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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는 가정의 위기가 사회적 위기로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위기의 가정들을 보게 됩니다. 지난 3월 19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3년 혼인과 이혼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2023년 혼인 건수는 19만 4천 건으로 전년 대비 1.0%증가했으며, 2023년 이혼 건수는 9만 2천 건으로 전년 대비 0.9%감소했다고 합니다. 지난 10년사이 결혼건수는 무려 40%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의 숫자가 줄어드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제 결혼해서 가정을 꾸려야겠다는 사람들이 줄었다는 말입니다. 그 숫자도 10년전에 비하며 무려 거의 절반 가까운 수치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은 이혼율은 전세계 나라들중 최상위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충격적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최하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예상 합계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라고 하는데 ‘예상 합계출산율’이란 여성 1명이 평생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숫자를 뜻합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예상 합계출산율 수치는 0.73명이라고 합니다. 결혼에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상식적으로도 2명이 되어야 국가가 현재 인구수준으로 유지될텐데 우리나라는 1명도 안되는 0.73명이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저는 원인으로 가정붕괴, 가정에 대한 소중함의 상실, 가정에 대한 애착이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좋았던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을 만들어보려는 마음조차 사라진 젊은 세대를 보게 됩니다. 이 땅 대부분의 가정은 완전하지 못하고 불안한 모습을 감춘 채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라 할지라도 내면 깊숙이 들어가 보면 어딘가 모를 벽과 서로의 상처와 아픔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젊은 세대는 이렇게 가족관계가 힘든데 굳이 왜 새로운 가족까지 만들어야 되는가라고 생각하기에 가족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가족을 축복하며 가정이 하나님앞에 온전히 서기를 소망하며 가족의 달 기념주일로 가족의 의미,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는 주일로 예배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 이삭의 가정을 통해 우리가 세워가야 할 가정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가정은 그 무엇보다 정말 소중한 모임이고 귀중한 관계이고 깨어져서는 안 되는 가치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속해 있는 가정, 가족들이 하나님 보시기 아름다운 모습이 되기를 소망하며 어떻게 가정을 꾸미며 가꾸어야 할지 깨닫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을 만들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복된 가족들과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은 첫째,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가정입니다.
창세기 24장 61절입니다.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처녀와 총각이 만나 결혼하면 부부가 되어 가정이 만들어지고 또 하나의 가족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 가정의 첫 단추는 부부라는 가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부부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신뢰하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믿지 못하고 의심하게 되면 부부관계는 깨어집니다. 예전의 통념과 가치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이 지금 이 시대는 너무나 개방된 세상에서 개방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쉽게 1대 1로 남녀의 개인적인 접촉이 많아지는 사회생활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결혼한 남자가 아내가 아닌 다른 유부녀와 사회적 관계, 업무적 관계속에서 1대 1대의 접촉을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많아집니다. 반대로 결혼한 여자가 남편이 아닌 다른 유부남과 만남 혹은 모임이 있을 수 있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경우 정말 남편에 대한 도의, 아내에 대한 절개를 지키는 사람이라면 분명한 선을 만들어 조심 또 조심할 것입니다. 그런데 당사자도 조심해야 하지만 그런 경우 남편, 혹은 아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의심을 할 만한 경우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의처증, 의부증까지는 아니지만 질투와 의심으로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부부관계가 깨뜨릴 때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 문제인지를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의심될 만한 행동을 하게 된 사람이나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데 의심하게 된 쪽이나 그 상황까지 가게 된 것은 정말 불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수 많은 세상 사람들이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고 남편의 도의, 아내의 절개를 지키지 못하고 불륜이 난무하는 세상의 현실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신뢰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창세기 24장 61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4장 6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리브가가 일어나 여자 종들과 함께 낙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그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아내와 함께 떠납니다. 아들이나 딸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믿음 생활을 잘하겠노라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25년 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의 나이 100살, 그 아내 사라의 나이 90살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고 키우던 어머니 사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을 신뢰하며 살았던 아내 사라가 127세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아들만 남았습니다. 장성한 아들에게 이제 부부의 연을 맺어줘야 합니다. 이제 이 가정에도 살림을 맡을 여인이 필요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고 있는 땅, 그들이 이주해온 이 땅에서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을 고향 땅에 보냅니다. 고향에서 며느리를 골라서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종을 보내면서도 아들은 절대로 데리고 가지 말라고 합니다. ‘아들이 오고 가는 길에 해를 당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종은 주인의 고향 땅에 가서 며느리를 맞이해 오는 중차대한 사명을 가지고 떠났습니다. ‘주인의 고향에 가기까지 순조로운 길을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계속하면서 주인의 고향을 찾아갑니다. 고향 땅 메소보다미아 나홀의 성에 이르렀습니다. 동네 밖에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안에 사는 아가씨가 물 길으러 나올 때 내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고 부탁할텐데 그 때 그 아가씨가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겠습니다’ 말하면 그 여인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허락하신 사람으로 알겠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아니하여 ‘리브가’라는 아가씨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물을 좀 주어 마시게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물을 떠서 마시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낙타들에게 물을 길어다 먹였습니다. 