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가트 머피의 <일본의 굴레>를 읽고 있다.
1장에 이어 2장은 근대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저자에 의하면 일본의 근대화는 우리가 흔히 아는 1868년 메이지유신보다 앞선 1603년 도쿠카와 이에야스에 의해 시작된 에도막부라고 봐야 한다고 한다. 이유는 에도막부부터 일본은 본격적인 정부 통치체제를 지닌 중앙집권화를 이루기 시작하여 그 체제가 사실상 권력층만 바뀌며 현대에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기에 더해 에도 시대에 발생한 수많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가 현대일본의 태동 혹은 뿌리라고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에도막부가 가장 신경쓴것은 첫째) 사상은 중국의 주자학. 그러므로 에도시대 일본은 응당 중국과 한국과의 교류는 중요시여겼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아마 한일관계가 임진왜란이란 엄청난 사건이 있었음에도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이끄는 에도시대가 가장 순탄했다고 할 수 있겠다). 둘째) 반면 체제전복이 가능한 기독교 사상은 전면 금지 (저자에 의하면 늘상 사무라이 계급에 의한 끝없는 전쟁을 겪은 일본 백성들 사이에서 기독교 전파는 그야말로 말그래도 들불처럼 번져서 만약 막부에서 전면 금지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일본 전역이 기독교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만약 일본이 기독교 국가로 전환되었다면 이후 역사도 달라졌을것이라 한다). 이런식으로 사상적으론 주자학을 기본으로 기독교 사상은 배척하며 자연히 서양과의 교역 역시 네덜란드를 제외하곤 배척하며 경제구조는 철저한 내수중심으로 기울었다고. 저자는 이 부분 역시 만약 에도막부가 오다 노부나가처럼 외국과의 교역을 적극 장려했다면 이 역시 이후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 한다.
이런 사상적, 경제적 쇄국정책 아래, 일본은 사무라이 계급과 상인 그리고 막부 관료들의 흥미로운 힘겨루기가 이루어지는데. 우선 이전 전국시대 힘의 중심이던 사무라이 계급은 에도시대가 가져온 평화의 시대에선 당연히 그 힘이 무용지물이 되며 자신들의 위치를 역설적으로 조직에 충성하는 것으로 이어갔다고. 반면 계급적으론 하급이었던 상인 계급이 평화의 시대, 경제력을 얻으며 새로이 부흥하게 되며 오사카는 당대 유례없는 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발전하였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처럼 상인층들이 신흥 부르조아 계급화까지는 이루지 못했는데 이유는 바로 막부 계급층이 철저히 관료화하며 모든것을 통제아래 둔 상태에서 그 힘까지 넘어서진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메이지 유신을 이룬것은 바로 에도막부에서 중앙 권력층에서 배제된 사쓰마, 조슈 그리고 도사 (현재 일본으로 치면 가고시마현, 야마구치현, 도치현)의 하급 무사들로 이들을 하나로 묶어낸 것이 바로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역사적 인물에서 늘 상위에 랭크되는 사카모토 료마.
그럼에도 저자는 메이지 유신을 서구의 혁명과는 분리해서 봐야한다고 하는데, 이유는 혁명이란 마르크스에 의하면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타파하며 새로운 지도계급으로 떠오르는 것을 뜻하는데 메이지유신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타파했다기보다는 같은 지배계층내에서 하급 사무라이들이 막부가 외세에 대항하여 더는 일본을 유지하고 통치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일으킨 내적 권력투쟁이라는 주장이다. 즉 메이지유신은 일본인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지도부를 끌어내리고 혁신하여 일본을 지킬것이냐 아니면 그냥 막부체제를 고수하다 서구세력의 식민지가 될것이냐의 갈림길에서 사무라이들이 전자를 택해 일본을 동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서구 식민지화를 면하고 심지어 아시아의 주도국으로 발돋움하는 계기였다고. 여기까지 읽으면 한국인으로 응당 드는 생각이, 만약 일본이 메이지유신이 없었고 서구의 식민지가 되었다면 한국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물론 우린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는 않았겠지만 우리 역사와 당대 국제정세를 냉정히 바라보면 대신 다른 서구 열강 중 한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거나 중국처럼 (표면적으로 아니더라도 실질적으론) 나라가 여러 조각으로 분열되어 경제권을 여러 열강에 내줬거나 하는 일이 벌어졌을 것 같다. 개인이던 국가던 스스로 혁신의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외부 힘에 의해 강제로 변화당하는건 수많은 역사에서 수없이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무튼 저자는 일본이 얼핏 당대에는 강대국의 식민지를 모면하며 동북아시아 열강이 되는 것 같은 메이지유신이 추후 20세기가 되면 역으로 일본을 내몬다고 하는데 아마도 군국주의를 뜻하는것 같은데 저자는 이에대해 어떤 관점을 보일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조각조각 흩어져 이해하던 일본이 조금씩 총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첫댓글 메이지 유신이 서구의 혁명과 다른 차이점을 보면서 개인 또한 외부상황에 의한 변화에 스스로 혁신의 힘을 가지지 못했을 때의 차이점을 비교하게 된다. 강제로 변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개인 또한 불행한 일이고 그래서스스로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될지는 역사를 통해 보게 만든다.
메이지유신이 추후 20세기가 되면 역으로 일본을 내몬다는 것은, 결국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것이 막부 관료도 상인도 아닌 하급 사무라이였기에 결국 끊임없는 전쟁을 통한 팽창과 성장(?)을 꾀했던 것일까 싶다.
어찌 되었던 스스로 혁신의 힘을 만들어 내었던 일본과 그렇지 못했던 한국. 외세의 침략을 백성의 피로 굳세게 막아내었지만 결국 스스로를 개혁하는데에 실패했기 때문에 일본의 지배를 받게된 것이 아닐까 싶다. 국가도 개인도 변화하지 못하면 언제든 다시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일본은 격동의 시기에 중앙권력에서 소외된 번의 하급무사들의 규합이 막부체계를 종식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듯 개인이나 회사나 국가든 자발적 정화, 개혁을 이루어 내고 유지하지 못하면 외부로부터 그것을 강요당하고 자존에 스크래치 입는것이 필연의 역사인듯하다. 사카모토 료마는 그 진화의 과정을 이끌었고 젊은 나이에 그 열매의 맛을 보지 못하고 산화한게 일본인들에게는 빚으로 남아 여전히 추앙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