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다이어트 붐을 타고 식품회사마다 앞 다투어 0칼로리 음료를 출시해, 0칼로리 음료의 전쟁터 같은 시장에서 옥수수수염차가 히트한 요인은 ‘이뇨작용을 도와 부기를 제거한다’는 기능성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투덜대는 여성들이 망설임 없이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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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수염차를 만든 광동제약 중앙연구소 제제연구1실을 찾았다. 이 팀은 사내에서 ‘환상의 대박팀’으로 통한다. 박카스의 아성을 위협하며 제약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비타 500’을 비롯해 운지천, 우황청심원 현탁액 등 히트 상품이 모두 이 팀에서 탄생했다.
팀의 수장인 우문제 박사(43세), 이상훈 팀장, 권오택 주임 연구원, 김진수 주임 연구원, 김효정 연구원 모두 옥수수수염차의 히트에 상기된 모습이었다. “히트를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우 박사가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출시 직후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하자 모두들 와르르 웃는다. 팀원 5명 중 4명이 첫 직장으로 광동제약을 선택, 외길을 걷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들은 인터뷰 내내 가족처럼 편안한 모습이었다. 지위 고하가 분명했지만 의사소통이 자연스럽고 잔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옥수수수염차는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를 마케팅팀에서 구체화하고, 연구팀에서 현실화했으니 아이디어와 제품 컨셉트, 개발 3박자가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 팀에게 옥수수수염차는 ‘모진 산통 끝에 낳은 아이’와 같은 존재다.
“옥수수수염은 미생물 번식이나 부패 등의 문제가 있어서 전 처리 단계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비타 500을 만들 때보다 훨씬 고생을 많이 했어요. 연구원들이 모두 20일 동안 집에도 못 가고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우문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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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의 전원 합의를 얻은 이 맛이 탄생하기까지 200번이 넘는 맛 테이스팅을 거쳤단다. 테이스팅이 있기 전날은 비상이다. 술은 절대 안되고, 숙면을 충분히 취해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한다. 테이스팅 당일에는 양치질도 치약을 쓰지 않고 물로만 한다. 치약의 민트 향이 미세한 맛의 차이를 구별해 내는 데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이스팅 시간은 온몸의 신경들이 미각으로 모아지는 초긴장의 순간이다.
미세한 성분의 차이가 맛을 결정하는 음료의 세계. 그러다 보니 이들에게는 미각을 예민하게 하기 위한 저마다의 노력과 에피소드가 있었다. 우문제 박사는 작년 독한 마음 먹고 담배를 끊었다. 이상훈 팀장은 자신의 미각이 최대한 깨어있는 시각을 알아내 그 시간에 테이스팅을 한다. 김진수 연구원은 없던 직업병이 생겼다. 집에서 반찬을 먹을 때에도 젓가락으로 반찬을 하나씩 집어 들어 혀끝에 대고 맛을 보게 된다고 한다. 얼마 전 처갓집에 가서도 그 같은 행동을 하다 눈칫밥을 먹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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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수염차 제작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이뇨작용이라는 옥수수수염의 기능을 충분히 살리면서도 거부감 없는 맛을 만드는 것. 우문제 박사의 말이다.
“예로부터 옥수수수염은 한방에서 부기를 빼는 약제로 사용돼 왔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옥수수수염을 직접 끓여서 드셔 보세요. 정말 맛이 없어요. 여물 끓인 맛이거든요. 이 물을 어떻게 마시기 편한 맛으로 만드느냐. 어떻게 안정성 있게 만드느냐가 관건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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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수염차에 들어있는 성분 하나하나를 꿰뚫고 있는 권오택 주임 연구원이 설명을 도왔다.
“어렸을 때 엄마가 집에서 끓여주신 옥수수차 맛, 가마솥 누룽지를 끓인 맛을 상상하면서 만들었어요. 옥수수를 볶을 때 갈색으로 변하면서 자연적인 풍미가 나오죠. 이 풍미를 베이스에 깔았습니다. 최적의 맛이 나오도록 옥수수 볶는 정도를 조절한 것이 포인트였어요.”
옥수수수염은 쉽게 부패하는 성질이 있다. 유통기간을 길게 하기 위해 어떤 성분을 쓸지도 고민이었다. 건강과 기능을 내세운 만큼 몸에 해가 되는 성분을 쓰면 안 됐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천연 성분인 유카 추출물이다. 유카나무 뿌리에서 얻어지는 성분은 합성보존료를 대체해 미생물 번식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유사 음료가 잇따라 출시되고 있지만 이들은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단다.
“최수부 회장님은 늘 최고의 원료로 진하게 만들라는 걸 강조합니다. 타사의 제품과 비교했을 때 기능 성분의 함량이 높아요. 향료는 조금만 들어가고 내용물이 풍부한 거죠.”(우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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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수염차 출시 당시 광고 모델은 드라마 황진이의 여주인공이었던 하지원이었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기능 음료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패키지에도 자태가 고운 옛 여인을 형상화했다. 3월 초부터 방영되는 광고의 새 모델은 가수 보아다. 주 소비 계층이 20대 초반 여성인 것을 감안, 얼굴선이 예쁜 해당 연령층의 연예인을 찾다가 보아로 낙점했다. 날씬한 여성을 상징하는 ‘S라인’에 맞서 얼굴선이 고운 여성을 ‘V라인’으로 표현해 여성들 사이에서 신조어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홍일점 김효정 연구원만 빼고 모두 기혼 남성인 이들은 제품을 만들 때 ‘내 가족들을 위한 음료를 만들자’는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는다고 한다. 팀원들은 모두 식품 분야를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김진수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식품공학을 전공한 친구들은 대부분 식품회사에 들어갔는데, 제 생각은 달랐어요. 제약회사에서 식품 관련 일을 하는 게 새로운 영역 개척에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옥수수수염차나 비타 500 모두 식품회사에서는 놓친 ‘기능성 강화 음료’죠.”
이 팀은 사내에서 팀워크가 좋기로 소문나 있다. 팀별 족구대회를 하면 튼실하고 젊은 팀원들이 우글거리는 다른 팀들을 제치고 평균 연령이 높은 이 팀이 항상 우승을 한단다. 팀워크 강화를 위한 노력을 듣고 있자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매달 문화 활동을 하는데, 한 명씩 돌아가면서 팀장이 되어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지난달에는 충남 당진 왜목마을에 가서 해돋이를 보고 왔다며 김진수 주임 연구원이 휴대전화를 열어 사진을 보여준다. 다음 달에는 볼링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제반 비용 절반은 본인이 부담하고, 절반은 우 박사의 사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다. 우 박사는 “내무부 장관한테 제가 좀 혼나겠죠?” 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사진 : 김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