裵株)가 10여인의 무리를 이끌고 직접 원익,고흥의 목을 베고 지역의 신토를 모두 불살라버렸다. 집회에 참석하러 오는 여인 20여인을 모두 겁탈한뒤 목을 베어 죽였고 여승의 목을 벤뒤 머리고기를 불에구워 먹었다. 술안주로 삼으며 껄껄웃으니 노탄이 직접 공로를 치하하였다.
왕유와 흑동의 부장들이 불사른 신토가 어느덧 예주와 양주 50여곳에 이르고 집회이 참가한 신도 수백여인의 목을 베고 불애태워 없애고 여승과 여신도는 모두 겁탈해버리니 다들 불안에 떨었다. 황도에서 마침내 더는 두고볼수 없어 지봉장군(地峰將軍) 천태(千泰)에게 명하여 신도를 겁박한 무도한 무리들을 모두 멸살하라 하니 천태가 500여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였다. 허나 왕유,흑동의 군사들이 유인책을 써서 숩길로 이등하게 한뒤 화공을 써서 모두 불살라 없애버렸다.
태을국의 황도(皇都)에는 왜인(倭人)의 옛 조상과 나라를 세운 천신(天神)들게 제를 올리는 세 개의 큰 신토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신토는 황궁에서 서남쪽 30여리 떨어진곳에 위치해 있고 나머지 둘은 황도 좌우 성읍에서 각기 50리 정도 떨어진곳에 위치해 있었다. 황족과 나라의 고관대작들은 철이되면 모두 신토로 와서 황도의 많은 신도,백성들과 함께 천신께 제를 올리고 치성을 드렸다. 노탄이 다시 왕유,흑동을 불러 말하기를 ‘이때를 우리의 거사일로 하면 신토의 동남방 헛귀신께 제사드리는 허랑방탕한 이들을 일거에 쓸어버릴수 있을것이외다’ 하니 왕유,흑동이 다시 옳다 여기고 거사를 준비했다.
이때에는 이미 천동단(天動團)의 난동이 극에 달한때라 황도에서도 혹시 모를 변란에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있었다. 거사일에 방비를 단단히 하고 천신께 제를 올리러 신토로 나아갔는데 노탄은 장수 원진(原進)과 명옥(明玉)에게 명하여 철심을 거꾸로 박은 나무판 수십개를 만들개 하고 거사일에 바로 그것을 신토로 진격케하였다. 놀란 황도의 병사들이 일시에 달아나니 황도의 세 개의 신사는 일거에 무너져내렸다.
왕유와 흑동은 세 개의 신사에 모두 불을 지르고 신주(神主)와 불상을 모두 으깨어버렸다. 또한 나이어린 여승과 치성을 드리러온 젊은 여인들을 수하들을 시켜 모두 겁탈하였으며 흑동은 손수 나이어린 여승들을 머리껍질을 벗긴뒤 그 고기를 구워 피에 찍어 먹었다. 고기를 직접 수하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는데 먹기를 거부하는이가 있으면 ‘너도 왜인과 한패냐 ?’며 그 자리에서 때려죽였다. 노탄은 신토에서 신앙생활을 하거나 기도를 한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모두 불러내어 ‘너희들은 모두 천지대벌(天地大罰)을 받아야한다 !!!’고 한뒤 부장 왕성(王成)과 명진(明辰)에게 명하여 모두 불에태워 죽이게 했다. 이후 백성들이 겁이나서 함부로 신토에 발을 들이지 못하였으며 어떤이들은 그래도 신앙을 잃지않고 자기네들끼리 지하에서 몰래 치성이나 기도를 드리거나 밤에 몰래 신토에 드나들며 치성을 드리거나 제사를 지냈다. 노탄이 다시 수하들에게 명하여 은밀히 감시케하여 밤에 신도를 드나드는이들은 사내일 경우 그 자리에서 팔과 다리를 자른뒤 불에태워 죽이라 했고 나이어린 여성인 경우엔 그 자리에서 겁탈해버린뒤 염주와 서책을 모두 불살라 찢어버린뒤 머리를 불에구워 먹이게 했다.
노탄은 불에 타는 신사의 성전과 기물들을 바라보며 술과 안주를 즐겼다. 그리고 수하들을 모아놓고 ‘이제야 왜적들이 세워놓은 허랑방탕한 허깨비들을 추방시킬수 있게 되었도다. 왜적들이 심어놓은 허상들을 말살시킨곳에 요순의 새싹이 돋게 하리라’ 하며 손뼉을 치며 깔깔대고 웃었다.
하루는 다시 노탄이 원국을 찾아와 이와같이 간했다. ‘왜적들은 해마다 연말이 되면 각 주와 군과 현에서 다이묘들이 한해동안 수확을 가장 많이 올린이나 나라에 공을 세운이들을 크게 치하하는 잔치를 벌이나이다. 이때에는 각 주의 주요 요인과 나라의 고관대작들이 모두 모이니 이때에 거사를 하면 왜적의 심장부를 한방에 멸살시킬수 있을것이옵니다’ 하였다. 원국이 다시 궁금하여 ‘무슨 방도가 있는가 ?’ 하니 노탄은 그저 웃으며 ‘신을 믿어주시오소서’ 하였다.
