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선연(善緣, a good connection)도 있고 악연(惡緣, an evil connection, aghast)도 있다. 선연이든 악연이든 그 관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진다. 요사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악연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된다. 이들의 악연은 적어도 3,500년이나 되는 오래된 악연이니 오늘의 분쟁만 보고는 그들이 양태(樣態)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들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을 보면서 그 지방에서 3,100년 전에 있었던 두 사람 간의 악연을 연상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현군(賢君)으로 알려진 다윗은 젊은 시절 그와 가장 가까워야 했을 당시 왕인 사울과의 악연으로 10여 년을 도피 생활을 했다. 얼마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겠는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국내에서뿐 아니라 이웃 나라 모압(현 요르단)과 블레셋 땅(지금 하마스가 차지하고 있는 가자지구는 당시 지명은 “가사”) 5성읍 중 한 곳인 가드(현재는 이스라엘에 편입되었음)로 도피했었다. 이런 외국으로의 도피는 상당한 위험을 감내해야 했었다.
두 사람 사이가 왜 악연이 되었을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다윗은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쳐 죽인 용사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이겼다. 이스라엘 여인들 사이에 다윗은 만만을 죽였고, 사울은 천천을 죽였다는 노래가 퍼졌다. 사울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질투심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윗을 왕권 도전자로 간주(看做)하게 되어 그를 죽이려 한 것이다. 다윗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처지고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쫓기는 몸이 되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악연이 된 것은 사울 왕의 의심에서 생긴 것이다. 다윗은 사울에게서 국가유공자로 상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 오히려 쫓김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구약 성서 가운데 사무엘 상의 19장부터 30장까지 무려 12장이 다윗의 도피 생활을 기술하고 있다. 다윗은 무려 15곳으로 도피했었다.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는 그가 당한 고난은 어떠하였겠는가! 위협을 느끼면 쫓겨 다니는 사람의 심정은 어떠하였겠는가!
그러나 쫓는 사람과 쫓기는 사람의 정신 상태는 무엇이 달랐겠는가? 사울도 불안하고 초조했겠지 죽여야 하는데 왕권도전자는 아직 살아있으니 그는 항상 제정신이 아니었다. 심리적 공황상태이었다. 그래서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살인을 하게 되고 사람으로서 기본 도리를 못 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니 두려움이 그를 지배하였다. 그러면 사람은 무력하게 된다. 사울은 1011 BC에 블레셋과 길보아 산에서 전투를 하게 되는데 이런 상태에서 패배는 분명한 것이다. 여기서 사울은 두 아들과 같이 전사하게 된다. 불행한 일이다. 사울이 만든 다윗과의 악연은 스스로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사울이 느낀 불안감, 공포와 초조함은 다윗이 만든 것이 아니다. 사울 스스로가 그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정신적 문제에서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그리고 허물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우리 대부분이 많은 문제를 갖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자신의 정신적 갈등에서 생긴 것임을 알아야 한다. 내 문제이다.
반면 다윗은 어떠했을까? 외부로부터 온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대응을 했겠지,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를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믿음,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 같은 것이 그를 잘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 이는 몇 가지 실증적 자료로 알 수 있다.
다윗이 도피 생활을 한 10년 동안에 사울 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극한 상황에서 어느 사람이 원수를 죽일 기회에 살려주겠는가! 그러나 다윗은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이니 나는 그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 믿었다. 그 마음에 믿음이 없었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윗이 도피 생활을 할 때 많은 무리가 다윗을 따랐왔다. 이는 무리가 다윗에 대한 어떤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도피 생활을 하는 사람을 추종하겠는가! 사람들은 다윗이 지금은 도피 생활을 하지만 결국 그가 왕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을 성군으로 만든 것이 고난이다. 물론 그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좋은 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고난을 통해서 진정 하나님과 사귀는 시간을 갖게 된다. 시편에 수록된 그의 시는 고난 중에 쓰인 것이 많다. 절실한 상황에서 쓰인 시는 체험에서 나온 것이지 글 장난이 아니다. 이런 시들이 문학적으로도 높게 평가되는 것이다. 고난으로 다듬어지고 왕으로서 자질을 기르는 계기가 되었다.
다윗은 잘못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회개를 한 사람이다. 대비해서 사울은 잘못했을 때 변명으로 일관했었다. 정신세계가 건강한 사람은 잘못을 바로 시인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정신적 건강의 척도이다. 따라서 그는 회복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사울은 회복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죄를 짓는 일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회개하지 않는 것이다. 이로 끝장이 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고난이 닥쳐올 때 어떤 사람은 발전의 계기가 된다. 반면 어떤 이는 몰락의 시간이 된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는 사람은 발전의 계기가 되지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고난 중에도 긍정적 사람은 너그러움,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극복의 의지를 갖는다. 우리의 삶에는 고난이 올 때가 있다. 믿음으로 긍정적 자세를 가지면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참고 자료로 다윗의 도피 생활을 공간과 시간에 따라서 배열한 자료를 다음에 올린다. 참조하기 바란다.
* 다윗의 도피 경로(지도) https://enjoytoo.tistory.com/98
2024년 2월 9일
김정권
대한예수교 장로회
대구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
대구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