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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이 무슨 뜻일지 생각을 해 보는 것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읽는다]라는 행위는 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고 분석하고 이해하고 내 생각을 정립시키는 행위를 모두 포함한 단어니까.
책에 들어가기전 제목에 대한 생각의 진전의 방법으로 'stain'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보고, 그럼 Human stain[인간의 얼룩(과오?)]은 어떤 것이 있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살면서 크고 작게 참 많은 실수들을 하고 그른 행동 (고의로 혹은 과실로) 하고, 그 것의 결과로 알게 모르게 자아의 형성에 영향을 받고 한 사람이 어른이 되어 간다.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이 되겠다고 제일은 가족에게 그리고 친구와 지인 그리고 일로 연관된 사람들과 업무에 얼마나 많은 실수와 고의와 과실로 과오들을 저질렀을지 돌아보는 것이 무서울 정도이다. 이 책은 미국이란 나라의 한특성 (다양한 피부색과 민족이 섞여 사는)을 배경으로 욕망 혹은 덜 상처입기 위해 선택한 삶의 끝이 그 최초의 선택으로 인해 어찌 흐르는지를 이야기 한다. 미국인였다면 더 쉽게 공감하고 이해 할 수 있는 책이겠다 싶다. 피부색으로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 한국은 아직까지 내가 아는 선에서는 문제화 되는 것이 아주 미미하므로 문화 자체가 달라 생기는 이야기들을 전제로 하는지라 덜 빠져들게 되기는 했지만, 뉴질랜드에 살면서 다민족과 다피부색의 사람들과 섞여 살게 되다보니 이 소설 속에서 다룬 이 피부색의 이슈도 적잖이 그리고 그 외 언급된 많은 이슈들이 계속계속 오랜 동안 머리에 남아 문뜩문뜩 다시 새김질을 하게되는 책이었다.
줄거리 : 『휴먼 스테인』에서 로스는 두 가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재―비밀을 지닌 주인공과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 사이의 정사―를 들고 나왔다. 패배를 모르는 복싱 선수였다가 이제는 교수가 된 콜먼 실크의 일대기가 이웃인 네이튼 주커만을 통해 펼쳐진다. 인종차별을 했다는 거짓 고발로 인해 대학 당국으로부터 비방을 들은 콜먼 실크는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아그라와 청소부 포니아. 문맹인 포니아는 아이들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베트남전 참전 군인인 난폭한 전남편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플래시백을 통해 브롱스에서 보낸 실크의 어린시절은 어마어마한 비밀을 감추고 있음이 밝혀진다―그는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서 당한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흑인인 것이다. 실크가 포니아와의 관계를 통해 얻게 되는 개인적, 성적 해방은 매우 놀랍다. 처음에는 단지 호기심 많은 관찰자였던 네이튼 주커만은 실크와 관계를 쌓아가기 시작한다. 이 책은 로스의 작품들 중에서도 강렬한 여성 캐릭터 때문에 특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사건에 대한 작가와 해석자의 역할 연구는 교묘하지만, 감정의 세계에서 객관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이 책은 더 단순하게 본다면 죄책감을 동반하는 비밀, 추측, 그리고 깨달음이다. 콜먼 실크는 불명예의 나락에 떨어진 전형적인 인간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작품에는 단순한 우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바로 판단과 수치, 위선으로 넘치는 미국 사회와 인간성 자체가 삶에 남긴 얼룩에 대한 은밀한 곁눈질이다. 이 책은 비록 겉으로는 사물의 흑백에 관한 작품이지만, 실제로는 잿빛의 천 가지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줄거리 요약은 내가 하는 편보다 이렇게 잘 요약 본을 가져오는 편이 나중에 내 기억을 불러들일 때 훨씬 좋은 듯.
