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만큼 '장비'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게 없다.
와인의 고수뿐 아니라 초보자도 일단 와인을 마시기 시작하면 근사한 와인 잔에 눈이 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와인 잔 모양이 다양한 것은 디자인 때문만은 아니다. 잔에는 와인 못지않게 깊은 역사와 과학이 담겨 있다.
먼저 잔의 길이는 와인이 혀에 닿는 위치를 결정한다.
샴페인 잔 처럼 긴 잔으로 마실 때는 고개를 젖혀야 하므로 혀 안쪽으로 와인이 떨어진다. 혀 안쪽에는 신맛과 쓴맛을 느끼는 신경이 많이 분포돼 있다. 따라서 신맛과 드라이한 맛을 강조하는 샴페인이 제격.
반면 작은 잔으로 마실 때는 와인이 혀끝에 먼저 닿는다. 혀끝에는 단맛을 감지하는 신경이 많다. 따라서 디저트 와인을 마실 때는 작은 잔이 좋다.
레드 와인은 품종에 따라 잔 모양이 다르다.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주요 품종인 카베르네 소비뇽은 묵직한 향과 함께 입안을 조여 주는 타닌이 많다. 그래서 일반적인 와인 잔이 좋다. 공기와 접촉 면이 넓어 산화가 빨리 이뤄지지 때문에 타닌이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재배되는 피노 누아르는 섬세한 포도 품종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는 향이 매혹적이다. 그래서 피노 누아르 와인은 향을 모아주는 둥근 스타일의 잔이 제격이다.
화이트 와인을 마실 때에는 볼이 좁고 용량이 적은 잔을 사용하는게 적당하다. 좁은 볼은 공기와 접촉 면을 줄여 화이트 와인의 산도를 유지해 준다. 적은 용량으로 온도를 낮게 유지할 수 있어 상큼함도 오래 즐길 수 있다.
얇고 가벼울수록 명품
와인의 향을 잘 모아주는 튤립 형이 좋다. 물론 튤립 형태의 와인 잔도 2000원짜리 플라스틱 잔부터 10만 원대의 크리스탈까지 다양하다. 이 중에서 좋은 잔을 고르는 요령은 다음과 같다.
좋은 잔은 입을 대는 가장자리(rim)가 상당히 얇다. 림이 얇으면 얇을수록 입술을 댈 때 느낌이 부드럽다. 세계적 와인 글라스 회사인 리델(Riedel)의 막시밀리안 리델(Maximilian RIEDEL - RIEDEL의 11대 사장)은 지난해 한국을 찾아 "입술은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상한 물질이 접촉될 경우 머릿속에서 그 느낌이 가장 먼저 각인돼 그 안에 담긴 맛을 느끼지 힘들다"며 "와인 잔의 림은 키스하는 것처럼 잔의 첫인상을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무게는 가벼운 것이 좋다. 와인 향을 느끼기 위해 잔을 돌릴 때 무게감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인을 따를 때는 잔의 3분의 1만큼 따라주는 것이 예의다.
좋은 와인 잔일수록 투명도도 높다. 와인의 향만큼이나 와인의 색깔과 투명도도 중요한 요소다.
디자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와인 잔은 남다른 S라인으로 종종 여배우와 비교될 때가 많다. 전 세계에 출시된 와인 잔 중 가장 볼이 넓은 리델의 소믈리에 잔은 '와인 업계의 마릴린 먼로'로 통한다. (제일 윗 사진 참조 - RIEDEL의 소믈리에 세트)
날씬한 라인을 자랑하는 독일산 쇼트즈위젤은 오드리 헵번을 본뜬 '오드리'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잔은 '셰프 앤 소믈리에 Chef & Sommelier'라는 잔이다. 각진 스타일에 '콱스 kwark'라는 신소재를 사용해 잘 깨지지 않는 것이 강점이다. 독일 명품 슈프켈라우 역시 디자인과 내구성으로 인기가 높다.
어때? 와인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복잡해 지지?
아무잔이면 어때...그래도, 맥주잔이나 종이컵에 따라 마시진 말자구!
RIEDEL - 와인 잔의 교과서
세계적인 와인글라스 제조업체인 리델은 1756년 창업이래 250년간 10대째 내려오면서 와인글라스만을 만들어왔다. 오스트리아의 시골마을 쿠프슈타인에 공장이 있고 직원은 약300명에 불과하지만 전세계 60여개국에 와인글라스를 수출하고 있다. 매출은 7000만 달러 이상.
리델의 성공비결은 피노 누아르나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리슬링 등 전세계의 모든 와인에 맞는 개별적인 와인잔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각 와인의 색과 향과 맛을 살려 와인 고유의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했다.
뉴욕 모던아트 박물관의 영구 전시품이기도 한 리델의 와인잔은 과거 김대중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평양만찬장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체코의 보헤미아에서 시작된 리델기업은 2차대전과 체코의 공산화 등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와인글라스라는 일관된 제품으로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유리잔은 과감히 깨뜨리는 자존심, 외상으로 물건을 주지 않는 거래방식 등이 오늘의 리델을 있게 했다.
꿈을 위해 끊이없이 준비하는 기업...RIEDEL이 남기는 한 마디로 마무리 해보자.
‘성공했다고 쉬는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다.’ - by George RIEDEL : RIEDEL의 10대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