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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7.16.주일찬양기도예배 설교문【캑추감사주일예배】- 교회헌신주일
제 목: 벽이 허물어진 사람. Wall is a crumble man.
본 문: 갈라디아서5:1–15절
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사람이라 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사람이로다 5우리가 성령님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님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Stand fast therefore in the liberty wherewith Christ hath made us free, and be not entangled again with the yoke of bondage. 2Behold, I Paul say unto you, that if ye be circumcised, Christ shall profit you nothing. 3For I testify again to every man that is circumcised, that he is a debtor to do the whole law. 4Christ is become of no effect unto you, whosoever of you are justified by the law; ye are fallen from grace. 5For we through the Spirit wait for the hope of righteousness by faith. 6For in Jesus Christ neither circumcision availeth any thing, nor uncircumcision; but faith which worketh by love. 7Ye did run well; who did hinder you that ye should not obey the truth? 8This persuasion cometh not of him that calleth you. 9A little leaven leaveneth the whole lump. 10I have confidence in you through the Lord, that ye will be none otherwise minded: but he that troubleth you shall bear his judgment, whosoever he be. 11And I, brethren, if I yet preach circumcision, why do I yet suffer persecution? then is the offence of the cross ceased. 12I would they were even cut off which trouble you. 13For, brethren, ye have been called unto liberty; only use not liberty for an occasion to the flesh, but by love serve one another. 14For all the law is fulfilled in one word, even in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15But if ye bite and devour one another, take heed that ye be not consumed one of another.
찬 송: 405장(통 458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406장(통 464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407장(통 465장) –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408장(통 466장) – 나 어느 곳에 있든지,
410장(통 468장) –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413장(통 470장) – 내 평생에 가는 길.
415장(통 471장) - 십자가 그늘 아래.
할렐루야!!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은총이 교회 공동체여러분과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사업과 가정 위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은 교회 공동체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금년의 오순절 축제의 달이며 7월 둘째 주일인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주제: 교회 공동체교회는 교회 공동체교회 교회 공동체들 간에 허물어진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교회 공동체교회 교회 공동체가 되자.
교회 공동체란 공동체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한 몸(엡1:23절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니라. Which is his body, the fulness of him that filleth all in all.)이며,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진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빌1:27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Only let your conversation be as it becometh the gospel of Christ: that whether I come and see you, or else be absent, I may hear of your affairs, that ye stand fast in one spirit, with one mind striving together for the faith of the gospel;)입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하면 예배와 전도와 기도와 봉사를 생각하지 공동체라는 생각은 약합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들이 교회 공동체에 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잘하는데 교회 공동체들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는 잘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브리서10:24~25절에 24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4And let us consider one another to provoke unto love and to good works: 25Not forsaking the assembling of ourselves together, as the manner of some is; but exhorting one another: and so much the more, as ye see the day approaching.는 교회 공동체의 교회 공동체의식에 관한 내용입니다.
과연 우리 교회 공동체의 교회 공동체들은 이렇게 교회 공동체 일을 잘하고 있습니까? 서로 돌아보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서로 거리감을 갖고 있으며 서로 벽을 쌓아 올리는 것은 아닙니까? 교회들마다 자주 일어나는 문제와 실수의 대부분이 사람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항상 서로가 좋은 관계 공동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때는 서로 과오를 범하고 감정이나 의견의 대립, 비판과 원망, 성격과 스타일의 차이 등으로 인해 문제가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고 지식과 믿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늘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서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소에 공동체 의식이 잘 세워져 있는 경우는 문제를 푸는 방법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지만 공동체 의식이 훈련되지 않았을 때는 문제를 푸는 방법이 서투르고 잘못되어 문제가 더 큰 문제를 가져와 교회 공동체와 개인 전체가 희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관계 특히 목사와 교회 공동체, 교회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의 관계가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희생으로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부흥만이 목표가 아닙니다. 무조건 크게 되고 교회 공동체 수가 늘어나고 재정이 올라가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의 목표는 하나님과의 자녀로서 서로가 교회 공동체라는 공동체를 서로 세워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도와주는 관계로 맺어진 교회 공동체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 부흥은 사랑의 성장, 관계의 성장, 섬김의 성장이 선행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과오가 없어야 할 것이 사람을 잃지 않고 하려는 자세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서로가 소중하고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되기 위해 몸부림쳐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아픔을 주거나 지울 수 없는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하여 서로를 존중하고 아껴주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4:32~37절입니다.
32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사람은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32And the multitude of them that believed were of one heart and of one soul: neither said any of them that ought of the things which he possessed was his own; but they had all things common. 33And with great power gave the apostles witness of the resurrection of the Lord Jesus: and great grace was upon them all. 34Neither was there any among them that lacked: for as many as were possessors of lands or houses sold them, and brought the prices of the things that were sold, 35And laid them down at the apostles' feet: and distribution was made unto every man according as he had need. 36And Joses, who by the apostles was surnamed Barnabas, (which is, being interpreted, The son of consolation,) a Levite, and of the country of Cyprus, 37Having land, sold it, and brought the money, and laid it at the apostles' feet.
