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서면 영광도서 앞 한식집에서 여경주가 밥을 샀다.
황규성과 셋이서 만났는데 되기 고급집은 앙이지만 그런대로 품위가 있는 집이었다.
바로 영광도서 맞은 편이라 교통이 좋고 찾기 쉬워 주로 중늙은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집이었다.
점심 시간이었는데, 규성이는 술 안 마시고 경주와 둘이서 한잔 하며 떠들다 보니
다른 손님들은 다 나가고 우리 세 명만 남았다. 한잔 들어가니 우리 두 사람의 목소리가 유독 컸다.
접시 바닥에 남은 정구지 찌짐까지 다 긁어먹으며 소주를 더 시키니 인상이 좋을 리 없었다.
안주 그릇을 다 비우고 나오면서 경주가 카운터 아줌마한테 큰소리로 말했다.
"아이매, 우리 을메요?"
경주는 친한 사람한테 '아지메!' 한다. 예전에 우리집에 놀러오면 교대 후배인 내 마누라한테도 그랬다.
카운터에서 우리가 빨리 일어서기만 기다리고 있던 아줌마가 말햇다.
"아저씨도 차암, 좋은 말 다 놔 두고 아줌마가 뭐요? 내 이집 열고 아지매 카는 손님 처음 보네."
한 마디로 예의 없고, 무식하다는 투였다. 불쾌한 표정이 역력했다.
경주가 발끈해서 되받앗다.
"그라모 아지매는 아지매 앙이고 아저씨요? 아지매 보고 아지매 카는데 거기 뭐가 기분 나뿌요?
그라모 사장님, 마담 카모 기분 좋소?"
나는 옆에서 재미가 있어 히죽히죽 웃으며 더 보굴을 채웠다.
"아줌마, 이 사람이 예전에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라 우리말을 좋아해서 그래요."
그러자 '사장'인지 '까오 마담'인지 모를 '그 여자'는 멀거니 쳐다보며 입을 다물고 말앗다.
규성이는 술 안 마신다고 먼저 떠나고 우리 두 사람은 2차로 허름한 막걸리집에 갔다.
경주 사투리가 재미있어 내가 말했다.
"경주야, 니 놋떼기, 짝수바리가 뭔지 아나?"
"놋떼기는 겨울철에 시골 촌놈들이 학교 가기 싫어 논두렁 밑에서 불장난 하며 학교 안 가고 땡땡이 치는 거 앙이가.
그런데 짝수바리? 그거는 잘 모르것는데?"
짝수바리는 종합 월간지의 '사라져가는 것들' 화보에도 나왔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옛날에 냉장고가 없을 때, 시골 부잣집에서 제사라도 지낼 때
부침개나, 산적, 생선찜, 나물 등을 해서 쉬지도 않고, 쥐도 못 달라들들게 높은 곳에 보관하는 나뭇가지다.
주로 뒤뜰 장독대에 세워놓았는데 높이는 키 큰 사람의 손이 겨우 닿을 정도고, 팔뚝만한 나무 기둥 위에 가지가
삼발이로, 그 위에다 바람이 잘 통하는 대바구니에 음식을 담아서 보관햇다.
쥐는 못 덤비지만 인쥐가 도둑질을 햇다. 누구네집 제삿날을 빤히 아는 동네 처녀총각들이 모여 조상님 먼저
조금 실례를 하는 것이다.
서울 강남 신사동에 "하모"라는 식당이 있다. 일본식 장어 전문 식당(はも)인 줄 알았더니
진주 사투리 '하모'라고 한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하는 뜻의 하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