마침내 연말이 다가오니 노탄이 다시 왕유와 흑동을 불러 명하였다. 수하들을 모두 한조당 10여인씩 모이게 한뒤 거사일인 연말 행사장을 급습하게 하였다. 준비해놓은 불화살과 폭약을 일제히 쏘아대고 폭파시키니 행사장은 모두 엉망이 되었다. 행사장에 참석한 고관대작과 지방정부 요인맟 황도에서 파견된 고관대작들도 모두 정신없이 달아나거나 해를 입었다. 이때에 왕유와 흑동은 수하들에게 명하여 연말에 상을받은이들과 축하하러 온이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한뒤 철심을 박은 나무판을 전차위에 꽂은뒤 이를 달리게하여 시상자들을 모두 죽였다.
예주(豫州)의 행사장에는 왕유가 수하들과 함께 가 있었는데 먼저 덩치가 제법 큰자가 하나 불려나왔다. 철퇴로 내려치려 해도 죽지않고 칼로 베거나 톱으로 썰려고 해도 들어가지 않자 하는수없이 왕유가 직접 명해서 불에 태운뒤 파묻어버리라고 했다. 다음에는 키는 중간키에 바짝 마르고 얼굴이 제법 긴 남자가 끌려나오자 왕유가 부장 성민(星玟)에게 명하여 톱으로 썰어 죽이라 했다. 이번에는 좀 나이들고 마른체구의 남자가 끌려나왔는데 얼굴이 쥐상이었다. 왕유가 직접 목을 베어 죽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서른 남직한 남자 둘이 불려나왔는데 한 남자는 제법 건장한 키에 서글서글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고 또 다른 남자는 상대적으로 왜소한 얼굴에 삐친머리를 하고 있었다. 둘을 모두 톱으로 썰어 죽이라 했다. 다음번엔 웬 키가 작은 인간 하나가 불려나왔는데 외모가 사내인지 계집인지 쉬이 구분이 안 갔다. 왕유가 거듭 의아하여 ‘너는 사내아이냐 ? 계집아이냐 ?’ 세 번을 물어도 답을하지 않았다. 왕유가 노하여 직접 철퇴로 머리를 내리쳐 죽여버렸다. 다음엔 키는 작고 제법 뚱뚱한 여인 두명이 끌려나왔는데 왕유가 생긴것도 재수없다며 전부 파묻어버리라고 명했다.
양주(梁州)에는 흑동이 100여 군사와 수하들과 함께 가 있었다. 먼저 중간키에 그런대로 잘생긴 외모를 갖춘 젊은 남자가 행사장에서 끌려나왔다. 흑동이 부장 예친(芮親)에게 명하여 바로 때려죽이라 했다. 이번에는 중간키에 얼굴이 길고 사각형의 남자가 끌려나왔는데 바보처럼 실실 웃기만 했다. 흑동이 바로 기분나빠져 철퇴로 때려죽었다. 이번엔 약간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 이상한 여자가 끌려나왔다. 역시 재수없다며 불에태워 죽이라고 했다. 이번엔 제법 묘하게 생긴 외모를 갖춘 여인이 끌려나왔는데 기이한 외모와는 달리 몸매는 괜찮았다. 하지만 흑동이 별로 보고싶지 않다며 바로 팔다리를 자른뒤 불에태워 죽이라 했다. 다음엔 역시 중간키에 잘생긴 외모를 한 젊은 남자가 끌려나왔다 바로 목을 베어 죽이라 했다. 이번엔 좀 나이든 남자 서너명이 연달아 끌려나왔는데 역시 팔,다리를 자른뒤 불에태워 죽이라 했다.
명주(明州)의 연말 행사장은 노탄이 측근 부단(府段),제문(諸門)과 함께 가 있었다. 먼저 아이가 둘,셋쯤 있어보이는 중년여인 서너명이 끌려나왔다. 노탄이 순간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아이들에게 직접 칼을 쥐어준뒤 손수 자기 어미의 팔다리를 잘라 죽이라 명했다. 아이들이 처음에 못한다고 울었으나 부단,제문이 연달아 협박하며 다그치니 하는수없이 아이들이 각기 자신들의 어미 팔다리를 직접 베어 죽였다. 부장 고흥(高興)이 행사장에서 수염길고 백발성성한 노인 하나를 끌고왔는데 노탄이 보니 하나 쓸모가 없어보여 바로 하천에 내다버리라 명했다. 다음인 부장 길태(吉泰)와 길막(吉幕),길목(吉穆)형제가 젊은 남자 20여명과 젊은 여인 십수명을 행사장에서 끌고왔다. 노탄이 하나하나 이목구비를 살펴본뒤 모두 불에 태워죽이라 명하였다.
