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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아침. 도쿄에 사는 평범한 소시민 이케다는 매일 아침에 하던대로 차를 마시며 자신이 구독한 오늘 아침에 발행한 아사히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늘 그렇듯 평범한 기사들이나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신문 1면을 본 그는 되감기를 하듯 방금 마신 차를 그대로 뿜고 말았다.
[관동군 대좌 도이하라 겐지 여순에서 피살. 범인은 장학량의 동북군 소속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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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여순의 관동군 사령부는 정신이 없었다. 도이하라 겐지 피살 사건 소식이 언론을 탄 이후 관동주는 물론 조선, 내지, 대만, 남양군도, 가라후토(남사할린) 등 모든 곳에서 이게 무슨일이냐며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관동군 사령부는 걸려온 전화에 ’수사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정도의 말을 하며 응대하였다. 사실 관동군 사령부 입장에서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 관동군 일반병들과 하사관들이 도이하라의 원수를 갚겠다며 사령부에 1분 단위로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빨리 출정 명령 내려주세요.‘라며 때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성, 영관급 장교 등 지도부도 도이하라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좀 더 준비를 하고 출병에 나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원수를 갚겠다며 전의를 불태우는 사병들을 진정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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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날 오후 호소카와의 집에서는 어젯 밤에 도이하라를 암살한 주역들이 모두 모였다. 이제 만주 출병의 작전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시와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출병의 명분을 만든다는 계획은 성공했으니. 이제 우리는 병력을 운용할 작전계획을 수립해야 하오. 또한 질적으로는 우리에게 열세지만 숫적으로는 매우 우세한 동북군을 상대할 방법 역시 강구해야 하오.
그리고 돌발변수가 하나 생겼는데...“
이시와라는 말 끝을 흐리더니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현재 우리 측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약 1만 5천명이오. 추가로 내지에서 병력을 더 보내준다고 했으니 다음 달이면 3만 정도로 불어날 거요.
그런데 오늘 아침 흥미로운 전화를 받았소. 조선군 사령관 하야시 장군 각하가 병력 파견을 선제 제안하셨소이다. 조선군이 합류한다면 지금 당장 5만명, 다음 달에 관동군에 증원될 병력까지 합하면 무려 8만에 가까운 병력을 운용할 수 있소.
그러나, 하야시 대장 각하가 당도한다면 계급상으로 우위에 있는 조선군에게 작전의 주도권을 빼앗길 우려가 있다는 점이 문제지. 어찌하는 게 좋다고들 생각하시오?“
그 말을 들은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조선군이 합류한다면 전투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작전의 주도권을 빼앗기면 내지의 영향력이 강화되지 않겠는가? 관동군과 달리 조선군은 이들의 대의를 알지 못하고 설사 알더라도 내지에 꼰지르지 자신들에게 합류할 가능성은 적으니 자신들이 추구하는 대의의 진행에는 큰 장애물이 될 것이기에.
그리하여 조선군의 합류를 막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제일 먼저 가네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음? 중좌. 그건 안될거외다. 지금 만철 위탁경영에 문제가 생겨서. 임금을 못 줄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 '예정'이거든요.“
”그게 무슨 소리요?“
가네다는 등을 의자에 기댄 후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았다.
”현재 조선의 철도는 우리 만철에서 위탁경영을 하고 있소, 그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조선군이 병력을 보내려고 해도 안 될거 아니오? 다들 산넘고 물건너서 걸어 오겠다면 상관없겠지만.“
”호오.“
가네다가 철도 파업을 촉발시켜 조선군이 출동할 수 없게 만들자는 제안을 하자 이시와라는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들었다. 가네다 다음으로 김필중이 입을 열었다.
"그... 제가 조선의 노조 쪽에 연줄이 있습니다. 그쪽에 제가 연락을 넣어 총파업을 일으키게 해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조선에서 총파업이 일어난다면 조선군이 애를 먹겠죠.“
사실 김필중이 연줄이 있다는 노조는 다름 아닌 홍명희, 안재홍 등 조선 독립운동가들이 창설한 신간회였지만 김필중은 본인의 정체를 드러내면 손해라고 생각해 일부로 노조라고 돌려 말했다.
