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후들
- 정우영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눈이 아프고 귀가 울린다.
형벌인가.
봐야 하는데 못 본 것인가.
보고도 못 본 척한 것인가.
따져보고도 싶지만
우선 아프니 뭐든 다 인정할게요.
두 손 번쩍 들고 만다.
귀는 왜 울어요, 묻지 않는다.
잘못 알아들은 게 수백 번은 될 게다.
못 들은 체 외면한 사정들은 또 얼마나 숱한가.
귀가 운다고 감히 말릴 수 없다.
멍하니 눈 열어 보고 듣다가
눈 감고 귀 닫고 나와 베란다를 서성인다.
왜 그럴까.
눈과 귀라는 감각기관을 움켜쥔 이물감은
고요할수록 기승을 부린다.
이제 더 이상 적막은 없다.
누군가의 고요와 무엇인가의 적막을,
아랑곳없이 마구 할퀴었을까.
그들의 상심이 고저를 타고 내게로 와
눈은 서걱거리고 귀는 쎄하게 앓는다.
나무와 풀과 물과 바람은 아니겠지.
복수 대상이 될 만큼
난 그이들 괴롭히진 않았으므로.
혹시 명이거나 정이거나 그런 이름들일까.
깊은 생채기가 남았을까.
너무 늦어 돌이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눈과 눈, 귀와 귀 맞대고 속삭이고 싶다.
호, 하고 불어줄게.
말끔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좀 낫지 않을까.
입김이 채 마르기도 전에
눈엔 비문이 떠다니고 귀는 떠르르 울린다.
아닌가 하고 숨 고르는 새,
혁명은 심장에 있다*고 당신이 울부짖는다.
살구꽃 그늘 고이는 토방 마루에 앉아
꽃타령이나 하려던 눈과 귀가 씰룩인다.
분분이 날리는 꽃잎처럼 터지는 살육들
잊지 않기 위하여. 받아 적기 위하여.
차마 부끄럽고 서투른 항거일망정
눈과 귀가 어지러운 건 이 뜻이었구나.
* 미얀마 저항시인 켓티의 말.
“혁명은 심장에 있다”는 내용의 시를 발표하고 난 뒤,
오래잖아 그는 심장 없는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ㅡ계간 《청색종이》(2022, 가을호)
**************************************************************************************************************
예로부터 세상이 변할 때는 그 어떤 징후들이 미리 나타난다고 합니다
다만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경우가 많아서
지나고나서야 그게 그 징후였구나 하고 느낄 뿐이라지요
건강에 이상이 생길 때는 이런저런 징후들을 분명하게 느끼지요
입맛을 잃고 관절이 아프거나 시력이 떨어지며 이명이 울리고 두통도 찾아오는 등...
그러나 사회적 문제 또는 국가적 문제에 이르면 청맹과니가 됩니다
공연하게 핏대나 세우면서 불평불만에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눈도 귀도 닫고 살고 싶은데 하릴없이 새소식을 퍼나르는 언론이 왜 그리도 많은지...
새해 벽두부터 손녀들을 돌보고 있어서 그나마 외부로부터는 단절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