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朝鮮칼럼 The Column
독일 축구 몰락의 원인이 된 ‘50+1’ 규칙[朝鮮칼럼]
조선일보
조형래 산업부장
입력 2022.12.13 03:20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2/12/13/CIGBUWIFMNG2NI3LDGMJ2AK4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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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본의 구단 소유 제한, 리그 경쟁력 저하로 이어져
독일의 노동이사제도 기업 혁신만 저해한다는 비판
노조 동의 없이는 공장도 못 짓는 한국에서 잘 정착될까 걱정
“축구는 단순한 경기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아다닌 뒤 결국 독일이 이긴다.” 영국 축구의 레전드 게리 리네커는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4강전에서 독일에 패하고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과거 독일 대표팀은 아무리 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들어도 4강 안에 들었다. 그런 극강의 독일 축구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이어 연속으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일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독일의 저말 무시알라(왼쪽)가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은 채 슬픔을 삼키고 있다. 독일의 베테랑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가 그를 위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많은 전문가는 독일 축구 몰락의 이유로 ‘50+1′ 규칙을 꼽는다. 독일 구단 지분의 ‘50+1′퍼센트를 클럽의 팬과 회원들이 소유해야 한다는 것으로, 특정 기업이나 개인은 49% 이상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자국 리그가 지나치게 상업화되는 것을 막고 구단 서포터이자 회원들이 평등하게 구단 경영에 참여하자는 취지다. 노동자들의 축구 클럽에서 출발한 독일 축구 구단의 역사와 철학이 반영된 규칙이라고도 한다. 이론상으로는 더없이 근사하게 들린다. 실제로 이 규칙 덕분에 독일 리그 관람료는 다른 유럽 리그의 절반 이하로 싸고, 충성심 높은 팬이자 주주들은 경기 때마다 축구장으로 몰려든다.
그런데 문제는 독일 축구 리그의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점이다. 하위 팀이 상위 팀을 이기려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처럼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같은 거부(巨富)가 구단을 인수해 대대적인 투자를 해야 하지만, 독일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 탓에 독일 리그는 스포츠의 생명인 순위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주말 경기가 끝날 때마다 순위가 요동을 치는 잉글랜드 리그와 달리, 독일 리그는 2012년 시즌부터 10년 내내 바이에른 뮌헨이 우승을 차지했다. 유럽 국가 리그의 상위 4팀이 유럽 최고 클럽을 다투는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도 바이에른 뮌헨을 제외하면 존재감이 전혀 없다. 또 손흥민처럼 뛰어난 선수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줄줄이 다른 나라 리그로 떠나 버린다. 오죽하면 매년 우승하는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이 나서서 “50+1 룰을 폐지하지 않으면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50+1 룰은 포퓰리즘”이라고 거세게 비난했을까 싶다.
뮌헨이 리그 10연패를 달성한 데에는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바이에른주(州)를 연고지로 한다는 점도 큰 요인이다. 알리안츠·아우디·지멘스·아디다스 등 뮌헨 소재의 독일 대표 기업들이 구단의 주주이자 스폰서 기업이므로, 가난한 지역에서 연고지를 마련한 구단들은 죽었다 깨나도 뮌헨을 따라잡을 수 없다. 공정을 위해서 만든 룰이 거꾸로 상승의 사다리를 걷어찬 격이다.
‘50+1′ 규칙이 독일 기업 경영에는 노동이사제라는 이름으로 반영된다. 독일은 현재 고용 규모가 500명이 넘는 회사에서는 이사진의 3분의 1에서 최대 절반까지 노동이사를 둬야 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노사 양측에서 동시에 비판받고 있다. 노 측에서는 경영에 대한 감독권만 갖는 노동이사를 두고 “구멍이 숭숭 뚫린 제도”라고 비판하고, 경영계에서는 “기업 혁신의 발목을 잡는 관료주의”라고 비판한다. 독일 시가총액 1위 기업인 SAP의 기업 가치가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의 숫자가 미국·중국·인도 등 경쟁국보다 현저히 뒤지는 것도 겉만 번지르르한 노동 관료주의 탓이라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수출은 중국, 에너지는 러시아에 의존하는 좌파적 글로벌 연대 전략과, 탄소 중립·탈원전을 동시에 달성하겠다는 환경 이데올로기를 주창해온 독일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총성 한 방에 찬물을 뒤집어 쓴 분위기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독일 대표 화학 회사인 바스프는 에너지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공장 가동을 줄이고 있고, 독일이 자랑하는 강소 기업 4곳 중 한 곳이 저렴한 에너지를 찾아 해외 이전까지 고려해, 제조업 공동화 우려까지 나온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8월부터 130개 공기업과 공공 기관에 노동이사제가 시행됐다. 노조의 동의를 못 구하면 공장도 못 짓는 나라에서 이 노동이사제가 어떻게 기업과 경제의 발목을 잡을지 걱정이다. 경제가 곧 안보(安保)이며 기업이 무기화되는 지금 시대에는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과 신념보다는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우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