”나쁘진 않소. 조선군의 파병을 막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니 말이오. 노조든 농민조직이든 조선군 파병만 막아준다면 그만이지. 투 트렉으로, 가네다 상이 철도 노동자 파업을. 김 상이 노동자 총파업을 일으켜 조선군 출동을 막도록 합시다.“
”그러죠.“
”좋습니다.“
”그럼 이걸로 조선군을 막는 방책은 준비가 되었고. 이제 장학량군을 어떻게 상대할 지가 문제로군...“
이시와라는 말 끝을 흐리며 호소카와를 바라보았다. 그 신호를 캐치한 호소카와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현재 관동군의 전력은 1만 5천, 동북군은 20만입니다. 하지만 동북군의 주력 및 정예사단들은 모두 관내(산해관 남쪽)에서 공산당을 때려잡는데 동원된지라 만주에 남아있는 이들은 2선 또는 예비대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12만으로. 우리의 8배나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차이를 1/3 정도로 좁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호소카와는 김상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김 상. 김 상의 단은 지금 몇 명을 동원할 수 있습니까?“
”총원은 1만이나. 장학량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경비로 돌려놓은 병력을 제외하면 지금 우리 측에서 동원할 수 있는 숫자는 6천 정도입니다.“
’6천... 6천이라...”
지금 관동군 병력 1만 5천에 김상덕의 마적단 6천을 더하면 2만 1천. 12만인 동북군의 1/6 수준이었다. 그때 후네스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후네스키는 그렇게 말하곤 방 밖으로 나갔다. 한 2분 정도가 흐르고 후네스키가 오른손에 종이 한 장을 펄럭 흔들며 돌아왔다.
”해군 사령부에 육전대를 추가 증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령부가 제 요청을 받아들여 1주 내로 육전대 4천 명을 여순으로 보내준다는군요.“
관동군 1만 5천에 김상덕 마적단 6천, 그리고 해군 육전대 4천까지 합해 총 2만 5천명이 모였다. 하지만 이래도 동북군과는 약 5배 차이가 났다.
”괜찮은 생각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시렵니까?“
그때 타마히코가 손을 들고선 자신의 의견을 내었다.
”뭐길래 그러십니까?“
호소카와가 타마히코에게 물었다.
”하얼빈 인근에 러시아에서 도망친 백군 잔당들이 용병단을 꾸렸다고 합니다. 토지 보호를 위해 그들을 고용해 본 적 있는데, 다들 러시아에서 많은 전투를 겪은 숙련병이라 실력 하나는 괜찮더군요. 이들을 고용하는건 어떻겠습니까?“
타마히코가 용병단이라 지칭한 이들은 사실 그의 사병이었다. 타마히코가 사병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192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봐야 한다.
타마히코의 아버지 링팡렁은 요동에서 지린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영토, 그것도 곡창지대를 보유한 대지주였다. 19세기 말부터 청나라 정부가 지방 통제권을 상실하고 만주가 사실상 무정부지대가 되자 링팡렁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만주에 있는 마적단 일부와 계약을 맺어 토지를 보호했다. 장작림이 만주의 주인이 된 이후엔 장작림과 계약을 맺어 자신의 토지를 지켰다. 하지만 장작림이 관내의 일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링팡렁과의 계약을 점차 불성실하게 이행하자 링팡렁은 위기감을 느꼈다,
한편 러시아에서 벌어진 내전은 적군의 승리로 끝났다. 적군이 승리하자 백군에 가담했던 많은 이들은 난민이 되어 만주로 도망쳤다. 링팡렁은 러시아 난민들 중에 러시아 내전에서 경험을 쌓은 경력직들이 다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이들에게 살 집을 주고 경비병으로 고용해 자신의 재산을 지키자고 생각했다.
링팡렁이 러시아인을 모은다는 소문이 돌자 만주의 러시아인들은 앞다투어 그에게로 왔다. 러시아에서 조상 대대로 모은 재산을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만주로 온 이들인데 살 집과 직장이 생긴다는 말이 얼마나 꿈 같겠는가. 타마히코의 처가 같이 재산을 온전히 보전해 1917년 이전의 삶을 그대로 영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다.
