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묶거나 연결하는 끈이나 줄은 단순하지만 쓰이지 않는 곳이 없어 언제나 우리 가까이 있다. 끈과 줄은 크게 다르지 않다. 비교적 짧으면 끈이고 길면 줄이다.
끈이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다. 끈은 주로 낱개를 묶을 때 쓰고, 작은 것을 묶어 크고 단단하게 만든다. 끈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성능, 기능, 사용처도 발전해 왔다. 농작물을 묶기도 하고 가축을 기르고 일을 시키기 위해서도 끈은 필요했다. 허리끈도 줄이고 병원에서 상처를 묶는 것도 끈이며 기차의 길은 철끈이고 전기는 전깃줄이 있어야 한다. 통신은 케이블이고 광선이다. 칡 같은 식물의 줄기나 껍질로 시작되어 짚이나 마麻가 사용되고 점점 용처를 넓히고 더욱 편리하고 강한 끈이 필요할수록 끈의 성능은 더욱 발전되었다. 끈이 꼭 필요하다 보니 끈을 만들기 위해 무한한 노력을 한다. 지나치게 끈에 달려들다 너무 무겁고 강한 줄에 치여 꼼짝 못 하는 것도 끈이고 줄이다. 섬유질의 끈 외에도 강철로도 줄을 만든다. 석유화학 제품의 줄은 용도가 일상생활을 넘어 공업이나 첨단산업 분야로 점점 폭을 넓히고 있다. 묶기도 하고 놀이기구로도 사용하며 옷감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는 줄도 있지만 현수교 다리를 매다는 강철 줄은 아름드리의 굵은 줄이다.
사람이 여럿이 늘어서도 줄이다. 일이 잘 풀리면 줄을 잘 섰다고도 하고 처신이 어려워 고통을 받게 되면 줄을 잘못 섰다고 하는 것을 보면 보이지도 않는 줄이 우리들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물건을 묶는 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묶는 끈이 너무 미묘해 웬만한 사람은 감당하기가 어렵다, 누가 어떤 끈이나 줄에 묶여 있는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어떤 줄이나 끈을 잡으려 하는지 잡고 있는지 줄을 당기고 있는지 끌려가는지 알기가 어려운 것이 줄이고 끈이다.
줄은 사람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누에는 실끈으로 튼튼한 집을 만든다. 거미에게는 거미줄이 생명의 줄이다. 가늘지만 인간이 만든 끈보다 강해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끈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끈의 사용처와 역할이 넓어지고 커질수록 끈으로 인한 아픔도 많다. 줄이 끊어지고 떨어져 마음을 상하고 사상자가 부지기수로 늘어나고 있다. 이용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많이 활용하면 할수록 위험도 늘어나지 않을 수 없다. 다리를 버티는 줄이 끊어져 목숨을 잃는 비극도 생겨난다. 섬과 섬,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다리도 따져보면 강판이 아니라 현수교를 잇는 길고 강한 겹겹의 강선이다. 줄은 살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싫든 좋든 끈을 만들고 줄이 생기고 끈을 자르고 끊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사람과 동물 사이에도 사람과 기계 사이에 보이는 끈 외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는 않지만 무수한 끈이 존재한다. 부모 자식도 핏줄로 이어진다. 형제로 태어나고 만나는 것은 혈육의 끈이다. 이웃이 되고 시민이 되고 국민이 되는 것도 끈이고 줄이며, 설사 끊는다 해도 상처는 남는다.
줄은 다양한 만큼 사람마다 느낌이나 강도가 같을 수는 없다. 이 다른 느낌 때문에 눈물이 생기고 분쟁과 갈등을 만들고 수습할 수 없는 비극이 생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만져지는 끈으로도 많은 일을 해내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끈 때문에 많은 일이 벌어진다. 우정이라는 이름의 끈, 이웃이라는 끈이 생기고 동창 동기라는 이름은 튼튼하고 느슨하고의 차이는 있을지는 몰라도 그 자체가 끈이고 줄이다.
원하지 않아도 끈에 연결되고 능동적으로 끈에 묶이려고 하는 일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많다. 자진해서 동호회를 만들고 서클에 가입하는 일도, 각종 계나 친목 모임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끈을 만들고 끈에 엮인다.
끈이나 줄은 끊을 수도 있고 원치 않아도 끊어지기도 한다. 줄에 매달리고 싶어도 떨어지기도 하고 원하지 않아도 끊어져 아픔과 상처를 남긴다. 줄은 혼자 활용하기는 쉽지 않다. 줄은 양쪽으로 적당한 힘으로 당겨져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끈은 그냥 있어서는 제대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끈의 최대한 활용도는 마무리고 묶음이고 매듭이다. 끈으로 제대로 묶고 마무리하듯이 우리의 일상도 하나하나 잘 엮고 묶고 풀어야 한다. 줄은 묶기도 하지만 이어주고 연결하는 역할이 제 몫이다.
만들려고 하고 이미 만들어진 끈이나 줄을 아름답게 활용도를 높이는 일이 값진 삶이다. 자기의 능력에 알맞은 줄이라야 한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굵어도 안 되고 용도에 비해 너무 가늘고 잘 끊어줘도 구실을 할 수 없다. 자기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길어도 감당이 안 된다. 자기 능력보다 너무 굵으면 사용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짐이다. 감당하지 못할 만큼 길어도 활용은 고사하고 끈에 감기고 얽히며 헝클어져 고통이 된다. 끈이나 줄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잔꾀를 부리고 욕심을 부리면 제대로 활용은 고사하고 자신을 옭아매는 올가미이고 짐이다.
끈은 묶는 역할이지만 필요에 따라 풀어야 할 때도 있다. 줄은 서로 이어주지만 적당한 길이로 자르기도 해야 한다. 묶고 풀 때를 놓치면 후회와 아픔이 생긴다. 줄을 잡아야 살 수도 있지만 놓아야 살 수도 있다.
돌아보면 나의 지난날은 참으로 많은 끈과 줄로 자신을 옭아매어 왔다. 나는 이 끈에서 벗어날 때가 가까워진다. 묶여 있어 편하다고 언제까지 묶여만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끈이나 줄이라도 언제까지 잡고 있을 수는 없다. 줄을 놓아야 할 때가 되면 놓아야 한다. 끈을 끝까지 놓지 않을 힘을 인간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아름답게 산 사람만이 홀가분하게 모든 끈이나 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끈에 너무 얽매이면 자기가 없고 너무 없어도 무미건조하지만 늙는다는 것은 끈과 줄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다. 나뭇잎이 단풍이 들면 가지의 끈을 놓듯이 그렇게 원했던 끈이나 줄은 때가 되면 놓아야 한다. 모든 끈이나 줄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데. 나의 역량보다 더 많은 끈에 묶이고 잡은 줄을 놓지 않으려는 타인 같은 내가 야속하고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