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1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5. 성경대로 엿새 창조를 믿습니다 》
창 2:1~3
〈 전능의 개념 설명하기 대회 〉
“하나님의 ‘전능’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람에게 상금 일백억 원을 줍니다!”
만약 이런 대회가 있다면, 거기에 출전하여 당신은 전지전능을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오래전부터 했습니다.
전지전능 설명대회가 있다면 저는 출전을 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심으로써, 딱 한 시간 전에 현재의 세상 모습으로 창조할 수 있습니다.
지금 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 한 시간 전에 창조되었습니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운전자를 비롯한 일가족, 한 시간 전에 창조되었습니다.
나와 아내, 손주들까지, 한 시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나의 기억에는, 두 시간 전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전주로 오는 중입니다.
한 시간 전에는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무도 모릅니다.
창조 이전에는 휴게소도, 고속도로도 없었고, 흐르는 시간도 없었고, 공간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생긴 것은 딱 한 시간 전부터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시간 이전보다 훨씬 오래 된 경험과 추억이 있습니다.
자녀를 낳아 길렀고, 그 이전에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원가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이 전능하심으로 그 기억까지 입력하여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닷새 동안 만드시고, 엿샛날 아담 하와를 창조했습니다.
아담 하와는 이미 나이가 서른 살입니다. 그날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아담 하와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기에 미흡함이 전혀 없는 완전한 성인이었습니다.
그날 창조되어 그날 결혼했으나, 인품은 물론 성적으로도 완벽한 부부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은 이렇게 “순간 창조”가 가능합니다.
순식간에 지금 우리가 사는 우주, 지구, 사람들, 우리 가족, 나를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수십억 광년 거리에 별과 은하를 동시에 만들어 관측할 수 있도록 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면, 대상을 차지하지 않을까요?
☞ 대회에 참가하신 여러분들은 차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제가 대상을 받을거니까요! ☻
〈 창조의 아이러니 〉
우리가 ‘전능의 개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을 ‘생각하는 피조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작품 중에 ‘생각하는 피조물’은 사람이 유일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제멋대로 생각하지 않고, 합리적으로 하도록 하셨습니다.
사람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심으로써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일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전능하심으로써 태초에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를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 인간은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이말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원인 없는 결과”입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는 비합리적입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로 지음받은 인간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전능의 개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설교하면서 이 마이크를 사용합니다.
“마이크는 어떻게 제작이 되었을까요?”라고 물으면, 누구나 합리적으로 생각을 시작합니다.
이 마이크는 ‘무에서 유’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미 있는 재료들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합리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비합리적인 방식 즉, ‘무에서 유’로 우주를 창조하면서,
인간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창조의 아이러니’입니다. ‘창조의 아이러니’를 염두에 두시기바랍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 하나님은 시작을 하고자 하셨습니다.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없는데,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지으십니다.
시간이 흐르게 하시고, 공간도 펼쳐지게 하시고, 물질도 맏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시작하셨습니다.
‘창조의 아이러니’ ‘비합리적인 무에서 유의 방식’은 세상을 시작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사람이 ‘전능’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항 속의 물고기가 어항 밖을 이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가 어찌 감히 어항 밖을 이해하겠습니까?
사람은 그러나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이 자라면, 어항 밖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사람이 하나님의 전능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 아니고는, 사람은 전지전능의 뜻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녀는 없습니다 〉
“임금의 자리는 본디 욕을 먹는 자리다.”
“백성이 어찌 임금의 마음을 헤아리겠느냐, 임금이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야지!”
어떤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부모도 그렇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주십니다!”
세상의 임금, 부모, 그리고 하나님!
백성의 마음, 자식의 마음, 피조물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면서 사람이 자기를 이해하지 못할 줄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임금, 부모를 있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입장을 ‘유비’로 두셨습니다.
백성이 심정을 몰라주는 세상의 임금,
자식이 심정을 몰라주는 세상의 부모를 보면서,
우리는 피조물이 몰라주는 창조주 하나님, 그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 백성은 임금을 따르고 섬겨야 합니다.