흑동은 포로로 잡아온 여인들을 매일밤 자신의 처소에 들게한뒤 관계를 요구하여 이를 받아들인 여인은 관계를 가진뒤 다음날 새벽에 땅속에 파묻어 죽였고 관계를 거부하면 그 자리에서 톱으로 썰어죽였다. 원국이 하루는 흑동을 불러 술을 나누며 까닭을 물으니 ‘내 사랑하는 누이동생 여섯명이 짐승만도 못한 왜적 오랑캐에 의해 억울하게 굶어죽어갔소. 이 분을 풀려거든 왜녀(倭女)들을 모조리 갈아마시거나 톱으로 썰어 죽여도 이 분이 풀리지 않을것이오’ 하였다.
흑동은 본진(本陣) 근처에 있는 냇가에 가서 매일같이 죽은 누이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울부짖었다. 술을 마시면 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 더더욱 난폭하게 굴었고 포로로 잡은 여인들을 데려오게하여 매일밤 괴롭혔다. 원국이 그 모습을 안타깝게 보다가 하루는 불러서 말하기를 ‘네 분이 그렇게해서라도 풀린다면 원하는대로 하라’고 하였다.
성진현(成眞縣)을 칠 때 흑동을 보냈더니 여인 532명을 포로로 잡아왔고 장정 730여명을 팔다리를 베고 전부 불에 태워죽였다. 나진(羅晉)과 문송(文松)을 칠때도 역시 여안 345명과 247명을 포로로 잡아오고 장정 600여명의 팔,다리를 잘라 불에태워죽였다. 한번은 포로로 잡힌 여안중 송아(松阿)와 송희(松姬)라는 자매를 침소에 들게 했는데 둘이 자매였다. 흑동이 먼저 술을 권하며 묻기를 ‘농부가 봄에는 곡식을 심고 가을에는 추수하는 뜻을 아느냐 ?’ 물으니 여인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였다. 또다시 흑동이 묻기를 ‘밤이 가면 아침이 오고 하루가 지나면 다시 밤이오는 뜻을 네가 아느냐 ?’ 하니 이번에도 답을하지 못하였다. 흑동이 술을 마신뒤 둘 다 단매에 때려죽었다.
원성현(原成縣)을 칠 때 또 수십여 여인이 붙잡혀왔는데 이중 이순(異順)과 이지(異指)라는 자매가 있었는데 쌍둥이였다. 또한 요비(妖泌)와 요연(妖涓)이란 여인이 있었는데 쌍둥이였다. 먼저 이순과 이지를 들게한뒤 방에 빨간구슬과 노란구슬 수백개를 돌아다니게 한뒤 ‘그 구슬을 내가 100을 셀때까지 주워모아보라’ 하고는 자매가 이행하지 못하자 모두 때려죽였다. 다음엔 요비와 요연을 들게한뒤 자신의 옷들을 모두 내어준뒤 ‘내일 새벽까지 빨아오도록하라’고 하고선 여인들이 이행치 못하자 둘 다 땅속에 파묻어버렸다. 장생고을에 세쌍둥이 자매가 포로로 잡혀왔는데 주란(珠蘭),주아(珠阿),주영(珠泳)이라는 여인이었다. 흑동이 처소로 불러 술을 권하며 묻기를 ‘아침에는 네발로 낮에는 두발로 저녁에는 세발로 걷는 생명을 아느냐 ?’ 하니 먼저 주란이 대답하기를 ‘아침에 네발로 기는 것은 아기요 성인은 두발로 걸어가니 역시 낮에 두발로 가는 이치며 노인은 지팡이를 짚어야 비로소 걸어갈수 있으니 결국 인간을 말함이 아니오이까 ?’ 하였다. 다음에 주아에게 묻기를 ‘두 종이에 참과 거짓이 쓰여있다. 어느것이 참이라 생각하느냐 ?’ 물으니 주아가 답하기를 ‘나으리께서 아무래도 사소한 꾀로 신첩을 속이시는 것 같습니다. 먼저 한 장의 종이를 폐기한뒤 나머지 한 장을 열어보십시오. 거기 참이 쓰여있으면 먼저 폐기한 것이 거짓일것이오 거짓이 쓰여있을 경우 먼저 폐기한 것이 참일것입니다’ 하였다. 다시 이번엔 주영에게 물컵위에 종이와 계란을 올려놓고 ‘계란에 손을 대지않고 물컵안에 넣어보라’ 하니 주영이 바로 종이를 빼버러 계란이 들어갔다. 흑동이 노하여 탈곡기를 가져오라 명한뒤 그 안에 3자매를 모두 처넣어 죽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너희들은 너무 많은 것을 아는 죄니라’ 하였다.
원국이 하루는 노탄을 불러 술을 권하며 묻기를 ‘그대는 평소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 하였더니 노탄은 ‘오직 이 한몸 주군에 대한 충성심으로만 가득할뿐이옵니다’ 하고 답했다. 다시 원국이 묻기를 ‘본래 그대가 나를 만나기전 10년동안 옛 선현의 글귀를 공부하며 참 주인을 기다려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 하니 노탄이 답하기를 ‘이제야 주공을 만나 옛 중원의 도리를 되살길길을 찾았으니 평생동안 주군을 모시며 왜적에게 빼앗긴 중원땅을 회복하고 공맹의 도리를 되살릴수만 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나이다’ 하여 원국이 껄껄 웃었다.
