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 가을호 반경환 {사상의 꽃들} 에서
생의 한가운데
천 양 희
바람속의 영혼처럼
눈이 날린다
홀로 걷다 돌아보니
나홀로 청년들이 실업에 울고 있다
한결같은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잠을 청한다 청해도 잠은 안 오고
짙어진 나뭇잎 속에
아슬하게 줄을 치는
거미를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저 줄에도
한생이 걸려 있구나
나도 그것으로 한 생을 견뎠다
가진 것에 만족하면
행복하다는 말을 믿으면서
행복을 돌돌 말아
너에게 던져줄게
깨어진 뒤에야 완성되는 것
그 거룩을
한 줄로 써서 보내줄게
생의 한가운데는
움푹 패였다는 사실을
사실 그대로
오늘도
어느 곳에선가
뜬구름 잡는 일이 일어나고
다리에 쥐가 난 사람들이 걸어가고
어느날
기러기가 V자를 그리며
낮달을 뚫고 날아간다
그래도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
바람속에 얼굴을 묻고
생의 한가운데를 생각한다
아무튼
성자聖者는
시계를 가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실업은 컴퓨터 실업이고, 컴퓨터 실업은 ‘고용 없는 성장’을 외친부자들의 끊임없는 탐욕과 간계의 산물이다. 부자들이 모든 자원과 일자리를 다 움켜쥐고 있고, 그 자원과일자리의 분배는 상류사회의 금수저들에게만 돌아갈 뿐, 소위 흙수저출신의 사회적 천민들에게는 사하라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힘들게 되어 있다.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은자본주의 사회의 좌우의 양 날개이고, 최하천민인 흙수저들에게는 금융업과 부동산업, 생명공학과전자산업 분야 등의 최고급의 일자리는커녕, ‘육체노동의 행복’조차도 악마가 만든 컴퓨터에게 다 빼앗기고 만다. 산업현장마다의전산화는 인간 대신 기계가 일을 하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어렵고 힘든 육체노동조차도 마음놓고 할 수가 없게 된다. 가난한 자의 탐욕은 기껏해야 먹고 사는 것에그치지만, 부자들의 탐욕은 지구촌이 소멸할 때까지 끝이 없다. 가난한 자들의 기대수명은 6-70세에 지나지 않지만, 부자들의 기대수명은500세, 즉, 자연의 법칙을 부자들의 법칙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은 본래 쇠사슬이 아닌 밥줄(탯줄)에 묶여 태어났고, 자유는다만 자본가들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밥줄은 의식주와 생존의 일터와 연결되어 있고, 이 밥줄의여유가 없으면 그는 마치 강제수용소의 노예처럼 쇠사슬을 끌고 다니게 된다. “바람속의 영혼처럼/ 눈이 날”리고, “홀로 걷다 돌아보니/ 나홀로 청년들이 실업에 울고있다”라는 시구가 그것이고, 따라서 밥줄은 더욱더 그를 옭아매 꼼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밥줄이 여유가 있고, 이 밥줄을나누어 줄 수 있을 때 그는 최상위 포식자가 되어 행복을 향유할 수가 있지만, 밥줄을 쇠사슬처럼 차고 있을 때 그는 상명하복의 질서 속에서 최저생활을 하다가 굶어죽게 된다. 대저택과 고급사치품과 여가선용은 부자들의 행복이 되고, 가난과 질병과 어렵고 힘든 육체노동은 최하천민들의 불행이된다.
천양희 시인의 「생의 한가운데」는‘밥줄-거미줄’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대자대비한 ‘성자의철학’으로 이 세상의 어렵고 힘든 모든 청년들을 어루만져주고 있는 시라고 할수가 있다. “짙어진 나뭇잎 속에/ 아슬하게 줄을 치는/ 거미를 바라보다 중얼거린다// 저 줄에도/ 한 생이 걸려 있구나.” 그렇다. 밥줄은 거미줄이 되고, 거미줄은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올가미가 된다. 자유시장경제체제는 무한경쟁의 체제이고, 무한경쟁의 체제는 약육강식의 체제이다. 부와 빈곤의 양극 체제 속에 내몰리게 되면 소수의 1%, 또는 소수의 10%가 모든 부를 독식하게 되고, 대부분의 사회적 천민들의 밥줄은 그의 생명선을끊는 절명의 밥줄이 된다.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문화 이전의 야만의 시대나 문화 이후의 풍부한 사회나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부와 빈곤을 둘러싼 약육강식의 법칙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밥줄, 혹은 거미줄에 매달려, 자유와 평등과 사랑을 믿어 의심하지 않으며, “행복을 돌돌 말아”도 보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희망은 절망이 되고, 성실은 맹목이 된다. 믿음은 광기가 되고, 사랑은 증오가 된다. 날이면 날마다 “기러기가 V자를 그리며/ 낮달을 뚫고 날아”가지만, 오직 “뜬구름 잡는 일이 일어나고/ 다리에쥐가 난 사람들이걸어”가게 된다. 희망도 없고 성실도 필요 없다. 믿음도 소용이 없고 사랑도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러나, “그래도/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라는 희망과 믿음 하나로 천양희 시인은 “행복을 돌돌 말아” 이 세상의 모든 청년들에게 다 나누어 준다.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도 없고, 오직 가진 것이라고는 몇 권의 시집과‘시인이라는 이름’의 재산밖에 없는 원로 시인―천양희 시인의 대자대비한 ‘성자의 시선’이 더욱더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을 가르쳐 준다.
바람 속에 얼굴을 묻고 생의 한가운데를성찰하면서 “행복을 돌돌 말아” 선사해주는 이 크나큰 선물은 이 세상의 그 어느 선물보다도 더욱더 고귀하고 소중하다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튼/ 성자聖者는/ 시계를 가지지 않는다.”
인간은 유한하지만, 성자의 시계는 영원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컴퓨터가 전지전능한 신이 되었고, 우리 인간들은 컴퓨터를 무조건 찬양하고 신봉하는 광신도가 되었다. 인간은 하나의 금융상품이나 자동차의 부품처럼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작동하게되었고, 그 어느 누구의 말도, 그 어느 누구의 노래도 믿지 못하는 유령인간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컴퓨터의 시대에는 인간은 없고, 컴퓨터가조종하는 유령인간만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