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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문화
부적을 불교예술로 승화시키는 허공 김홍민 법사
부적은 천계에서 비밀스럽게 내리는 영적 명령서
글 대혜 덕광(大慧 德光) 김형근 (본지 발행인)
부적이란 무엇인가?
‘부적(符籍)’이란 말을 검색해서 정리해보면 “기층 문화적 표현이자 음양오행 사상을 근간으로 불교의 진언과 다라니와 토속신앙의 융합되어 발전되었다.
부적은 도교에서 정립한 것이지만, 불교나 우리나라의 무속에서도 받아들였다. 무속인이 부적을 써주는 경우는 매우 흔하고, 불교의 산스크리트어 진언이나 다라니를 노란 종이에 붉은색 실담문자로 적어 부적스러운 형상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부적의 종류는 다양하다.
불교계에서는 입춘이나 정월 보름 같은 날에 신도들에게 배포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이 삼재소멸 부적이고, 재수대길, 학업성취, 안전운전, 액운방지 등등 수 없이 많다.
영어로는 ‘ Talisman’ 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부록’, ‘부주’라고 하며 일본에서는 ‘호부’, ‘영부’라고 한다.라고 주장하는 글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미신이라는 인식으로 인해 이제 부적을 불교용품점 등 일부에서만 부적을 팔고 있다. 그래서인지 ‘부적’을 검색해보니 부적싸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은 몇 사람에 불과했다. 부적은 보통 승려나 역술가, 무당이나 도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만든다고 한다. 불교용품점에서는 부적 책에 있는 문양을 필요에 따라 인쇄를 하여 판매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대부분의 부적은 인쇄를 한 것이고, 필요한 사람의 주문을 받아 손으로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부적을 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부적사전(?) 같은 책도 있다.
원칙적으로는 자시(子時)에 회화나무 열매로 노랗게 물을 들인 괴황지(槐黃紙)에 붉은 경면주사(鏡面朱砂)로 그렸다고 한다. 부적을 인쇄하고자 부적 도형을 새긴 목판도 있다. 전에는 목판을 사용하여 인쇄를 하였다면 요즘에는 도안을 가지고 인쇄를 한다. 부적은 벽에 붙이거나 접어서 종이봉투에 넣어 몸에 지니고 다닌다. 몸을 지켜 준다고 하여 몸에 지니는 부적은 호신부(護身符)라고 부른다. 효력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부적은 일반적으로는 불에 태워 처리한다.
즉 부적의 일반적인 뜻은 ‘악귀나 잡신들을 쫓아내기 위한 종이로 만든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이 칠성각과 산신각을 불교에서 포용하였듯이, 불교계 일부에서도 수용한 것 같다. 이것은 중국에서 시작하였다. 하바드 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언어와 문명’을 강의하는 제임스 롭슨(James Robson) 교수는 5세기 경의 돈황본에 부적을 사용한 흔적이 있고, 불교와 도교가 혼합되어 다라니를 부적처럼 만들어 사용했다고 주장한다. 중국에서 시작된 부적은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그 흔적이 아직도 뚜렷하게 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부적을 미국의 일부 한국사찰들에서도 입춘이나, 설날 법회에 삼재소멸 부적이나 재수 부적을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 있다. 즉 부적은 한국인들의 생활 문화의 하나로 한국인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어느 곳에나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쳐버린 부적이 내 관심을 끌게 된 일이 2023년 두 번 있었다.
일본불교계의 부적
필자는 지난 해 5월에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여 오사카와 교토, 나라 지역의 사찰 순례를 할 기회를 가졌다. 일본 방문 전에 뉴욕에서 만나 천주교 신자가 “교토의 사찰에 가면 부적을 나누어 줍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해 주었다. 일본 사찰이 나에게는 매우 궁금했는데 일본 방문 전에 천주교 신자의 말이 머리속에 입력이 되었다. 교토에서 유명한 사찰을 방문하면 일본인 들 뿐만 아니라 서양인을 비롯해서 관광객들도 매우 많다. 교토의 금각사(金閣寺)와 은각사(銀閣寺)를 방문하여 입장료를 내면 영수증과 함께 내가 생각하는 부적은 아니지만 부적을 주었다. 서양인들이 그 부적을 아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은각사에서는 그 종이에 원하는 사람에게 은각사 직인을 찍어주고 또 돈을 $2달러 정도 받았다. 검색해보니 일본의 신사에서도 부적을 판다고 한다. 일
본불교는 현재 아시아 불교권에서 가장 세속화 된 불교이다. 대부분의 스님은 결혼을 하고, 절은 가업으로 상속된다. 절에서 술도 팔고, 불단에 차가 아니라 술도 올라간다. 절 뒷방에서 스님들이 술도 마신다고 한다. 사찰에서는 스님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
만나려면 미리 약속을 하고 가야 한다. 그리고 절에서 인쇄된 부적을 나누어 주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 부적이 일본에서는 주술행위라기 보다는 일종의 전통문화 처럼 보였다.