하루는 한 여인이 천동단의 본진을 찾아왔다. 이름은 소희(素熙)라 하고 성은 성가(成家)라 하였는데 병사들이 원국에게 데려와 연유를 물으니 ‘소녀는 오래전 노탄과 혼인을 하여 이후 아들넷을 낳았는데 이제 노탄이 집을 나가 지금껏 소식이 없어 천지사방으로 행방을 찾다가 이제야 노탄의 소식을 알고 찾아왔나이다. 부디 만나게 해주시옵소서’ 하였다. 원국이 놀라 말하기를 ‘내 지금껏 노탄이 혼사를 치루었거나 자손을 두었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는데 이 어찌된 일인가 ?’ 하고는 노탄을 불렀다. 노탄이 황망해하며 원국앞에 무릎꿇고 말하기를 ‘소신이 주공을 처음 만났을 때 일을 어찌 잊으셨습니까. 어려서 부모를 잃고 당숙에게 길러진뒤 오직 무진 강변에서 10년을 혼자 살며 서책을 읽으며 참주인이 오실날만을 기다렸는데 어찌 혼사며 자손이 있을수 있겠습니까. 통촉하소서’ 하였다. 원국이 진상은 밝혀야겠기에 소희를 노탄과 대면케 하였는데 노탄이 대노하여 바로 여인을 삼문(三門) 밖으로 끌어낸뒤 그 자리에서 단매에 때려잡았다. 그리고 ‘두번다시 나를 찾아오지말라’ 하며 시신을 10리밖에 내다버렸다. 이후 원국을 찾아가 ‘여우만도 못한 요사스러운 계집이 나타나 망령되고 허황된말로 저를 모해하며 주군의 심기를 어지럽혔나이다.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하였다. 원국이 노탄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믿으니 아무런 걱정말라’ 하였다.
한번은 또 한 여인이 찾아와 말하기를 ‘소녀의 성은 연씨(延氏)라 하옵고 이름은 미희(美姬)온데 일지기 노탄과 백년가약을 맺어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허나 이후로 노탄이 집을 나가 소식이 없으니 청컨대 만나게 해주소서’ 하고 연씨녀는 이전의 소희와는 달리 직접 아이들까지 데리고 왔는데 딸이 10세,7세였고 막내 아들은 다섯 살이었다. 원국이 다시 노탄을 불러 진상을 물으니 ‘일전에 한 망령된 계집이 주군을 찾아와 저와 주군사이를 이간하며 허황된말을 지껄였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또한 만약 제가 그 여인과 혼사를 치러 아들 넷을 낳은게 진실이라면 어찌 그 사이에 또다른 여인이 있어 자손을 셋이나 더 볼수 있겠나이까 ? 모든게 다 이치에 어긋나는일이며 소신이 주군과 함께 천지도리를 밝히고자 세상에 나오니 이와같이 저를 음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통촉하소서’ 하였다. 원국이 거듭 노탄의 손을 잡고는 ‘내가 그대를 믿으니 아무런 걱정말라’ 하였다. 이후 노탄이 연씨에게 적당한 금전을 쥐어주고 ‘두번다시 이곳에 찾아오지말라’하고 내쫏아버리니 연씨가 노하여 아이들과 함께 본진을 떠나면서 말하기를 ‘내 저 세상에서도 간악한 노탄과 그 무리가 멸망하는날을 보고 말리라’ 하였다.
얼마후 이번에는 한 노인이 원국을 찾아와 말하기를 ‘내 어릴 때 부모잃은 조카 하나를 거두어 키웠는데 이름이 노탄이라 하오. 지금 천동단에 가입하여 세상을 어지럽하고 악명을 천하에 떨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류하러 왔으니 부다 만나게 해주시오’ 하였다. 원국이 이번엔 진실인가 싶어 ‘그대가 원래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당숙에 의해 길러졌다 하지 않았는가 ?’ 물으니 노탄이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소신이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먼 친척에게 길러진 것은 사실이나 저를 길러준 숙부는 무자(巫者)에게 점을 쳐본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으며 이후엔 오직 저혼자 자급자족하며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서책을 읽으며 그렇게 십년을 살았을 따름입니다. 이미 죽고없는 숙부가 귀신,도깨비가 아닌 다음에 어찌 살아온단말입니까. 통촉하소서’ 하였다. 원국이 아직 반신반의하여 ‘일단 한번 만나보라’ 하였다. 노탄이 노인을 만나서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라. 내가 그대의 조카가 맞는가 ? 그대가 나를 키우고 거둔적이 있는가 ?’ 하니 노인이 기가막혀 말하기를 ‘네 어찌 망령되기가 이와같을수 있더냐 ? 어릴때부터 말썽을 부리더니 이제 급기야 사악한 도적의 무리에 들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피를 부르고 있구나. 더 이상 세상에 죄를짓지 말고 나와함께 떠나도록 하자’ 이와같이 말했다. 노탄이 노해서 그 자리에서 노인을 단매에 때려죽인뒤 다시 원국에게 엎으려 절하며 말했다. ‘소신은 오직 주군에 대한 충성심으로만 가득할뿐이며 주군과 함께 대업을 이루기전까진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을것입니다’ 하였다.
