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평화상의 가치를 훼손하는
정부의 부당한 개입에 반대한다
평화는 인류가 추구하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화해와 상생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키워나갈 숭고한 삶의 목표이다.
제주 4.3은 국가폭력에 의해 숱한 제주도민들이 살상된 역사적 비극이며 제주도민은 이러한 역사적 상처를 딛고 그 상처를 평화와 상생의 인류적 가치로 승화시키고자 오랜 시간 노력해 왔다. 문학은 이처럼 고결한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하여 어둠의 시대에도 빛을 열망하며 펜을 놓지 않았다.
제주4·3평화재단에서 과거의 아픔을 건강한 미래의 삶으로 바꾸려는 제주4·3평화상을 제정하고 시상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우리 작가들은 이 상을 계기로 생명평화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원했다. 어두운 기억을 화해와 상생의 등대로 바꾸고 건강한 평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제1회 제주 4.3 평화상이 재일조선인 작가 김석범(金石範. 89) 선생에게 수여된 것은 당연하고도 적절한 결정이었다. 김석범 선생의 활동과 공로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김석범 선생은 평생을 재일 제주인으로 살며 『화산도』 라는 4·3대하소설을 집필하여 제주4·3의 비극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평화를 화두로 삼고 밤을 낮 삼아 고뇌한 흔적들이 문장마다 묻어난다. 평화라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고결한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온 몸으로 써내려갔음을 읽을 수 있다. 1957년 제주 4.3을 소재로 한 최초의 소설 「까마귀의 죽음」, 그리고 제주 4.3의 전모를 장대한 서사로 써내려간 화산도 등, 선생의 업적은 진작에 조명되어야 했다. 어둠의 시대에 4.3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선생의 문학정신에 한국사회는 더 일찍 경의를 표해야 했다.
그런데 보수를 자임하는 일부단체에서 시상식에서의 수상소감을 이유로 이 상을 취소하라고 공격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문명사회·민주인권국가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파렴치하고 폭력적인 일이다. 아울러 이는 평생을 제주 4.3의 진실을 밝히는 데 헌신해 온 김석범 선생에 대한 모욕이며, 오직 역사적 진실을 신뢰하며 문학을 통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새겨온 문학인들 전체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더 기막힌 일은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행정자치부가 제주 4.3평화재단에 특별감사라는 살아 있는 권력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주 4.3평화재단은 국회에서 제정한 법에 따라 화해와 상생의 사업을 펼치고 있는 적법한 기관이다. 4.3 평화상 제정이나 시행과정에서 감사를 받을 특별한 이유가 없다. 게다가 지난 4월 3일 열린 추념식에서 정부는 직접 평화상과 관련하여 아무런 문제없음을 밝힌 바 있다. 법적인 근거도 희박하고 감사의 필요성도 분명히 제시되지 않은 특별감사는 명백히 정부의 부당한 탄압이며 이는 제주 4.3의 역사적 진실을 호도하고 평화상의 취지와 의미를 훼손하는 일이다.
보수세력의 폭력적 언사와 행동은, 그리고 정부기관의 무분별한 권력행사는 제주 4.3 이후 길고 긴 세월 계속된 진상규명의 노력과, 이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그러므로 더욱 소중하게 되새겨야 할 평화의 가치를 한순간에 짓밟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특별감사 시행으로부터 우리는 창작의 자유를 억압하고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며 민주주의를 압살했던 독재정권의 망령을 본다. 인권과 평화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제주 4.3의 정신을 모욕하고 역사를 퇴행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우리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엄동설한을 뚫고 피어난 4.3 문학의 꽃봉오리를 무참하게 자르려는 세력들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 모멸감을 안겨준 김석범 제1회 4․3평화상 수상자에게 공개 사과하라!
- 창작의 자유를 속박하는 무분별한 권력행사를 즉각 중단하라!
- 4.3평화상의 숭고한 가치를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지 마라!
우리 작가들은 수많은 죽음 앞에 이념이나 색깔을 덧칠함으로써 제주 4·3의 진실을 왜곡하고 4·3문학을 짓누르는 세력에 의연히 맞설 것이며, 그 어떤 공격에도 흔들림없이 평화와 생명의 꽃을 피우는 데 당당하게 나설 것임을 밝힌다.
2015년 4월 17일
한국작가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