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권경익론
성찰 그리고 진실의 발견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권경익의 <통영 두미도> 외 1편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두미도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애착이 좋은 수필을 만들었다. 대상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디테일한 두미도 엿보기가 감동을 일구는 원천이라고 하겠다. 작가의 남다른 직관력은 두미도의 환경과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두미도를 이루고 있는 동네를 만나고 다른 물상들과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통영 두미도>라는 주옥같은 작품을 창조해가는 과정을 몸짓, 호흡 같은 단절의 순간순간을 통해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섬에서 자신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더욱 더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비탈에 기대어 앉은 집터들을 통해 두미도 사람들의 삶을 이해해 가면서 마침내 성찰, 그리고 진실의 발견에 이르는 노정을 구도자의 자세로 뛰어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두미도에는 ‘노란 실거리와 하얀 물꽃과 녹슨 돌담과 붉은 동백과 선한 사람들이 산다.’ ‘대판과 청석마을의 앞바다에는 두미도의 꼬리인 동뫼섬이 산다. 호수같이 포근한 청석의 쪽빛 바다를 끌어안고, 동백꽃과 새 울음과 함께 이웃하며 살아가는 청석마을은 섬사람들이 깊이 숨겨둔 두미도의 심장이다.’ 권경익은 그 섬에서 자신이 마주한 경지의 순간을 직접적으로 둘러보고, 각 동네가 지닌 멋과 의미를 나름대로 잘 묘파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면 한번쯤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 같다. 오랜만에 통영에 들러 두미도까지 가서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까지 소환해서 그 시절의 추억과 현재의 느낌을 잘 버물어 절제된 정서를 객관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동백꽃’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지배적인 인상을 드러내며 감각화된 두미도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등 두미도의 멋진 형상을 몇 가지 보여주는 이 수필의 쾌미는 ‘성실한 표현’에 있다. 좋은 수필은 비유와 상징을 통해 제재에 내재한 기의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미지라는 기표 안에 기의를 감추게 되는 형상화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수필은 이 과정을 잘 거치고 있다. 따라서 해석과 형상화는 문학수필이 갖추어야 하는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라 하겠다. 두미도의 멋과 섬사람들의 생활력을 말해주는 덕리의 돌구덕에 대한 언급이 없었더라면, 이 수필의 문학적 성과는 많은 부분 성취되지 못했을 것이다. ‘돌구덕’이 갖는 상징성은 대단하다. 비유는 기적을 낳는다. 기행문의 전범이라 할 수 있는 권경익의 수필에서 우리는 말미잘의 촉수같이 민감한 감각이 그려내는 수필미학의 멋과 맛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필이 갖는 신인상 당선작으로서의 가치와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이 수필이 문학적 성취가 높은 이유는 오랜 추억을 더듬어 가면서 섬의 풍경을 주인된 심정으로 읊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서사가 풍경에 머물지 않고 행위소로 확장되어 나가면서 섬 사람들의 험준하고 눅눅한 삶에 포개져서 나타난 데서 우리는 이 수필의 문학적 성취를 확인할 수가 있다. 그는 관습적이지 않은 표현을 구사하고 있으며, 이런 언어의 의외성은 감상에서 읽는 사람의 주목을 이끌어낸다. 신선한 묘사적 표현이 수필의 문학성을 가져왔다. 문학의 쾌미는 구경꾼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데 있다. “곧 다시 두미도에 들 것이다. 그땐 사동마을의 옛터도 촘촘히 돌아보고, 미쳐 시간이 허락지 않아 스쳐 지나온 순천마을의 터들도 찾아보고, 물꽃의 본향인 덕리의 삶터에 앉아 소주 한잔 기울여야겠다.”라는 여운이 그리운 두미도, 또 가고 싶은 두미도라는 걸 잘 말해준다.
2025년 1/4분기 《산림문학》신인상 응모작 수필부문
통영 두미도
권경익
오랜만에 통영에 들었다. 요즈음은 어디를 가든, 언제쯤 들고 나는지에 대한 기억도 잘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굳이 기억하려고도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함께 통영을 누볐던 기억만은 그날의 강렬한 햇볕에 박제된 채 뚜렷이 남아 있다.
통영 서호시장에서 시락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두미도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아름다운 섬이라는 것과 머리 두 자와 꼬리 미 자를 이름으로 가진 섬이라는 정도의 무지함을 걸머지고 두미도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사월 중순이었다. 남구항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차를 타고 일주도로를 따라 차를 타고 한 바퀴 돌 때도 아주 특별한 인상은 없었다. 물론 청석의 앞바다나 덕리의 기암괴석들은 아름다웠지만, 일상으로 만나는 섬 풍경이려니 했다. 그런 두미도에서 일주일을 시작했다.
두미도의 삶터는 북구항에서 시작한다. 북구는 두미도의 대처다. 제법 반듯한 항구와 몇몇 신식으로 지어진 건물들과 대처에 어울릴만한 상인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항구에서부터 이어지는 비탈에 기대어 앉은 집터들은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곧바로 토해내고 있었다.
북구항의 우측 모퉁이에서부터 옛길이 시작된다. 2015년쯤 완성된 일주도로가 있기 전에 북구항에 명줄을 대고 사는 모든 이들이 걸음 하였던 그곳으로 길을 잡았다.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여전히 잘 보존된 그 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와 마주하였다. 그곳에서 실거리를 만났다. 지독한 가시 탓에 섬사람들이 부르는 이름 옷까시나무, 그 실거리나무를 본 것이다. 섬사람들의 삶 속에서나, 불려지는 이름에서나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어여쁜 꽃을 품은 실거리나무, 그가 피워낸 노란 아름다움이 한창인 계절이다.
