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The New York Times 2013-2-1 (번역)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 시하누크 전 국왕 장례식, 시가행진으로 시작
Cambodia Bids Farewell to King Sihan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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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P) 시하누크 공의 시신을 포함한 행렬이 왕궁을 떠나 프놈펜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
기사작성 : Thomas Fuller
(프놈펜) — 대포의 포성이 금요일(2.1) 프놈펜 전역에 울려퍼졌다. 그것은 고(故)-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전임 국왕에 대한 마지막 경의로서 발사된 조포였고, 전쟁으로 얼룩졌던 캄보디아의 과거를 회상하게 만들었다.
일주일간의 시하누크 전 국왕의 장례식이 오늘 '대규모 시가행진'을 필두로 시작되었다. 그는 지난 10월15일 향년 89세로 사망했다. 그의 통치기간은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면서 시작된 희망의 시대와, 1970년대 말 크메르루주(Khmer Rouge) 정권기의 암흑기 모두를 경험한 시대였다. 시하누크 공의 시신은 월요일(2.4)에 화장될 예정이다.
시하누크 전 국왕의 관을 실은 상여가 그동안 추모장소로 이용됐던 왕궁을 마지막으로 떠나기 시작하자, 메콩 강(Mekong River)의 제방에 배치된 대포들은 베트남이 기증한 공포탄을 사용하여, [101발의] 조포를 발사했다.
프놈펜의 자전거 릭샤 운전수인 머이 톤(Mey Thorn) 씨는 사기행진의 행렬을 바라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 때 생각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고, 더욱 더 좋아지고 있다." |
캄보디아의 권위주의 정권 총리인 훈센(Hun Sen) 총리는 거의 30년 정도나 권력을 잡고 있도, 현재 캄보디아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오늘 행사에서는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은 역할만 수행했다. 그는 다른 고위 관리들과 더불어 전설의 불사조 모습을 한 배 모양의 차량에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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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uters) 시하모니 국왕이 부왕의 상여가 왕궁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시하누크 공의 아들인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국왕은 지난 2004년 즉위한 이후, 자신의 부왕과는 달리 의전적인 역할만 담당해왔다. 시하모니 국왕은 오늘 모친인 노로돔 모니니엇 시하누크(Norodom Monineath) 왕대비와 함께 왕궁의 문 앞에서 행렬을 바라봤다.
시하누크 공의 장례식은 캄보디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프놈펜 및 여타 도시들이 번영하기 시작하는 시대에 치뤄졌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공평하지 못하며, 시골지역의 대다수 인구는 여전히 가난한 상태로 살고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 월드뱅크)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마찬가지로 전쟁을 겪었던 베트남은 최근 10여년간 1인당 GDP에서 캄보디아를 훨씬 앞서 나아가면서 급성장했다. 태국이나 베트남에서는 거의 전 인구가 전기를 사용하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인구의 4분의1만이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캄보디아 인구의 3분의 1은 상수도 시설을 갖고 있지 않다.
캄보디아의 주요 야당 2곳은 작년에 통합야당인 '캄보디아 구국당'(CNRP)을 결성했다. CNRP의 중진인 손 차이(Son Chhay)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제성장에서 얻은 부(富)가 모든 국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오직 소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우리에겐 상류층과 빈민층만 있고, 중산층이 없다." |
금요일에 진행된 시가행진은 건설 중인 고층빌딩 등 도심의 풍요로운 지역도 통과했다.
시하누크 공의 장례식은 근년에 있어서 최고로 성대하게 치뤄지는 장례식이다. 행렬 속에는 군악대와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참가자들이 커다란 심벌들을 연주했고, 흰색과 검은색 상복을 입은 고위 관리들도 대오를 맞췄다. 행렬이 시가지를 돌자, 수많은 참배객들이 연도변에 나와 무릎을 꿇은 채 합장했다. 행렬은 스님들의 독경소리 속에서 왕궁 옆에 위치한 다비식장(=화장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분석가들은 정부가 캄보디아 현대국가의 국부로 추앙받는 시하누크 공의 유산을 물려받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시하누크 공은 195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던 인물이다. 오늘 행사에는 15,000명 이상의 공무원들이 참가했다. 캄보디아 인권단체 '리카도'(Licadho) 총재인 뿡 치우 껙(Pung Chhiv Kek)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의 정책은 시하누크 국왕에 관한 기억들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훈센 총리는 자신이 군주제의 수호자처럼 보이길 원하고 있다. 특히 나이든 캄보디아인들에게 있어서, 군주제는 확고한 제도이다. 시골지역의 일부 캄보디아인들은 '국왕 없이는 나라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
캄보디아 정부는 금요일 행사에서, 시하누크 전 국왕을 국부이자, 공장과 학교들과 도로와 병원들을 건설한 지도자라고 발표했다. 시가행진을 중계한 국영 TV의 아나운서는 "그는 통합의 아버지였고, 국가단합의 아버지였으며, 사상 최고의 국왕이셨다"고 말했다.
시하누크 공의 유산에 관해 언급할 때 가장 자주 회자되는 말은 "복합적"(complex)이란 말이다. 캄보디아 역사에 관해 선도적인 학자인 밀턴 오스본(Milton Osborne)은 시하누크를 "빛의 왕자이자, 어둠의 왕자"라고 불렀다. 아마도 시하누크의 유산 중 어두움의 얼룩은 그가 '크메르루주'를 인정하여 정권을 잡도록 만들어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크메르루주 정권기에는 170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망했는데, 그가 크메르루주를 지지했었다는 것은 가장 큰 유감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오늘 시가행진을 보러나온 사람들은 시하누크 공을 자비로움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께오 시나(Keo Sina, 56세) 씨는 프놈펜의 외곽에서 과자점을 하고 있는데, 오늘 행사를 보기 위해 가족 9명과 함께 왔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린 시절 시하누크 국왕이 마을에 와서 원조품을 나눠주던 것을 기억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국왕 폐하를 뵐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이 나라를 위해 희생했다. 나는 그분이 영면에 드시길 기원한다." |
캄보디아 정부는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을 국장기간으로 선포했다. 공무원들에게는 [금요일(2.1)과 월요일(2.4) 등] 이틀간의 휴일이 주어졌고, 행렬이 통과하는 연도변의 사업장들에는 철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캄보디아 정부가 발표한 성명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유흥가와 방송들은 과도한 오락을 삼가해야만 한다." |
* 이 기사를 위해 Poypiti Amatatham가 프놈펜에서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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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부총리 급들은
행렬 앞쪽에서 걸어서 행진한 모양인데요..
속안 부총리(관방부장관)가
걷던 중에 졸도해서 병원으로 옮겨졌답니다..
곧 소식을 올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