한 200명이나 모이겠거니 했던 예상과는 달리 무려 3만명이 모이자 링팡렁은 당황했다. 수백명 정도는 직업군인으로 고용해도 무리가 없겠지만 만 단위가 되면 유지비가 얼마나 깨지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중국 땅에 난립한 군벌들은 군대를 유지하겠다며 자신의 영지에 있는 주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하기 일수였다. 산동군벌 장쭝창은 무려 2003년까지의 세금을 수탈했고 사천군벌은 한술 더 떠 2031년까지의 세금을 수탈했다.
링팡렁은 자신의 토지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소작인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떠넘기기 싫었다. 그렇다고 그 손해를 고스란히 자신이 모두 떠맡기도 싫었다. 그래서 그는 모인 3만명을 자신의 토지 곳곳에 있는 마을에 이들을 분산시켰다. 평소에는 일상생활을 하되 전투가 벌어지면 집에 있는 무기를 들고 바로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하는 스위스 예비군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링팡렁은 이들에게 소작인 및 관동군, 만철 등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이들에게 중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쳤다. 또한 비밀리에 일본군 교관을 초빙해 눈감고도 과녁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철저한 전투훈련을 시키는 한편 군의 기강을 엄정하게 잡았다. 1895년 청일전쟁 때 군기가 개판인 청군 부대가 후퇴하면서 자신의 토지를 잔뜩 약탈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채찍만 쓴 것은 아니고 훈련에 잘 임한 자, 군기를 잘 지켜 타의 모범이 된 자에겐 합당한 포상을 내려 신상필벌을 확실하게 하였다.
그렇게 링팡렁은 3만이라는 적지 않은 병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링팡렁의 사병은 숫적으로는 군벌군들보다 적었지만 숙련도, 전투실력, 군기 등 질적에서는 군벌군에 비해 매우 우세했고 영국군이나 독일군 등 서구 열강들의 정규군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이들은 링팡렁이 사망하고 아들인 타마히코가 재산을 상속받자 그대로 타마히코의 사병이 된 것이다.
타마히코는 관동군이 이들을 고용하게 만들어 이참에 달달하게 전쟁특수를 누리겠다는(...) 복심을 숨기고 말을 꺼낸 것이다.
”숙련병으로 구성되었다면 분명 전투에는 능숙하겠지만. 으음...“
타마히코의 제안을 들은 호소카와는 말하다 뒷부분을 흐렸다.
”하지만 그러면 소련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부숙경은 소련이 개입해 자신들의 계획을 망칠까봐 우려를 표했다.
”소련이 개입하지 못하도록 비밀리에 동원하거나 아님 빠르게 일을 처리하면 되지요.“
그러나 타마히코는 그들을 투입하자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왜냐고? 돈을 벌어야 하니까(...)
”소련이 개입해서 장학량을 돕거나, 아님 우리를 공격하면 오늘 우리가 세운 계획들이 모두 수포가 됩니다.“
기시도 부숙경의 편을 들어 러시아인 병사 투입을 반대했다.
”소련의 개입이 중요합니까? 이기는게 중요하지!“
”그러다 소련이 장학량 편들면 안됩니다....“
어떻게든 전쟁특수를 누리려고(...) 러시아인 병사 투입을 주장하는 타마히코와 소련의 개입을 우려하는 부숙경은 열띤 논쟁을 이어갔다.
주 안건도 아닌 부차적 안건에 시간을 잡아먹는게 좋지 않다 생각한 호소카와는 투표로 결정을 내리기로 하였다.
”시간을 더 잡아먹으면 우리만 손해니 간단히 투표로 정합시다. 후지와라 상의 제안에 찬성하는 사람 먼저 손 들어주십시오.“
타마히코, 가네다, 김필중, 나쓰메 이 넷이 손 들었다.
”반대하는 사람 손 들어주십시오.“
부숙경, 이시와라, 김상덕, 아마카스, 기시가 손 들었다. 호소카와는 결론을 내었다.
