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讀>6.25전쟁, 마지막세대의 증언
6,25전쟁은
1950년6월25일 일요일새벽 3시에
북한군이
암호명‘폭풍224’라는 사전계획에 따라
북위38도선 전역에걸쳐
선전포고없이
대한민국을 기습남침하여
발발한
민족상잔의 비극적 전쟁이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될때까지
3년 1개월간 전투가 이어졌으며
유엔군,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간
판문점 휴전협벙이 조인되어 전쟁이 멈췄다.
따라서
엄격히 말 하자면
한국과 북한 사이에는
염연히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은
쌍방 합의하에 휴전중인 것이다.
때문에 언제라도
휴전당사자 어느 한쪽이 공격을 시작하면
그대로
전면전이 계속될 수 있는 화약고인 셈이다.
6,25전쟁은,
군인, 경찰, 민간인포함
1.545.25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미군은 137.250명의 사상자를 냈다.
지금
80세후반 이상의 노인들은
철이들어
6.25전쟁을 몸소겪은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인민군의 탱크가 시내에 진입하자
모두가 황망한 가운데
보따리를 싸들고 피난길에 나 섰다.
이미
남쪽을 향한 신작로엔
사람들이 꽉 찼으며
어떤 젊은아낙은 그 북새통에
애기대신
베개를 업고 피난길에 나 서기도 했다.
사람들의 지적을 받고서야
자기의 실수를 알고
미친 듯이 애기이름을 부르며
사람들을 헤치면서 되돌아 가기도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초저녁,
시골농가의 추녀밑에서
비를 피해 서 있는 우리가족4명은
춥고 배가 고팠지만
갈데도 먹을 것도 없었다.
결국
그 농가의 헛간에서 하룻밤을 보냈고
그댁 어르신의 배려로
집에 돌아갈때까지 3개월여를
그집 사랑채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그집 부엌에서 일을 도왔고
나는 지게를 지고 낫을가지고
그집 애들과 함께
때감을 가지러 산에 갔으며
그때
풀을베다다친 손가락의 상처는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밭에서 김을매고,
논에서 피를뽑는일은
아주 힘들었으며
지게로 져나르는 무게도 대단했다.
가장 큰 문제는
먹을게 부족한 것이었다.
보리밥도 없어
나중에는
야채와 밀가루로 쑤는 풀데기로
끼니를 잇기도 했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바뀌자
나는 혼자서 집을 살펴보기위해
걸어서 인천으로 갔으며
집을 살펴본후
저녁에는 아버지친구의 집으로 갔다.
그댁에서
여러달만에 쌀밥으로 저녁을 먹었는데
맛있고 부드러운
쌀밥이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 이후.
나는 쌀한톨,
밥한알도 버리지않고
깨끗이먹는 습관이 생겼다.
식구들이 집으로 돌아온후,
아버지의 동료들이 와서
부친의 전사소식을 전했고
어머니가 기절하는 것을 지켜봤다.
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되자
우리는 미군의 LST를 얻어타고
부산으로 피난갔다.
용두산 산자락의 쓰레기장을
몇가족이 함께 치우고
거기에
가마니와 대나무로
여러채의 가마니집을 지어 기거했다.
그해겨울,
부산은 유난히 추웠고
무엇보다 물이 귀해서
아주 먼곳까지 가서 지게로 물을 날라다 썼다.
각박 했던
부산인심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머니는 다른분들과함께
길가 담밑에서 국밥장사를 시작했고
나는 영도다리밑에있는
양과점 ‘천사당’ 에서 먹고자고
일주일에
쌀 소두한말을 받고 고된일을 했다.
도너스를 굽느라 팔이 익었으며
빙과류를 만드는 기계를 지켜보느라
밤을 새웠으며
나중에는 모찌를 싸는 기술자가 됐다.
그때
부산에 있는 전신주들엔
온갖사람들이 서로를 찾는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으며
우리도
그 전단지를 통해
북한에서 부산으로 피난온
외숙부와 외사촌들을 만났다.
바만오면 물이새는 가마니집은
유난히 추웠으며
학교는 갈 생각도 못하고 살았다.
나는 주말이면
양과점에서 생기는 생과자 부스러기들을
큰 봉투에 담아
집에 가져갔으며
피난동네 꼬마들은
그걸 얻어먹으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먹고살기위해
미친 듯이 일하고 뛰어다녔으며
빨리 전세가 역전되어
집으로 돌아갈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하수구에 버려져 퉁퉁부운 시체들,
팔에 붉은완장을 차고
무섭게 설치는 토착빨갱이들,
공기를 찢으며 날가는 포탄소리,
목표물 가까이에 있다
폭격후의
무서운 후폭픙에 밀려 죽을뻔했던일,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춥고 배고픈것이었다. 그건 마지막이었다.
전쟁은 사람을 포함,
모든 것을 파괴한다.
6.25전쟁의 폐허라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그야말로
국토가 초토화 됐었다.
지금 우리는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이지만
‘휴전상태’임을 잊으면 안된다.
이제 전쟁이 다시 발발하면
핵과 화학무기가 쓰일 것이다.
전선도
따로 없을것이며
파난갈일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안보개념’을 재 점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한미군에 의지하는 나약함을 버려야한다.
결국,
우리도 우리자신을 지키기 위해
핵을 가져야한다.
지금과같은 비대칭으로는
계속
그들의 협박에 시달리게된다.
그리고 최선의 방법은
피차
평화를 지키는 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전쟁은 너무나 무섭고
처참한 것이기에 무슨 수를 쓰든 피해야한다.
6.25전쟁은 지나간 전쟁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있는 전쟁이다.ㅡyoro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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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6.25 참전 유공자 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엇 보다 무서운 것이 배 고픔입니다 이 참상을 아는 세대는 모두 80세를 넘겼습니다 허나 배 고픔을 모르는 젊은아둘 6.25을 북침이라 우기는 빨갱이들 정말 한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