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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증거 하지말라
20: 15-17
15.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찌니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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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생물이 있지만 말과 글을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직 사람만 당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혼자 계신 분이 아니라 성부, 성자, 성령 삼위가 언제나 함께 계시는 분이시고, 무엇을 하든지 삼위일체가 대화하며 말씀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사람에게도 당신의 특징인 대화하고 협력하며 사랑하는 도구인 언어를 주셨고, 그래서 사람도 서로 대화하며 사랑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만 주신 이 고귀한 언어는 소중하게 간직하고 진실하게 사용해야만 유익한 것인데, 만약에 진실하지 않고 거짓되게 사용할 경우에는 재앙이 되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말은 소리가 아니라 인격이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한 말을 하면 악한 일이 일어나고 선한 말을 하면 선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귀중한 언어를 맨 처음에 거짓되게 사용하는 이는 사단입니다. 사람이 언어를 거짓되게 사용하는 순간, 사단의 하수인으로 이용되어 그 사람도 망하는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에서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존재는 마귀와 사람 밖에 없습니다. 짐승은 죽은 체 할 줄은 알아도 사람처럼 말로 상대를 속일 줄은 모릅니다. 짐승들이 거짓말을 못하는 이유는 지능이 거짓말을 할 정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잘하는 이유는
첫째가 지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지능이 나쁜 사람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잘하는
둘째 이유는, 남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상대가 마음속에 흉계를 품고 있어도 그 속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가 속아 넘어 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쉽게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사람이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면 노력을 하지 않고도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도 많이 한 것처럼 인정을 받고 싶으니까 커닝을 하고, 자격도 없는 후보가 당선되고 싶으니까 거짓 공약을 남발하는 것입니다.
넷째 이유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속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마음을 다 읽으시는데, 그걸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줄을 몰라서 겁 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이유는, 우리의 양심이 얼마나 보배로운 것인지를 몰라서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자기 양심을 더럽히는 것인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양심은 세상에 어떤 보배와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백만원짜리 스카프에 코를 푸는 사람은 없는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양심을 시시한 거짓말을 위해 만신창이를 만들고도 고귀한 양심을 망가뜨린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능인 고귀한 언어를 하나님께 받아서 가졌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놀랍고 고맙고 복된 일인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언어는 때로 마음을 즐겁게 하는데 사용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한없이 존경스럽습니다.” “당신은 타고난 미인이요” “당신은 무죄요” “당신은 아무 병이 없고 건강합니다.” 이런 말들은 사람을 하늘에 붕 뜨게 만듭니다. 반면에 언어는 때로 사람의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안됐습니다만 당신의 병은 암입니다.” “당신의 모친이 사망했소.” “당신의 남편이 차사고로 지금 병원으로 실려 갔소.” 이런 말 한마디는 사람의 심장을 순간적으로 멈추게 만듭니다.