왕유(王維)가 하루는 포로로 잡힌 10세 미만의 어린아이 백여명을 끌고오게 했다. 그리고 한쪽에는 붉은 깃발을 꽂아놓고 한쪽에는 파란깃발을 꽂아놓은뒤 ‘밥을 먹고 자란 아이들은 빨간깃발 있는곳에, 죽을 먹으며 자란 아이들은 파란깃발이 있는곳에 서도록 하라’ 하였다. 아이들은 각자 자기가 나고자란 형편과 사실대로 밥을 먹은 아이들은 빨간깃발에 죽을 먹고자란 아이들은 파란깃발에 섰다. 보니까 빨간깃발에 선 아이들보다 파란깃발에 선 아이들이 더 많았다. 왕유가 먼저 빨간깃발에 있는 아이들을 죽이라 했다. 부장이 의아해서 물으니 ‘아직도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이들이 많은데 밥을 먹고 자랐다는 것은 먹고살만한 잘사는 집에서 살았다는 증거다. 잘사는 집 아이들은 죽여야한다’며 모두 남김없이 목베게 했다. 이후 파란깃발에 모인 아이들이 있는곳을 바라보며 ‘너희는 죽을 먹고 자랐으니 모두 죽어라 !!!’ 하여 수하들을 시켜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죽이게 했다.
한번은 또 포로로 잡힌 10세 미만의 아이들 백여명을 끌오고게한뒤 일일이 물었다. ‘너는 필부(匹夫)의 집 자손이냐 ? 아니면 장부(丈夫)의 집 자손이냐 ?’ 이와같이 물어서 ‘필부의 자손’이라고 한 아이들은 목을베어 죽였고 장부의 집 자손이라 답한 아이들은 팔과 다리를 베어 죽였다.
원국이 하루는 왕유에게 술을 권하며 묻기를 ‘그대에겐 지금 어떤 소망이 있는가 ?’ 하니 ‘한낱 저자를 떠도는 한량으로만 살다갈 처지였던 저를 형님꼐서 거둬주셔 참주인의 맛을 보게 해주었으니 이 이상 무슨 소망이 있으리이까 ? 죽는날까지 형님께 충성을 다하며 대업(大業)을 이루곘습니다’ 하니 원국이 만족해하며 껄껄 웃었다.
왕유는 늘상 길이 오자가 넘고 무게 10근이나 나가는 철퇴를 들고 다녔다. 한번은 이른아침에 원국,흑동과 함께 거리를 걸어가는데 한 집에서 화목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보아하니 40대 중년 부부가 아들 둘, 딸 하나 3남매와 함께 다섯식구가 화목하게 식사중이었다. 왕유가 곧 철퇴를 들고가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음식을 전부 뒷간에 버렸다. 수하들이 까닭을 물으니 ‘왜적들이 이 땅을 침탈해 옛적 중원의 도가 찾을길이 없이 비통하기 짝이 없는데 무지몽매한 백성이 철모르고 화목하게 웃는 것이 꼴보기싫어 그랬다.’ 하였다. 또 한번은 역시 집안에서 화목하게 웃는 소리가 들리기에 들어가서 보니 4자매를 키우는 집안에서 의좋은 딸 넷이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다시 철퇴를 들고 달려들어가 4자매를 모두 때려죽였다. 그리고는 ‘아들도 낳지 못하고 배덕(背德)한 딸 넷만 낳은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낄낄거리며 웃는가 ?’ 하고 비통하게 하늘을 우러르며 소리를 질렀다.
또 한번은 노탄과 함께 저자를 걸어가는데 어떤집이 보였다. 보아하니 한 노파가 간장과 된장을 담가 장독에 담고 있었는데 왕유가 다시 철퇴를 들고 달려가서는 장독을 모두 깨버리고 간장과 된장을 모두 짓밟은뒤 노인의 목을 베어 뒷간에 버렸다. 그리고는 ‘때가 어느땐데 한가하게 장을 담그고 있느냐 ?’ 하늘을 우러르며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또 한번은 저자를 걸어가는데 한 노부부가 집안에서 곡식과 야채따위를 말리고 있었다. 역시 철퇴를 들고 달려가서는 노부부를 때려죽인뒤 곡식과 야채를 전부 뒷간에 버렸다. 그리고는 ‘전란통에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일찍 죽는 청년이 천지사방에 널렸는데 노부부가 망령되이 오래살며 천수를 누리다니. 유유창천아 이리 불공정한 일이 어찌있단말이냐 ? 또다시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또 한번은 왕유가 저자를 걸어가는데 한 주막이 보였다. 20여명이 넘는 손님들이 저마다 술과 음식을 들며 그런대로 흐뭇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왕유가 철퇴를 들고 달려들어서는 술상과 밥상을 모두 엎어버리고 20여명의 손님들은 물론 주모내외까치 철퇴로 두들겨패고 목을 졸라 죽였다. 그리고는 ’이 전란중에 한가하게 술이나 처먹고 자빠지다니‘ 하고는 주막안에 있는 독안의 술을 수하들에게 모두 가져오게 하였는데 모두 열독이 넘었다. 수하들에게 명하에 술독 열병을 보두 가져가 그것을 한달동안 다 먹었다.
