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饗宴)》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서 《파이돈》에 이어 써졌다고 추측된다. 이 글은 말하자면 플라톤의 '연애론'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향연은 실제 벌어진 내용이 아니라 플라톤의 창작물이다. 기원전 416년 아테네의 비극 작가인 아가톤이 비극 콘테스트에서 우승했는데, 축하연이 그의 저택에서 개최된다. 이 자리에 파이드로스, 아리스토파네스, 소크라테스, 알키비아데스 등 약 8명이 등장, 연회에서 각자가 에로스(사랑) 찬미의 연설을 하게 된다. 플라톤은 여기서 아리스토파네스의 안드로기노스족(남녀가 등과 등을 마주 대어 일체가 되어 있는 인간의 조상)론(論)을 교묘하게 인용해 가면서 소크라테스의 에로스론으로 유도한다. 소크라테스는 옛날 현녀(賢女) 디오티마에게서 배웠던 일을 그녀와의 대화 형식으로 연설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임신을 하고 있어 낳기를 바란다. 그 뜻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육체적 또는 정신적으로도 죽기 싫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산의 대상은 추(醜) 속이 아니라 미(美) 속인 것이다. 이 미에의 생산욕, 이것이 에로스(사랑)이다. 사랑의 첫 단계는 육체의 미 속에 낳는 것이고 그것은 육체에서의 불사(不死)를 구하는 일이며, 아기라고 하는 형태로 실현된다. 그 다음에 정신의 미 속에 낳는 것을 추구하게 되며 또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육체의 미 따위는 근소한 가치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게 된다. 그리하여 사람은 정신의 미라고 하는 대양(大洋)을 향하며, 아름답고 장대한 언론이나 사상을 낳고 결국에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영역, 영원히 존재하여 생성 소멸하지도 않고 어떤 면에서는 아름답지만 다른 면에서는 추악스러운 일도 없이,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추하다는 것도 아닌, 항상 불변하여 단일한 에이도스(姿)를 갖는 미 자체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미 자체를 보면서 그와 더불어 있으며 거기에서 사람은 참다운 덕을 낳고 불멸하면서도 행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에로스는 처음에는 육체의 미, 다음에는 정신의 미, 그리고 최후에는 미 자체의 세계로 사람들을 높여 불사(不死)하는 보물을 얻게 하는 조력자였다. 그러한 에로스를 찬미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이 에이도스라든가 미 자체라는 언어로 표현된다. 최후로 알키비아데스가 애지(愛知)에 살고 있는 소크라테스야말로 정신의 미 속에서 생산하고 미 자체를 직감하는 진정 사랑의 구현자라고 소크라테스를 찬미한다. 여기서 찬미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플라톤 자신이라고 하여도 좋다. 결국 플라톤의 에로스는 이데아의 사랑에 있어서 완성된다. 이것이 참된 플라토닉 러브일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은 ‘애인’이라고 번역될 만한 단어는 영어로 ‘boyfriend’로 번역되고 있다. 따라서 [향연]은 남자와 그의 남자 친구들의 동성애 이야기이다. [향연]에서 아가톤의 남자 애인인 파우사니아스는 그의 사랑론에서 사랑을 ‘통상적 사랑’과 ‘신적 사랑’으로 구별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신적 사랑은 하늘의 여신 [즉, 아프로디테]에서 도출되는 것으로, 그녀는 그녀 안에 여성적인 것은 없고 오직 남성적인 것만 있다; 그래서 이 사랑은 소년들을 향하게 된다. 이 여신은 또한 노년에 달했고, 그래서 폭력을 피한다. 저때문에 이 사랑에 감화된 사람들은 남성적인 것을 사모하고, 자연히 더 생동적이고 지적인 것에 애착을 느낀다.” 향연에는 플라토닉 러브라고 불리는 정신적 사랑도 등장한다.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에게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한 예수를 보여주고,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와 현세상이 환영이란 동굴의 비유는 기독교의 속세와 성의 대립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움직이지 않는 움직임인 a first uncaused cause[최초의 원인] 부동의 동자 Unmoved Mover를 기독교의 신 관념에 적용시킨 토마스 아퀴나스의 조직신학적 신론이 결합되었다.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마케도니아의 군주 알렉산더 대왕에게서는 메시아의 정복군주의 사상을 기독교에서는 빌려왔다. 하지만 기독교와 고대 그리스의 사상의 차이점은 동성애를 어느정도 미화한 그리스와 혐오한 기독교의 차이가 있다. 또한 그리스에서는 사람의 몸을 예술적 가치 이상의 진리에 가까운 최고 가치로 보았지만 중세 기독교 사상을 보면 영혼과 육체를 대립하여 육체는 죄악에 가까운 땅으로 하늘과 대립하는 존재로 보았다. 어떻게 보면 플라토닉 러브를 창안한 플라톤이 우리의 감각적 세계가 환영이며 저차원적인 것으로 여겼지만 현상 세계인 몸을 숭상한 것이 가장 큰 모순이라고 생각된다. 필자 생각에도 그런 모순점은 두가지로 발견할 수 있다. 즉 속칭 말하는 예쁜 것이 착하다는 생각이다. 개그콘서트의 쌍칼이 말하는 ‘몸매가 예뻐 예술이야’이것이 아름다움인 미를 넘어서 진리와 선까지 동시에 추구되는 것이다. 즉 미스코리아 진선미를 뽑는다고 해도 결국 최고인 진조차 아름다움의 외모 기준으로 뽑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아름다움이 진리이다’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이다. 둘째로 남자들이 속칭 된장녀나 성형녀를 욕하면서도 결국 예쁜 여성을 찾는다는 것도 모순이다. 만약 정말 기독교적으로 영혼과 육체가 완전히 떨어지며 육체는 욕망으로 나쁜 측면의 뿌리라고 한다면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하는데 정말 쉽지 않다. 필자는 성형수술을 나쁘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외모가 단계가 낮은 저차원의 아름다움임을 동의할 것이다. 최근 수원에서 지방흡입수술이후 퇴근한 의사의 방치로 과다출혈로 사망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사실 아름다움에는 추함이 따르며, 사랑에는 증오가, 밤은 낮이, 해를 품은 달 훤에게는 달인 허연우가 짝지어 존재하듯이 성형수술에서도 아름다움 대신 부작용이 따른다. 물론 사망은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지방흡입수술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흉터일 것이다. 성형흉터치료는 진피 콜라겐을 자극하여 치료하는 것은 다른 흉터와는 같지만 부작용으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해야 하며 더욱 시간과 비용이 많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성형흉터 치료는 한방안∙이비인후∙피부과 전문의나 시술을 많이 한 한의원을 찾기 바란다.
|
|
첫댓글 《향연(饗宴)》은 플라톤의 중기 대화편 중 하나로서 《파이돈》에 이어 써졌다고 추측된다. 이 글은 말하자면 플라톤의 '연애론'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향연은 실제 벌어진 내용이 아니라 플라톤의 창작물이다
독배를 마셨던 소크라테스에게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한 예수를 보여주고, 플라톤의 이데아의 세계와 현세상이 환영이란 동굴의 비유는 기독교의 속세와 성의 대립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움직이지 않는 움직임인 a first uncaused cause[최초의 원인] 부동의 동자 Unmoved Mover
출산의 대상은 추(醜) 속이 아니라 미(美) 속인 것이다. 이 미에의 생산욕, 이것이 에로스(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