”찬성 4, 반대 5로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병력의 숫적 열세를 채워야지. 확실하지도 않은 소련의 개입을 우려해서 숙련병을 투입하지 않는다는 겁니까? 대안은 있는겁니까?“
타마히코는 자신의 제안이 부결되자 돈을 못 벌게 된 것이 기분 나쁜지 잔뜩 인상을 구기곤 짜증난다는 투로 말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전 공작에 재능이 있습니다. 제가 몇 가지 공작으로 장학량군 내부의 분열을 부추겨 일부가 무혈항복하도록 만드는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부숙경에겐 계획이 다 있었다. 부숙경은 자신이 잘 아는 공작으로 동북군을 분열시키려 했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오.“
이시와라는 부숙경의 안이 맘에 든 듯 했다.
”이제 결론이 난 것 같소. 조선군의 발을 묶기 위한 작업은 김 상과 가네다 상이, 동북군 분열 공작은 부 상이 해 주시오.“
사전 준비가 모두 끝나자 호소카와는 이제 작전안을 짜기 시작했다.
1. 오늘 밤 비밀리에 인근의 동북군 부대를 급습해 후방 부대들이 연락을 받지 못하게 한다.
2. 동북군과의 전투에서는 기병과 차량 중심의 대규모 기동을 통해 적군을 싹 포위해 쌈싸먹는다.
3. 그리고 남만주철도를 이용해 병력을 탑승한 기차를 보내어 안산, 창춘, 봉천, 하얼빈 등의 주요 도시들을 제압하여 빠르게 만주를 장악한다.
호소카와의 작계는 이 3가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혹시나 조선군이 소요를 빠르게 진압하고 만주로 올 것을 우려해 기동 위주로 구성되었다.
”철도 정보는 내가 제공할 수 있소이다.“
작전안을 본 가네다는 만철에서 가져온 철도 정보가 담긴 문서를 호소카와에게 건내주었다.
”관동군을 위한 식사와 잠자리는 제가 제공하지요. 근데 길잡이는 필요 없습니까?“
타마히코는 자신이 남만주 일대를 꽉 잡고 있는 대지주라는 점을 이용해 관동군에게 식량과 잠자리를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거기에 필요하다면 소작농 몇몇을 길잡이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현지의 지리에 능통한 자는 반드시 필요하오.“
이시와라는 타마히코의 제안을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즉각 받았다. 그리고 김상덕에게-
”김 상은 휘하 단원들을 이끌고 오늘 밤 관동군 부대들과 같이 행동해주시오.“
”알겠습니다.“
-관동군과 함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고. 실행할 일만 남은 것이다.
모든 논의가 끝난 것을 감지한 기시는 조용히 방에서 나가 스카치 위스키 한 병과 사람 수에 맞는 크리스털 잔을 가져와 술을 따르곤 나눠주었다.
”일이 잘 되길 빌며 한잔 합시다.“
그러던 중 아마카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위스키 잔을 내밀곤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 일어나십시다. 건배사 한번 해야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위스키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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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주 인근의 동북군 주둔지. 여기에는 동북군 1개 사단이 주둔중이었다. 이 사단의 사단장은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 잠을 청하려 했다.
그가 침대에 누운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 수융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뭐 새가 날아가나 싶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순간, 막사 앞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단장은 놀라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밖에 나와보니 막사 앞에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구덩이에선 검은 연기가 풀풀 나고 있었다. 야포에서 발사된 포탄이 틀림없었다.
그가 머리를 돌려 부대 안을 바라보니 이미 부대는 아비규환이었다. 방금 전까지 잠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군복도 제대로 입지 않은 비무장 병사들이 당황한 얼굴을 하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폭발로 죽은 사람과 말의 시체가 이리저리 나뒹굴었고 폭발로 인한 불길이 곳곳에서 보였다. 사단장은 상황파악을 위해 지나가는 병사 하나를 잡곤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저도 잘 모릅....“
그 순간 사단장의 눈 앞에서 번쩍 하는 섬광이 뿜어짐과 동시에 몸이 튕겨졌다.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사단장은 정신을 차렸다. 눈을 뜨고 보니 방금 전까지 그와 대화하던 병사가 다져진 고깃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멍 하니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단장이 멍 하니 있는 사이에도 포탄은 곳곳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야 총을 찾은건지 총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병사, 놀라서 뛰쳐다니는 말, 뛰어다니다 포탄을 맞고 생을 마감한 병사, 불을 끄려고 물을 퍼나르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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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주둔지 앞에 있는 언덕에는 관동군 1개 연대가 야포로 주둔지에 포격을 가하고 있었다. 수십문의 야포가 불을 뿜으며 주둔지를 향해 포탄을 배송하였다. 연대장은 망원경으로 포격을 맞은 동북군 주둔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포격을 가합니까?“
부관이 와서 그에게 물었다. 연대장은 들고 있던 망원경을 내려놓은 뒤 말했다.
