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굴원 편-제2회: <사미인(思美人)>과 초회왕
(사진설명: 굴원의 석상)
제2회 <사미인(思美人)>과 초회왕
강가에 앉아 꽃다발을 만드는 굴원의 마음은 여전히 머나먼 조정에 가 있었다…
그때 나는 초왕(楚王)에게 제(齊)나라와 연합해 진(秦)나라에 대항하는 계책을 냈다. 내가 금방 제나라에서 돌아오자 변덕이 특기인 소인배 장의(張儀)도 진나라에서 돌아왔다. 장의는 히죽거리며 두 손으로 하얀 패옥(佩玉)을 나에게 건네면서 아부조로 말했다.
“다른 대부님들에게도 모두 선물이 있지만 유독 대부님께만 드리는 이 양지옥(羊脂玉)은 보기 드문 보물입니다. 이 옥은 대부님의 고결한 기개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그 말에 나는 노해서 대답했다.
“누가 당신의 선물을 받겠다고 했소?”
말을 마치고 나는 패옥을 바닥에 내던지고 홱 돌아서 자리를 떴다.
내가 집에 돌아오니 누나 여수(女嬃)가 조급한 기색으로 서성거리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님, 오셨습니까?”
누나는 나를 보더니 급히 내 손을 잡아 자리에 앉히고 이렇게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알려주려고 왔다.”
누나의 말에 나는 놀라서 물었다.
“급한 일이라니요?”
“선연(嬋娟)이 오늘 특별히 나를 찾아와서 알려주는데, 누가 너를 해치려 한다고 필히 조심하라고 당부하더라.”
“누가 나를 해쳐요? 나는 누구와 척진 일이 없는데요?”
“너가 글도 잘 쓰고 언변도 좋아서 그 상관대부(上官大夫)는 오래 전부터 너를 질투했다. 너 모르느냐?”
“난 또 누구라고? 그건 다 지난 일이에요.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해치지 못해요.”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있어. 너 정수(鄭袖) 왕비에게 잘못 보였더구나.”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라서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왕비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잘못 보여요?”
“장의가 그 정수왕비에게 하는 말을 선연이가 직접 들었단다. 장의가 정수왕비에게 ‘이번에 합종(合從)정책을 제언하러 제나라에 갔다 온 좌도대부(左徒大夫, 굴원의 직위)가 초나라가 만약 제나라와 연합하면 제나라에서 초왕에게 미인 백 명을 선물할 준비를 한다고 초왕에게 말했습니다. 굴원의 음모가 이루어지면 초나라 궁중에 미녀들이 구름처럼 많아지고 초왕은 제나라 미인들에게 빠져 왕비는 총애를 잃게 될 것입니다. 제나라 미녀들은 하나같이 예쁘고 경박하고 거만하고 횡포한데 왕비께서 그녀들의 상대가 되시겠습니까’라고 말하더란다.”
내가 놀라서 할 말을 찾지 못하는데 누나가 말을 이었다.
“장의는 정수 왕비의 얼굴색이 변하자 굴원만 제거하면 초나라는 천하가 태평할 것이라고 왕비를 위로했다는구나. 그 말을 들은 선연이가 급한 마음에 바삐 휴가를 내고 궁에서 나와 이 사실을 알려주면서 반드시 조심해서 소인을 경계하라고 너에게 전하라고 하더구나.”
“어떻게 경계할 수 있어요? 소인배들의 그런 음험한 계책은 나는 생각도 하지 못해요. 그 장의는 연횡(連衡) 정책을 주장하기 때문에 진(秦)왕은 전문 그를 보내서 초나라와 제나라 간의 연맹을 파괴하고 있어요. 우리 나라는 지난 번에 그의 꾀에 넘어가 6백리가 넘는 상어(商於)의 땅을 얻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한중(漢中)의 땅을 진나라에 떼어주었어요. 초왕은 설마 그 일을 잊었을까요?”
누나는 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여전히 조심하라는 말만 곱씹었다.
“진나라와 가까이 지내는 대신들과 엇나가지 말아라. 너 자신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중요하니깐.”
지키는 사람 열 있어도 도적 한 놈을 못 당한다는 말이 있다. 소인배의 암해는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다. 장의가 왕비에게 이간질을 한 후 사흘이 지나자 과연 무서운 일이 발생했다.
초나라 궁중에서 대 규모 제사를 지내는데 나는 제사에서 나의 신작 <국상(國殤)>을 몸소 읊어야 했다. 리허설을 하는 날 나는 제단에 올라 마지막 몇 구절을 읊었다.