초대교회는 서로가 한 마음 한 뜻이 된 초대교회입니다. 교회라는 조직에 속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서로가 참된 영적연합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가 하나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위했고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찾아 충족시켜주고 계속해서 서로를 보충해주며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자매가 없도록 서로가 힘쓰는 초대교회였습니다. 이들은 매일 만님이 그리워졌고 기다려지며 서로에게 기쁨이며 감동이었습니다. 진정한 부흥이란 이런 것입니다.
몇 명이 등록하고 헌금이 얼마이고 교회 공동체나 땅이 몇 평인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처럼 날마다 모이고 싶고 서로가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고 주변을 돌아보고 주위를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 공동체가 주님이 세우시기를 원하시는 교회 공동체입니다. 어느 교회이든 완전한 교회는 없습니다. 갈등 없고 전부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도 없습니다. 서로 다릅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예배스타일이 다르고, 헌신하는 방법이 다르고, 목사에게 바라는 것이 다르고, 교회에 오는 목적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르기 때문에 서로가 거리를 두고 벽을 쌓고 체념을 하면 위험한 교회 공동체가 되어 버립니다.
교회 공동체는 바른 영적 공동체를 통해 서로가 교회 공동체다운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이 중요합니다. 만일 지금까지 아직 교회 공동체의 신앙이 약하든지 뜨겁게 사랑으로 교제하고 관계를 통해 서로 하나가 되며 같은 마음의 열린 공동체가 되지 않았다면 다시 회복하고 갱신되어야 하고 진리의 혁명을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서로의 벽을 허물고 서로 하나가 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드십니까?
1.무엇이 서로에게 유익인가를 찾으십시오.
본문 6절이 핵심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For in Jesus Christ neither circumcision availeth any thing, nor uncircumcision; but faith which worketh by love.
교회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의 근원은 사람적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 차이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갈등의 요소에 대해 교회 안에서 주장하고 있는 할례 문제를 다루면서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할례를 시행하도록 한 이유는 언약 때문입니다(창17:10절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This is my covenant, which ye shall keep, between me and you and thy seed after thee; Every man child among you shall be circumcised.). 그런데 하나님이 할례를 하도록 하신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목적이지 사람을 버리거나 잘못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는 할례를 통해 사람을 나누고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 분열은 물론 사람들과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로마서2:28~29절입니다.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28For he is not a Jew, which is one outwardly; neither is that circumcision, which is outward in the flesh: 29But he is a Jew, which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that of the heart, in the spirit, and not in the letter; whose praise is not of men, but of God.
단순히 몸에 할례의 흔적을 가졌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례의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이라는 진리의 혁명을 말하는 것입니다. 할례의 의도는 교회 공동체의 분열이나 분쟁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침례나, 성찬이나 성령님이나 직분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믿음이 하나 되게 하고 교회 공동체를 세우고 사람을 세우기 위하여 사용하도록 한 것이지 싸움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진리에 관한 것이든 교리든 예전이든 규칙이든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되게 하기 위한 것(엡4:4~5절 4몸이 하나요 성령님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주남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4There is one body, and one Spirit, even as ye are called in one hope of your calling; 5One Lord, one faith, one baptism,)이고, 하나님의 뜻인 교회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것이며 사람을 구원하고 성화되도록 돕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도 큰 실수와 과오를 저지르게 됩니다.
히브리서4: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For the word of God is quick, and powerful,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even to the dividing asunder of soul and spirit, and of the joints and marrow,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
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검의 역할이 사람을 찌르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한 수술의 도구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멸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모든 더러운 것을 영적 수술로 제거하기 위해 사용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것은 할례와 무 할례의 싸움이 아니라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입니까? 교회 공동체의 기초는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국적, 나이, 성별, 계급, 실력, 빈부의 모든 차이를 뛰어 넘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화목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인데 그것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할례를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의 힘이 효력을 발생시키고 공동체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서로가 화목 하는 것이 먼저이고 서로 차이점을 말하는 것은 나중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차이가 있고 다르다는 것을 먼저 내세우면 싸움이 되고 분열이 되며 화목을 깨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화목의 영이 떠나면 그 순간부터 서로 미워지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목으로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교회 공동체 가정 공동체가 모두 획일적으로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처럼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종의 자유인이 대등한 자격으로 모인 교회 공동체는 이미 각종 벽이 허물어진 것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차별이나 특별한 사람들만 선호하고 나와 같은 사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서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유익을 위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 하나 된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면 하나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하나 됨이 깨어집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고 말씀은 하나 되도록 만드는 도구입니다. 하나 되려면 서로의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2.서로가 마음의 일치를 이루십시오.
