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름에서 배운 제주도 사투리
제주 여행 셋째 날이다. 11시가 넘어 숙소에서 나왔다. 한참 동안 달리던 승용차가 산길로 접어든다. 거기가 관광지인 듯 길 양쪽에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올라갔다. 도로 왼쪽에 주차장이 있으나 여기도 빈자리는 없다. 다시 내려갔더니 마침 빈자리가 하니 있다. 금방 빠져나간 모양이다.
상당히 가파른 길을 올라간다. 나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른 채 따라만 간다. 그때 내려오는 분들이 있다. 가족 단위의 관광객이다.
“얼마나 올라가나요?”
“금방이어요.”
올라가는 길이 심란하여 물었는데 금방이라니 다소 안심이 된다. 언덕길 오른쪽에 널따란 벌판이 보인다. 가까운 곳은 논과 밭이다. 조금 멀리 높은 건물이 보인다. 상당히 큰 마을이다. 더 멀리 높은 산도 보이고 그 옆으로 바다가 보인다. ‘저게 산방산일까?’ 이렇게 생각하며 올라간다. 산방산은 안덕면에 있다. ‘산방’이란 제주어로 굴이 있는 산을 뜻한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왔다. 분화구가 있다. 분화구의 둘레를 따라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 본다. 90도 180도를 돌아갈 때까지 평평하다가 270도 지점은 가파른 상이다. 걸어서 분화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다면 적어도 1시간 이상 걸릴 것만 같다. 중국 음식점의 자장면 그릇 모양의 분화구 아래쪽에 물이 고여 있다. 젊은이들이 거기로 내려가기도 한다. 분화구치고는 그리 큰 것은 아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그 이름을 모른다. 고개를 돌려 안내판을 찾았다. ‘<= 180m 전지동굴 가는 길] 이런 이정표는 있어도 지명을 알려주는 안내판은 없다. 딸에게 물어보았다. ‘%#%’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다. 자꾸 물어볼 수도 없어 그냥 두었다. 내려오는 길에 안내판이 서 있다. 두 그루의 커다란 나무 사이에 있다. 안내판의 제목을 보고서야 내가 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이유를 말이다.
안내판의 제목은 ‘금오름 (금악. 거문오름)’이다. ‘금오름’에서 ‘오름’은 제주도 방언으로 ‘산’이다. ‘금악’에서 ‘악’은 높고 험준하게 솟은 산들을 가리키는 ‘산악(山岳)’할 때의 그 ‘악’인데, 기생화산을 가리키는 제주도 방언이다. 말귀도 어두운 내가 제주도 사투리가 섞여 있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본다.
“금오름은 서부 중산간 지역의 대표적인 오름 중의 하나이다. 산정부에 대형의 원형 분화구와 산정화구를 갖는 신기(新期)의 기생화산체이며, 남북으로 2개의 봉우리가 동서의 낮은 안부로 이어지며 원형의 분화구(깊이 52m)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있다.
‘서부 중산간 지역’에서 ‘중산간 지역’이다. 어떤 지역을 말하는가?
‘산정화구를 갖는 신기(新期)의 기생화산체’에서 ‘산정화구’는 산 정상에 있는 분화구로 이해되고, ‘신기’란 있는 ‘신석기 시대’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한다. 잘못 이해하고 있으면 따로 설명해주면 좋겠다.
‘기생화산체’란 무엇일까?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기생화산(寄生火山)인데, 측화산(側火山)’이라고도 한다. 주 분화구가 분출을 끝낸 뒤 화산 기저에 있는 마그마가 약한 지반을 뚫고 나와 생성된 작은 화산을 말한다. 기생화산은 제주도에 특징적으로 분포되어 있는데, 그 언덕을 제주 토속어로 ‘오름’이라고 부른다.
“분화구 내의 산정화구호(일명 승쵸패)는 예전에는 풍부한 수량을 갖고 있었으나 현재는 화구 바닥이 드러나 있다.”
분화구 아래 작은 호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검. 감, 곰, 금' 등은 어원상 신(神)이란 뜻인 곰(고어)과 상통하며. 동일한 뜻을 지닌 곰(계어)로서 고조선시대부터 쓰여 온 말이라고 한다. 즉 금오름은 신이란 뜻의 어원을 가진 호칭으로 해석되며. 옛날부터 신성시 되어 온 오름임을 알 수 있다.”
금오름에 와서 나는 제주 사투리 ‘오름’ ‘악’ 들을 알았다. 화산과 관련된 말이다. 또 다른 사투리도 배웠다. 그날 낮에 국수 식당을 찾았는데, 들어가는 출입문에 ‘밉서’란 말이 있고, 나올 때는 ‘당깁서’란 말이 있다. ‘밉서’는 ‘미세요’ ‘당깁서’는 ‘당기세요’인 듯하다. 이런 토속어들이 구수한 제주도의 인심을 전한다. 어쩐지 정겹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