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이곳 키르기즈스탄에도 코로나 3차 유행이 지나고 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해도 이제 집단면역에 도달한 것 같다며 모두들 안심했었는데 지난 3월부터 다시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변이 바이러스들이 키르기즈스탄에서도 확인되었고 작년에 감염되어 고생했던 현지인 친구들도 다시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작년처럼 도시가 봉쇄되거나 국경이 완전히 폐쇄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 시간들이 지나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 역시 또 다시 자가격리를 해야 했습니다. 지난 4월에 저희 집에 방문한 가정이 다녀간 이틀 뒤 그 가족이 확진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저희 가정은 아무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워낙 하루종일 같이 먹고 이야기 나누었기에 거의 감염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감사하게도 그냥 지나갔습니다. 두 주간 온 가족이 마스크를 쓰고 지낸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지난번처럼 저 혼자 자가격리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아이들은 낮동안 마당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하다는 표현조차 감염으로 고생하시는 분들께는 미안할 뿐입니다. 그 가정도 이 일로 얼마나 저희에게 미안해 했었는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로 인해 바이러스가 전파된다는 사실이 참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거의 매달 이런 접촉이 일어나다 보니 언젠가 한번은 감염되어야 한다면 차라리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격리기간이 끝나고 미뤄왔던 밀랸판 마을 방문이 있었습니다. 지난 2월 저는 시력검사를 하고 중국인 친구가정은 한방진료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방문에서 그 마을은 이미 학교도 코로나 감염으로 임시 폐쇄되었고 상당한 마을 사람들이 증상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저희를 맞아준 가정 역시 큰아이가 기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전화로 방문을 상의할 때만 해도 아무 말이 없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도저히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함께 차를 마시며 상황이 안정되고 나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함께 갔었던 중국인 친구도 그 후 감염이 되었고 그 마을에서 만난 미국에서 온 할머니 역시 감염이 되었습니다.
틈틈이 작년에 안경을 받았던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만나며 시력검사를 하고 그동안의 이야기도 나누며 사역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쉬움이 많습니다. 국경통관이 원활하지 않아서 받아야 할 렌즈나 안경테들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요원하구요. 함께 움직이던 안경사역의 팀 활동 역시 잠시 휴지기를 갖고 있습니다. 저는 2월부터 자가격리와 농번기가 겹치면서 참여를 못하고 있고 또 한 분도 4월부터 자가격리로 참여를 못하게 되었고 여름에는 대부분 한국에 다녀오시기 때문에 함께 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현지인 친구들을 보면 마치 독감처럼 코로나를 대하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아디스 가정은 지난 3월부터 그동안 준비해오던 청년들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밥티스트 회사에서 키르기즈 모임을 이끌어가는 형제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늘 주중에 일을 해야만 해서 저녁이 되면 늘 사람들이 북적대는 가정이지요. 마침 미국의 한 지인이 속한 단체에서 지원을 하겠다는 연락이 왔을때 아디스 가정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났었습니다. 조심스레 지원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먼저 아디스가 청년들 모임 이야기를 하더군요. 매주 청년들과 같이 모여 식사라도 하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데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어렵겠다고. 그래서 아버지의 은혜로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섯 명이 모여서 시작되었는데 지난주에는 열다섯명이 모여 앉아 조그만 아디스네 집 거실이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녁7시에 시작한 모임이 12시를 넘겨서도 모두들 헤어지기 아쉬워서 마당에서 인사하면서도 반시간이 훌쩍 넘어서더군요. 감사한 것은 어둠 가운데 살아가던 형제 자매들도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려고 같이 모인다는 사실입니다. 여름까지 이 청년들이 함께 팀웍을
만들어서 토크막의 장애인 가정들을 방문하고 섬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답니다. 6월 말에는 4박5일 일정으로 시골지역들을 다니며 그곳 청년들과의 모임도 준비하고 있구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네요.
