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안 내력이 친일 명문가문임
할아버지: 박제순(을사오적으로 유명한 바로 그 사람)
아버지: 박부양(조선귀족으로서 반민특위에서도 송치되었었음)
이 상황에서 1944년 11월 일본군을 탈출해서 광복군에 합류함.
2.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는 가족에 대한 욕설
일제강점기 당시에 화장실에서 자주 써있는 욕설이 '이박식당(이완용, 박제순)과 같은 소리였고
중국에서도 을사오적은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었기에(이완용만해도 중국에서 매국노의 사례로 인용되었을 정도인데 박제순도 그러했을걸로 보임) 어딜가나 할아버지에 대한 욕을 들을 수 밖에 없을것임.
3. 탈출과정에서 흥미로운 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4458449
[선생은 또 조부의 친일행각에 극도의 불만을 품고 "차라리 자결하지 왜 구차하게 살아남아 후손들을 욕되게 하느냐"며 해방때까지 박씨 성을 거부하고 가명을 쓰며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의 탈출 과정을 보면 독립군과 합류과정에서 가명을 쓰진 않은걸로 보임.
[1944년 11월 3일 김권金權·박승유朴勝裕·신의철申義澈·이희화李熙和 등과 같이 일본군 부대를 탈출하였다.]
경기문화재단 총서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김영관金榮觀이라는 인물도 박승유와 같이 탈출했다고 하는데
[그 중에도 1944년 10월에는 절강성(浙江省) 의오현(義烏縣)에 주둔중인 적 횡정(橫井) 부대에 배속되었다가 반정(反正)하여온 김권(金權)·김영관(金榮觀)·박승유(朴勝裕)·신의철(申義澈)·이희화(李熙和) 등을 통하여 다시 무석(無錫)·무호(蕪湖)·남경 지구 등 적 부대 중에 우리 동포 사병이 다수 배치되어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김권·김영관 등을 무석 방면으로 파견하여 초모 공작에 주력하면서 박승유를 야전 방송대에 파견하고, 이희화·신의철 등은 연산(鉛山)으로 보내어 선전·정보 공작에 종사하게 하였다. 그 중에도 박승유는 ‘을사조약’ 때 5적 대신의 하나인 박제순(朴濟純)의 손자로서 일찍부터 그 조부의 매국 행위 및 아버지인 안성(安城) 군수 박부양(朴富陽)의 방탕 생활에 분개하여 국외로 탈출, 독립 운동에 헌신함으로써 선대의 죄를 속죄할 것을 생각하고 적 일본군에 지원 입대하였다가 이희화 등 4인과 함께 반정 입대하였으며, 또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던 만큼 같은 동포 사병들에 대한 반정 권고 및 염전(厭戰) 가곡 등의 방송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개풍(開豊)과 강화(江華)가 고향인 이희화·신의철 등은 각지를 순회하면서, 일본군의 내막과 자신의 탈출 입대 경위 등을 자세히 설명하여 중국 군·관·민의 환영을 받았다.2) ]2) 김문호 제공 광복군 제3 징모 분처 자료 참조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운동사 제6권 : 독립군전투사(하) 에 나오는 내용임.
박승유를 포함한 같이 탈출한 이들의 인적사항이 기입되있는걸 보면 자신의 내력을 설명했을 가능성이 높음.
음악 소질을 독립운동에 잘 써먹은것 같은데 공훈전사사료관에 박승유에 대한 기록이 저정도인데 아쉬움.
다른 사료가 더 있다면 백범 김구 같은 거물이나 김원봉 같은 인물이
"뭣이!? 박제순 손자가 광복군에 합류했다고!?" 라고 놀라는 인간적인 내용이라도 있어야하지 않나 싶음.
http://e-gonghun.mpva.go.kr/diquest/Search.do
5. 인터넷에서 떠도는 괴설 부분
친일한 할아버지 둬서 떵떵 거렸다면서 박승유를 언급하면 성악가 된걸 언급함.
“야전 방송대에 파견되어 동포 사병들에 대한 반정(反正) 권고와 염전(厭戰) 가곡 등의 방송으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공훈록>)
그런데 그의 음악 커리어는 오히려 친일의 결과로 치부할게 아님.
독립운동활동에서 써먹었다고 나와있음.
그래서인지 박승유가 독립운동했다는걸 알려지기 시작했을 즈음에는 신문기사나 인터넷 글에서는 박승유에 대한 내용이
안준생의 대척점으로서 언급됨.
그러니까...
안중근의 아들은 친일했고 박제순의 손자는 애국을 했다는 비교로 말임.
심지어 백범 김구의 살생부라면서 언급되는 글에 그의 이름이 있는데 법조인 항목에 있는 이유는 그가 법대 출신이라서 그런 모양임. 그런데 알고보면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조사한 친일인명리스트인데 그 이후에는 박승유가 독립운동했다는걸 알아서 빠졌거나 동명이인이 있는 모양임.
즉 웹상에서는
- 박승유를 친일파 후손이자 그걸로 성공한 성악가로 설명하거나
- 안준생을 까기 위해 대척점에서 존재하는 인물
- 백범 김구의 암살 대상
수준으로 언급하지 그가 어떻게 독립운동했고, 독립운동 과정의 디테일을 설명하는 글은 없음
자기전에 생각나서 쓰는것이지만 그래도 그 사람 처지에 비해서 대단한 인물임은 분명함.
왜냐면 작위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인데 독립운동에 합류한것도 그렇지만 자신의 음악 취미를
독립운동에 적절하게 잘 써먹은점도 의미있다고 할것임.
첫댓글 박제순..???? 와 대단하네요
박제순의 손자이자 독립운동가이시죠.
정말 대단하신분이네요. 집안부터 완전히 매국노 집안인데 독립운동에 투신하셔서요.
게다가 일본군을 탈출하는것도 거의 목숨걸고 하는 행동이었으니까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진전가
첫째아들 도쿠가와가신
둘째아들 풍신가 가신
머 그런류 아닐까요?
제가 일본사를 몰라서 답하기 어렵네요. ㅎㅎ;;
박제순 손자;;; 이 정도면 영화 하나 나와도 되겠는데요. ㄷㄷ
창작물에서는 꽤 자주 나온 편인게
드라마 각시탈에서 부모가 친일가문이라서 아들이 그것이 부끄러워했던 내용이 있고
영화 암살에서는 주연 캐릭터가 딱 그 설정이지요.(안윤옥이라는 캐릭터의 아버지가 친일 부호)
박제순 손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박승유와 대조적인게
아버지 박부양은 해방후 반민특위에게 구속당하는데 만약 그때 성악을 하던 박승유가 신문을 보면 어떤 느낌이었을것이고
박부양도 해방정국에 아들 소식 들었을 때 어떤느낌일지 궁금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