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컷) 운장산 유격장에서
1070년대 중반, 늦은 나이에 입대하여 하사관(부사관)후보로 차출되었다. 복무기간은 일반 사병과 같으나 훈련기간이 6개월(우리는 27주)씩이나 되었다.
전반기 13주중 10주 가까이되면 1주간의 유격훈련과정이 있다. 장소는 진안과 완주에 인접한 운장산 자락이다. 산은 암반이 많고 험하다.
전날 10시경 훈련소를 출발하여 밤새 산길 야간행군, 새벽 8시경에 100리길 달려간 끝에 유격장에 도착하였다.(탈영자 발생으로 곤혹스런...)
현장에 도착하니 잔뜩 긴장이 되었다. 험산 훈련장, 빨간 모자를 쓴 구릿빛 얼굴 조교들의 번뜩이는 눈빛이 두려웠다.
피티체조, 줄타기는 기본이고, 좁은 장소 바위틈에서 받는 기합에 몸에 성처가 나기 십상이었다.
3일째 되는날 오후, 무거운 총을 메고, 지친몸으로 산을 오르는데 조교(하사)가 나를 지목하며 올빼미 번호를 불렀다.
순간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속으로 끌려갔다. 그런데 하는 말이 뜻밖이었다.
"너 편지 잘쓴다며?"
"아닌데요."
"괜찮아 임마! 잘쓴다더만..."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입대해서 남보는데서 글이란걸 써보지를 않았는데, 도대체 누가 추천을 한 것일까? 동기들중 그와 친구가 있는것 같았다.
거부할수 없는 상황, 상대방 여자와의 친밀도를 물었더니 그냥 알아서 쓰란다. 이런 황당할데가. 에라 모르겠다. 미사여구 총동원 심리전이다.
그날 오후 한나절 그 편지 한통으로 천국같은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늘어지게 잘 쉬었다.
5일째 오전, 또 다시 그 조교가 나를 불렀다.
"너! 편지 기똥차게 잘썼더라. 한통 더 써주라. 너가 오래 있으면 자주 부탁을 할건데 아쉽다."
오래 있다니! 끔찍한 소리...이건 뭐 언제부터 내가 연애편지 대필사가 되고 말았을까? 아무튼 그의 덕택으로 두나절이나 혹독한 지옥훈련을 빠졌으니, 동료들의 부러움을 산건 틀림이 없었다.
정식 계급장을 단 후엔 사진을 많이 찍었으나 훈련기간중엔 상상도 못했던 유격장의 사진한장, 도대체 누가 찍어서 준 것일까? 기억이 없다. 내 사진이 맞긴 하나? 하여간 내가 간직하고 있으니 내 사진일게다.
아무튼 나는 이 사진을 볼때마다 우리들의 우상이었던, 얼굴 모르는 황산벌 계백장군 모습을 연상하며,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는다.
* 고산유격장, 유명 등산코스인 운장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남쪽에는 대아리 호수가 자리잡고 았다.
2010년 8월, 어머니를 모시고 휴가길에 유원지가 된 대아리 호수가에서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운장산은 산악회 활동으로 두번의 등반을 한적이 있다.
글에 살 붙이려 개인 애기 하다보니 개인을 내세우는 것 같아 이 나이에 좀 거시기 하다만...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