여리(呂梨)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저자에서 춤과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서 돈을 버는 그런 여인이었다. 나이 어느덧 스물둘이었는데 마침 연모하는 남자를 만나 혼사를 치를수 있게 되었다. 마을 주민들과 지인들의 축복속에 혼례를 치르는날이 되었는데 왕유가 또다시 말을 타고 철퇴를 휘두르며 달려와서는 먼저 신랑을 단매에 찢어죽인되 여리는 아랫도리를 불에달군 쇠몽둥이로 300대를 때려죽였다. 그리고 다시 비통하게 소리치기를 ’지금이 어느때인데 왜적에게 나라를 빼앗긴제 100년 세월이오 전쟁과 흉년으로 죽어가는이가 얼마인데 한낱 노래나 부르는 광녀(狂女)가 저혼자만 좋아서 혼사를 치른단말이냐. 유유창천아. 어찌 천지도리가 뒤집히기를 이와 같을수가 있으냐‘ 철퇴로 땅을치며 사흘밤 사흘낮을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원국이 하루는 왕유,흑동,노탄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루는 노탄이 말했다. ’주공(主公)께서 일찍이 천하에 뜻을 두시고 요서,진평땅을 떠나신지 여러해가 지나 어느덧 옛적 원가(袁家)의 땅 일곱성을 차지하고 어느덧 예주와,양주,명주를 경계로 대국(大國)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땅히 천하를 도모하여 옛 선현의 도리를 되살릴 기틀은 마련하였으나 아직 주공께서 후사가 없으시니 이제라도 마땅한 배필을 맞도록 하소서‘ 하였다. 허나 오히려 원국이 손을 내저으며 ’천하에 뜻을 둔자에게 여인은 오직 해가 될 뿐이니 더는 뜻이 없도다. 나는 오직 의(義)로써 맺은 두 의제와 내 팔과 다리와 같은 측근 노탄으로 족하도다‘ 하였다.
한번은 도당에 든 노인 하나가 원국을 찾아와 말하기를 ’노신이 본래 비천하여 배운 것은 없고, 일찍이 흉년에 아들 여덟을 잃은뒤 늘그막에 엊은 마음씨 고운 후처가 있어 나이 60에 딸을 보게 되었나이다. 이제 그 아이 어느덧 17세가 되어 마땅한 혼처 찾을길이 없어 이제 주공께 바쳐 대국의 후사를 잇기를 바라니 받아주소서‘ 하였다. 원국이 거듭 가당치않다 사양하다 노인이 다섯 번째 같은뜻을 청하니 마지못해 받는척했다. 다만 혼례의식을 별도로 청하지 않고 여인을 밤에 들이라하니 노인이 그와같이 하였다. 원국이 약을 먹여 여인과 노인을 모두 죽였다.
한번은 투항한 옛 관원(官員) 하나가 원국에게 기녀를 바쳤다. ’이전에 소인의 임지(任地)에 있던 기방의 여인으로 어느덧 나이들어 마땅히 갈곳이 없어 주공께 바치니 받아주소서‘ 하였다. 원국이 들게하니 사뭇 교태롭게 원국을 유혹하였다. 원국이 사뭇 흡족한 미소를 짓는 듯 하더나 손을 잡고는 ’함께 강변에 놀러가 뱃놀이를 하자꾸나‘ 하고는 인근의 작은 강에 배를 띄우더나 강 한가운데로 가서는 마침내 여인을 강물에 던져넣었다. 그리고는 ’나는 한낱 계집보다는 우리 천동단의 맹서와 의리가 더 중요하도다 !!!‘ 하늘을 두고 외치니 단원(團員)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한번은 점령지를 돌아보니 전란중에 부모를 잃은 나이어린 여인 셋이 한 집에서 울고 있었다. 원국이 의아하여 아이들의 처지를 물으니 셋이 함께 자매라 했고 첫째가 18세 둘쨰가 15세 막내는 13세였다. 원국이 세 처자를 자신의 침소에 들이라한뒤 모두 목을베어 죽인뒤 삼문밖에 걸어놓았다. 무릇 3형제가 여인을 대하는 태도가 이와 같았다.
원국이 식사때 육류는 들지 않고 오직 두부와 콩나물,시금치 혹은 냉이나 달래같은 나물류만 찾았다. 흑동이 하루는 의아하고 걱정되어 멀하기를 ’형님께서도 이제 대국의 주인이신데 식사가 오히려 여염의 농민만도 못하니 되려 아우가 민망하기 짝이 없소이다. 모쪼록 앞으로 육류도 드시고 술도 좀 드시구려‘ 하였다. 허나 원국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기를 ’나는 술과 고기를 즐겨하지 않으니 그것은 좋아하는 아우들과 노탄이 실컷 들도록 하라. 하고는 이후로도 식사는 쭉 콩나물과 시금치,두부로만 하였다. 원국이 또한 밥은 하얀 쌀밥만을 찾았는데 한번은 의원이 진맥을 해보고는 ‘너무 흰쌀밥만 드시는것도 몸에 좋지만은 않으니 가끔 보리나 콩을 섞어 드소서’ 하였다. 원국이 오히려 노하여 의원을 끌고나가 목베게 했다.