참으로 씩씩하고 칼재주도 무섭더니(誠旣勇兮又以武)
탄탄한 그 기백을 지금이라 범할손가(終剛强兮不可凌)
몸은 비록 죽었어도 영혼만은 살아 있어(身旣死兮神以靈)
그대들 넋은 귀신 중 으뜸일세(子魂魄兮爲鬼雄).
여기까지 읊으니 단양(丹陽) 전투에서 진나라 군대에 참수당한 8만 명의 병사가 생각나고 순국한 굴개(屈匄) 장군이 기억에 떠올라 나는 그만 통곡하면서 분노해서 크게 외쳤다.
“제나라와 연합해 진나라에 맞서 초나라의 굴욕을 씻자!”
상관대부(上官大夫)가 다가와서 말했다.
“너무 흥분하지 말게. 왕비께서 찾으시니 같이 가세.”
슬픔에 머리가 어질어질한 내가 상관대부를 따라 제당(祭堂)에 이르니 정수왕비 혼자만 있었다. 왕비는 나를 보자 손짓하여 불렀다.
“굴 대부, 이리 오시게. 할 말이 있네.”
내가 금방 왕비 앞에 이르자 왕비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내 머리를 감싸 안고 입술을 내 얼굴에 갖다 대서 연지를 묻히고는 울면서 소리쳤다.
“이리 오너라. 굴원을 포박하라!”
곧 호위 몇 몇이 어디선가 나타나 나를 꽁꽁 결박했다.
그리고 결과는 뻔했다. 내 얼굴에 묻은 연지라는 증거가 있고 상관대부라는 증인이 있었기에 나는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대로한 초왕은 더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를 이 원수(沅水)강으로 유배를 보냈다.
아, 만약 내가 왕족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벌써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굴원의 손이 살짝 떨리자 꽃다발의 가시가 식지에 박혔다. 굴원이 손톱으로 가시를 빼려고 하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굴원은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아우야.”
굴원이 머리를 드니 누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굴원이 놀라서 물었다.
“누님, 어떻게 된 일이십니까?”
“대왕께서 진나라에서 객사하셨단다. 들었느냐?”
누나의 말이 끝나자 굴원은 대성통곡했다.
“왜 우느냐? 그는 너의 충언을 듣지 않았기에 이 지경에 이르렀고 그 나쁜 년의 거짓말을 믿고 너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그는 슬퍼할 가치도 없다.”
“국치에요. 국치, 이는 초나라의 크나큰 치욕이에요! 그 기백이 넘치던 초나라가 진나라와 가까운 귀족들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요. 그들은 사적인 이익을 위해 나라를 팔았는데 이제 망국(亡國)과 멸족(滅族)의 업보를 반드시 받을 거예요!”
“사적인 이익이라니?”
“누님은 그 사람들이 진나라와 자식들의 혼인을 맺은 사이인 것을 모르세요? 그들은 자신들의 딸이 진나라에 있고 혹은 진나라의 여인과 혼인했기에 자신들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초나라와 진나라 사이가 벌어지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볼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들딸이 될 줄을 생각지도 못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정말로 한 치 앞도 보지 못해요. 진나라는 원래 포악한 나라인데다 천하통일을 위해 초나라와 싸웠어요. 그런데 지금 초나라는 완전히 진나라에 대적할 수 없는 상황이라 제나라와 연합해 진나라에 대항하지 않으면 초나라는 금방 진나라의 먹이가 될거에요. 그때 가서 진나라가 그 사둔의 가문들을 인정하겠어요? 진왕이 초나라 왕족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
안서도 굴원의 말을 듣더니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눈물은 초회왕이 아니라 초나라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었다.
그날 저녁 굴원은 온 밤을 자지 못하고 <사미인(思美人)>을 지어 회왕을 추모했다.
내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思美人兮)
눈물 너머 저 멀리 바라보네(攬涕而伫貽)
안내하는 이도 없고 길도 멀어(媒絶路阻兮)
말을 맺어 보낼 수도 없네(言不可結而詒)
억울하게 누명 쓴 일편단심(蹇蹇之煩寃兮)
가도 오도 못하고 맴돌기만 하네(陷滯而不發)
이제나저제나 이 심정 말하려 해도(申旦以舒中情兮)
이 마음 침통해서 통할 길이 없네(志沈菀而莫達)
뜬 구름에 붙여 내 마음 전하려 하나(願寄言於浮雲兮)
풍융을 만났어도 들어주질 않네(遇風隆而不將)
…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