”아니. 공격준비사격은 이걸로 충분한 것 같다. 이제-“
그는 오른손 검지로 자신이 포격을 가한 주둔지를 가리키며 명령했다.
”-내려가서 저들을 공격하지.“
”알겠습니다.“
부관은 다른 병사들을 돌아보며 이들에게 내려가서 주둔지에 있는 동북군을 공격하라는 연대장의 명령을 하달했다. 관동군 병사들이 모두 총에 총검과 소총탄을 장전한 채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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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선양 인근에는 또 다른 동북군 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이 부대의 사단장은 장쉐량이 관내에만 신경쓰고 만주를 점차 소홀히하자 걱정되어 직접 장쉐량을 찾아가 ‘관내만 살피시지 말고 만주도 신경을 쓰시라’라고 충언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관동군의 공격이 시작 된 6월 10일 밤, 사단장은 휘하 장교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모두 모여줘서 고맙군.“
휘하 장교들이 모두 모이자 사단장은 품 속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한 장교에게 넘겼다.
그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본 장교는 매우 놀라 눈을 크고 동그랗게 떴다. 그 종이를 건내받은 또 다른 장교도, 또또 다른 장교도. 모두 놀라워했다. 한 장교가 일어나 사단장에게 물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하지만 답변은 사단장이 아닌 사단장 뒤쪽에 있던 노란 군복을 입은 이에게서 나왔다.
"사실입니다.”
견장이나, 군복을 보면 관동군 소속이었다. 모순적이게도 관동군은 한 쪽에선 동북군을 공격하고, 또 어디선 동북군을 포섭하고 있었다. 방금 이 자리에 모인 동북군 장교들이 본 종이는 그가 가져온 것이었다.
종이에는 장쉐량이 베이핑(베이징)에서 여자와 아편, 도박 등에 빠져 만주를 내팽겨쳤다는 정보가 적혀 있었다.
“솔직히 말해. 저희는 여려분들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장학량은 이미 여러분들을 버렸습니다. 이 만주도요. 그런 자를 위해 여러분들이 싸워야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관동군 밀사의 말에 잠시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그 다음으론 침묵이 내려앉았다. 한 장교가 손을 들어 발언기회를 얻곤 말했다.
“이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잖습니까? 저들의 말을 믿어선 안됩니다.”
그러자 팔랑귀처럼 보이는 장교가 바로 반박했다.
“여기 사진까지 딱 있구만 무슨 거짓이라는거요?”
사실 밀사는 종이만 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아편을 피우는 장쉐량, 기생들을 끼고 난잡한 파티를 벌이는 장쉐량의 사진 등도 같이 가지고 왔다.
“그 사진이 조작된 것이라면 어떡할겁니까? 대역을 사용한다던가...”
“대역이라니. 장님이 봐도 한경(장쉐량의 자) 장군이구만!”
“당신 혹시 관동군에게 뇌물이라도 받았소?”
“뭐 임마? 말 다했어?”
“다했다. 어쩔건데? 때려보게?”
“그래! 이리와 이 새끼야!”
점차 분위기가 주먹질로 비화될 것 같이 고조되었다.
“다들 조용!”
사단장은 분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고함을 질러 둘을 침묵시켰다.
“이러다간 결론이 나지 않고 싸움만 날 것 같으니 간단히 거수투표로 결정하지. 관동군에 맞서 싸우자는 자는 손들게.”
두세명 정도가 손을 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다수는 손을 들지 않고 있었다.
“관동군과 싸우지 말자는 자는 손들게.”
그 전과 달리 다수가 손을 들었다. 아버지와는 다른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실망해 있던 이들에게 밀사가 가져다준 정보가 쇄기를 박은 것이다. 대충 세어도 과반은 충분히 넘었다. 사단장은 손뼉을 치며 결론을 내었다.
“그럼 결론 났군. 우리는 더 이상 장학량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이미 그가 우리를 먼저 버렸으니까.”