또 한번은 지난 9월에 서울 평창동에서 명상지도를 하는 분을 만났는데 그 분 사무실에 걸린 족자가 나의 눈을 끌었다. 내 눈에는 그 족자가 마치 오랜기간 수련을 한 사람이 만든 불교 예술품 같았다. 그런데 이 소장자는 이것이 부적이라고 했다. 이렇게 크고 정교한 예술품 부적이 있다니 놀랄 일이었다. 나에게는 부적을 불교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생각되었다. 이 부적을 제작한 분은 허공 김홍민법사로 불리는 분이었다. 1943년생으로 81세인 이 분을 서울에서 지난 9월에 만났는데 매우 겸손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우연하게 들어선 부적 제작의 길로 들어선 허공 법사
허공법사는 원래 서울 을지로와 중구 등에서 인쇄소와 출판사를 대상으로 도매로 종이사업으로 청춘을 보내다가 1998년 폐업을 하였다. 고객중에 조그만 신장도 부적을 만들어 일본의 동포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보살이 있었다. 이 보살이 허공법사에게 붓을 들고 부적을 그려보라고 권유하였다.
수 없이 권하는 이 보살의 권유로 처음 붓을 들어 경명주사로 부적을 그렸는데 놀랍게도 아주 놀라울 정도로 잘 만들어진 부적이 되었다. 그후 이 보살의 소개로 1995년 무속인을 만났는데 그는 만나자 마자 허공 법사에게 자기 밑에서 부적을 그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였다. 1998년 사업을 접고, 스님과 무속인들 많이 연결되었다. 그들과 함께 틈나면 전국적으로 사찰과 기도처로 만행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8년 정도 다녔다.
그 시절부터 부적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탱화를 배우려고 만봉스님께 찾아가기도 하였다. 만봉스님은 병진스님의 탱화 관련 저서를 주었다. 그래서 장안사로 병진스님을 찾아갔다. 병진스님은 납골당 사업을 크게 한 스님이다. 그는 일산 장안사 창건하였고, 탱화도 잘 그렸다. 병진스님도 또한 부적을 연구한 스님이었다. 허공법사가 병진스님에게 본인이 작업을 한 만든 부적을 가지고 가니 병진스님은 그것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장안사 뒤에 금어원이라는 탱화교육과 작업을 하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는 여러 명의 불교미술을 전공한 여성들이 탱화를 배우고 있었다.
2000년도 초에 이 금어원에서 3개월 공부를 하며 탱화와 부적 그리는 연습을 하였다. 부적은 또 기본적인 서예를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일산의 인당 서예학원에 다니면서 서예를 배웠다. 이곳에서도 인당선생은 허공 법사의 서예를 보고 재능이 있다고 놀라워했다. 그는 이곳에서 오랜기간 서예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종이 사업을 하던 허공법사는 우연히, 부적을 하는 무당을 만나고, 사업을 정리한 후에는 스님들과 함께 기도를 다니고, 또한 탱화와 서예를 배웠다. 본인은 부적에 대해 알지도 못했는데 부적 만드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우연의 연속으로 부적 제작에 필요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나름대로 부적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틈틈히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런 작업을 거친 후에 몇번 무속인들의 요청으로 부적 제작을 하게 되었는데 허공법사 자신도 믿지 못할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전문 부적 제작자의 길로 들어설 결심을 하고, 풍수와 관련 깊은 수맥도 공부하고. 전문 부적 제작자의 길러 들어선 것이다. ‘풍수지리’에 관해서 한국사회에서는 미신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지만 하바드대학교 제임스 롭슨(James Robson) 교수가 하바드대학교 출판소에서 풍수에 관한 책 ‘power of place’라는 책이 출판되어서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 건축업자로 큰 돈을 번 미국 대통령을 지낸 트럼프도 본인의 건축관련 일에 풍수 전문가들을 많이 고용하여 자문을 받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카지노 호텔 성공을 원했던 도널드 트럼프는 풍수전문가의 자문을 중심으로 철저한 준비를 시작하였다. 풍수교정학을 바탕으로한 건물배치, 동선, 조경, 설비, 외벽 등 도널드 트럼프와 풍수전문가는 모든 부분에 집중하였고 2005년에 라스베가스에 트럼프 호텔을 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제
이 호텔은 라스베가스의 상징이 되었다. 한국에서 반신반의하는 문화이지만 풍수는 미국에서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풍수로 보아서 수맥이 흐르는 곳은 허공법사에 의하면 부적으로 수맥을 차단시킬 수 있다고 한다.
부적 소지자도, 제작자도 정성이 중요하다.
