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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종격투기 원문보기 글쓴이: 조선미남
동물과 관련된 퀴즈 :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쥐는? 미키 마우스(Mickey Mouse)!
그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오리는? 도널드 덕(Donald Duck)!
그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곰은? 곰돌이 푸(Winnie the Pooh)!
이런... 꼽아놓고 보니 전부 미국 디즈니(Disney)사의 만화 주인공들이로군요! ^^
그럼 이번엔 약간 의견이 분분할 퀴즈 :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개는?
아마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사람마다 의견이 제각각일 것입니다. 디즈니사에서 일하는 이들은 플루토(Fluto)나 구피(Goofey)라 주장할 것이고, 옛날 헐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은 린틴틴(Lin-tin-tin)이나 래시(Lassie)라 주장할 것이고, 만화 "피너츠"(Peanuts)를 좋아하는 이들은 단연코 스누피(Snoopy)라 주장하겠지요.
그러나 디즈니사의 직원도, 옛날 영화나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도 아닌 보통 사람들도 "모두 한 눈에 알아볼만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쥐나 오리 또는 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역시 딱 하나입니다. 신문이나 잡지의 광고란에서, TV의 상업광고에서, 또는 레코드 상점의 쇼윈도우에서...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친숙한 개 "니퍼"(Nipper)입니다.
특히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거의 예외없이 네모난 상자에 붙은 길다란 나팔 앞에 고개를 갸웃하고 앉아 마치 나팔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귀여운 개를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개" 니퍼는 또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등록상표(우리나라의 연로하신 음악 애호가분들은 속칭 "개표"라 부르시더군요)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메이저 레이블 RCA의 상표인 "레드 씰"(Red Seal)"과 "골드 씰"(Gold Seal)에 바로 이 니퍼가 들어있습니다. 사실 니퍼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RCA뿐만아니라 오늘날의 EMI 및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약칭 DG)의 상표로도 공유되었으니만치 명실공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등록상표"라 하겠습니다.
현재 RCA의 등록상표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니퍼는 미국에서는 "RCA 개"(RCA dog)라는 별명으로 불리우고 있으며,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니퍼를 '미국 강아지'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니퍼가 '미국 강아지'로 불리우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니퍼는 원래 '영국 강아지'이기 때문이죠!
1. 니퍼의 "출신 배경"과 생애
1884년,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 시의 극장의 무대 배경을 그리는 화가인 마크 바로(Mark Barraud, 프랑스계 혈통이기 때문에 '바로드'가 아닌 '바로'로 발음합니다)는 어느 날 시내 거리를 돌아다니던 떠돌이 개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불테리어(bull terrier)와 폭스테리어(fox terrier)의 잡종인 이 개는 바로를 보자 그의 발치를 졸졸 따라다니며 퍽이나 붙임성있게 굴었고, 개가 하는 짓이 귀엽다고 느낀 바로는 결국 이 주인 없는 떠돌이 개를 집으로 데려와 키우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새로운 애견이 마치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그 뒤를 따라다니는 어린애처럼 유난히 사람들의 발치를 따라다니는 버릇을 갖고 있음을 안 바로는 그에게 영국 속어로 '꼬마둥이'를 뜻하는 "니퍼"(Nipper)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개의 이름이 탄생한 것입니다.
(니퍼의 유일한 사진)
니퍼의 새 주인 바로는 그러나 니퍼를 집으로 데려온 지 불과 3년만인 1887년 39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바로의 동생인 프란시스 바로(Francis Barraud)는 형의 장례식을 마친 뒤 니퍼를 자기 집에 데려가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형과 마찬가지로 화가인 프란시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틀리에에서 보냈고, 니퍼도 새 주인을 따라 아틀리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프란시스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당시 새로이 등장하여 어디서나 화제가 되고 있던 미국 에디슨-벨(Edison-Bell) 축음기 회사의 실린더형 축음기(cylinder phonograph)를 틀어놓고 작업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깐 붓을 놓고 쉬고 있던 프란시스는 문득 바닥에 내려놓은 축음기의 나팔관 앞에 니퍼가 고개를 갸웃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이내 프란시스는 니퍼가 그러고 앉아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고, 흥미를 느낀 프란시스는 자세히 관찰한 결과 니퍼가 '도대체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혀 나팔관 앞에 고개를 갸웃하고 앉아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골똘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죽은 형이자 니퍼의 전 주인인 마크를 생각하고, 아마도 니퍼는 축음기의 나팔관에서 마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란시스와 몇 해를 함께 산 니퍼는 그 뒤 아들과 둘이서만 살고 있던 프란시스의 형수(즉 마크의 미망인)의 적적함을 달래주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보내졌고, 그 곳에서 1895년 9월에 늙어 죽었습니다. 프란시스와 그의 형수, 그리고 조카(즉 마크의 아들)는 킹스턴-어폰-템즈(Kingston-upon-Thames)의 공원 안 뽕나무 아래에 니퍼를 묻었고, 조그마한 비석도 세워주었습니다. (이 작은 무덤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개의 무덤으로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2. 그림으로 부활한 니퍼 - "His Master's Voice"
니퍼가 죽은 뒤에도 축음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귀여운 니퍼의 이미지는 프란시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1898년부터 프란시스는 니퍼가 에디슨-벨社의 실린더형 축음기의 나팔관 앞에 고개를 갸웃하고 앉아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유화(油畵)를 그리기 시작하여 1899년 2월 11일 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프란시스는 처음에는 이 그림에 "축음기를 바라보며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개"(Dog looking at and listening to a phonograph)라는 단순하고 설명적인 제목을 붙였으나, 이내 "그의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로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니퍼가 축음기의 나팔관에서 마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상상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His Master's Voice의 오리지널 버젼 : 에디슨-벨 포노그래프 축음기를 듣고 있는 니퍼)
그림을 완성한 뒤, 프란시스는 문득 이 그림을 에디슨-벨社에서 자사(自社)의 축음기 광고에 사용하고 싶어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그 그림에는 에디슨-벨社의 축음기가 그려져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프란시스는 이 그림을 가지고 에디슨-벨社의 런던 지사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런던 지사의 운나쁜 (동시에 무척이나 센스없는) 홍보담당 직원은 그림을 보고는 "개는 축음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듣지 않아요"라며 그림을 구입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참, 상상력도 부족하죠?)