“잘 생각하신겁니다.”
밀사는 자신들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받아들자 미소를 씨익 지으며 관동군 본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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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센주로 조선군 사령관은 총독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는 방금 전 총독으로부터 접견 요청을 받고 왔다. 2주 전 관동군이 만주 평정을 시작했다는 전보를 받았기에 하야시는 지나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수 있으리란 흥분에 빠져 있었다.
”총독 각하께서 이제 결단을 내리셨나보군. 만주 출병에 대한 결단을 말이야.“
어느덧 총독의 집무실 앞에 도착한 하야시는 숨을 한번 들이쉬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카키 가즈시게 총독이 책상에 앉아 집무를 보고 있었다. 그 앞에 있는 탁자에는 상상도 못한 또 다른 손님이 그를 맞았다.
”오랜만이오?“
전임 귀족원 부의장이자 2대 조선통감이었던 시로사키 리히토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오른팔이었고 일한합방의 1등 공신이었다.
그 덕분에 공가(일본의 전통 귀족계층)도 사무라이도 아닌 평민이었던 리히토는 메이지 43년(1910년)에 남작도 아닌 무려 백작위를 수여받았다. 작위는 11년 전인 다이쇼 9년(1920년) 장남 소스케에게 물려주었지만 조선에서 리히토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역대 총독, 조선군 사령관 모두 그에게 존대를 하였다.
특이하게도 시로사키 백작가는 조선귀족도 아닌 그냥 화족이면서 내지가 아닌 조선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백작께서 왜 여기에...“
당황한 하야시는 말을 더듬었다. 리히토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총독께서 이 늙은이에게 조언을 구하시니. 그에 화답해 드리는게 예의 아니겠소?“
1860년 생인 리히토는 1868년 생인 우가키보다 8살 연상이었고, 1876년 생인 하아시와는 무려 16살 차이가 났다. 평소 리히토에게서 느껴지는 싸늘하고 날카로운 감각 때문에 그를 꺼려하던 하야시는 ‘정말?’이라는 눈빛을 하고선 우가키 총독을 바라보았다.
“맞소. 내가 백작께 뵙자고 했네.”
우가키는 쓰고 있던 안경을 벗고선 말을 이어갔다.
“내가 오늘 장군을 보자고 한 이유를 아나?”
“제가 말씀드린 만주로의 조선군 파병에 대한 것 때문이 아니십니까?”
“맞네. 오늘 장군의 제안에 대한 결론을 내렸네.”
우가키는 잠시 말을 끊었다. 1주일 전부터 조선 곳곳에서 소요사태가 자주 일어나서 경찰이 조선군에게 증원을 요청하고 있다지만. 조선군 전부를 보낸다는 것도 아니고 무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두개 사단만 보내 관동군의 만주 평정에 도움을 준다는 것 정도는 허락해 줄 것이라 생각한 하야시는 기대를 놓지 않았다.
“우리 집 앞마당에 불이 났는데 다른 집 불을 끄러간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네. 만주로의 조선군 파병은 없는 것으로 하지.”
하지만 결과는 하야시가 원하는 데로 되지 않았다. 몹시 실망한 하야시는 이제 나가려는 듯 문으로 향했다.
“아 참. 그리고.”
그때, 리히토가 집무실을 나가려던 하야시를 불러세웠다.
“내가 오늘 여기 오는데 매우 불쾌한 경험을 했소. 헌병들이 내 차를 멈춰세우곤 검문을 하는거 아니오?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시로사키 리히토에게 말이오. 최근 조선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소요사태 때문에 헌병들이 날이 서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는 미소를 짓곤 하야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
”-잘 좀 합시다. 우리?“
리히토는 자신이 검문을 당한 것을 매우 불쾌해하고 있었다. 커다란 뱀 한마리가 자신의 온 몸을 칭칭 감고 꽉 조이는 듯한 숨막히는 감각을 느낀 하야시는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아 예... 그래야죠. 당연히...“
@E.E.샤츠슈나이더 ...아마 그루트가 실현됐음 제가 소련을 끌어들였을걸요. ㅎㅎ...실제로 쿠데타 당시에도 내전 터질게 자명하니 소련에게 지원 요청 보내는걸 계획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