그리고 최근에 참 재미있는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루슬란과 울란, 그리고 비쉬켁에서 출판사역을 하고 있는 징기스 형제와 저 이렇게 넷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유튜브 채널 방송을 돕게 되었습니다. 울란은 원래 라디오 방송을 하던 친구였는데 본격적으로 이 일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고 루슬란은 요즘 누구나 갖고있는 스마트폰을 통해 기쁜 소식을 전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서로 만나 이야기 하면서 저까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CGN TV에서 피디로 일하다가 이집트에서 미디어 사역을 하는 분이 카톡으로 여러 조언과 경험을 나눠주시고 또 이 분야로 전공하고 라오스에서 사역하는 분이 마침 한국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동영상을 촬영하기에 적합한 여러 대의 스마트폰을 보내주셔서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조언과 도움으로 울란이 만든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초기라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지만 예전에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편집하던 경험이 있던 울란이라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느낌입니다. 오래된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다가 배터리도 부족하고 저장공간도 부족해서 예전 사진들을 지우며 다시 촬영하기도 하고, 촬영 중에 옆집 개가 짖어대는 바람에 중단되기도 하고, 야외촬영을 나갔다가 비만 맞고 돌아오기도 하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지요. 루슬란과 울란도 한번씩 코로나로 앓기도 하면서 잠시 촬영과 편집이 중단되기도 했었구요. 때마침 군산 경포회사의 어느 권사님께서 지원해주셔서 감사하고 국가에서 받은 코로나 지원금으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기부해주신 캔자스시티의 형제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예상치 못한 여러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으로 제작된 동영상을 통해 누군가 기쁜 소식을 듣고 아버지께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면 참 기쁘고 감사합니다.
또 한가지 감사한 제목이 있습니다. 올해도 지난 4월 노동허가와 비자가 감사히 잘 연장되었습니다. 비교적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비자조건이 까다롭지 않은 상황이지만 수도나 주요 도시가 아닌 시골지역에서 외국인이 정상적으로 비자를 개설해서 살아가는 것이 녹녹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농사를 하고 있지만 가끔 현지인의 입장에서는 이해가지않는 모습이 있나봅니다. 면사무소나 전기회사에서 직접 방문해서 확인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찾아와 여러가지 질문을 하면 은근히 귀찮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아버지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동안 저희 가정이 살아오던 프로그레스 마을의 집을 이제 떠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이 집에 살게 되면서 수리를 하고 한 10년 이상 살 기대로 왔습니다만 집주인과 그 가족들 간의 이 집에 대한 재산권 분쟁이 있었습니다. 주마벡 아저씨나 구잘 아주머니는 아무도 우리가 떠나가 원치 않는다고 하지만 분쟁이 있는 상황에서 저희가 계속 머물고 있는 것도 좋은 모습이 아닌 듯 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루슬란이나 아디스 같은 형제들과 교제하거나 고아원 아이들이 와서 함께 하기에는 조금 멀다는 한계가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장소로 옮겨 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며칠전 하늘이와 현수가 아침에 엄마와 함께 이웃집에서 우유를 받아오는데 길가에 핀 들꽃을 발견하고는 길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구경하고 왔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우리들이야말로 정말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늘 값없이 누리고 있지만 그 사실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감격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코로나 상황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들을 다시 발견하게 하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시고도 세심하신지 잊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은혜 가운데 항상 평안하시길…
<기도제목>
단기제목
1. 6월말 아디스와 청년들의 단기사역을 위해.
2. 울란과 루슬란의 방송촬영과 편집에 필요한 장비들이 잘 구비되도록.
3. 새로 이사할 곳을 찾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중장기 제목
1. 안경사역팀의 구성원들 모두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팀웍을 세워가도록.
2. 함께 농사일을 해나갈 사람을 잘 선정할 수 있도록.
3. 현지인들과 함께 하는 모임 가운데 인도하심을.
4. 더불어 사는 사람들 현지 지부와 한글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5. 프로그레스의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세워가도록.
개인과 가정 제목
1. 첫째 지성이가 고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진로를 찾아가도록.
2. 집에서만 지내는 아이들과 아내가 건강을 잘 지키도록.
3.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의 건강을 위해.
4. 누나와 매형 가족의 인도하심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