위대한 언어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게 사용하는 경우는 “예수님이 당신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 예수를 당신의 구주로 믿으시오. 그러면 당신과 가정이 구원 받습니다.”라고 전도하는 것이고, 언어를 가장 나쁘게 사용하는 경우는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 자체이시고 진리의 근원이십니다. 요 14:6에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라”고 하셨고, 계시록에서는 “아멘이시오 참된 증인이시오 창조의 근본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진리와 진실은 교회와 사회와 가정의 기초가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사역의 수단이지만, 거짓은 그 기초를 허물고 파괴하는 대적 마귀의 사역수단입니다.(요8:44)
그런데 사람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보통으로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 전에 사용하는 말은 대부분이 거짓말이라고 보아도 과한 말이 아닙니다. 꼭 남을 해치려고 하는 계획된 거짓말이 아니지만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체질이 거짓말 하는 체질이 되어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를 과장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남이 한 일을 마치 자기가 한 일처럼 꾸며서 말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남녀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누가 너 같은 것을 사랑하는 줄 알아?”라고 말하고 맙니다. 그러면서 자기 마음을 몰라준다고 ‘바보, 바보’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술이 없으면 진담을 못하고 담배가 없이는 진지한 이야기를 못합니다. 그래서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진실을 진실하게 대면하지 못하고 늘 농담인척 하면서 빠져나가려고 합니다. 진실한 말을 들을 때는 몸이 꼬이고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마음이 부패해서 진실한 말이 체질에 맞지 않게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이야기보다는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더 좋아 하다가 사기를 당합니다. 물건을 사더라도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 물건보다는 무엇인가 부정한 방법으로 빼내서 싸게 판다고 해야 사고 싶어집니다.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고 정직하지 않은 체질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진실보다 거짓이 더 인기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면 매우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유명해 지면 그 사람에 대한 거짓 소문이 얼마나 많이 퍼지는지 모릅니다. 나무 위에 올려놓고 그 다음에는 흔들어서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다음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될지 모르지만, 지난번처럼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 대한 엄청난 거짓말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국민들은 그 말을 믿지 않을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거짓말에 속지 않을 지혜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그리스도 대 사단, 진리 대 거짓의 싸움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절대로 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금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아주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와는 하나님의 진실보다 사단의 거짓말을 더 믿었습니다. 사단이 하는 짓은 사람을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입니다.
오늘의 제 9계명은, 이웃에게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인데,
여기서 강조하는 강조점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거짓말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고,
둘째는 거짓말 하는 대상이 바로 네가 사랑할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내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까? 결국 자기에게 손해가 오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요즘에는 친형제 사이에도 돈 때문에 재판하고 싸우지만, 그것은 친형제로 본 것이 아니라 돈거래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거짓말을 해서 속이고 빼앗아가는 대상이 누구냐 하면, 바로 내 이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엡 4:25에서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웃은 결국 한 몸이고, 이웃을 손해나게 하는 것은 제 살을 베는 것이니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체적으로 거짓말이란 무엇이고, 그것이 왜 나쁜 것입니까?
오늘 확실하게 배웁시다.
1. 법정에서의 위증.
“거짓 증거” 란 법정용어입니다. 저 사람이 도둑질 하는 것을 보았는데, 재판장 앞에서 나는 못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혹은 보지 못했는데도 내가 봤다고 거짓으로 증언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한 일입니다.
재판이라는 것은 진실에 기초해야 합니다. 그리고 증거물과 증언에 의해서 심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재판정에서의 위증은 진실과 거짓을 뒤엎어 버립니다. 의인을 악인으로 만들고 악인을 의인을 만드는 이중적 죄를 범하는 것이 거짓증언입니다. 그래서 거짓 증인은 악한 사람을 더욱 기고만장한 악인으로 만들어 세상을 망치게 하고, 의로운 사람을 낙심하게 하고 좌절에 빠지게 하여 다른 사람들도 진실한 생활을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일을 합니다. 거짓증인은 이렇게 세상을 파괴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재판을 해서 사형선고를 하게 되고 사형을 집행하게 되면, 그 재판에서 증인되었던 사람이 가장 먼저 돌을 던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함부로 거짓증인이 되려고 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나라의 재판에는 무책임한 거짓 증인들이 넘쳐나고 있다고 합니다. 옳은 사람이 승소를 하고 나쁜 사람이 정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많아서 말 잘하고 법을 잘 갖다 붙이는 변호사를 선임한 사람이 이기는 불의한 재판이 계속되고 있으며, 이런 불의한 재판에는 언제나 불의한 법률 해석과 불의한 거짓 증인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9계명을 어기는 현실입니다.
2. 직접적인 거짓말.
거짓말이란 모든 종류의 고의적인 기만입니다. 진실하지 아니한 모든 말이 거짓말입니다. 악의 없는 거짓말은 어떨까요? 그것도 진실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직하고 충성되고 순결했던 요셉,(창39:7-20)은 보디발의 아내의 거짓말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서 기약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아합의 궁전 앞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던 나봇(왕상21:7-14)이라는 사람은, 나봇이 왕과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말을 해준 거짓증인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포도원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스데반(행6:11-14) 집사님도 거짓 증인들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했으며, 예수님도 거짓 증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죄인이라고 증언하는 바람에 천하의 죄인이 되어 십자가 지셨습니다.
