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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샘터 사람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한울타리 추천 0 조회 35 24.09.14 12:32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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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4.09.15 11:22

    첫댓글 道典 2:30)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큰 공덕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

  • 작성자 24.09.15 11:23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天道)와 인사(人事)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 작성자 24.09.15 11:23

    @한울타리

    이마두(利瑪竇):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이탈리아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가톨릭을 뿌리내린 인물. 별호를 서방의 현사(賢士)라는 뜻에서 ‘서태(西泰)’라 하고 이름은 마테오의 음사인 ‘마두(瑪竇)’, 성은 리치를 본떠 ‘리(利)’라 하였다. ‘리’는 벼(禾)를 칼(刀)로 추수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동서양 문화를 통합하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문명 발전에 사역한 종교가, 과학자, 철인, 학자 등의 신명.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일반적으로 근대 문명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데, 산업혁명을 신명계에서 주도한 분이 이마두 대성사와 진묵대사다.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근대 이후 서양의 과학기술 문명은 인류의 편익과 복리증진에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이 문명은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적 사고, 인간중심주의, 물질주의, 그리고 ‘도구적 이성’에 근거함으로써 천지만물에 깃들어 있는 신성을 제거해 버리고

  • 작성자 24.09.15 11:24

    @한울타리

    자본주의 및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오늘날 인간과 자연을 파괴로 치닫게 하는 대재앙을 초래하고 있다.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 문명사에 큰 덕을 베푼 실존 인물들과 그들의 영신(靈神).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상제님께서는 서양 근대문명을 연 이마두 대성사의 공덕을 인정하시어 서양 문명과 기독교 문화의 뿌리인 로마에 먼저 들르신 것이다.

  • 작성자 24.09.15 11:24

    @한울타리

    道典 4:14) 진묵대사를 선경 건설에 역사케 하심
    진묵이 천상에 올라가 온갖 묘법(妙法)을 배워 내려 좋은 세상을 꾸미려 하다가 김봉곡에게 참혹히 죽은 뒤에 원을 품고 동양의 도통신을 거느리고 서양에 건너가서 문명 개발에 역사(役事)하였나니 이제 그를 해원시켜 고국으로 돌아와 선경 건설에 역사하게 하리라.


    道典 4:138) 진묵대사의 참혹한 죽음과 서양문명 개척
    전주 서방산(西方山) 봉서사(鳳棲寺) 아래에 계실 때 하루는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김봉곡(金鳳谷)이 시기심이 많더니 하루는 진묵(震黙)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봉곡이 곧 후회하여 찾아올 줄 알고 걸어가면서 한 권씩 보고는 길가에 버려 봉서사 산문(山門) 어귀에 이르기까지 다 보고 버렸느니라.


    봉곡이 책을 빌려 준 뒤에 곧 뉘우쳐 생각하기를 ‘진묵은 불법을 통한 자인데 만일 유도(儒道)까지 정통하면 대적하지 못하게 될 것이요, 또 불법이 크게 흥왕하여지고 유교는 쇠퇴하여지리라.’ 하고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 책을 도로 찾아오게 하니, 그 사람이 뒤쫓아가면서 길가에 이따금 한 권씩 버려진 책을 거두어 왔느니라.


    그 뒤에 진묵이 봉곡에게 가니 봉곡이 빌려 간 책을

  • 작성자 24.09.15 11:25

    @한울타리

    돌려달라고 하거늘 진묵이 ‘그 책은 쓸데없는 것이므로 다 버렸노라.’ 하니 봉곡이 크게 노하는지라. 진묵이 말하기를 ‘내가 외우리니 기록하라.’ 하고 외우는데 한 글자도 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봉곡이 이로부터 더욱 시기하더니,


    그 뒤에 진묵이 상좌(上佐)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 하고 떠나거늘, 하루는 봉곡이 봉서사로부터 서기가 하늘로 뻗친 것을 보고 ‘내가 저 기운을 받으면 진묵을 능가할 수 있으리라.’ 하며 즉시 봉서사로 올라갔느니라.


    봉곡이 서기가 뻗치는 법당 앞에 당도하여 진묵을 찾으매 상좌가 나와서 ‘대사님이 출타하신 지 얼마 안 됩니다.’ 하니, 봉곡이 ‘옳거니, 법당의 서기를 이 참에 받아야겠다.’ 하고 ‘법당 문을 열라.’ 하매 상좌가 ‘대사님께서 자물쇠를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거늘, 봉곡이 큰 소리로 호령하며 기어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뜻밖에 진묵이 앉아 있고 그의 몸에서 서기가 뻗치더라.