하나 되는 두 번째 방법은 서로가 마음을 일치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과 12절입니다.
10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님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2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0I have confidence in you through the Lord, that ye will be none otherwise minded: but he that troubleth you shall bear his judgment, whosoever he be. 12I would they were even cut off which trouble you.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 교회 공동체에 두 종류의 사람들에 대해 경고를 했습니다. 요동하게 하는 사람을 어지럽히는 사람입니다. 왜 서로가 일치되지 못하고 교회 공동체와 사람들을 요동하며 어지럽게 만듭니까? 서로가 다른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틀린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중요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이스라엘 공동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시키기 위하여 에스겔이 외쳤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서11:19절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And I will give them one heart, and I will put a new spirit within you; and I will take the stony heart out of their flesh, and will give them an heart of flesh:
이스라엘은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잊고 우상에게 그의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이제 회복될 수 있는 길은 마음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일치하는 마음(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한 마음으로 일치단결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만 섬기는 한 마음의 다짐)과 부드러운 마음(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하고 불의를 자랑하던 마음을 제거한 회개한 상태)으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서로 각기 다른 마음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는 것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회복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왜 마음 공동체를 위하여 힘써야 합니까? 사람은 기계나 자동차 부품이 아니며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음이라는 선물을 통해 무엇이든지 품도록 하나님은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지고(엡4:18절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Having the understanding darkened, being alienated from the life of God through the ignorance that is in them, because of the blindness of their heart:), 부패되었습니다(딤전6:5절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Perverse disputings of men of corrupt minds, and destitute of the truth, supposing that gain is godliness: from such withdraw thyself.). 사람들의 마음이 타락했습니다. 그 결과는 충격적입니다.
예레미야22:17절에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But thine eyes and thine heart are not but for thy covetousness, and for to shed innocent blood, and for oppression, and for violence, to do it.
사람들의 마음이 타락하여 탐욕과 피 흘림과 압박과 포악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났던 일들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마음의 부패와 타락으로 교회 공동체는 커다란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이나 위험은 이방신이나 이단의 침입, 외부의 공격보다 마음의 부패와 타락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잘 지키는 것도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약1:8절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로다. A double minded man is unstable in all his ways,4:8절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Draw nigh to God, and he will draw nigh to you. Cleanse your hands, ye sinners; and purify your hearts, ye double minded.),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것도 한 마음(빌2:2절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Fulfil ye my joy, that ye be likeminded, having the same love, being of one accord, of one mind.)이고, 교회 공동체 가족들은 마음을 같이해야 한다(벧전3:8절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Finally, be ye all of one mind, having compassion one of another, love as brethren, be pitiful, be courteous:)고 했습니다. 마음이 서로 다르면 교회 공동체 안에 있고 같이 밥을 먹고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해도 서로가 멀리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은 교회 공동체를 잘하고 게십니까? 사회의 현장들처럼 대도시의 사람관계는 서로를 모르고 지내는 익명사회입니다. 교회 공동체도 마치 서로가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수준에서 인사 정도를 하고 얼굴과 이름은 알지만 깊은 신뢰와 서로의 사연은 모른 체 같은 교회 공동체 안에 있지만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마음이 없는 만남의 관계는 아닙니까?
서로의 벽이라는 것은 큰 장애물이 아닙니다. 서로가 무난하고 무관심하며 기계처럼 매 주일 교회 공동체에 왔다 그냥 가버리는 곳이 되면 벽이 쌓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최대 적은 마음을 열지 않고 닫는 것입니다. 마음을 굳게 닫고 있으면 아무도 그 사람에게 접근하려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마음을 닫으면 상대방도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면 모든 것이 일치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아야 교회 공동체가 요동하거나 어지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서로 마음을 열고 일치를 이루는데 힘써야 합니다. 마음이 다르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가 흔들리거나 교회 공동체 가족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가 한 마음이 되기 위해 마음을 열고 이해하며 회복시켜주도록 힘써야 합니다. 마음의 일치가 교회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합니다.
3.사랑의 종이 되십시오.
본문 13~15절입니다.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3For, brethren, ye have been called unto liberty; only use not liberty for an occasion to the flesh, but by love serve one another. 14For all the law is fulfilled in one word, even in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15But if ye bite and devour one another, take heed that ye be not consumed one of another.
교회 공동체가 하나 되는 세 번째 방법은 종이 되려는 자세입니다. 교회 공동체보다 개인주의가 강하다는 것은 종이 되려는 사람보다 주인이 되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중요한 한 됨의 비결입니다. 상대방보다 낮아지거나 섬기려고 마음을 열기만 해도 사람들이 기뻐하고 고마워하는데, 만일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의 종처럼 행동한다면 상대방은 강동하게 되고 하나가 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어려운 것이 종이 되는 것입니다.
