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시길 원하실까?
230709낮 (출2:23-25)
<23)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25)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아멘
고려대 영문대학 교수인 김기호교수는 그의 저서 <눈먼 사랑과 뇌...뇌에서 나쁜 기억을 지우는 방법>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소개 했습니다.
《버지니아 코먼웰스 대학교의 심리학과 에버렛 워딩턴 교수가 2004년 놀라운 한 소년의 '용서 이야기'를 소개했다. 크리스 캐리어는 10살 때, 한 괴한에게 납치되어 얼음 깨는 송곳으로 가슴과 배를 수차례나 찔리는 사고를 당했다. 더욱이 권총으로 관자놀이에 총알이 관통했다. 하지만 총상을 입은 후 몇 시간이 지나 크리스는 깨어났다. 한쪽 눈이 실명된 채로 길을 걷다 발을 헛디뎌 고속도로로 굴러 떨어졌지만, 운 좋게 지나가는 차량에 발견되어 병원으로 후송 된 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경찰관 한 명이 그를 찾아와서 납치한 용의자가 임종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한번 만나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보통 사람과는 달리 크리스는 용의자를 단순히 대면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해냈다. 자신의 몸에 그토록 끔찍한 몹쓸 일을 저지른 용의자와 그의 생애 마지막 몇 주간을 함께 보냈다. 더욱이 크리스는 범죄자를 위로하고 용서하고 그와 화해했다.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부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마음의 상처를 입고 화가 나면 분노하고 때로는 복수를 꿈꾼다. 하지만 화를 자주 내고 분노하면 우리의 분노가 몸의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누구나 아는 의학 상식이다. 래드포드 윌리엄스 박사는 1988년 저서 '죽음에 이르는 분노'에서 분노로 사람이 즉시 죽지는 않겠지만 "매일 매일 순간적으로 느끼는 분노는 소량의 독약을 매일 복용하는 일과 같다."라고 했다. 실제 분노는 우리의 마음뿐 아니라 몸도 망치는 독약과 같다. 이러한 분노의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용서이다.
'기억의 천재'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에란 카츠는 2013년 저서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에서 좋은 기억을 위해서는 기억만큼 잊어버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뇌에 좋은 기억이 입력되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이 들어설 공간만큼 나쁜 기억을 없애 주어야만 한다. 좋은 기억이란 성공을 위한 좋은 자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망각' 역시 건강한 삶을 위한 축복과 같은 선물이다. 에란 카츠는 뇌에서 나쁜 기억을 지우는 최고의 방법은 '용서'라고 했다. "한두 번 용서할 때에는 너무 감정적이라 용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지우고 진정으로 용서할 때 나쁜 기억도 사라진다." 진정한 용서야말로 불필요하고 나쁜 기억들을 지우는 최고의 망각 선물이다.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와 투투 대주교는 망각의 선물을 활용하여 용서의 아름다운 효용을 행동으로 보여 준 세계적 인물들이다. 비폭력주의자로 1964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단지 빛만이 어둠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 없습니다. 단지 사랑만이 증오를 몰아낼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나쁜 기억들이 가져다주는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질병을 말하는 것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나쁜 기억` 지우는 방법은 없을까요?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신경학 연구팀은 생쥐 실험을 통해 뇌의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의 연결 고리를 바꾸면 기억에 대한 감정의 조작이 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도네가와 스스무 교수는 “미래에는 인간이 좋은 기억을 나쁜 기억보다 더 잘 기억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혈압약으로 나쁜 기억을 없앤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대학 심리학과 메렐 킨트 연구팀은 혈압약의 프로프라놀롤이라는 물질이 사람들의 나쁜 기억을 지우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 결과는 네이처 신경과학지에 실렸다고 KIST 의 과학향기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미시 이치로가 지은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라는 책에서는 ‘내가 바뀌면 과거 기억이 바뀐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정현의 책 <나쁜 기억 지우개>에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마음의 총량은 정해져 있습니다. 지난 기억을 지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온 마음으로 지금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현대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에서나 많은 사람들이 왜 우리 뇌에서 나쁜 기억을 지우는 방법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또 그 결과들을 발표하고 있을까요? 그만큼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나쁜 기억이 우리 인간의 정신건강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인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좋은 기억이 있고 나쁜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나 사고, 폭력등 같은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원망과 술과 마약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아픈 상처나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신적 치료와 악몽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도 대부분 나쁜 기억들을 떨쳐내지 못해서 찾아옵니다.