실망한 프란시스는 그림을 다시 아틀리에로 가져와 그대로 벽에 걸어두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틀리에를 방문한 프란시스의 친구는 프란시스로부터 에디슨-벨 회사에 그 그림을 가지고 갔다가 퇴짜맞은 얘기를 듣고, "어두운 색깔로 흐릿하게 그려진 나팔관 대신에 금빛으로 빛나는 나팔관을 그려 넣으면 그림이 훨씬 돋보일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친구의 충고에 동의한 프란시스는 그림을 싸들고 때마침 런던의 메이든 레인(Maiden Lane) 거리에 개업한 신설 축음기 및 레코드 회사인 그라모폰 축음기 회사(Gramophon Co., Ltd.)로 금빛 나팔관을 빌리러 찾아갔습니다.
그라모폰社의 담당자들을 만난 프란시스는 자신의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그림을 보여주며 금빛 나팔관을 잠깐만 빌려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그라모폰社의 사장 윌리엄 배리 오웬(William Barry Owen)은 프란시스의 그림을 보고 '이거 광고 되겠는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웬은 프란시스에게 이 그림을 팔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미 에디슨-벨社에 그림을 팔려고 시도해보았던 프란시스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했고, 오웬은 즉석에서 "그림 속의 실린더형 축음기를 그라모폰社의 신제품인 디스크형 축음기로 바꾸어 그린다면" 이 그림을 그라모폰社의 선전용 그림으로 사겠노라고 제안했습니다.
가난한 화가인 프란시스는 이 제안을 쾌히 받아들였습니다. 1899년 9월 15일, 실린더형 축음기를 디스크형 축음기로 수정한 새 그림을 들고 프란시스는 다시 그라모폰社를 방문했고, 그라모폰社는 프란시스에게 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인 100파운드(50파운드는 그림값, 50파운드는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이 그림과 그 저작권을 넘겨받았습니다. 지금도 런던에 위치한 EMI(그라모폰社의 후신) 본사 건물 안에 걸려있는 이 그림을 옆에서 비스듬히 보면, 디스크형 축음기 바탕에 본래 그려져 있던 실린더형 축음기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친다고들 합니다.
(His Master's Voice의 새로운 버젼 앞에서 포즈를 취한 프랜시스 바로)
3.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개가 되다!
그라모폰社는 프란시스의 그림 "His Master's Voice"를 "개와 트럼펫"(Dog and Trumpet)이라는 제목 아래 신제품 디스크형 축음기의 광고에 사용했고, 그 결과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좋은 반응을 얻자 프란시스에게 장기 계약을 제의했습니다. 이리하여 그라모폰社와 장기 계약을 맺은 프란시스는 "His Master's Voice"의 정교한 복사본을 계속 그렸습니다. 프란시스는 묘하게도 처음 이 그림을 수정할 당시와 똑같은 방법으로 복사본을 그렸으니, 즉 먼저 에디슨-벨社의 실린더형 축음기가 들어간 그림을 그린 다음 그 위에 그라모폰社의 디스크형 축음기를 덧칠하여 그리는 방법을 고수했던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물론 알 길이 없습니다.)
("His Master's Voice"의 최종 버젼)
1900년 5월, 디스크형 축음기인 그라모폰의 발명자이며 그라모폰社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독일 태생의 기업인 에밀 베를리너(Emil Berliner)는 런던의 그라모폰社를 방문했는데, 그라모폰社 건물에서 이 귀여운 강아지와 축음기 그림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버렸습니다. 결국 이 그림의 판권을 그라모폰社로부터 사들인 베를리너는 미국으로 돌아가 1900년 5월 26일 자신이 새로이 설립한 축음기 및 레코드 회사의 등록상표로 등록하고, 이어 이 회사의 캐나다 지사인 캐나다 그라모폰社에서 출반하는 음반에도 사용하기 위해 캐나다에서도 등록했습니다.
