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옆방 노인의 죽음
실버타운의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던 부인이 내게 말했다.
“그저께 한밤중에 사백십삼호에서 잠깐만 와달라고 전화가 왔어요.
가서 보니까 할아버지가 옆에 있던 할머니가 죽은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저녁을 좀 많이 먹었는데 토하더니 그렇게 됐대요.”
노부부가 실버타운에 와서 일주일 정도 되자 한 사람이 죽었다. 그 부인의 말이 이어졌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한국으로 온 부부였어요. 내가 좀 친절하게 해드렸어요.
소화가 안된다고 해서 죽을 해다 드렸었거든요. 고맙다고 하면서 선물을 주면 안되겠냐고
하면서 자기가 간직하고 있던 팔찌를 주는 거예요. 그래서 그건 너무 과하다고 했죠.
그 부인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의 일이예요. 그 부인은 이 실버타운으로 오기 전에
부산 다대포 바닷가에 아파트를 얻어서 부부가 삼년 동안 잘 살아 봤다고 하더라구요.”
어쩌면 그 노인은 죽음을 예감한 것 같기도 했다. 실버타운 안에서 노년의 죽음은
알려지지 않는다. 조용히 실려나가 한 줌의 재로 변한다. 노인들은 의식적으로 죽음을
외면하는 것 같다. 노인들은 잠을 자다가 죽기를 소망한다. 요양원과 중환자실에서의
긴 사멸의 과정을 두려워 하기도 한다.
일년 전 보았던 눈이 작은 할머니가 갑자기 기억의 오지에서 나타났다.
엘레베이터에서 마주친 그 할머니는 남는 게 시간이라고 했다. 기나긴 노년의 적막이
답답했을까. 한번은 복도의 벽아래 있는 긴 의자에 앉아 그 할머니가 마른 울음을
울고 있는 걸 봤다. 지독한 외로움이 그 주변에 공기같이 흐르고 있었다. 딸이 여행을 떠나
혼자 있는 개밥을 줘야 할 때만 할머니는 집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을 주위사람한테 들었다.
한번은 실버타운의 텅빈 피씨방에서 그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적막한 공간 안에서
포커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 얼마 후 실버타운의 직원이 피씨방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 할머니를 발견하고 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 말이 이미 죽어있었다고 한다.
어제 저녁 창문의 유리창이 부드러운 회색의 황혼으로 물들 무렵 갑자기 스마트폰의
벨이 울렸다. 발신자가 없고 번호만 화면에 뜬다. 주소록에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누구세요”
내가 물었다.
“목소리 들으니까 엄 변호사 맞네. 나 택수야.”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뒤늦게 같이 사법연수원을 다녔었다. 춘천에 변호사가 없던
시절 그는 호수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아름답다고 그곳에 가서 법률사무소를 냈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 인생에 다양한 색칠을 하면서 살았다. 색소폰을 불었다.
독주회를 할 정도까지 실력이 올랐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가 오랫만에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오랫만이다. 반갑다. 어떻게 지내고 있냐?”
내가 물었다.
“나 뇌경색이야. 다른 말로 하면 풍을 맞은 거지. 몸이 마비되서 넉달동안 입원해 있었어.
회복이 되긴 됐는데 왼쪽 팔과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 짚고 다녀. 이젠 골프도 못 쳐.”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부서지던가 망가지게 되어 있다.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들리고
몸이 꿈띠어지고 걷지 못하게 된다. 암에 걸려 병원 침대에 누워 있을 수도 있다.
부처님은 죽는 사람을 보면서 너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라고 했다.
아픈 사람을 보면 너도 아플 것이라는 걸 배우라고 했다. 늙은 사람을 보면 너도
그렇게 늙을 것이라는 걸 깨달으라고 했다.
이번에는 마음의 오지에 숨어있던 한 현명한 노인이 혼령으로 떠올라 시간의 저쪽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환영을 느낀다. 그 노인이 내게 속삭인다.
‘인간에게 최대의 미혹은 삶에 대한 집착이오. 우리들이 자신이라고 믿고 있는 현재의
형체는 과연 자기일까? 나는 낮잠을 자다가 나비가 된 꿈을 꿨소
나는 사람이라는 걸 잊고 꽃향기의 바다위를 날아다녔소.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잘 모르겠습디다. 죽음이란 단지 이 형체에서 저 모습으로 형체를 바꾸는 데 불과한 것이오.’
나비 얘기를 하는 걸 보니까 그 노인은 장자였다. 나는 그 노인의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삶에 집착하지도 말고 죽음을 기피 하지도 않았으면 하오.세상을 떠난다고 슬퍼하지 마시오.
무심히 왔다가 무심히 갈 뿐이오. 하늘의 섭리가 나를 죽게 만들려고 하는데 안 죽으려고
하면 나의 잘못이 아니겠소? 늙고 죽는것도 생각하기 나름이오. 젊어서는 무거운 삶의
짐을 지고 괴로워 하지만 늙음은 편하게 되는 것이고 죽음은 쉬는 것 아니겠소?
그게 인간의 일생인 만큼 늙음과 죽음을 긍정해 보는 건 어떻소?’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삶의 진실을 마주하는 건 아닐까. 병이 들면 병이 든대로
환자로서 매일매일을 중요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은 아닐까. 매일매일 이외에 달리 우리들 인생은 없을 것 같다.
죽음의 원인도 하나님의 분부다. 지나면 짧은 삶이지만 생을 두고 끝까지 정진해야 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