나쁜 기억과 상처는 우리의 영적 생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신앙인들 중에도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른 사람을 음해하고, 비난하고, 불평과 원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결박하여 자꾸 우리를 나쁜 기억 속에 가둬 놓으려고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나쁜 기억이라는 영혼의 감옥에 가둠으로 영혼이 피폐해지고, 믿음이 병들게 하여 우리의 영혼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듭니다.
나쁜 기억과 극복하지 못하는 상처는 더러운 영이 침투하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나쁜 기억과 상처로 인해 영적, 정신적, 육체적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단호하게 사탄의 결박을 끊고, 나쁜 기억이라는 사탄이 만들어 놓은 영혼의 감옥에서 탈출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기억 때문에 평생을 살면서 고난을 잘 이겨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문학가는 사람이 좋은 추억 한 가지만 있어도 잘 못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토록 좋은 기억은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이런 것은 다 내 속에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들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것은 또 어떨까요? 어떤 모습일까요? 다른 사람들은 나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나의 신앙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이것도 참으로 중요한 문제죠? 어떤 분은 지나치게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집중하다보니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기억이란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이 나를 생각하는 기억이 다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집사님은 어린 딸에게 “엄마가 항상 소중하게 여기면서 보는 것 가지고 와!” 라고 했습니다. 이 집사님은 목사님에게 내가 이렇게 집에서도 성경을 많이 읽고 있다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런데 딸아이는 성경책이 아니라 TV 리모컨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자기는 나름대로 성경을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딸아이가 보기에는 성경보다는 TV를 더 가까이 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눈에 나는 어떻게 보일까? 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까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생각 하실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럴 때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불법을 행한 자야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니 바깥 어두운 곳에 나가 슬피 울며 일을 갊이 있으니라”
열심히 주의 일을 하고, 주님이름으로 능력을 행하고, 나름 믿음 생활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 한다‘고 말씀하시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마7:22-23) 이것은 보통 비극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을 지니신 하나님도 기억을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인생에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해 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좋은 기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모습을 기억하시기를 원하실까요?
1. 감사하는 모습을 기억하시길 원하십니다.
시편 50:23절입니다.
<23)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는 하나님의 언어입니다. 감사를 통해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감사를 하면 좋은 일이 생겨납니다. 불평은 마귀의 언어입니다. 불평을 하면 우리의 삶을 병들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43:21절에 말씀했습니다.
<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에게는 감사와 찬송이 나와야 합니다. 감사와 찬송은 내 기분과 형편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항상 선을 행하고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명령입니다. 창조의 목적대로 살 때 행복하고 잘 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지금은 손흥민선수가 축구연습은 안하고 수영만 하고 있다면 잘 될까요?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수영을 할 수는 있지만 손흥민 선수의 주 종목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원망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두 번이지 계속 불평과 원망으로 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민14:26-28절입니다.
<26)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는 말을 들으시고 기억하셔서 그대로 갚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원망하고 입술로 범죄 하는 모습을 기억하시게 해서는 안 됩니다. 늘 감사와 찬송하는 모습으로 기억되어지시기를 축복합니다.
2. 기도하는 모습을 기억하시길 원하십니다.
출6:5절입니다.
<5)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 때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요즈음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것도 힘든데 노예로 살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겠습니까?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남자로 태어난 아이들까지 죽였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절규에 가깝고 피를 토하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가 아니라 신음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음은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 내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음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도 기억하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찬양 같이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행10장에 백부장 고넬료가 늘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고넬료를 하나님이 기억하셨습니다. 어떻게 기억하셨습니까? 기도하는 모습, 어려운 이웃을 돕는 구제하는 모습, 온 식구들을 잘 인도하여 더불어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모습을 기억하신다고 했습니다.