잘 된 줄거리 요약이지만 '어떤오후'의 간단 소토리 요약을 하자면, 흑인인 콜먼은 머리도 좋고 운동도 잘하며 개인적인 역량이 뛰어나지만 미국사회에서 흑인에게 행해지는 부당함을 겪게 되면서 더이상의 부당함을 당하지 않기 위해 백인인척하며 살기로 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는 워낙 인종이 다양하니 살색이 흐린 흑인은 중동의 어느 국가나 지중해 국가의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믿을 수도 있겠다 싶다. 실제 한국인이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흔하다 보니 100%는 아니지만 가능한 일이겠다 싶은 부분이다. '유대인인척'살기로 결심한 콜먼은 자신의 계획을 견고히 하기 위해 유대인과 결혼을 하고 백인으로 삶을 산다. 그러던 중 수업시간에 지속적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을 spook ((유령이라는 의미이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흑인을 지칭하기도 하는 단어) 라고 지칭하면서 인종차별자라는 오명을 받고 총장직을 물러나게 되는데, 자신이 흑인임을 밝힌 다면 풀어질 오명이지만 평생을 백인인척 살았기 때문에 총장직을 물러나고, 그 일로 자신의 부인이 죽고 청소부 포니아를 만나면서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접하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다룬다. 인간의 스테인 (human stain) 특히나 미국 사회의 stain (인종차별, 클린턴 스캔들를 빗댄 성문화, 베트남 참전 군인 이야기를 통해 필요할 때 실컷 부리고는 후상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하는 사회 모습,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참 추악한 프랑스 여교수의 이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필립로스의 책은 두 번째이다. 첫번째 책이 '애브리맨' 이 책도 미국이란 나라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기에 이질감이 있긴 했지만, 내게 죽음이란 문제, 나이듦에 문제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었던 좋은 책이었는데, 휴먼 스테인은 애브리맨보다는 내겐 좀 덜 매력적이긴 했지만 (배경의 이질감), 내게 없던 여러 개념들 또 흐리게 자리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 예를 들면 인종차별, 나이를 불문한 인간의 성, 위악과 위선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던 책이었다.
밑줄들.
P,56
스모키에게는 부르주아적 우월감 같은 게 전혀 없었거든. 스모키는 맡은 일을 제대로,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해내고 있지. 아내와 아이들, 그것도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잘 건사하는 제대로 된 가장이라네,. 대학 안팎에서는 여전히 스포츠 영웅이고 지역사회에서는 여전히 인기 있고 사라들의 찬탄을 받는 인물이지. 그런데 그에게는 한 가지 재주가 있네. 그 모든 울타리에서 한 발짝 슬쩍 벗어날 수 있는 재주. (아주 탐나는 능력이로세)
P.60
사십 년간 콜먼은 해야 하는 일들만 해왔다. 그는 바빴고, 야수성이라는 본능은 상자 속에 치워뒀다. 그런데 이제 그 상자가 열렸다. 학장 노릇,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 학자와 선생 노릇은 끝났다. 책을 읽고 강의를 하고 논문을 집필하고 학점을 매기는 일도 다 끝났다. 일흔한 살쯤 되면 당연히 스물여섯일 때처럼 기운찬 호색한인 야수일 수 없다. 하지만 그 야수성의 잔재, 그 본능의 잔재는 남는다. 콜먼은 지금 그 잔재와 다시 접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콜먼은 행복하고, 그 잔재와 다시 접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콜먼은 행복하고, 그 잔재와 접촉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한다. 콜먼은 행복함 이상을 느낀다. 스릴을 느끼고 그 스릴 때문에 이미 그 여자에게 묶여버렸다. 아주 단단히 묶여버렸다. 콜먼을 묶은 끈은 가족이 아니다. 생물학은 더이상 그에게 소용없다. 그를 묶은 끈은 가족도 아니요, 책임감도 아니요, 긔무감도 아니며, 돈도 아니다. 철학의 공유나 문학에 대한 애정도 아니고, 위대한 사상을 놓고 벌이는 거창한 토론도 아니다. 그런 것들이 아니다. 콜먼을 그녀에게 묶어놓은 것은 바로 스릴이다. 내일 그는 암에 걸려 끝장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스릴을 느낀다.