여러분, 거짓말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장사를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거짓말 한마디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어려울 것 같지요? 이런 사회가 과연 정상일까요? “요즈음은 거짓말하지 않고는 굶어죽기 알맞은 세상이야!” 라고 말들 합니다. 맞습니다. 요즘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마귀 편에 서서 거짓말을 해서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신을 망가뜨리느니 차라리 거짓말 하지 않고 의롭게 굶어죽을 각오를 하는 것이 신앙인답습니다.
“거짓말은 잉태 할 때마다 쌍둥이를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한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거짓말이 꼭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거짓말을 한번 하고 나면 다음에 또 거짓말을 하게 되고 만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죽을 각오를 하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말은 정직한 것 같은데 행동은 영 다르게 하는 것을 위선 이라고 하는데, 위선은 거짓말 중에도 단수 높은 거짓말입니다.
3. 험담과 교활한 추리.
전갈은 꼬리에 독이 있고, 독사는 윗 턱의 어금니에 독이 있으며,
험담하는 사람은 그 혀에 독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거 때가 되면 상대방을 흠집 내는 흑색선전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분별력이 없는 국민들은 악한 사람들이 퍼뜨린 거짓말에 속아서 누가 올바른 사람인가를 선별하는데 실패하고 가장 악한 사람을 찍고 맙니다. 이 세상에는 자기 유익을 위해서 남을 모함하고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을 참 기분 나쁘게 하고, 제 삼자의 말을 할 때는 꼭 그 사람을 나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혀를 사단에게 전세 내준 사람입니다.
미묘하게 질문을 던지거나, 듣는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하도록 말을 함으로서, 자기는 직접 나쁘게 말하지 않았지만 듣는 사람이 삼자를 나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재주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재주가 있는 사람은 좋은 재주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아니라 사단이 준 악마의 무기입니다. 여러분, 이런 재주가 있거든 통곡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 무슨 재주가 없어서 그런 재주를 타고 나셨습니까? 차라리 벙어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입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슴을 후벼 팠으며, 그 야릇한 한마디 때문에 얼마나 많은 멀쩡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된 줄 아십니까?
“저 김 선생은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어, 그렇지 않아? 왜 그런지 모르겠어!” “저사람 요즘 돈 많이 벌었대! 자네도 그 자리에 있었으면 돈 좀 벌었을 텐데” 김 선생이 남자들에게 꼬리를 쳤다는 힌트를 주는 것이고, 저 사람이 자리 이용해서 뇌물을 먹어서 돈 벌고 있는 것 같지 않으냐는 의심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누구를 닮은 것이죠? 사단이 하와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너희더러 저 동산 나무의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 하시더냐?” 언제 그렇게 말씀했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 먹되, 오직 선악과 하나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와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하나님이 다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기왕이면 다 먹으라고 하실 일이지 저 나무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정말 이상하네?” 하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단이 슬며시 집어 넣어준 마음이 하와의 마음에 콱 박힌 것입니다. 이것이 사단의 기막힌 재주입니다. 이렇게 남을 비방하거나 의심할 마음을 집어 넣어주는 야릇한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시기나 질투가 가득 찬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고, 듣는 사람의 마음에 의심과 분노를 일으키며, 사람들 가운데 불신과 미움을 쌓이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단을 닮은 사단의 종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범하기 쉽고 흔한 죄가 이것입니다. 주일날 점심 먹고 몇몇이 오후예배 시간을 기다리면서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다가 결국 나오는 말이 남의 말들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틀림없이 남의 말 야릇하게 하는 사단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끼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이 입을 열면 남의 가정에 싸움을 붙이고, “교회는 말이 많아서 다니기 싫다.” 이런 말이 나오게 하고, 교인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참 못된 사단의 은사를 가진 사람입니다.
