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고넬료라는 한 사람
인류의 역사는 사람을 통해서 이어져갑니다. 기독교회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인류에게 끼친 가장 위대한 사건은 유대인의 선민의식의 장벽을 부수고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 흘러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유대교는 팔레스타인과 그 지역에서 떠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종교였을뿐, 전 세계적인 종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도행전 10장에서 드디어 장벽 너머의 신실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됩니다. 기독교역사상 최초의 이방인으로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세례를 받은 고넬료입니다. 고넬료는 예루살렘을 넘어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맺어진 첫 열매였습니다.
고넬료를 보면서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고넬료는 복음이 사마리아와 팔레스틴 전 지역으로 확산되던 A.D.37-46년경의 인물입니다. 로마 황제 칼리쿨라(Caligula, A.D.37-41년)의 시대였고, 당시 유대 총독은 마룰루스(Marullus, A.D.38-41)였는데 고넬료는 이 마룰루스 수하의 이달리아 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이 부대는 당시 로마 총독 관저가 있던 가이사랴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총독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런 사람이 굳이 하나님을 믿어야 했을까?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군대의 힘을 가진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식민지의 종교를 열심히 믿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더 이상 고넬료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본문만으로도 우리는 고넬료가 이방인과 그 문화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로마인들이 유대 문화를 경멸하고 무관심할 때 그는 유대의 문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려면 열린 마음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지도력이 어떤 사람입니까? 어른입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는 어른이 없습니다. 여야를 아우르고, 남녀노소, 기업주와 노동자들을 아우르는 그래서 모든 국민들이 어른답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고넬료를 보면서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른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다 버리고 가지 말고, 그들도 애국할수 있도록 돕는 어른, 모든 영역에서 그런 어른이 그립습니다.
고넬료의 열린 마음은 겸손함과 식민지의 문화와 백성에 대한 존중이 기본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중요한 태도입니다. 물론 고넬료가 끼친 선한 영향력에 대해서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그의 기독교로의 회심은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한반도 해외 파병이 되지 않았던 귀족들의 자녀로 구성된 이달리야부대의 성격상 고넬료는 식민지에서의 2년정도 근무후 로마로 귀환했을 것입니다. 로마장교 코넬리우스가 언제부터 하나님을 믿었는지는 모르지만, 고넬료는 기독교인으로서 로마로 귀환한 것입니다.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는 로마교회의 개척자중의 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기독교를 핍박했던 로마 제국의 심장에 교회를 세워 복음이 흘러가도록 만든 사람, 상상이지만 그런 고넬료를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지금은 한 사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 그 인격과 신앙이 아름다운 한 사람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한 사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인해서 세상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받는 영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을 세우는 것이 한 가정을 믿음안에서 세우고, 교회와 지역사회를 살리고, 나라와 민족의 미래를 밝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다음세대를 위해 더욱 헌신해야 할 이유입니다.
유고에서 태어나 평생을 인도 캘커타의 가난한 동네에서 보내다가 1997년 세상을 떠난 테레사 수녀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빈손으로 병원과 보육원 등을 세웠고 그 빈손으로 또 다시 가난한 자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인도 캘커타에 큰 보육원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때 많은 기자들이 몰려와 그녀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물었습니다. "보육원 건축을 위한 기금은 얼마나 마련되어 있습니까?"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대답했습니다. "지금 준비된 기금은 오직 3실링뿐입니다." 그러면서 테레사 수녀는 기자들이 둘러싼 책상 위에 정말 동전 세 닢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녀의 행동에 기자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웃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3실링과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3실링이 하나님의 것이 될 때는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저는 이 돈이 반드시 하나님의 의지대로 쓰일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녀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믿음 앞에 기자들은 더 이상 웃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3실링은 테레사 수녀의 믿음대로 움직였습니다. 3실링은 사랑을 실천하는 귀중한 씨앗이 되어 많은 이들의 따뜻한 손길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테레사 수녀는 기자들에게 약속한대로 보육원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세상에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끝나게 될 것입니다. 기록되지 않은 ACTs 29장의 주인공이 되는 고넬료와 같은 한 사람이 되는 예신 가족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온 집안과 더불어
그리스도인은 가정안에서 성도로서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 읽고,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가운데 하나가 교회에 집중하느라 가정에 소홀한 교인들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직장에 온 힘을 다하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많은 가장들처럼, 교회 일에 온 힘을 다하느라 가정과 자녀들에게 소홀한 그리스도인들을 만들어냈던 것입니다. 그 열매를 지금 우리가 거두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자녀들이 믿음이 없이 방황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자녀들은 왜 부모의 신앙을 본받지 못하고 떠돌고 있을까요?
성경을 읽으면서 제가 늘 궁금했던 것 그리고 두려웠던 것중의 하나는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의 자녀들이 왜 신실한 신앙인이 되지 못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의 비리와 불순종을 보았으면서도 왜 사무엘의 아들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망을 주어 왕을 구하게 만들었을까요? 왜 그리스도의 조상인 다윗의 아들들은 왜 그 모양이었을까?
