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나에게 세월을’
이제는 안 그러리라고 마음을 먹었다가도 큰 배를 보거나 비행기를 보면 문득 여행을 생각한다. 아니 서울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의 여행가방만 보아도 견딜 수 없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지난 가을 남불(南佛)과 포르투갈 여행에서는 이상하게도 나 자신에게 매달린 세월의 마디가 너무 많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다시는 여해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던 일이 떠오른다.
지난번 여행 때와는 달리 즐거운 시간을 같이 해주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나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눈치를 보였을 때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이 선생님은 피곤하실텐데 이제는 들어가시죠------.”
마치 나를 위하여 대접하는 듯한 어투의 말이다. 실상은 젊은 자기들끼리만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일부러 나를 따돌리는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옛날에 나도 부담스러운 어른이나 선배들을 그런 식의 친절한 말로 따돌린 경험이 있다. 어쨌던 그 수법이 존경심을 가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여행아 사람하고 마나는 일이 아니고 먼먼 길에 그저 산천이나 명승지만 보는 것이라면 얼마나 지루하고 무의미한 것일까. 아무리 피곤하고 고달파도 예기치 않는 새로운 일들에 대한 호기시을 소녀처럼 간직하게 해주는 것이 여행의 마력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존경받는 일에 떠밀려 밤구경도 못한 채 호텔방 속에 박혀 있어야 했다. 이런 섭섭한 감정과는 달리 이젠 실제로 부축받는 편이 그렇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나 자신의 내심을 확인하고는 정말 서글펐다.
그런데도 오랜 여행을 마치고 일본까지 이르게 되면 나는 어느덧 또 다른 여행을 구상하게 되곤 한다.
죽음에 이르는 병이 있듯,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내 변명의 구실을 마련해 보는 것이다.
각기 삶을 다스려가는 최선의 방법들이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의 여행은 내 삶의 수해의 한 방법인 것이리라.
*이경희,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수필가이다. 1956년, 서울대 약학과 졸업
수필집, 산귀래, 뜰이 보이는 창, 현이의 연극, 봄시장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