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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황등교회는 면(面) 단위에서는 드물게 황등중학교, 성일고등학교, 황등교회 어린이집을 설립하여 다음 세대 교육에 노력하고, 황등 신용협동조합, 황등 노인대학, 이웃사랑 나눔회를 조직하여 지역 선교에 힘쓰고 있다. 이처럼 황등교회가 지역사회를 품는 구원의 방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고귀한 피를 흘린 순교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황등교회는 1928년 계원식 장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계원식 장로는 평양의 계택선 목사의 장남으로,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평양에서 개업하던 중 3.1 독립선언 이후,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제공한 것이 발각되어, 평양을 떠나 군산에 있던 궁말 예수병원에서 하리슨(W.B. Harrison) 선교사와 함께 사역했다. 이후 익산 황등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며 복음 사업을 위해 교회를 설립에 앞장섰다.
▲이재규 목사
황등교회의 순교자 이재규 목사는, 장로인 아버지의 소망대로 1937년 평양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목사 안수를 받고, 고향인 월하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1948년 8월, 공산화된 북한에서 8남매를 데리고 38선을 넘어 월남하여 황등교회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의 설교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었다. 이 목사는 성경공부를 잘 가르치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그의 지도력과 협력에 힘입어 교회는 성장해갔다. 교회는 황등면에 구원의 방주였다. 이 목사는 한국전쟁 시 피난길에서 인민군에게 붙잡혔다. 심문을 받던 중, 목사의 신분을 밝힘으로 사위 노명갑 집사와 함께 처형을 당했다. 이 목사의 아들 중 이성갑 목사는 캐나다에서, 사위 이경준 목사는 부산의 광안교회를 섬기며 헌신하였다.
변영수 장로
순교자 변영수 장로는, 서울 배재학당에서 공부하였고, 민족주의 사상가로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시국 강연을 하고 다녔다. 그는 이 일로 1년 8개월 동안 군산교도소에 수감 되었다. 그 후 계원식 장로의 권면을 받아 황등교회에 출석하고, 충성을 다하다가 1942년 장로로 장립 되었다. 변영수 장로는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익산군에 대한청년단을 조직하고 단장으로 취임하고, 청년들의 의식 구조를 변화시키는 강연에 앞장섰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당시 전라북도 도지사 김가전 목사가 함께 부산으로 피난 가자고 권유했지만 듣지 않았다. 1950년 8월 13일 성동면에서 붙잡혀 심한 고문을 당하고 인민군에게 처형당했다. 그의 장남 변의진 장로는 황등중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 동생 변경환은 목사로 사역하였다.
▲안인호 사모
순교자 안인호 사모는, 평양에서 숭의전문학교를 졸업한 영재로 황등교회 설립자인 계원식 장로의 자부요, 황등교회 3대 목회자 계일승 목사의 아내이다. 남편 계일승 목사는 후에 장로회신학대학 학장을 지낸다. 그녀는 위로는 연로하신 시부모를 섬기고, 아래로는 어린 6남매를 돌보면서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안인호 사모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효부로 칭송이 자자하였다. 한국전쟁 때 남편이 미국에 유학을 간 죄목으로 미국 스파이로 체포되었고 8월 14일에 지역의 우익인사 17명과 함께 황등산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아들 계지영은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풀러신학교와 멕코믹신학교 겸임교수와 미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문준경순교기념관을 방문하고
한국기독교는 순교자의 피가 밑거름되어 성장하였다. 황등교회는 순교의 거룩한 유산(遺産)을 익산지역에 남기고 있는 보배로운 교회이다.
김헌곤 목사 '한국교회 순교자 열전' 편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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