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쯤 전의 모임에서 친구 김태성 박사를 만났는데 그가 번역한 탕누어(唐諾)의 책을 받았다.
<한자의 탄생>(김영사)이 그것.
번역 대본은 <文字的故事>(聯合文學, 2001)인 모양인데
검색을 해보니, 신판이 2010년에 나와 있다.
참으로, 김 박사 대단하다.
이제까지 번역한 책이 100권이 넘는다고 얘길 들었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어쩌라구...쩝
문화평론가 탕누어의 본명은 셰차이쥔(謝材俊)이고
소설가 朱天心의 남편이다.
(근데, '唐諾'이란 필명은 무슨 뜻일까?
구글 번역기를 돌리면 "Donald"라고 나온다...???)
번역본 앞날개에는 1956년생으로 되어 있지만
대만 위키에는 1958년생으로 되어 있다.
뭔가 착오가 있는 듯하다.
탕누어는 매우 박학다식하다.
이 책에는 레비 트스로스, 벤야민, 맑스, 朱天文 등이 거론된다.
이 책에 드러난 그의 지적 편력은 한마디로 "동서고금 & 종횡무진"인데
다소간에 현란하다고 여겨질 정도다.
좋게 말하면, 동업자로서 상당한 질투심이 생길 정도고
굳이 헐뜯자면, 약간 달달하고 얄팍하다.
어느 책이든 읽다가 보면
독자로서 전혀 모르고 있던 얘기에 귀가 솔깃하기 마련인데
나로서는, 탕누어가 몇 번 되풀이한,
탕누어의 딸 얘기와 허진웅(許進雄)의 <중국고대사회(中國古代社會: 文字與人類學的透視)>에 끌렸다.
(그런데 왜 許進雄은 한국식 독음으로 읽게 된 걸까?)
딸 얘기에서 내가 확인한 것 중의 하나는
(탕누어는 딸과 자주 일본에 갔던 모양이다)
대만 사회가 우리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대만 쪽이 훨씬 더 일본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개방적이라는 점이다.
아마 이것은 중국 대륙과 대만의 역사적-정치적-심리적 상호 관계 때문일 것이다.
중국 대륙은 대만에 비해 엄청나게 크지만 북한은 남한에 비해 다소 작다.
바로 이런 점이 일본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결정하게 된 근본 요인일 것이다.
찾아보니 허진웅의 책은 이미 번역되어 있다.
<중국고대사회>가 지식산업사(1997)와 동문선(2003)에 의해 나와 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중국고대사회>을 빌려 훑어보았는데 여러 모로 좋은 책이다.
다만 문제는 갑골문 문자에 대한 서로 다른 考釋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갑골문 문자의 考釋에서 평소 내가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는
일본의 한자 문자학 전문가인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가 갑골문의 文자와 口자에 대해 내린 해석이
중국 쪽 전문가들에 의해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라는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해결되지 못했다.
시라카와 시즈카의 주장에 의하면
갑골문의 文자는 고대 중국인이 가슴에 새긴 문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고
口자는 祝文을 넣은 그릇을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인텔리로서 역사적, 사회적 책임 문제만 없다면
(후자는 상당히 낡은 관념이지만 나로서는 이 관념에서 해방되기가 넘 힘들다)
갑골문 공부하는 것도 꽤 매력적인 일이다.
아무튼 초중고 학생들에게 최소한 한자 1000자 정도를 꼭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1000자를 쓰고 읽을 줄 모르면 졸업장을 주지 말아야 한다.
12년 동안 1000자 정도 익히는 것은 큰 부담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람시는 보통교육에 관해 언급하면서
과거의 라틴어 교육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는 라틴어 공부에서 'mechanical repetition'과 'mechanical coercion'의 불가피함을 인정했고
(Hoare & Smith. eds. & trans.[1971],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p.37)
또 더 나아가서 그 인문학적 효용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틴어 공부는 아동들이 추상으로부터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생활로 재돌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은 채 추론하고, 추상적이고 체계적으로 사고하며, 낱낱의 사실이나 자료 속에서 일반적이고 특수한 것을 발견하고, 개념을 특수한 사례와 구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있어 왔다."
(p.38)
나는 한자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한자 교육을 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것.
1000자를 가르치려면,
1. 우선 1000자를 확정해야 하고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면, 중국어 & 일본어 교육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2. 바로 그 1000자에 관한 한
기본적으로 갑골문에 대한 기존의 여러 考釋의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그리고 동시에 소전 이후의 隸變 등에 관한 연구 성과들이 체계적으로 & 비판적으로 정리되어서
선생이나 학부형 그리고 학생들이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DB로 존재해야 한다.
나는 한자/한문 선생들이나 중국어문 및 중국학 연구자들이 이런 것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앎이나 의지 없이
문자로서의 한자에 대해 지껄이는 많은 헛소리가 지겹다.
문제는, <설문해자>도 제대로 훑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뿐더러
갑골문 문자에 대한 여러 考釋을 제대로 접해 보지 못한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아래 삽입한 이미지는 沈建华,曹锦炎 编著, <新编甲骨文字形总表>(2001)의 50-52쪽에서.
口의 부수에 속하는 갑골문 문자들이다.
(위 책은 부수자의 개수가 152다)
첫댓글 암튼 갑골문 넘 귀엽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