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도시 ‘브흐하임’을 다녀와서
<발터 뫼르스>의 소설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다음과 같은 무시무시한 협박성 경고로
시작된다.
“나는 독서행위를 광기로까지 몰고 갈
수 있는 어느 장소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책들이 독자들에게 상처를 주고, 중독시키고, 심지어 생명까지 빼앗을 수도 있는 곳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어 가는 동안 그 같은 위험성을 감수하고 자신의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내 이야기에 진정 동참하겠다는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만이 나를 따라 이야기의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비겁하지만 몸의 안전을 위해 뒤로 물러서 있기로
결정을 내린 데 축하를 보낸다. 잘 있어라, 겁쟁이들아! 나는 너희들이 오래오래 죽을 때까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을 살기 바라며 이 말을
끝으로 작별을 고한다!”
작가의 2004년 최신작인 이 소설은
‘차모니아’라는 상상의 대륙, 그 중에서도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에서 벌어지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작가 지망생인 육식 공룡 <힐데쿤스트 폰 미텐메츠>는 스승 <단첼로트>의 유언에 따라 스승이 가지고
있던 ‘절대적이고 완전한 문학’을 표현한 원고의 원작자를 찾기 위해 ‘부흐하임’이라는 도시로 떠난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 공룡이 쓴 원고를
작가가 인간 언어로 번역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소설에서
‘부흐하임’이란 도시는 지상의 세계와 지하묘지로 나눠진다.
지상에는 출판사, 인쇄소, 종이공장, 잉크공장, 고서점, 북카페 등 출판과 관련된 공식적인 제도가 존재한다.
그리고 독서를 더 즐겁게 하기 위한 알코올, 담배, 향료, 마약류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 도시의 찻집에는 문학적인 명칭을 딴 음식들로
가득하다. 음료로는 '먹물 포도주'와 '삼류소설 커피', '착상의 물'이란 메뉴가 있고 먹을거리로는 문자꼴의 국수나 버섯으로 만든
음절샐러드가 준비되어 있다. 또 '영감'이라는 바닐라 밀크 커피와 '시인의 유혹'이라는 단과자도 있으며 대시인들의 이름을 딴 비스켓도
판매한다. 또 어느 장소에서나 스물네 시간 작품 낭독회가 열린다.
바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책은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밀매되었다가 버려지고 죽는다. 돈이 되지 않는 책을 쓰는 살아 있는
작가들은 시인들의 공동묘지에서 삶을 구걸하고 있다. 오직 죽은 작가만이 유명해지고 죽어 있는 책들만이 돈이 되어 이 지상의 세계를 이끌어간다.
반면, 지하묘지는 빛을 보지 못한 채 버려진 책들의 무덤과
그런 책을 찾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는 책 사냥꾼들이 판을 치는 죽음의 공간이다. 또 지하묘지는 온갖 엽기적, 해학적 존재들이
생활하는 독자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의 책들은 새나 거미,
뱀의 모습으로 살면서 책사냥꾼과 쫓고 쫓기는 싸움을 벌인다. 잊혀진 책들은 부활을 꿈꾸는 그림자로 살아가는데 특히 ‘그림자 제왕’은
종이로 만든 무기를 사용해 책사냥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공포스런 존재다. 그런가 하면 외모는 무섭지만 순박하기 짝이 없는 외눈박이
‘부흐링’족도 있다. ‘부흐링’족들은 책을 읽으면 배가 불러지는 족속으로 책을 쓰고 원고를 심사하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판매하는
등의 책과 관련된 일과는 거리가 있는 그저 탐독하면서 즐기는 진정한 독자들을 상징한다.
부흐하임에 온 <미텐메츠>는 대부호이며 희귀본 소장가로 도시 네트워크 전체를 장악하고 작가를 성공시키기도,
파멸시키기도 하는 <스마이크>의 음모로 인해 독살당해 지하세계로 쫓겨나 그곳에서 버림받고 절망한 책들의 투쟁과 고통에 동참하게 된다.