리브가는 시키지 않은 일까지 넉넉하게 하는 봉사정신이 강한 여자였습니다. 너무도 후덕한 아가씨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손 목걸이를 끼워주고 코걸이를 달아주면서 “아가씨의 집에 내가 좀 쉴만한 곳이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리브가가 “그럼요, 우리 집은 넓고 낙타에게 줄 사료도 많습니다”라고 대답하고 그 종을 데리고 자기집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라반이 달려 나와서 그 종을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저녁을 잘 대접하려고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습니다. 그 때 그 종이 “내가 한 마디 질문을 하고 대답듣기 전에는 절대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두엘과 라반은 “그럼 이야기해 보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종이 대답합니다. “나는 아브라함이 종입니다. 그래서 지금 며느리감을 골라 데리고 오라는 사명을 받고 왔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기도하면서 왔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물가에서 기도했더니 리브가가 기도한대로 하였습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부두엘과 또 그의 아들 라반이 “이것은 우리가 가부를 말할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짝지어 놓으셨다면 우리가 어찌하겠습니까? 그러나 본인의 생각이 중요하니 결혼할 여인에게 물어보도록 합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리브가를 불렀습니다. 리브가가 남편 될 남자의 얼굴을 한 번이나 봤습니까? 음성을 한 번이나 들어봤습니까? 편지 한번을 받아 보았습니까? 전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다 들은 리브가는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확답했습니다. 그리고 종을 따라갔다는 것이 성경 내용입니다. 믿음만으로 그는 집을 떠나 남편을 찾아 그 먼 거리를 여행했습니다. 믿음으로 출발했고 믿음으로 그 땅을 찾아갔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삭은 자기가 직접 가서 보고 데리고 오는 것도 아니고 종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고는 종이 데리고 오는 여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이 짝 지어 주시는 것으로 알고 내가 맞이하겠다 하여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믿음과 믿음이 만난 것입니다. 서로 신뢰하고 믿음으로 시작된 가정입니다. 이삭의 가정은 이렇듯 철저한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2,23절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를 믿음을 바탕으로 한 남편과 아내 관계로 설명해 주는 성경본문을 많이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 남편과 아내의 관계 이 모든 것이 믿음을 통해 유지되고 돈독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믿고 사랑하는 아내, 정말로 내가 믿고 사랑하는 남편과 믿음으로 맺어지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얼마나 복됩니까? 여러분들은 믿는 아내가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는 남편이 살아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삭의 가정이 바로 아내와 함께 믿음으로 이루어졌고, 믿음으로 살아온 가정입니다. 정말로 행복하고 부러운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은 둘째로 함께 기도하는 가정입니다.
창세기 24장 62,63절입니다.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는 아버지를 도와서 가정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나이 서른이 되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만 하시기 위해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 먼저 광야로 나가셔서 40일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열 두명의 제자들을 불러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하는 큰 일을 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선택할 때 기분 내키는 대로 부르셨을까요?
누가복음 6장 12절에서 13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12,13절입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제자들을 선택하여 부르기 전에 이 중요한 일을 위해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는 엄청난 일을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지새면서 기도하셨습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우리는 아무리 중요하고 급한 일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일에 앞서 먼저 기도가 우선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기도하시고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일하시면서도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제대로 믿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 자체가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에게 기도는 생활이며 즐거움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기도가 인생이며 기도가 행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가정이 기도하는 가정이 된다면 우리의 가정이 참 가정이며 행복한 가정이며 부러운 가정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24장 62,63절도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이삭이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묵상기도를 하다가’라는 뜻입니다. 이삭은 자기 아내감을 골라 데리고 오는데 자신이 직접 가지 못하고 종을 보냈습니다. 종을 보낸 날로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묵상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시간에 멀리 메소보다미아 나홀성 우물가에서는 종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삭의 가정은 기도로 이루어진 가정입니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 20년이 되었는데도 자녀가 없었습니다. 결혼하고 20년 동안 어떤 아이도 태어나지 않으니 얼마나 걱정과 염려가 생겼겠습니까? 그런데 부부는 근심,걱정보다 이 일은 ‘기도할 문제다’라고 생각되어 열심히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창세기 25장 21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이 말씀은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한 지 20년째 되는 때의 기록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창세기 25장 20절에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할 때가 이삭이 40세 되었을 때라고 되어 있고 창세기 25장 26절에 리브라가 에서와 야곱 쌍둥이를 낳았을 때가 이삭이 60세 였을 때라고 되어 있어 그 말씀을 근거로 우리는 20년동안 아이가 없이 살았던 부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기도하던 부부가 기도로 아이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긴 쌍둥이가 엄마의 태중에서 싸웁니다.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런 임신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창세기 25장 22절을 보니 이삭이 “이럴 때 난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자문하더니 “하나님께 물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5장 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께서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시며 앞으로 출산과 출산이후 자녀의 미래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후일 야곱은 이삭으로부터 축복기도를 받고 장자의 명분으로 이스라엘의 복된 혈통을 이루며 이스라엘의 근간인 12지파가 되는 자녀를 낳는 아들이 됩니다. 