P.64
그런데 말일세, 내가 자기를 차버리기로 마음먹었을 거라는 포니아의 말은 사실 정곡을 찌른 것이었네. 버몬트에서 돌아오는 동안 내가 생각한 것은 정확히 포니아가 내가 생각하고 있을 거라로 말한 그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그러지 않을 생각이네. 내가 가진 훌륭한 가치들을 포니아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고. 그건 다 지난 일이야. 이런 일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아네. 이런 일에는 보험도 들어둘 수 없다는 것도 알고. 활력을 되찾게 해준 계기가 오히려 날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실수에는 대게 섹스라는 가속페달이 달려 있다는 것도 알지. 하지만 지금 나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네.
P.75
"보세요. 무슨 이유에선지 분명 당신이 하는 일은 전부 무자비한 처사로 설명되고 , 델핀 루가 하는 일은 전부 미덕으로 설명돼요. 신화에는 거인이나 괴물이나 거대한 뱀이 잔뜩 등장하잖아요? 콜먼 당신을 괴물로 규정함으로써 그 여자는 자신을 영웅으로 규정하는 거죠. 이건 그 여자가 괴물을 물리치려는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무력한 존재들을 잡아먹은 당신에 대한 영웅의 복수죠. 이 여자는 이 상황 전체에 마치 신화 같은 지위를 부여하고 있어요."
콜먼이 응석이라도 받아주는 듯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비록 농담처럼 말한 것이긴 했지만 익명의 비난 편지를 호메로스 이전 방식으로 해석한 것이 별 소용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화에서는," 콜먼이 말했다. "그 여자의 심리 작용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없네. 그녀는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상상력이라는 자원을 갖고 있지 못하네. 그녀의 전문 분야는 가난한 농부들이 자신의 비참함을 설명하기 위해 늘어놓은 온갖 이야기야. 저주의 눈. 마법 걸기. 난 포니아에게 마법을 건 셈이지. 그 여자의 전문 분야는 마녀나 마법사 천지인 민담일세. " (민담은 상상력의 산물이 아닌가? 그런 것인가? 신화를 좋아하지만 민담도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들과 마녀들의 차이를 구분 못 하겠다. 나에겐 마녀와 마법사도 충분히 멋있고 매력이 있어서)
P. 76
그가 편지로 인한 불쾌함에 길길이 날뛰지 않도록 주위를 돌리려고 노력하는 동안, 나에 대한 그의 감정이 더 좋아지고 나 또한 그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는 걸. 난 지나치게 떠들어대고 있었고, 그건 나도 알았다. 나는 그렇게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열심인 나 자신에게 놀랐다.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많이 설명하고, 지나치게 개입하고, 지나치게 흥분했다고 느꼈다. 어릴 적에 새로 이사 온 소년을 보자마자 단짝을 발견했다는 걸 깨닫고, 그애의 관심을 끌로 싶다는 열망에 이끌려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며 스스로 원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을 열어 보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아이리스가 죽은 다음날 그가 내 집 문을 두드려대며 내게 'Spooks'라는 책을 쓰라고 제안했던 이후로 나는 콜먼 실크와 전혀 예상한 적 없고 계획한 적 없는 진지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나는 단지 정신 수련 차원에서 콜먼이 처한 고경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콜먼이 겪는 어려움이 내 일처럼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가 되었건, 매일같이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다른 데서 재미난 일을 찾을 생각 말고 꼭 해야만 하는 일에 전념하자고 스스로 단단히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은 고사하고 내 인생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정, 그 달콤함. 매번 조심하자고 하면서도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위와 같이 행동하는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였구나하는 안도감.)
