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여러분!2010년 8월 15일 10시에 현충원에서 만나요
제일교포 청년 문세광 ( 당시 23세 ) 이 쏜 총탄에 맞아 49세를 일기로
서거(사망) 1974년 8월15일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있었던 제 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서그만..이때 온국민들은 국모 ( 나라의 어머니, 조선시대의 중전 )
가 돌아가셨다며슬퍼했으며 장례는 장국국민장( 국민의 이름으로 치르는 장례식),
국가에서 주관하는 장례국장 다음으로 격이 높은 장례식 ) 으로 5일간 치뤄졌습니다.
육영수여사는 비극적 죽음이후에도현재까지도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대통령 예비후보 부인들이 가장 닮고싶어하는 영부인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38세라는 최연소의 나이로 영부인의 지위에 오르셨습니다.
영부인이라는 높은지위에 있으시면서도 전혀 사치를 하지않으셨고
생전에 한복을 자주 즐겨 입으셨으나 꼭 국산 원단만을 사용하여
한복을 즐겨 입으셨습니다
종이한장, 노끈하나 그대로 버리시는일이없이 모두 재사용 하셨습니다
생전에 우아한기품을 자랑하는 목련꽃, 박정희대통령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청와대안의 제 1야당이라고 불리셨습니다.
생전에 어린이 ,독고노인을 끔직히 아끼셨으며 나병환자의 손을 꺼리낌없이,
잡아준유일한 영부인, 가뭄으로 시달리던 도시에 비가내리자
대통령과 밖으로 나가 비를 맞으며 기뻐하셨을만큼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습니다.
그외에 어린이 대공원 어린이회관준공, 지금은 없어진 서울대학교 기숙사인 정영사건립등의 수많은 사회사업을 벌이셨습니다.
자녀로는 근혜 , 서영, 지만 1남2녀를 두셨습니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꼿꼿이 앉아 문세광의 총탄을 맞은
그녀는 그날 오후 7시쯤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박정희는 먼저 간 아내 육영수를 그리며 詩 한 수를 지었다.
‘추억의 흰 목련
유방천추(遺芳千秋)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산천초목도 슬퍼하던 날
당신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는
겨레의 물결이 온 장안을 뒤덮고
전국 방방곡곡에 모여서 빌었다오.
가신 님 막을 길 없으니
부디 부디 잘 가오 편안히 가시오.
영생극락하시어,
그토록 사랑하시던
이 겨레를 지켜주소서
불행한 자에게는 용기를 주고
슬픈 자에게는 희망을 주고
가난한 자에는 사랑을 베풀고
구석구석 다니며 보살피더니
이제 마지막 떠나니
이들 불우한 사람들은
그 따스한 손길을
어디서 찾아 보리
그 누구에게 구하리
극락천상에서도
우리를 잊지 말고
길이길이 보살펴 주오
우아하고 소담스러운 한 송이
흰 목련이 말없이
소리 없이 지고 가 버리니
꽃은 져도 향기만은
남아 있도다.
당신이 먼 길을 떠나던 날
청와대 뜰에 붉게 피었던 백일홍과
숲속의 요란스러운 매미소리는
주인 잃은 슬픔을 애닯아 하는 듯
다소곳이 흐느끼고 메아리쳤는데
이제 벌써 당신이 가고 한달
아침 이슬에 젖은 백일홍은
아직도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매미소리는 이제 지친 듯
북악산 골짜기로 사라져가고
가을빛이 서서히 뜰에 찾아 드니
세월이 빠름을 새삼 느끼게 되노라
여름이 가면 가을이 찾아오고
가을이 가면 또 겨울이 찾아오겠지만
당신은 언제 또 다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아 이것이 천정(天定)의 섭리란 말인가
아 그대여,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리.
안산시민
(追慕)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追慕)
첫댓글 여러분 요번 8월 15일 10시에 우리의 단결된 모습을 보일때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박사모의 저력을 보여주어야합니다.함께하는것이 근혜님에게 힘을 실어주는것입니다
다함께 동참하면 좋겠습니다 들려주심에 감사
시민님, 현충원에서 뵙겠습니다.
알겠습니다..건강하세요..
최선을 다해 우리는 함께 이루어 내야 합니다...화 이 팅~~~많은 참석 바랍니다~~~
다함께 노력해야죠..박사모를위하여
고생 많습니다. 참석합니다.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