늘 강조하듯이 가정과 직장과 교회는 성도의 삶에서 중요한 삶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이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한국사회의 가정문제는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존속상해를 넘어 존속살인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가정안에서의 감춰진 폭력으로 인한 고통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안에서도 하나님과의 동행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가정안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의 첫 번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태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를 넘어 우리 사회에 선한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끼친 김장환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나와 아내가 복음을 위해 한국으로 올 때 한 약속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역이 성공해도 가정이 잘못되면 부질없으니 가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무엇보다 자녀교육을 철저히 합시다.”나와 아내는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또 세계선교를 위해 불철주야로 뛰며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았지만 그럼에도 자녀들과의 시간을 내기 위해서 애를 썼고, 자녀들을 위해 낸 시간에는 온전히 자녀들에게 집중했습니다. 1973년에 열린 빌리 그래함 한국전도대회 때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방문한 룻 사모님은 통역을 맡은 나를 공항에서 보자마자 자녀가 몇 명이고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며칠 뒤 다시 어떤 자리에서 사모님이 나와 우리 아이들을 만났는데 그때 정확히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신기해하는 나에게 사모님은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아무리 바빠도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노력하세요. 아이들은 금방 자라서 부모 곁을 떠난답니다.”고넬료는 신앙을 가족들의 신앙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의 성품상 강요하거나 억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열린 마음과 겸손한 성품은 가족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고 가 영향력안에서 가족들은 그와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고 식민지의 백성들을 향해 사랑의 마음을 베풀었고, 하나님앞에 기도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온 집안과 더불어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가정의 모델이 된 것입니다. 군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충성하는 군인들에게 1번은 황제의 명령입니다. 이런 군인이 퀴리오스가 둘이 될 수 없는데, 고넬료에게는 퀴리오스가 황제가 아닌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제일 앞에 두고 살지 않음으로서 자녀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과의 동행은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둔 삶,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을 통해서 교회는 미래를 열어갈 수 있게 됩니다. 자녀들을 예배와 기도의 자리로 이끌오 온 집안이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져가기를 축원합니다.
구제와 기도(경건의 능력)
경건의 능력은 어디에서 얻어질 수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혹은 일주일에 한번 2시간 정도 머무는 교회에서? 학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가정에서 경건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셨는지요? 고넬료의 가정을 통해서 우리가 놀라게 되는 것은 가정안에서 구제와 기도의 본을 자녀들에게 고넬료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보여준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생활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경건이란 구별됨입니다. 세상과 구별됨이고, 세상의 가치관과의 구별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이것을 증거하는 것이 경건의 힘입니다.
처음부터 경건의 힘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경건은 훈련, 연습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가정에서가 정답입니다. 왜 교회를 보내는데 아이들이 경건해지지 않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교회는 경건의 힘을 길러주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당신의 자녀를 매일 교회에 2시간씩만 보내주십시오. 경건을 훈련시키겠습니다. 그러나 성적은 좀 떨어질지 모릅니다. 어떤 부모가 성적을 희생하면서 경견을 가르킬 부모가 있을까요? 그래서 교회는 경건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큰 틀을 가르칩니다. 이제 경건의 힘을 아이들의 삶에 담아주는 사명은 가정을 중심으로 목회자와 교사들이 힘을 합하여 해내야하는 사역입니다.
데이빗 제러마이어 목사의 책 <생명력 있는 그리스도인>에 실린 글입니다.
자녀를 신실한 사람으로 양육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가 축구 중계를 보고, 재미있는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시청하고, 신작 영화를 넷플릭스를 통해서 보는 모습을 흔히 보고 자랍니다. 하지만 부모가 성경 읽는 모습을 목격한 자녀는 몇 명이나 될까요? 당신의 자녀가 부엌 식탁에서 하나님 말씀을 탐독하는 당신의 모습을 가장 최근에 본 것이 언제인가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내 루스 그레이엄(Ruth Graham)은 자신이 어떻게 해서 평생 성경을 공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 준 적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자란 그녀는 선교사이셨던 부모님이 매일 성경을 공부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우리 아버지는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고 계셨다. 의료 선교사이셨던 아버지는 항상 정신없이 바쁘셨던 분인데도 아침 시간에는 항상 성경과 함께했다. 또 밤이면 일을 마치신 우리 어머니도 아버지와 똑같이 하셨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부모님의 관심과 헌신을 그 정도로 차지하는 것이라면, 나도 한번 탐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 도전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 경건의 삶을 훈련하고, 경건하게 살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가정이 되자, 기도하기 시작하고, 본을 보여주십시다. 그리고 세상과 구별된 태도로 살아가는 삶을 격려하고 응원함으로서 가정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실천하는 가정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을 바꿀 믿음의 가치관으로 사는 한 사람을 길러내는 가정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앞에 두고 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되고, 사랑의 실천과 기도훈련을 통해서 경건의 능력을 길러주는 가정이 되기를 위해 시작하는 예신 가족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