P.76~78
그런데 나의 이 모든 깨달음은 얼마간의 실망감과 함께 찾아왔다. 사교 모임 자제, 오락 절제, 전문 분양에 대한 성취욕과 사회적 미망과 문화적 독소와 유혹적인 친밀감을 모조리 자발적으로 멀리하는 것, 종교적으로 독실한 사람들이 동굴이나 독방 혹은 외진 숲속의 오두막에 틀어박혀 세상과 연을 끊는 것과 같은 엄격한 은둔생활은 나보다 훨씬 더 독한 사람들이나 지속할 수 있다. 나는 고작 오 년을 혼자 지냈다. 매더마스카 산 속으로 몇 마일 올라간 데 있는 쾌적한 방 두 칸찌리 오두막에서 독서하고 집필하면서 보낸 오년. 오두막 뒤쪽엔 작은 연못이 있고 앞쪽에는 비포장도로를 건너 관목숲을 지나면 10에이커 정도 되는 습지대가 있었다. 그 습지는 이동중인 캐나다 기러기들이 저녁마다 들러 하룻밤 쉬어 가거나 참을성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푸른해오라기 한 마리가 찾아와 여름 내내 고독하게 물고기 사냥을 하는 곳이었다. 고통을 최소화하며 세상의 번잡함 속에서 살아가는 비결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당신의 미망을 믿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을 동요케 만드는 복잡한 관계들, 유혹, 기대 같은 온갖 것으로부터 떠나, 특히 스스로 만든 긴장감에서 벗어나 이 산골에서 혼자 살아가는 요령은 고요함을 체계화하는 것, 산꼭대기에 충만한 고요함을 자본으로 여기는 것, 고용함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재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를 둘러싼 고요함을 내가 선택한 유리함의 근원으로, 나의 유일한 친한 친구로 여기는 것이다. 그 요령은 (다시 한번 호손의 신세를 지기로 하자)"고독한 마음이 자신과 나누는 소통"속에서 생명을 이어갈 양식을 찾는 것이다. 생명을 이어갈 양식을 호손같이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재기가 뛰어났던 인물들의 지혜에서 찾는 것이다. 이 선택에 따른 갖가지 어려움을 제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사라져버린 모든 것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는 데도 오랜 시간과 해오라기 같은 참을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오 년을 그렇게 보내고 난 지금 나는 하루하루의 시간을 그야말로 정확하게 나누어 사용하는 데 능숙해져 내가 기꺼이 받아들인 평온한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간은 단 한 시간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 모든 시간이 필수불가결했고, 심지어 흥미롭기까지 했다. 나는 무언가 다른 것을 바라는 해로운 소망에 더이상 탐닉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와의 조속적인 교제는 두 번 다시 참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듣는 음악은 고요함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한 것이 아닌 고용함을 실체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매일 아침 맨 먼저 연못에서 심십분 정도 수영을 한다. 나머지 계절에는 아침에 글을 쓴 뒤, 눈이 많이 쌍인 날이 아니면 매일 오후 즈음 밖으로 나와 두어 시간 산길을 산책한다. 내 전립선을 앗아간 암은 재발하지 않았다. 예손다섯의 나이에 건강하고 별다른 병도 없이 일도 열심히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상황의 실상을 안다. 알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왜, 이 극단적인 은둔 실험이 고도하지만 모자람 없는 충분한 생활로 바뀐 지금, 왜 갑작스럽게 내가 외로움을 느껴야 하는가? 무엇에 대한 외로움인가? 사라진 것은 사라진 것이다. 엄격한 생활 태도를 누그러뜨릴 리도 없을 것이고 금욕을 해제할 일도 없을 것이다. 정확히 무엇에 대한 외로움인가? 간단하다. 내가 점점 혐오하게 되었던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내가 등돌렸던 것에 대한 외로움이다. 살메 대한 외로움이다. 삶의 번잡함에 대한 외로움인 것이다.
