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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rrrrrr. 새벽 4시, 울리지 말아야 할 전화벨이 울렸다.
불교에는 겁(kalpa)이라는 시간의 단위가 있단다. 세상이 생겨서 끝날 때까지의 시간, 즉 천지가 한번 개벽하고 다음 개벽이 될 때까지의 시간이라나. 1000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 만한 바위를 뚫어 없애거나 100년에 한번씩 내려오는 선녀의 옷자락이 사방 40리의 바위를 닳아 없애는 시간이 그것이란다. 그 단위로 보자면 사람이 만나 옷깃을 한번 스치는 것이 5백겁 생애의 인연이라 하고 그 중 부모와 자식의 인연이 8천겁이라 한다.
순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그리 와 닿지도 않을뿐더러 세상 내로라 하는 천재들도 가늠하지 못할, 그 어마어마하다는 확률을 가진 인연의 만남이 숭고하고 거창하게 마무리 되지는 못할 망정 천문학적인 수치의 단위를 비웃기라도 하듯 새벽 4시에 갑자기 울린, 고작 전화 한 통으로 끝났다.
‘아직 쌀쌀해도 봄이 오려나 보다, 날이 따뜻해지면 엄마 서울로 오시라고 해야지.’ 했던 이른 봄. 내 하나뿐인 엄마는 고작 전화 한 통에 엄마의 하나뿐인 친정엄마를 잃었다.
여기, 겁 소리 나게 귀한 부모 자식간의 인연을 온 정성으로 소중히 하는 어미가 있다. 딸 자식은 글자보다 밥 푸는 법을 먼저 가르쳐 혼기 차면 시집이나 보내는 한편, 아들 자식은 금이야 옥이야 먹이고 가르쳐 결국은 남의 여자 좋은 일만 시키게 된다는 옛 시골 아낙들에게서 보이는 전형적인 궤도에서는 살짝 벗어나 있는 어미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그녀에게는 하나 뿐인 딸래미가 그 중 제일 아프고 귀한 손가락이기 때문이다. 못 먹고 못 배운 한이 있어 늘 1등만 도맡아 하는 똑똑한 딸에게는 모든걸 다 해주고 싶었다. 거 참 기지배 그렇게 가르쳐 어디에 써먹냐는 주위 사람들의 핀잔도 간단히 무시했다. 기차 시간 늦겠다며 재촉하는 남편의 자전거 뒤꽁무니를 쫓아 딸의 짐을 머리 위에 이고 품에서 떼어 서울로 대학 보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온 남편은 그 날 저 혼자 자전거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던 것처럼 먼저 훌쩍 떠나버렸고 자식들도 모두 떠난 시골집에 이제 어미는 혼자다.
좋은 대학 나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법한 직장에 다니는 잘난 딸은 언제나 어미의 자랑이다. 이제는 혼자서도 무엇이든 잘할 것 같지만 아직도 해줘야 될 것들이 산더미이다. 남들은 부잣집에 시집가 팔자 폈다 하지만 그 고된 시집살이에 지친 마음 달래줘야 하고, 직장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도 풀어줘야 한다. 그러다 애라도 낳으면 그 애 또한 키워줘야 한다. 마치 자신의 존재는 그 모든 것을 위해 필요한 것처럼 어미의 ‘해줘야 할 것’ 리스트는 끝이 없다. 봐라, 이번에도 무엇인가에 지친 딸이 이렇게 찾아오지 않았는가. 이럴게 아니라 우선 뜨끈한 방에 아가 눕혀 놓고 밥부터 먹여야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던 일도 그만 두고 부엌 문을 박차고 뛰어 나와 ‘예쁜 우리 딸 왔는가’ 하며 힘껏 안아주고 보듬어 주던 엄마였다. 누구보다 사랑해주고 아껴줬던 엄마가 그 어려운 형편에 서울로 대학 뒷바라지까지 해줬건만 사실 딸에게는 ‘내가 잘나서지’ 하는 마음이 8할 정도 차지하고 있었던 듯싶다. 고마운 마음이야 물론 있지만 자신도 보이지 않는 곳에 꽁꽁 숨겨 놓아 그 고마움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할 순간을 늘 놓쳐버리고 만다. 아니 이것도 사실, 엄마는 꼭 내가 말하려는 그 순간을 못 참고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은근한 생색으로 사람을 미안하게 만드니 ‘엄마 고마워 사랑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도 왠지 모르는 순간적인 짜증과 부아가 치밀어 흥! 하고 방향을 돌려 다시 내려가는 것이다. 본인 딸, 미영이만 눈에 보이는 바람에 괜히 누군가에게 굽혀야 하는 엄마의 모습에 또 한번 짜증이 난다. 이번에도 그랬다. 세상의 끝에서 엄마를 찾아왔는데 이 추운 겨울 바람에 보일러도 틀지 않은 채, 맞지도 않은 딸의 오래된 옷을 껴 입고 궁상 맞게 혼자 있는 엄마에 모습에 화부터 난다. 끝까지 엄마에게 미안해야 하고, 이 마음을 안은 채 저런 엄마를 두고 떠나야만 하므로.
