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팔백여든 번째
안녕이라 그랬어
젊은 작가 김애란이 ‘안녕’이라는 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쓰고 있느냐고 묻습니다. 평소 헤어질 때와 만날 때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우린 ‘안녕’ 그럽니다. ‘안녕安寧’, 흔히 ‘잘 지내지?’ 이 말을 간단하게 ‘안녕?’ 그럽니다. 아무 탈 없이 잘 지냈느냐는 말이니 따로 시비 걸 일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억양에 따라, 혹은 장소에 따라 쓰임새나 분위기가 다를 때가 있습니다. 친구의 병실을 찾아가 “안녕!” 그러기에는 왠지 어색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안녕’만으로는 부족할 때 서양인들은 포옹을 격하게 합니다. “안녕?” 그러면 보통은 만날 때 쓰는 말투지만, “안녕!” 그러면 헤어질 때 쓰는 말투입니다. 영어로 “Goodbye!” 그럽니다. 그런데 이 Goodbye의 어원이 “God be with ye”, 곧 “신이 당신과 함께하기를”이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답니다. 누구나 느끼듯이 이 말은 그냥 인사말이 아니라 축복이지요.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신자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젊은 작가는 그럽니다. “작별은 본래 축복의 형식에 가까웠던 셈이다.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마지막 기도. 한국어의 ‘안녕’도 크게 다르지 않다. 安寧. 평안하시라. 무탈하시라. 우리는 매일 만나고 헤어지며 사실은 아주 작은 기도를 주고받는 것이다.” 때로는 뒤돌아서 가면서 손만 흔들지라도 그 흔드는 수만큼 우리는 ‘안녕, 안녕…’ 그러는 것이지요. 그러니 형식이 아니라 그런 마음을 담아 보내는 인사말이 된다면 우리는 더욱 가까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어느 날 들려온 안녕이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 신호일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더욱이 우리 나이에는 어느 날의 ‘안녕’이 영원한 ‘안녕’이 되고 말 터이니 말입니다.
첫댓글 그거 아시나요?
우리의 생을 날수로 계산해 보면, 100년을 살아도 36500일입니다.
이거 시간으로 분으로 초로 환산하면 더 큰 수이긴 하지만,
지금 글 쓰신 분이 얘기했듯이 앞으로 살 날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더 적은 이들에게는
그 수치를 보는 게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지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고민해 보는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