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구도자란 무엇일까요?
보다 앞선 구도자는 '저 밖'이라든지 '이 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래서 벌어진 모든 일에 책임집니다.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일이 사실은 이전에 '안'으로 여겼졌던 것 속에
들어있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투사하려는 성향은 해소되지요.
'무고한 피해자' 위치성은, 그 모든 가짜 '무고함'과 함께 가면을 벗습니다.
그래서 역경이란 이전에 부정되어 무의식 속으로 억압되었던 것의 결과로 보입니다.
내면을 바라봄으로써 , 사람은 대처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 역경의 근원을 발견하지요.
사람들의 경허을 결정하는 요인은 바로 신념입니다.
외부의 '원인'이란 없습니다.
사람은 무의식적인 은밀한 투사에서 얻어지는 은밀한 대가를 발견하지요,
단순히 자신의 불평불만과 고민을 일일이 적은 다음
방향을 거꾸로 돌려놓기만 해도 자신의 저변의 프로그램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날 미워해."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미움에서 비롯되지요,
"내 걱정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는
타인보다는 자신의 행복과 이득에 대한 자기애적 몰두에서 비롯됩니다.
"난 사랑받지 못하고 있어."는 타인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일에서 비롯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신의 세계의 저자로서 책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근원에 가까워집니다.
타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자신이 사랑과 사랑임에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합니다.
(Lovingness, 저자에 따르면 사랑이 양적 감정으로서의 '사랑함(locing)'을 넘어서
본질의 표현이 될 때 그것은 '사랑임'이 된다고 한다.)
이득을 기대하지 않고 무조건 생명을 지지할 때, 생명은 그 대가로 우리를 지지해 주지요,
이득을 동기로 삼는 것을 포기할 때, 생명은 예기치 못한 관대함으로 반응합니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지각할 때, 모든 헌신적인 수행자이 삶에서 기적적인 일이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예기치 못한 발견, 우연의 일치, 행운이라는 형태로 조화로움이 나타나고
이러한 것들은 의식의 자리에서 자신에게로 되밀려오는 물결이라는 각성이 마침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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