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 '기업'에 대한 언급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영토를 분배받았던 것을 연상시킨다. 그것이 하나님의 옛 백성들에게 주어진 '육적인 기업'이라고 한다면,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분깃은 '영적인 기업'이라고 할수 있다.
한편 '합당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카노산티'는 근본적으로 '충분하게 하다', '적절하게 하다'는 뜻으로 갖추어진 자격을 의미한다. 이 자격은 인간이 자생적으로 구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시는 것인 바 자격없는 자를 회개시켜 빛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본절의 요지는 '감사'이다. '감사'는 '열매 맺음', '자라남', '능하게 됨'에 이어지는 신앙의 중요한 덕목으로 성도의 필연적인 삶의 양식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격없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자격을 주며 장차 받을 영적 기업까지 허락하셨으므로 감사는 그 은혜에 대한 합당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흑암의 권세 - 이는 앞절의 '빛 가운데서'와 대조된다. 이러한 대조는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에 나오고 쿰란의 문서들에서도 발견되는 개념이나 바울이 여기서 그들의 개념을 빌어서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악한 세력'으로 상징되는 '흑암'과 '선한 세력'으로 상징되는 '빛'의 대조는 보편적인 인간 세계의 개념이라고 볼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본문의 '흑암의 권세'는 일찍이 예수께서 십자가 처형 직전에 체포되셨을 때 예수를 대적하는 악한 세력에 대해 언급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 바 그 세력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성도들을 탄압하거나 오도하는 인간들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그들의 배후에서 하나님께 대적하는 비가시적인 사단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 '사랑의 아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란 뜻이며 '나라' 바실레이안는 종말론적이고 영토적인 의미라기보다는 골로새 교인들의 마음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주권적 통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장차 기업으로 받을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를 전혀 배제할 수도없다.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인 것이며 반드시 유업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미래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고 이미 현재에 도래해 있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 나라는 지금 성도들의 마음에 현존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골 1: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 '구속'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뤼트로신'은 '값을 지불하고 어떤 대상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흑암의 권세에 매여 종노릇하던 우리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취하였음을 말해준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통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 -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고후4:4에도 나오는 표현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고 예수 자신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 선언하기도 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불가시적인 하나님의 분명한 현현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이거나 신체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실체, 본성, 그리고 영원성에 있어서 성부와 그리스도가 완전한 동등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 -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최초로 창조된 피조물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실제로 아리우스.A.D. 256-336는 본절을 근거로 그리스도도 피조물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본문은 결코 그렇게 이해될 수 없다.
이것은 성경의 다른 본문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본문이 뜻하는 바는 그리스도가 시간적으로 만물의 창조 이전에 존재하였고 그런 만큼 만물에 대한 우월성을 갖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그에게 창조되되'에서 '그에게'는 그리스도가 창조의 실재적 주역임을 말해준다. 본절의 후반부에 나오는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라는 표현은 이것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 준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원인이자 목적이다. 모든 피조물은 그에게서 나왔고 그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를 향하고 있다..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 - 이는 골로새 교회 이단자들의 사상 체계에서 뚜렷이 부각되었던 천사 계급에 관한 암시인 듯하다. 본문을 천사들 중에도 등급과 위엄의 차이가 있음을 시사해 주는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천사들의 계급이 아니라
천사들 조차도 그리스도의 창조에 종속된다는 사실이며, 이로써 당시에 퍼져 있던 천사 숭배가 기독교의 관점에서는 용납될 수 없음을 말해주는 데 있다.
[골 1: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 이는 다소 철학적인 표현일 수 있으나 그리스도는 만물의 통일의 원리이며 모든 창조물을 유지하는 분임을 말해준다. 그리스도는 온 우주에 혼돈 대신 조화를 가져다 주는 응집의 원리이신 것이다.
이것은 단지 그리스도가 피조된 세계의 외적 질서의 중심이 되심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모든 만물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할 때 본질적 '의미'를 갖는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 바울은 교회를 몸에 비유하여 설명함으로써 성도들 상호간의 긴밀한 유기체적 관계와 통일성을 강조하곤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 몸으로서의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 즉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사면받고 성도가 된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본질적으로 설명해준다.
성도들은 교회를 이루고 그 교회는 몸으로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갖는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첫째, 그리스도와 교회는 매우 긴밀한 유기적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교회와 더불어 그의 생명을 공유한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생명력을 공급받음으로써만 삶을 얻을 수있다. 둘째, 그리스도는 교회의 주권자로서 절대적 지배권 갖는다는 것이다.
교회는 주권자인 그리스도의 뜻과 명령에 복종함으로써만 생명의 길을 갈 수 있다. 그가 근본이요 - 그리스도가 '근본'이 된다 함은 그리스도의 선재성보다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깊은 연관이있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부활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또한 성도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살아나신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만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교회와 성도는 그리스도에 의존해서만, 그리스도에 근거해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시다.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 '으뜸'(케팔레)이라는 말은 만물과의 차별적 우월성을 말하는 것인 바, 이 차별성은 상대적 차이가 아니라 절대적 차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