원국이 하루는 잠자리에서 꿈을 꾸었는데 뇌성벽력이 치고 소나기가 사납게 내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의아한 소리가 들리니 ‘너는 본래 천상에서 죄를 지어 추방당한 원혼은데, 인간계에서도 선행을 쎃거나 은덕을 베풀기는커녕 악행만을 일삼코 있구나. 네가 이리살면 나중에 나이들어 돈 한푼없이 의지할 것 없이 병들어 죽지도 않고 오래살다 비참하게 되리니 이후의 내생이 더 가련하게 되리라 !!!’ 하였다. 원국이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후 원국이 두려워서 잠자리 근처에 병사 십여인이 지키게 하여 잡인을 들지 못하게 하였다.
원국이 다시 꿈을 꾸었는데 대낮이건만 날이 흐리고 비가 올것같으면서도 오지 않았다. 다만 구름속에서 이상한 핏방울이 떨어지며 수많은 귀신 울음소리가 이상한 건물사이에서 들려오며 ‘너로인해 불쌍하게 죽은 원혼들이 천지사방에 있으니 너는 반드시 앙갚음을 받으리라’ 하였다. 원국이 놀라 깨보니 또 꿈이었는데 이후 두려워서 무인(巫人)과 도사(道士) 10여인을 불러 자신의 침소 인근에 매일밤 향불을 피워 기선케하여 잡귀를 들지 못하게 하였다. 원국이 두려워함이 점점 이와같이 되었다.
원국이 한번은 깊은 동굴속을 들어갔는데 이후 길을 헤매 나오지 못하였다. 원국이 또한 꿈인가 하며 길을 헤맸는데 좀처럼 깨어나지 않았다. 이때 밖에서 원국을 찾는 소리가 들리니 가까스로 가보니 왕유와 흑동이 보였다. 원국이 놀라서 ‘의제들이 어찌 이곳까지 왔는가 ?’ 하니 왕유와 흑동이 다가오진 않고 다만 밖에서 부르면서 ‘형님 어서 어둠속에서 나오시오 !!! 우리가 구해주겠소 !!!’ 하였다. 원국이 이후 ‘참으로 기이한 일을 겪었도다’ 하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천동단(天動團)의 세력이 갈수록 커져가고 그 잔학함과 횡포가 극심해지니 대책을 세우지 않을수 없었다. 천황이 다시 회의룰 소집하니 태정대산(太政大臣) 무관(務款)이 먼저 대책을 말하기를 ‘천동단의 일을 더는 두고볼수 없으나 그들의 세력이 간단치 아니하니 쉬이 도모할수 없습니다. 마땅히 계책을 쓰소서’ 하였다. 천황이 ‘어떠한 좋은 대책이 있는가 ?’ 물으니 천룡장군(天龍將軍) 지봉(志奉)의 휘하에 용섭(用涉)이란 책략가가 있는데 예부터 많은 병서와 전략을 익혀 99가지 계책이 있다고 합니다. 마땅히 그를 등용하여 쓰소서‘ 하였다. 천황이 우선 용섭을 들게하니 그가 말하기를 ’천동단이 흉포하긴 하나 그들의 곁에 노탄이란 책사가 있어 간교한 계책을 내놓기도 한다고 하니 쉽게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마땅히 그들 세력을 이간시킨뒤 하나하나 떨어뜨려 섬멸해야할것입니다‘ 하였다. 급한대로 용섭을 ’제일권관(第一權官)‘의 벼슬을 내리고 천룡장군 지봉과 지룡장군(地龍將軍) 의두(意杜)에게 1만의 군사를 주어 천동단과 대치하게 하였다.
먼저 용섭이 간자를 보내 적의 허실(虛失)을 살핀뒤 말했다. ’마땅히 우두머리들을 하나하나 고꾸라뜨린뒤 섬멸해야 할것입니다. 천동단이 본래 대개는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모인이들이 다수이니 우두머리 몇만 제거하면 오합지졸들은 투항할것입니다‘ 하였다. 먼저 흑동의 포악함을 파악하여 흑동에게 어린 자녀들을 잃은 여인 6명을 찾아 불렀다. 나이는 모두 35세에서 45세였는데 용섭이 계책을 주어 ’너희가 직접 흑동의 처소를 찾아가 침소에 들어 해치우라‘ 하였다. 이후 흑동의 수하중 학대를 당한이들에게 술과 뇌물을 주어 쉬게하고 그들이 길을 열여준대로 여섯 여인이 흑동의 침소에 들어ᄀᆞᆻ다. 이때 흑동은 술에취해 자고있었는데 여섯 여인들이 흑동을 보자마자 바로 눈에 핏발이 서며 흑동을 살해하였다. 흑동은 죽어가면서 ’이제야 참 인간사로 돌아가는도다 !!!‘ 라고 소리쳤다.