과연 어느 교회에 가면 서로가 종노릇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겠습니까? 교회들이 차츰 종이 없이 주인들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교회 공동체에 오면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누군가 먼저 달려와 그의 종이 되고 섬기려고 해야 하는데 오히려 새신자가 먼저 와서 종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본문 14절의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For all the law is fulfilled in one word, even in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라는 말씀에 말씀대로 사는 것이나 말씀의 위력은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음에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제일보기 어려운 것이 사랑의 종이 된 모습입니다.
요즘 사회는 너무 개인주의입니다. 모든 것의 판단기준이 자신입니다. 나와 다르면 먼저 공격을 하고 자기와 다르면 버리고 헤어지고 무시합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모습들이 자주 보입니다.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고 갈라서고 공격하는 모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교회 공동체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교회다워지려면 자신과 다른 것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모인 사람들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 일을 잘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일만 잘하라고 하면 열심히 일거리를 찾아 미친 듯이 헌신하면 됩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는 일을 하는 것보다 사람을 섬기는 것이 우선이기에 사람을 잘 섬기지 않고서는 교회 공동체의 일을 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예배도 드리고 안내위원, 구역, 교사, 기관과 부서 그리고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하고 갖가지 봉사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종이 되지 않고 주인이 되어 지시하고 명령하며 군림하는 태도로 한다면 누구도 신뢰하거나 함께 하나가 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 일을 잘하려면 먼저 종으로 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종의 신앙입니다. 마태복음20:26~27절입니다.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6And as they were eating, Jesus took bread, and blessed it, and
brake it, and gave it to the disciples, and said, Take, eat; this is my body. 27And he took the cup, and gave thanks, and gave it to them, saying, Drink ye all of it;
섬기는 종이 되면 교회 공동체 일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으뜸이 되고 주인이 되려고 하면 교회 공동체 일은 불편하고 감정이 상하는 일들이 많아 잘하지 못하게 됩니다. 교회 공동체 가족 여러분 중에 교회 공동체 일이 신바람 나고 만족스러운 모습이라면 섬기는 종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라면 가르치려 하고 자신을 앞세우려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본문 마지막 말씀으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But if ye bite and devour one another, take heed that ye be not consumed one of another.(15절)고 경고 했습니다. 교회 공동체가 멸망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서로 사랑하거나 섬기거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물고 싸우며 자신의 득을 위하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는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한국교회와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이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는 사람을 살리는 곳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사랑하는 곳입니다. 여기에도 어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들이 온갖 바람에 휩쓸리며 곁길로 가는 것은 사람을 살리고 사랑하기 위하여 몸부림치기보다 자신의 뜻을 입력시키기 위하여 법석을 떨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서로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가족 공동체가 매 주일 교회 공동체에 오면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어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서로를 세워주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고 말씀을 붙잡고 성령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의 소원은 서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존경하고 신외하고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부흥의 목적도, 교회 공동체 건축의 목적도, 예배드리는 목적도, 봉사하는 목적도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사람이 변화되고 성화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이제부터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벽이 허물어져 사랑의 띠로 묶이게 하시고 서로의 필요를 위하여 나의 희생이 기쁨이 되게 하소서. Because wall is crumble, is fastened together by the bond of love and my sacrifice becomes joy for need of each other.”
우리 교회 공동체는 사랑의 공동체, 섬김의 공동체, 겸손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만남을 기다리고 지금보다 훨씬 값진 교회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교회 공동체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하나 되기 위하여,
첫째, 무엇이든 서로를 유익되게 해야 합니다.
둘째, 서로가 마음의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셋째, 사랑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교회 공동체에게 우리 교회 공동체는 하나 되기 위하여, 무엇이든 서로를 유익되게 해야 것이며, 서로가 마음의 일치를 이루어야 것이며, 사랑의 종이 되게 하여 주셔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나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충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이 나의 주님과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마침기도: 지금은 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우리교회 공동체에게 우리 교회 공동체는 하나 되기 위하여, 무엇이든 서로를 유익되게 해야 것이며, 서로가 마음의 일치를 이루어야 것이며, 사랑의 종이 되게 하여 주셔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나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충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과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전파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교회를 위한 기도
1. 세상 사람들의 한계를 알고 영혼구원을 위한 열정적인 마 음을 갖게 하소서.
2. 목자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을 전 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어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3. 새 공동체가 교회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담임목사님을
중심으로 사랑하는 가족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4. 교회에서 연합하기 힘든 사람들과 하나 되어 기도하고 전 도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소서.
5.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높이고, 칭찬하고, 미소 짓고, 섬 김으로 전도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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