고혜정 작가의 동명 에세이 집을 원작으로 한 연극 ‘친정 엄마와 2박3일’은 자식이 인생의 전부인 억척스러운 시골 어미와 그의 헌신을 기반으로 인생의 탄탄대로를 걷던 딸의 2박 3일간의 짧은 이야기이다. 무대의 배경이 되는 남편을 여읜 채 홀로 살아가는 어미의 쓸쓸한 시골집은 딸의 방문으로 금새 활기를 찾다가도 러닝 타임 내내 작품을 짓누르고 있는 이별의 그림자에 또 다시 처연해진다. 늙은 어미는 세상의 짐이란 짐은 모두 짊어 진 것만 같은 지친 안색을 하고 나타난 딸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만, 그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자식이 무척이나 반가워 모든 걸 다 가진 것 마냥 좋아한다. 게다가 늘 자랑이었던 잘난 딸이 시내에서 멋진 옷까지 사줬으니 으쓱해진 어깨가 흡사 하늘에 닿을 듯 하다.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흘러나오는 웃음은 멈출 길이 없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딸을 비롯한 관객 모두는 눈물을 훔쳐야 한다. 째깍 째깍, 이별을 알리는 시계 바늘 소리가 커져 올수록 엄마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은 곱절이 되어 딸을 엄습한다. 신이 난 어미가 무대 위에서 어깨 춤을 덩실덩실 추는 광경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더욱 거세진다. 어미를 뺀 모두가 슬프게도, 한스럽게도 운다.
연극 ‘친정 엄마와 2박 3일’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극 대부분의 장면을 온전히 혼자서 이끌어 나가는, 50년 연기 경력에 빛나는 강부자 배우의 모습이다. 브라운관을 통해 국민 엄마, 국민 할머니로 자리 매김 하며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이미 친숙한 그녀가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울고 불고, 구르고 뛰는 모습은 관객들의 온갖 집중을 한데 모은다. 허옇게 샌 머리에, 화장기 하나 없는 노배우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내뱉으며 연기하는 친정 엄마는 으레 누군가의 친정 엄마를 꼭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자연스럽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식만을 바라보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엄마를 두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의 마음을 새기지 못하고 사는 나쁜 자식인 건지 배우의 그 치열한 사랑에 지겨움을 느끼기도 했다. 홀 어머니를 남겨 두고 떠나야 하는 딸과 금쪽 같은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상황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마치 누군가의 한풀이를 실컷 하는 것과 같은 몇몇 과장된 표현들에 사실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코 끝이 찡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내 엄마의 자식이고, 언젠가는 이별해야 하고, 무섭게도 그리워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이라는 만인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공감의 소재를 다룬 작품이니만큼, 그것이 때로 버겁게 느껴지다 하더라도 이 치열한 사랑을 져버릴 수 없었다.
반 백년을 훌쩍 지난 엄마의 삶을, 이제서야 응원하고 이해할 즈음 엄마가 본인의 엄마를 잃는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보았었다. 뿐만 아니다. 저녁 거리를 사러 갔던 사이, 갑작스럽게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지난 날이 죄스러워 수십 년이 지나도 맛있는 것을 먹을 수도, 좋은 곳도 갈 수 없는 부모의 모습도 보고 있다. 이별이란 것이 한 순간이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이 이별이라는 것이 은근하게 숨어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아 무서워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싶어졌다.
나는 엄마의 사랑을 짐작조차 못한다며 생의 끝에서 엄마를 찾아와 울던 딸과 생애 가장 보람되는 일도, 가장 후회되는 일도 너를 내 딸로 낳은 것이라며 가슴을 부여잡던 어미의 이야기는 항상 사랑하고 기억하자고, 우리의 엄청난 인연을 소중히 하라고 나에게 속삭였다. |
첫댓글 친정 엄마와 2박 3일 연극
l엘에이 도 와서 친구들과 같이 가서 봣어.
강부자 가 한국 어머니에 애정어린 모습을
연극한거지 . 구경하고 다들 손수견을 적셨지.
나도 요즘 잘보내고 있어
일주일이 잘도가네
오늘 아침에는 맟있는 tv를 보고
두남자가 맜있는 음식집을 한국을
다찼아 다니는데 .경치가 얼마나 좋은지 .
한국은 정말 아름답다 했어....
애정이 아니고 모정인가 .아니 읽고 싶은데로
아~~하 누나 판국이네 아무두 업구! 오늘 명빈이 하구 우리가 심은거 도라지 케러
갔다가 힘이 하두 들어서 반 포대씩 가져오구 한잔씩 하구 왔어유.
오늘 또 애들이 삼겹살 사와서 저녁에 먹을라구 시작 해유.
있으면 있는대로 업으면 읍는대로 그냥 재미 있게 메아리 업으면 산이 가로 막은거구
전화업으면 전화줄 끈긴거구. 칠십 아줌마가 동생들 하구 연락 하구 싶어서 얼마나 컴퓨터공부를 했겠어요.
세상에 최고의 누님 . 이런 무대포 동생 그것두 모루구 가끔 죄송 합니다 .
누나! 그래두 덕빈이는 한번 쓰면 길게 쓰잔어유.
이자 사위놈 와서 소주 먹어야 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