P.168
이스트오렌지 고등학교에서 콜먼은 교사들이 똑똑한 백인 학생에게는 용인이나 인정을 아낌없이 베푸는 데 비해 자신에게는 공평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 불공평함은 콜먼의 앞길을 가로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한 무시나 방해가 무엇이건 콜먼은 저장애물경주 정도로 받아들였다. 무적인 척하기 위해서라도 콜먼은, 월터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지나치지도 않을 일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무시해버렸다. 월터는 대학 대학 미숙축구 대표팀 선수에 성적도 좋고 피부색도 콜먼 못지않게 옅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모든 것에 콜먼보다 좀더 화를 냈다. 예를 들면, 백인 친구의 집에 갔는데 친구가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게 했을 때, 멍청하게도 친구라고 생각했던 백인 팀 동료의 생일에 초대받지 못했을 때, 월터와 방을 같이 쓰던 콜먼은 몇 달씩 그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다. 월터는 삼각법에서 A 학점을 받지 못하자 바로 선생을 찾아가 그 앞에 서서 그의 새하얀 면상에 대고 말했다. "실수를 하신 것 같습니다."선생이 채점기록부를 죽 살펴보고 월터의 시험 성적을 다시 확인하더니 월터에게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뻔뻔스럽게 :자네 점수가 그 정도로 높다니 믿을 수가 없었네"라고 말했고 그런 말로 속을 긁어 놓고 나서야 겨우 B 학점을 A 로 고쳐줬다. 콜먼 같으면 선생을 찾아가 성적을 고쳐달라고 요구하는 일 따위 꿈도 꾸지 않았겠지만, 애초에 그럴 필요도 없었다. 어쩌면 월터처럼 뻣뻣한 반항아로 찍히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운이 좋아서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남보다 더 똑똑하고 학업에서 뛰어나 월터만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찌만, 어쨌든 애초부터 콜먼은 A를 받았다. 그리고 7학년 때 어떤 백인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한 블로 떨어진 길모퉁이 공동주택에 사는, 그 건물 관리인의 둘째아들로 유치원 때부터 콜먼과 등하교를 같이했던 친구였다), 콜먼은 그 일을 백인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곧 디키 왓킨의 멍청한 엄마 아빠가 자신을 거부한 것이겠지 여기고 넘겨버렸다. 닥 치즈너의 권투교실에서 콜먼이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도 그를 불쾌하게 여기고, 신체 접촉이나 그의 땀이 묻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는 것을, 이따금 권투교실을 그만두는 아이도 있다는 것을 콜먼은 알고 있었다. 아마도 궈투든 뭐든 자식이 흑인 소년에게 배우는 것이 탐탁지 않은 부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욕을 절대 잊지 않는 월터와 달리, 콜먼은 결국 잊어버리거나 무시해버리거나 혹은 그런 척 행동할 수 있었다.
P.175
그는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을 보았고,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는 직관적으로 파악하고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쳤다. 작은 그들이 우리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규범을 강요하게 둘 수 없듯 거대한 그들이 자신들의 편견을 강요하게 둘 수는 없다. 우리와 우리라는 담화가 자행하는 폭압을, 그 우리가 내 머리 위로 쌓아올리고자 하는 모든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를 삼켜버리지 못해 안달이난 우리의 폭압, '여럿이 모여 하나'라는 음흉한 의식과 더불어 강압적이고 모든 것을 아우르고 역사적이고 피할 수 없는 도덕률인 우리를 그는 절대적으로 거부한다. 울워스의 그들이든 하워드의 우리든 마찬가지다. 그 대신 아주 명민한 있는 그대로의 나가 있다. 자아의 발견, 그것이야말로 라본즈에 정통으로 꽂히는 펀치였다. 독자성. 독자성을 지키기 위한 열정적 투쟁. 유일무이한 동물. 그 무엇과 관계를 맺든 계속 변화하는 것. 고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것. 자신에 대해 인식은 하지만 숨기는 것. 그만큼 강력한 게 또 있을까? "3월 15일을 조심하라 (시저가 암살될 거라고 예언된 날. 불길한 일에 대한 경고로 쓰이는 문구)." 개소리. 아무것도 조심하지 말라. 자유다. 두 개의 든든한 방벽이 모두 사라진 지금 - 형은 해외에 파병되었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콜먼은 다시 권력을 쥐었고, 뭐든 되고자 하는 대로 될 수 있고, 아무리 큰 목표라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고, 개별자로 서의 나가 될 수 있다는 마음속 깊은 곳의 확신을 따를 수 있다.
**가져온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