☞ 자식은 부모를 따르고 섬겨야 합니다.
☞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해야 합니다.
창 2:1~2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2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은 엿새동안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순간 창조’도 하실 수 있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뜻을 우리가 묵상해봅니다.
전능하심으로 1시간 전, 아니 1초 전에 지금의 우주의 모습을 지으실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그러나 엿새 창조 후 일곱째 날 안식하셨습니다. 그 뜻을 헤아려봅니다!
〈 엿새 창조의 뜻 〉
하나님이 엿새간 창조하신 섭리와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은 세 가지를 드러내십니다.
첫째, 창조의 목적을 드러냅니다.
둘째, 순서와 질서를 드러냅니다.
셋째, 일과 안식을 드러냅니다.
첫째, 창조의 목적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순간 창조로서 이 세상이 그저 팽팽 돌아가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데에는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과정에서 이 목적을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엿샛날 창조한 “사람을 파트너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사랑의 파트너로 창조하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품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사람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존재’라야 사랑도 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 중 유일하게 사람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선택권입니다.
사람을 제외한 모든 피조물은 선택권이 없습니다.
본능과 유전자에 따라 발아하고 자라서 열매를 맺고 씨앗으로 번식합니다.
사람은 순간순간 선택하는 권한을 누리는 유일한 피조물입니다.
사람을 창조의 끝날인 엿샛날 창조하신 것은, 사람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너를 위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한 후에 너를 창조했다. 나와 사랑하겠느냐?”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질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닷새간 준비하시고 화룡점정으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엿새 창조를 믿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둘째, 순서와 질서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순간에 창조를 안 하시고, 엿새간의 일정으로 창조하신 뜻, 둘째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순서와 질서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에는 순서가 있고, 그 속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첫째날 창조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천지는 하늘과 땅입니다. 영어로 “the heavens and the earth”입니다.
천지는 넓게는 우주만물, 삼라만상을 포함하는 관용구로 해석이 됩니다.
그러나 좁게 해석하면 단순히 ‘하늘’ 그리고 ‘땅’입니다.
첫째날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창 1:2에 나오는 아홉 개의 명사에 해당하는 사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1) 땅, 2) 혼돈, 3) 공허, 4) 흑암, 5) 깊음, 6) 위, 7) 하나님, 8) 영, 9) 수면, 10) 운행.
이 중에서 땅의 창조는 창 1:1에서 선포되었고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그러니, 나머지 여덟 가지 사물, 이는 모두 첫째 날 창조했습니다.
그리고 창 1:3에서 선포되는 빛을 창조했습니다.
이어서 둘째 날로부터 다섯째 날까지 창조가 진행되고,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십니다.
창조의 순서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준비하심”입니다.
“사랑의 파트너 사람”을 창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준비하심”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창조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습니다.
“순서와 질서로서 준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할렐루야~
셋째, 일과 안식을 드러냅니다.
엿새 창조를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순간 창조를 하셨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을 모를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를 우리에게 “일하심”으로 보여주십니다.
사람이 장차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하라”(살후 3:10)
전능자 하나님께서 말씀 한 마디로 순간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엿새 동안으로 나누어 창조하신 섭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드러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레 11:45, 벧전 1:16)
“내가 일하니 너희도 일하라!”(살후 3:10) 맥락을 같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습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에 일하시다가 굳이 쉬어야 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우리에게 안식을 가르치십니다.
(3절)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내가 일하니 너희도 일하라!”
“내가 안식하니 너희도 안식하라!”
〈 맺음 〉
지금 우리가 사는 우주, 삼라만상,
하나님은 순간에 창조하실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성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순간창조를 하지 않으시고 엿새동안 나누어서 창조하셨습니다.
첫째, 창조의 목적을 계시합니다.
둘째, 순서와 질서를 계시합니다.
셋째, 일과 안식을 계시합니다.
① 우리도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② 순서와 질서로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③ 땀 흘려 일하고 거룩하게 안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엿새창조를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엿새창조를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