이삭의 가정은 이처럼 기도로 시작했고 아내 리브가는 계속 기도로 살아왔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가족 모두가 함께 합심하며 기도하는 것이 진정 복된 가정의 모습이며 각자 복받을 존재로 설 수 있는 기회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기도하는 가정은 참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가족 모두 함께 기도할 수 없으니 우리 가족은 이제 기도할 수 없어”라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가정이지만 함께 기도하지 못하는 형편, 함께 기도하지 못하는 신앙의 상태라할지라도 기도하는 가정이 되기 위해 한 명이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기도하는 가정, 어느 누구라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가정이 될 때 복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정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가정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가정에서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 가족중 한 사람이상 기도로 가족을 바로 세우고 있습니까? 가족중 최소 한 사람이라도 기도하며 가족을 지키는 영적 파숫꾼이 있습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지는 않으십니까? 아무리 바빠도 가정 안에서 기도소리가 끊겨서는 안 됩니다. 영적으로 깨어 일어나 기도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가 없는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삭 가정은 기도의 가정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우리 인생에서 우리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고 어려운 일들, 힘든 일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우리가 아무 것도 안 하고 그저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헛되이 보내는 시간도 아닙니다. 미래를 기대하며 하나님께 우리를 맡기며 앞으로의 일을 대비하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안 하는 사람보다 열 배나 낫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열 사람이 기도하는 한 사람에게 달려들어도 당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의 가정은 기도로 시작했고, 계속 기도로 살아가는 가정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도 기도로 세워가는 기도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가정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 마지막 셋째로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가정입니다.
창세기 24장 64~67절입니다.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 종이 그 행한 일을 다 이삭에게 아뢰매 /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아브라함과 아내 사라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지 25년이 지난 후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의 나이 서른 일곱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 사라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서른일곱살이고 이삭은 서른 일곱살입니다. 남자만 둘이 살았습니다. 우리 속담에 ‘홀아비 3년이면 이가 서말’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 집안에 홀로된 아버지, 아직 결혼 안한 아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재미없는 집안 생활, 삶이 구질구질해진 가정의 모습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 집안에 남자 둘만함께 지내는 삶은 삭막할 뿐이었습니다. 웃을 일도, 재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라는 세월을 홀아비와 미혼 아들 남자 둘이 가족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아들 이삭이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본문에 등장하는 ‘리브가’라고 하는 아가씨를 맞이해 결혼하고 사랑하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 가정에는 고부간의 갈등이 없고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있고 며느리를 특별하게 존중하는 시아버지의 며느리 사랑만 있습니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귀하지만 내가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오히려 큰 복입니다. 사랑스러운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이삭도 나이 마흔에 장가를 들었으니 이삭은 온 마음을 다해 아내를 사랑했을 것입니다. 이 가정은 정말 사랑이 가득한 가정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입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5장 17절입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가끔 TV연속극을 보면 결혼할 배후자를 앞에 놓고 부모와 자식사이에 의견이 맞지 않아 갈등을 빚고 집을 뛰어나가고 별별 일들이 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걱정하고 고민합니다. 아무튼 부모들이 자식을 이기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기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생깁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를 사랑으로 감싸야 하고 내가 군림하고 내가 대접받고 내가 이겨보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백세에 아들을 낳은 금지옥엽같은 아들입니다. 하지만 결혼한 아들은 며느리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며 그들끼리 멋진 가정을 꾸려나가도록 맡겨두었습니다. 그래서 시아버지와 며느리, 아버지와 아들이 사는 이 가정은 사랑주고 위로받고 서로 사랑으로 하나된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천국이 되었습니다. 정말 부러운 가정이 된 것입니다. 사랑이 충만한 가정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에서 1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정말 가정이 복된 가정,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런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나타나는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 가정에서 복이 끊어지지 않고 은혜가 충만하며 평안과 기쁨이 넘쳐나기 위해 아름다운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희생, 예수님의 헌신, 정말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낮아진 모습의 사랑이 보여져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사랑으로 하나되는 귀한 가정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본 이삭의 가정으로 우리는 우리 가정의 모습을 새롭게 정비하고 세워나가야 하겠습니다. 이삭의 가정은 첫째 믿음의 가정, 둘째 기도의 가정, 셋째, 사랑의 가정이었습니다. 그 가정이 가장인 이삭은 평생 아내 한 사람으로 만족했고 아내는 이삭 한 사람 밖에 모르는 가정이요, 정말 부러운 아름다운 가정이었습니다. 이삭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내인 리브가는 믿음과 기도와 사랑으로 서로 하나될 수 있었던 가정이었습니다. 가족 서로가 믿음안에서 하나되어지고 가족 모두가 서로 기도하며 서로를 위해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가족 모두가 참 사랑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하나되어질 때 정말 아름다운 가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변 사람들이 우리 가족들의 여러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매일매일 보여주는 가정생활을 알게 되면서 우리의 주변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족의 모습,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을 발견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