창18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실 것을 알려주십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소돔성에 살고 있는 조카 롯을 위하여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신데 그 성에 의인 50명이 있을 지라도 함께 멸하시겠나이까?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의인 50명이 있으면 멸하지 않겠다... 45명, 40명, 30명, 20명....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소돔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유황불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19:29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9)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해주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he remembered Abraham) 하나님이 기억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해 롯을 구해주셨다는 말입니다. 롯을 생각해서 롯을 구해주신 것이 아니라 조카 롯을 위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던 아브라함을 기억하셔서 롯을 구해주셨다는 것입니다. (God remembered Abraham)
삼상1:10-11절입니다.
<10)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자신의 억울함과 자식을 달라는 기도에 앞서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주의 여종을 잊지말아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해주시는 것이 인생에 최대의 복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성도의 무엇을 기억하십니까? 기도하는 모습을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늘 기억하시게 하려면 우리는 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살전 5: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엡6: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애굽의 압제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기억하신 하나님! 여러분의 통곡과 눈물과 신음소리와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을 기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헌신하는 모습을 기억하시길 원하십니다.
막14:9절입니다.
<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14장을 보시면 한 여인이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께 다 부어드립니다. 이 옥합은 300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임금입니다. 현재 금액으로 따지자면 3000만 원 정도의 가치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향유를 모으기 위해 최소한 수년 동안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이 향유는 여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 준비한 전 재산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왜 그것을 아깝게 부어 버리느냐! 네가 미쳤구나! 차라리 그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면서 야단을 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칭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어느 날 예수님께서 과부가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21:3-4절입니다.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두 렙돈은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천 원 정도입니다. 이 과부는 하루를 천원으로 살아가는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우리 같으면 천원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 과부에게는 하루 생활비입니다. 이 여인은 하루 생활비를 헌금을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굶어야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음날 또 일을 해야 1000원을 받아서 먹을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이 과부는 이틀 동안 고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과부가 두 렙돈을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금을 했다는 사실에 예수님은 크게 감동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수 억 명은 하루에 1000원 정도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1000원이 우리에게는 껌 값밖에 안 되는 돈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를 살아가는 너무나 필요한 돈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하루 종일 굶고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생각 같아서는 쉬운 것 같아도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과부의 헌신은 작은 거였지만 예수님은 크게 받으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헌신은 돈 많고,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가난하고, 능력 없고, 몸이 아파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냉수 한 그릇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마10:42절입니다.
<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느헤미야서에서 보면 바벨로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많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무너진 성벽과 불타버린 성전을 재건하는데 헌신한 사람들을 기억하신다고 했습니다. (느 2:19-20)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십니다. 성도는 빛도 없이 일만하는 것처럼 비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수고를 기억하고, 알고 계시며, 기뻐하십니다. 예배를 통해 신앙이 회복되고, 진리 가운데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며, 우리의 수고와 헌신을 기억하시는 주님 안에 거하시므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는 모습을 기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말3:16절입니다.
<16)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쉬운 성경으로 볼까요?(말3:16)
<16)그 때에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서로 하는 말을 들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말을 분명히 들으시고 주를 두려워하는 자와 섬기는 사람들의 이름을 책에 적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들은 육체로 만나는 세상의 현실보다 지금 자기 위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먼저 의식합니다. 창조주를 두려워하고 그 이름을 거룩히 여깁니다. 그들은 자기 꿈과 비전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철저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의지하며 그 뜻대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의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그리스도가 그의 태양이 되시고 그는 들려 올려 져서 그 안에서 치유를, 의롭게 여기심과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과연 오늘 내 마음의 중심에는 어떤 태양이 떠있는가? 어떤 대상을 가장 큰 존재감, 가장 큰 좋음으로 느끼는가? 지금 내 마음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소원하는가?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온 마음을 드리며 세상에 대해 이미 죽은 자처럼 살아가고 있는가? 입니다.
삼상2:30절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나쁜 기억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분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치유하심으로 나쁜 기억들을 다 지우시고, 좋은 기억으로 채워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억 속에도 여러분은 좋은 기억으로만 남겨지는 백성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감사하는 모습, 기도하는 모습, 헌신하는 모습, 하나님을 경외하고, 존중히 여기는 모습이 기억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