옛길의 흔적을 더듬어 첫 번째 다다른 곳이 고운마을이다. 마을 입구인 능선에서 보여 지는 삶터가 제법 부드럽다. 옹기종기 어우러져 섬사람들의 질긴 삶을 이어가는 몇 채의 집들이 그 너머 바다와 맞닿아 있었고, 그 유순한 삶터만큼이나 선한 고운의 사람들이 사는 그런 마을이었다.
옛길은 고운마을의 삶터를 휘휘 돌아 숲속으로 이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나는 설풍마을, 겨우 두어 채의 집들이 비탈진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곳에도 마을의 옛이야기 한 보따리나, 달고나커피 한 잔쯤은 넉넉히 내어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고운과 설풍마을은 그 부드러운 삶터만큼이나 고운 옥빛의 바다에 안겨, 그 넓은 바다로 사람 냄새 풀풀 풍기며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이따금 바다를 지나는 어선들도 힐끔힐끔 마을을 바라볼 뿐, 그 흔한 뱃고동도 울리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 그렇게 침묵의 안부를 확인하며 옥빛 바다의 삶을 지켜내고 있었다.
다시 숲을 따라 옛길을 찾아 나섰다. 이어지는 여정인 덕리 가는 길은 고단한 생활 길이다. 덕리가 돌절구 제작으로 열을 올리던 시절, 그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북구를 오가던 길이다. 그 아릿한 흔적을 따라 몇 굽이를 돌고 돌아 덕리에 들었다.
'아! 빈터의 흔적이란!'
마치 선사시대의 유적처럼 녹슨 돌담들만이 덕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들이 절묘하게 가슴을 휘저어 댔다.
이 비탈진 골짜기에서 사무치는 그리움보다 더 애틋한 삶을 살아내던 그들은 누구였을까?
어떤 마음으로 겨우 정과 망치에 기대어 돌과 사투를 벌이며 하루를, 한 달을 그리고 일 년을 그렇게 살아냈을까?
덕리의 바다 끝에는 돌구덕이라고 이름 붙여진 해안 절애가 산다. 덕리의 바다는 늘 으르렁대며 돌구덕에게 덤벼들고, 돌구덕은 그 넉넉함으로 우뚝 서 있을 뿐 말이 없다. 결국 바다는 하얀 물꽃을 돌구덕에 내어주고, 덕리 사람들은 그 물꽃을 벗 삼아 짠 내 나는 봄 내음을 그리워하며 고된 골짜기의 삶을 살았으리라.
덕리의 물꽃을 녹슨 돌담 아래 묻어두고 다시 길을 나선다. 연이어지는 해안의 절애가 만들어 놓은 절벽 위에 길을 따라 무사하길 빌고 빌며 겨우 숲을 벗어나면 대판마을로 가는 임도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청석마을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옛길을 넓혀놓은 길이다.
대판과 청석은 다른 듯 하나이다. 고운의 부드러운 삶터가 설풍에서 끝나듯, 대판의 비탈은 청석의 넓은 들의 시작이다. 대판과 청석마을의 앞바다에는 두미도의 꼬리인 동뫼섬이 산다. 호수같이 포근한 청석의 쪽빛 바다를 끌어안고, 동백꽃과 새 울음과 함께 이웃하며 살아가는 청석마을은 섬사람들이 깊이 숨겨둔 두미도의 심장이다.
청석마을에서 고갯길을 넘어가면 남구가 나온다. 옛 남구의 어린이들이 청석의 학교에 가기 위해 넘나들던 길, 대판과 청석의 어른들이 남구항을 가기 위해 무던히도 넘던 길이 바로 이 길이다.
조금씩 지쳐가는 걸음을 겨우 쉴 때쯤 도착한 남구항은 북구항과 다른 듯 닮아 있었다. 비탈에 기대어 사는 모습이 영락없이 닮은 듯하다가도, 아직은 오지 않는 여객선을 기다리며, 외로운 듯 손을 흔드는 유채꽃이 살아가는 남구항의 모습 새초롬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남구는 두미도 제2의 도시다.
남구항에서 산 쪽으로 길을 잡아 마을을 지나면 당산이 나온다. 한소끔 쉬고 다시 길을 지치면 사동 가는 옛길로 접어든다. 사동마을은 남구와 북구 사이에 있는 마을로서 덕리와 더불어 폐촌이 된 마을이다. 임도 위에 있는 외딴집이 그 명맥을 이어가긴 하지만 옛터는 이미 수풀의 세상이다. 그렇게 임도 아래위로 한참을 더듬어 옛길을 따라가자면 저만큼에서 북구항이 손짓한다.
이만큼 떨어진 자리에서 북구항을 본다. 능선에서 내려다보는 북구항이 한결 정겹다.
짧은 기간이지만 두 발로 두미도의 삶을 살아냈다. 곧 다시 두미도에 들 것이다. 그땐 사동마을의 옛터도 촘촘히 돌아보고, 미쳐 시간이 허락지 않아 스쳐 지나온 순천마을의 터들도 찾아보고, 물꽃의 본향인 덕리의 삶터에 앉아 소주 한잔 기울여야겠다.
두미도에는 노란 실거리와 하얀 물꽃과 녹슨 돌담과 붉은 동백과 선한 사람들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