    봉곡이 잠시 당황하다가 문득 진묵이 시해로 어디론가 갔음을 알아차리고 ‘서기를 못 받을 바에는 차라리 돌아오지 못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상좌에게

  • 작성자 24.09.15 11:26

    @한울타리

    ‘어찌 시체를 방에 숨겨 두고 혹세무민하느냐! 중은 죽으면 화장을 해야 하느니라.’ 하며, 마침내 마당에 나무를 쌓고 진묵의 시신을 화장하니


    어린 상좌가 울면서 말리거늘 봉곡은 도리어 화를 내며 상좌를 내쳤느니라. 이 때 마침 진묵이 돌아와 공중에서 외쳐 말하기를 ‘너와 내가 아무 원수진 일이 없는데 어찌 이러느냐!’ 하니 상좌가 진묵의 소리를 듣고 통곡하거늘, 봉곡이 ‘저것은 요귀(妖鬼)의 소리니라. 듣지 말고 손가락뼈 한 마디, 수염 한 올도 남김없이 잘 태워야 하느니라.’ 하며 일일이 다 태워 버리니


    진묵이 다급한 음성으로 상좌에게 ‘손톱이라도 찾아 보라.’ 하는데 봉곡이 상좌를 꼼짝도 못하게 하며 ‘손톱도 까마귀가 물고 날아갔다.’ 하는지라. 진묵이 소리쳐 말하기를 ‘내가 각 지방 문화의 정수를 거두어 모아 천하를 크게 문명케 하고자 하였으나 이제 봉곡의 질투로 인하여 대사(大事)를 그르치게 되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나는 이제 이 땅을 떠나려니와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하고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건너갔느니라.” 하시니라.

    봉서사: 전북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종남산(終南山)과 서방산(

  • 작성자 24.09.15 11:26

    @한울타리
    )의 계곡에 위치한 절. 서방산이 봉(鳳)의 형상을 하고 깃을 드린다 하여 봉서사라 하였다. 진묵대사가 출가한 곳으로 유명하다.


    김봉곡(金鳳谷, 1575~1661): 이름은 동준(東準). 자는 이식(而式), 봉곡은 호. 조선 선조 때의 유학자.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에게 수학하였고, 병자호란 때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자 비분강개하여 숨어 살면서 『계몽도설(啓蒙圖說)』, 『심성서언(心性緖言)』 등을 저술했다.


    진묵(震黙)이 봉곡에게서 성리대전(性理大全)을 빌려 가면서, 성리대전: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명을 받아 호광(胡廣) 등 42명의 학자가 사상적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성리설에 관한 이론을 집대성한 책.


    진묵이 상좌(上佐)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내가 8일을 기한으로 하여 시해(尸解)로 천상에 다녀올 것이니 절대로 방문을 열지 말라.’ 하고 떠나거늘, 상좌: 사승(師僧)의 대를 이을 여러 제자 가운데 높은 사람을 뜻하나 여기서는 행자(行者)를 말한다.

    진묵에 관한 기록은 조선 후기에 초의(草衣) 스님이 지은 『진묵대사유적고』와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1987)가 대표적인데, 진묵대사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판이하게

  • 작성자 24.09.15 11:28

    @한울타리
    다르다. 본문 내용은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린 것과 같다. 상제님께서 구전되어 오는 내용을 사실로 인정해 주신 것이다.


    봉곡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질을 면치 못하리라. 이 구절은 진묵대사의 천하를 크게 문명코자 한 대의를 꺾어 버린 봉곡에 대한 천지신명의응징이다. 봉곡이 살던 완주군 용진면 간중리 봉서골은 1924년에 저수지가 되었는데, 이는 상제님께서 진묵을 해원시키기 위해 봉곡이 살던 마을을 물에 잠기게 하신 것이다.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일반적으로 근대 문명은 르네상스와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보는데, 산업혁명을 신명계에서 주도한 분이 이마두 대성사와 진묵대사다.

  • 24.09.16 11:59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따르리라.”
    (前生·現生·後生)
    추석 따뜻하고 평화롭게 보내소서 ^^*

  • 작성자 24.09.16 21:46

    네, 말씀 감사합니다. 씨알님께서도 즐거운 명절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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