험담이란 죄는 교회에서 가장 빈번하게 벌어지는 죄입니다. 그런데도 가장 적게 고백되는 죄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은 죄가 아닌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남의 마음을 후벼 파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할 교회를 갈기갈기 찢어 갈등하고 싸우고, 저 사람 때문에 저 교회 가기가 싫고, 저 사람 때문에 저 구역에는 안 들어가겠다고 하게 만듭니다. 이런 일이 죄가 아닙니까? 죄 중에도 큰 죄입니다. 칼로 낸 상처는 일 이주일이면 아물지만, 말로 낸 상처는 몇 년이 가도 잘 아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은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은 입을 지키기 위해서 파수꾼을 요청해야 할 사람은 아닙니까?
4. 말해야 할 때 침묵함으로.
누가 거짓증언을 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내가 귀로 들었으면서도 시정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그것도 진실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인격을 생각해서 당장 면전에서 “당신 왜 그런 거짓말을 합니까?” “저 사람이 하는 말은 거짓말이요.” 라고 말하지는 못할 지라도, 어떤 방법으로라도 남의 거짓말이나 거짓 증언이나 험담을 들으면서도 그것을 시정하려고해야 하는데,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그런 침묵은 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말해야 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얼어붙은 혀는 범법자에게 진리를 내어맡기는 일이며, 거짓을 조장하는 일이 됩니다.
들어주는 귀가 없으면 수군거리는 입도 없을 것입니다. 누가 남을 의심하게 하거나 비난하는 말을 하거든 “나는 그런 소리 듣기 싫어 이제 그만 하자.”고 말해야 합니다. 수군거리는 입을 막으면 두 가지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교활한 험담의 죄를 짓는 사람을 구해 내는 일이요, 그 수근거림과 비방으로 억울하게 될 사람도 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들어주지 않으므로 거짓말과 수군거리는 일이 퍼지지 않게 막아냅시다.
5. 교리적인 거짓말
가장 무서운 거짓말은 교리적인 거짓말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하는 영혼의 함정입니다. 사단은 처음에 하와를 찾아가서 하나님의 말씀과는 정 반대 말로 아담 하와를 속여 넘어뜨렸습니다. 거짓말이 체질화 된 사람들에게는,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탕발림 거짓말이 훨씬 달콤하고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딤후 4:3-4에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보면 실제로 그랬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는 이단들이 일어났었고, 예수를 믿을지라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는 이단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현실은 포기하고 재림만 기다리자고 현실을 외면하게 하였고, 어떤사람은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끌었습니다.
세상 거짓말은 물질이나 인격의 손해를 보게 할 뿐이지만, 교리적인 거짓말에 속으면 영혼이 망하여 지옥에 가게 됩니다. 마 24장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예고 하셨습니다.
요즘에는 별의 별 이단들이 들끓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이미 믿는 사람들만 골라 찾아다니면서 거짓 교리로 그 영혼을 망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들 중에는 자칭 하나님도 있고 자칭 하나님 어머니도 있고 자칭 메시야도 있고 어린양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단의 하수인입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크게는 사단이 원하는 바로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게 진리의 길에서 아주 멀리 이탈하게 하려는 것이고, 작게는 그 하수인들이 원하는 바로 그들의 물질적 육체적 유익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짓말에 익숙해진 사이에 우리의 영혼을 유혹하는 거짓교리라는 가장 큰 거짓말이 우리 영혼을 삼키려고 주위에 어른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작은 거짓말을 버려야 큰 거짓에 빠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먼저 거짓말을 미워해야 하고 내 입을 단속하여 거짓말이 내 입에서 나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윗의 기도를 우리도 합시다.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시 15:1-3에는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 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 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거짓 증거 하는 자가 아닌, 정직히 행하는 사람과 동거하십니다.
시 84:11에는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 아멘이시오 진실이신 분으로서, 정직한 자를 사랑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모든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정직한 생활을 해서 진리이신 하나님과 동거하며 가장 좋은 것을 항상 공급받는 성도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