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25(화)■
(사도행전 21장)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묵상/행 21:1-16)
◆ 누가(Luke)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1)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의 전도팀을 가리키는데,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Luke)가 전도팀에 포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누가도 전도팀의 일원으로서 나름대로 많은 수고와 고생를 했을 텐데 사도행전을 기록한 자임을 밝히는 첫 인사말(행 1:1)을 빼고는 단 한 번도 누가 자신을 가리키는 '내가'라는 말을 쓰지 않았고 '우리가'라는 말만 사용했다. 따라서 사도행전을 읽는 사람은 누가(Luke)라는 인물을 의식할 수 없다. 그의 겸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함께 하는 형제들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5)
무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들의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이나 평가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진짜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다. 온 세상이 덤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교제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며 매우 귀한 자산이다.
70년대에 우리나라 대학가에 부흥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선교회가 생기고 대학 내에서는 여기저기서 대학생들이 성경을 펴고 말씀을 나누거나 함께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빌립의 가정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9)
전도자 빌립은 매일 바깥으로 나가서 전도하는 사람이었다. 에디오피아 내시도 전도했고, 사마리아에서도 전도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는 가정에는 소홀하여 자식들은 신앙생활을 안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빌립의 딸들은 모두 예언자였다!
한마디로 모두가 사역자이며, 아버지를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후원자들이었다.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가?
사역자들은 자기 가정의 자녀와 배우자가 신앙에 든든히 서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의 사역의 든든한 뒷배를 얻는 셈이고 더욱 의욕과 힘을 얻어서 활동할 수 있다. 내가 만나는 중국의 사역자 중에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부모나 자식을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는 말씀을 오해하여 집의 자녀들을 돌아보지 않는 자들이 많았다. 그것은 주님의 말씀을 오해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면 주님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부모나 자녀가 다른 어떤 성도보다도 최우선 양육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녀가 신앙에 든든히 서 있게 한 사람들은 사역에 더욱 집중할 수 있고, 자녀들이 훌륭한 후원자와 동역자들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 바울의 결심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13)
성령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당할 것을 경고하셨다. 여러 제자가 이 예언을 듣자 울면서 바울을 말린다. 이들이 바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령께서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잡힐 것을 경고하셨지만, 올라가라고도, 올라가지 말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마치 하나님께서 바울이 어떤 선택을 할지 두고 보시는 듯했다.
그런데 바울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고, 단호하게 결심했다.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아,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이며, 얼마나 귀한 충성인가?
바울처럼 나는 내 인생에서 최우선 순위가 '주 예수'인가? 주 예수님이 내 목숨보다, 내 재산보다, 내 가족들보다 더 우선인가?
바울은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했을까?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 목적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궁핍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교회에 이방인 교회에서 거둔 거대한 헌금을 전달하는 것이다(고전 8:20, . 이것은 이방인 교회와 유대인 교회가 주님 안에서 하나임을 증거하는 의미깊은 사건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영달이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과 유대인의 사도인 베드로가 만나서 온 세계의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없이 하나임을 확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의미깊은 역사적인 일이다.
바울은 자신의 의중을 고린도후서에서 밝혔다.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1)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고후 9:13)
따라서 바울의 예루살렘 방문은 결코 남에게 대신하게 할 수 없는 너무나 중요하고 역사적인 일이다. 자기 한 목숨 보존하고자 이런 의미깊은 일을 포기할 순 없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교회가 무엇인지를 밝혔다.
"그(예수님)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이방인과 유대인)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 2:14, 16)
아멘 , 주예수님, 주님께서 온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주님께서는 제 인생에서 최우선순위이십니다. 제 삶에서 교회의 하나됨을 잊지 않게 해주시고, 또한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