왕유는 술을 좋아하니 독을 타기로 했다. 역시 왕유에게 핍박을 받은 백성중 모원(毛原)과 조참(趙慘)을 불러 계책을 주고 왕유의 처소에 침입하게 했다. 이들은 몇몇의 무리와 함께 ’천동단에 투항하기 위해 새로 들어온 이들‘이라 속이고 ’대장군께 인사드리고 싶다‘ 하여 왕유를 소개받게 했다. 왕유가 술을 주며 이들의 투항을 축하해주려 했는데 이때 왕유의 술잔에 독을 타니 왕유가 비로소 고통스럽게 괴로워하며 목과 가슴을 쥐어짜다 쓰러져갔다. 모원과 조참이 왕유의 목을 베고는 ’드디어 네손에 죽어간 내 일족의 원한을 갚게되었다‘ 기뻐하였다.
노탄은 본래부터 점과 무속을 좋아하여 거짓 무인(巫人)을 하나 만들어 노탄을 만나게 했다. 이때 노탄은 전에없는 두통을 앓고 꿈자리가 사나와 새로운 무당을 찾아 점을 치기 원했다. 무인이 스스로 ’원백산(原百山)에서 300년을 수도한 도인‘이라 신분을 속여 노탄에게 나아간뒤 ’마땅히 자작나무와 잡풀을 섞어만든 향불을 피워 매일밤 기선을 한뒤 침수에 두소서. 향내가 풍기면 귀신이 방에 들지 못하니 절대 문을 열지 마소서‘ 하였다. 이후 독이있는 향불을 피워 연기를 자욱하게 하니 노탄이 점점 숨을 쉴 수 없어 괴로워하다 급기야 죽어갔다.
흑동,왕유,노탄이 연달아 쓰러지니 대세가 기울었음을 안 천동단의 수하들은 대다수 달아나거나 투항하였다. 이에 원국이 천운이 다했음을 알고는 비통하게 하늘을 우러르며 소리쳤다. ’애석하도다. 왜적 오랑캐에 짓밟힌 중원을 회복하여 마땅히 옛적 한나라의 태평성대를 회복시키려 하였건만 하늘은 어찌하여 진국(陳國)의 도리와 노국(盧國)의 길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 탄식하였다. 천룡장군 지봉과 지룡장군 의두가 마침내 일만대군을 이끌고 본진을 급습하니, 원국은 병사들에 둘러싸여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채 비통하게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이로서 천동단이 차지한 옛적 원가(袁家)의 땅은 모두 태을국(太乙國)에 투항하였으며 요서,진평땅은 스스로 나라이름을 서백국(徐伯國)이라 지어 독립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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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者後記 : 빙장어른댁 낡은방에서 발견된 고서(古書)의 내용은 대략 여기까지로 끝나 있었다
막상 번역작업에 들어갔던 우리는 솔직히 당혹스러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일단 책
의 내용이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물론 주변국가들의 내력과도 전혀 맞지가 않아
도무지 언제적 이야기를 담은것인지 고찰(考察)하기가 쉽지 않았고, 게다가 중반
이후의 내용에는 등장인물(?)들의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패륜행각들이 계속 수
록되어있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번역작업을 마친 우리들은 진지하게 이 고서 내용의 진상에 대해 논의해보았다.
먼저 유교수가 견해를 밝혔는데 ’역사가 본래 승자의 기록임을 유념할필요가 있다.
혹 때로는 승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워진 역시속 숨은 진실이나 진상이 수백,수천
년이 지난뒤 어떤 유물의 발견이나 필사된 고서의 발견으로 극적으로 발굴되기도
한다‘면서 그 점을 중점적으로 파헤쳐보기로 하자고 했고, 반면 종교수는 ’실제 역
사라 보긴 어렵고 아마 빙장께서 예전부터 떠도는 전설이나 민화,기담같은것에 적
당히 사견(私見)을 덧붙여 이런 기록을 남기신득하다‘고 추론했다. 한편 정교수는
’그냥 빙장께서 분위기만 옛날 역사 비슷하게 쓰신 소설같다‘고 잘라말했다. 하지
만 안해로부터 들은 생전 빙장어른의 모습은 소설은커녕 평상시 그런류의 잡문(雜
文)같은 것을 쓰시는분이 아니셨다’고 했고 손윗처남이나 처숙(妻叔)들의 증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빙장어른의 생전 성품에 비추어보아도 일부러 이런 패륜
행각이나 기행을 필사(筆寫)로든 창작으로든 남기실분이 결코 아니다.
동료들과 여러차례 격론을 벌여보았으나 결국 각자의 생각과 주장만을 드높일뿐
진상에는 결국 한발자욱도 가까이 가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미 빙장께서 고인이 되
신바 고서의 필사경위등은 아예 확인해볼 방법조차 없다. 여러 가지로 아쉬움과 안
타까움에 다만 그 내용을 그대로 세상에 공개하는것일뿐이며 접하신 제위(諸位) 여
러분의 판단에 맡길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