지하세계에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미텐메츠>는 그림자 제왕과 스승의 유고 사이의 관계를 밝혀내고,
지하묘지에서 고통받는 책과 예술가들의 악독한 약탈자였던 <스마이크>에 대한 복수를 시작한다. 그림자 제왕은 한줄기 빛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가고 오랫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꿈을 실현시킨다. 오래된 종이에 불과한 그는 햇빛을 보자 불길에 휩싸이는데 이는 한순간이라도 타오르지 않고는
진정한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환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이 상상은 현실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비유와 암시, 풍자로 가득 차
있다. ‘부흐하임’에서 문학에이전트들은 뚱뚱한 야생돼지로 비유된다. 이들은 '절망상태에 빠져있는 작가들에게 접근해 불리한 계약을
맺도록 억지로 종용한 다음, 그들을 마치 대필작가들처럼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마침내는 작가들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독창적인 아이디어까지 다 짜내는
작자들'이다. 또, 나중에 진가가 밝혀진 귀중한 책을 지하묘지에서 찾아내 고가에 판매하는 책사냥꾼은 온몸을 갑옷으로 휘감은 괴물같은 존재로
집요하고 잔인한 사냥개로 그려진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작가들의 고통스런 절규, 독자가 아니라 큰 신문사들을 위해 글을 쓰는 비평가들, 돈이
되는 책만 만들어내는 출판사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흔드는 거대한 자본의 힘은 바로 지금의 현실을 대변하는 캘릭터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문화적 창조성과 다양성을 시장성이란 잣대로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거대한 출판자본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다. 이에 맞서는 세력은 ‘부흐링족’으로 상징된 깨어있는 독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고 배우기 위해서" 책을 찾는 무리다. 또 하나는 자본과 타협하지 않는 소수의 용기있는 작가들이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그 세계는 독자가 거주하고 있는 현실과 다른 차원의 현실을 열어놓는다. 종이 뭉치 위에 씌여진 활자를 읽는 행위는 미지의
세계로 난 길을 따라 호기심과 두려움을 간직하면서 아슬아슬하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삶의 움직임이다.
영상문화가 활자매체를 밀어내는 세태 속에서, 또 진정한 문학은 죽었다고 운위되는 이 시대에 이렇듯 상상력의 극한을
통해서 문학이 살아있음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용기와 능력에 박수를 보낸다.
저자 <발터 뫼르스>는 1957년 독일의 묀헨글라드바흐에서 출생했다. 만화가와 시나리오 작가로서
활동했고 1985년에 최초의 책을 출간했다. <발터 뫼르스>는『작은 똥구멍』으로 1990년에 '라하-비평가 상'과 에를랑겐
시가 수여하는 '막스와 모리츠 상'을 받아 그해의 최고 만화가로 두각을 나타냈다. 또 『아돌프-나치새끼』와 『아돌프-나 다시 왔다』로 큰 선풍을
일으켰으며, 1999년에는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된『푸른곰 선장의 13과 1/2 인생』을 출간해 ‘아돌프-그리메’ 상을 받았다. 허구적인 대륙
'차모니아'는 그의 두 번째 작품『엔젤과 크레테』에서 처음 등장하는 데 『루모와 어둠 속의 경이로움』,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서도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2004년 출간되자마자 인문 중심의 독일 문화계를 뒤흔들었으며, 같은 해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06년에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다.
첫댓글 유레카님, 오랫만에 참 반가워요. 안 그래도 일요일 이 서재 뭔가 한 권 꽂으려고 했는데 이상해진 게시판 환경의 원인을 찾느라고 온 새벽이 다 가 버렸어요,..이 글 이따가 다시 한 번 더 읽어 볼께요,..반가운 마음에 인사나,..^^*
그야말로 극한의 상상력 맞네요. 오랜만에 오신 유레카님 저도 반갑습니다.^^
책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면 그런 가공할 세계가 될 것 같기도 하네요..사람의 상상력을 가동시킬때의 그 갖가지의 세상이 문득 두렵다는 생각이 듦은 나 자신의 한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발터라면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글을 쓸텐데,..ㅎㅎ..영화로 만들어 진다면?...초록님 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