(미국 특허청의 등록상표 등록서류(등록번호 34690) : 1900년 7월 10일 최종 등록 처리된 "His Master's Voice" 상표)
등록 당시의 상표명은 "니퍼와 그라모폰"(Nipper and the Gramophone)이었으나, 후일 결국 이 그림의 본래 제목인 "His Master's Voice"로 바뀌었습니다. 이 때 베를리너가 설립한 축음기 및 레코드 회사가 빅터 토킹 머신 회사(Victor Talking Machine Co.), 바로 오늘날의 RCA Victor 회사입니다.
1900년 가을 무렵, 캐나다 그라모폰社의 모든 레코드 라벨에는 "His Master's Voice"라는 타이틀과 함께 니퍼 그림이 등록상표로 등장했습니다. 이듬해인 1901년 10월부터는 미국 빅터 토킹 머신社의 레코드 라벨에도 이 새로운 등록상표가 등장했습니다. 당시는 마침 베를리너의 디스크형 축음기가 에디슨의 실린더형 축음기를 밀어내고 축음기의 표준 규격으로 자리잡기 시작하던 무렵으로, 니퍼와 "His Master's Voice"는 대번에 유명해지면서 축음기와 레코드를 상징하는 대명사적인 상표로 떠올랐습니다.
이 새로운 상표는 당시 니퍼의 등장을 알리는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는데, 이 광고 문구는 사실 부분적으로는 니퍼가 축음기의 나팔관에서 전 주인 마크 바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프란시스 바로의 상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귀여운 강아지 니퍼는 음악을 유난히 사랑하는 주인 곁에서 음악을 즐겨 듣곤 했다. 주인은 늘 빅터 토킹 머신社의 그라모폰 축음기로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주인이 일찍 타계하자 니퍼는 밤낮으로 슬퍼하며 주인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니퍼는 지금도 주인이 생전에 즐겨 듣던 곡인 베버의 피아노곡 "무도회에의 권유"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면 냉큼 축음기 앞으로 달려가 고개를 갸웃하고 앉는다 - 혹 음악이 끝난 뒤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가 들려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퍽이나 감상적인 이 광고 문구는 축음기와 레코드의 가장 중요한 수요층인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덕분에 그라모폰 축음기와 디스크형 레코드는 더욱 날개돋친 듯이 팔려나가 에디슨-벨社의 포노그래프 축음기와 실런더형 레코드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데 적지않은 공헌을 했습니다.
빅터 토킹 머신社와 그라모폰社는 서로 지분을 공유하는 관계이기도 했기 때문에 "His Master's Voice" 상표도 두 회사에 의해 공유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맨 처음 이 그림을 발굴해낸 영국에서는 이 그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었으니, 영국 그라모폰社에서는 이미 천사가 깃털 펜으로 디스크의 홈을 파는 '엔젤' 그림을 상표로 사용해왔기 때문입니다. (최근까지 EMI의 클래식 음반에 쓰였던 바로 그 상표입니다.)
그러다가 1909년에서야 처음으로 니퍼 그림이 영국 그라모폰社 레코드의 상표로서도 쓰여졌고, 이듬해에는 "그라모폰"(Grammophone) 대신에 "His Masters Voice" 타이틀을 니퍼 그림과 함께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 상표는 1991년 3월 빨간색의 "EMI Classic"라는 새로운 로고가 채택될 때까지 유럽 대륙의 EMI 지사(프랑스 지사인 Pathe-Marcony, 독일 지사인 Electrola 등)에서 발매되는 음반들의 레코드 재킷을 장식했습니다. (영국 EMI 본사에서 발매되는 음반에는 엔젤 마크가 주로 쓰였습니다.)
역시 베를리너에 의해 설립된 레코드 회사인 독일 그라모폰社, 즉 오늘날의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 약칭 DG)社에서도 역시 이 귀여운 상표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RCA, EMI 및 DG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져나온 가지들입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각국의 회사들간의 유대가 약화됨에 따라 상표권 문제가 부각되고, 이로 인해 RCA를 제외한 각 회사들이 새로운 상표들(DG의 경우 튜울립 무늬로 장식된 노란색 바탕의 사각형 상표)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등록상표"라는 명성이 희석된 것은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니퍼가 그려진 RCA의 LP 레코드 라벨)
이 세계적인 상표 "His Master's Voice"를 창안한 장본인 프란시스 바로는 1924년 8월 29일, 6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음 니퍼 그림을 그라모폰社에 판 이후 타계할 때까지 그가 니퍼 그림으로 거둬들인 총 수입이 무려 5백만 파운드에 이르렀다고 하니, 형으로부터 물려받은 강아지 한 마리가 그에게 참으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가져다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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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까페 "옛 거장들을 기리며"(http://cafe.daum.net/memoriam)에 활동하셨던
보카치오(Boccachio)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첫댓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저두 재미있게 읽었네요.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어렴풋이 들은 이야기를 자세하게 알게되었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