그가 부적을 제작할 때 사용하는 교과서는 도장(道藏)이다. 허공법사에 의하면 “이 도장은 도교에서 비전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하며 백과사전 처럼 36권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거기에 입학시험에는 이 도형을 사용해라, 삼재에는 이 도형을 쓰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생길에서 만날 수 있는 액운을 처방하는 처방전이 ‘도장’인 것이다.
한국에 부적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 지는 알지 못하겠다. 인터넷 검색해보면 단지 몇 사람이 보인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허공법사의 부적은 달랐다. 허공법사의 부적은 불교 예술품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다. 허공법사 작품에는 천부경 부적도 있지만 불교와 관련이 있는 작품이 많았다. 반야심경 부적, 금강경부적, 다라니부적, 화엄경부적, 불상부적이 많았다. 종이 사업을 정리하고 운명처럼 부적 제작자의 길로 들어선 허공 법사가 내리는 부적을 소지하려면 허공법사와 인연이 닿아야 한다고 한다. 허공법사 부적을 원하는 사람이 있고, 허공법사가 부적을 제작하고(내리고) 싶어도 인연이 없으면 내려지지 않는다고 한다. 부적은 원하는 사람과 내리는사람의 정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래 글은 허공법사의 부적에 대한 글이다.
천계비전 천영부 天界秘傳 天靈符 부적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신에게 간구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특정한 목적을 이루려고 할 때는 천지간을 흐르는 기의 흐름- 이를 운(運)이라 함-을 바꾸기 위해 자신의 소망을 신에게 알린다. 이때 부적은 우주를 율동하는 기의 회로도이자, 천신天神)과 지령(地靈)을 소집하는 명령서 역할를 한다. 이런 이유로 부적에 쓰여진 기묘한 글자를 ‘신의 문자’ 또는 신부(神符), ‘어부(御符), 주부(呪符) 등으로 부른다.
부적은 보통 기묘한 선과 원으로 이루어져 있어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이는 천계(天界)의 별자리를 근거로 우주에서 율동하는 기의 흐름을 상징화했기 때문에 부적은 이런 방법을 통해 신과의 대화함으로서 천계의 기운을 수정 또는 보완하고 아울러 운로(運路)를 변화시킨다.
도교의 경전에 따르면 태성로군(老子)이 하늘에 올라 산이나 강을 굽어보고 그것을 그림 같은 문자로 팔회지서(八會之書) 또는 오악진형도(五岳眞形圖)가 부적의 기원인데 이는 삼광 (三光) 즉, 일월성신(日月星辰)이 율동하는 진기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이 처럼 부적은 우주의 생성화륙(生成化育)과 변화유전의 약상(略象)인 동시에 천계(天界)와 인간계를 잇는 매개체로서 부적을 통해 우주를 운행하는 신비의 에너지가 공명을 일으켜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부적은 간절한 염원과 덕을 쌓는 것을 통해 운명을 수정하려는 의사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위해 신들을 부리는 명령서로 쓰인다. 부적을 간절한 소망과 믿음으로 소장하려는 사람과 부적을 정성스럽게 내리는 사람과 인연과 서원이 부합된다면 효력은 대단하다. 부적은 영능자(靈能者)가 내려야 효력이 있다.
영력(靈力)이 깃든 부적은 우주의 기를 받아들이는 안테나와 같은 역할을 하며 암시를 유도하는 엄청난 기를 발산한다. 이때 이 기는 인간의 정신과 의지를즉각적인 에너지로 발현 할 수 있다. 그 렇기 때문에 영감과 감응력이 높을 수록 부적의 효과는 높다.
위의 글을 요약하면 ‘부적은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하늘의 명령서로 제작자가. 영적 능력이 있었야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부적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 많은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있지만 학문적으로 연구되지 않은 영역이다. 한국불교에서도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1,600년의 한국불교사에서 부적의 등장은 최소한 몇 백년은 족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우리는 이 부적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하여야 할까?
태국의 사찰에 가면 점치는 것이 한쪽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사찰을 방문할때 이것을 이용하여 점을 친다. 하지만 태국 신도들의 불교신앙은 굳건하다. 한국에서는 산신각이나 칠성각을 사찰내에 있더라도 이것이 대웅전이나 선방을 위협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있으므로 해서 사찰의 포용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이 부적도 하나의 문화, 혹은 방편으로 수용해도, 불교의 근본사상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트라는 소리로 액을 물리치는 것이라면 부적은 시각화를 통해서 액을 면해 보려는, 탱화를 손바닥에 놓고 볼 수 있게 최소화한 도형이라고 볼 수 있다”고 어느 불교인은 부적에 대한 견해를 말한다. 불교계의 입장과 관계없이 부적은 생활문화로 한국사회에서 굳건하게 내려오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런 문화적 배경을 가진 민간신앙의 하나인 이 부적을 불교가 수용하여 불교의 여러 방편중의 하나로 수용할 것인지, 아니면 불교에 맞지않으며, 주술적이고 미신적이라고 배척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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