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에로스
눅20:35-36“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남녀의 우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남녀간의 우정은 자연스럽게 에로스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우리 마음속에 아직도 정욕이 남아있다는 데 있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은”(갈5:24) 그리스도인이라면 남녀간의 우정이 문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로서 정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켜줌과 동시에 우리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욕망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게 합니다. 자신의 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일입니다.
요일1:3“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세상 사람들의 사귐은 자신들만의 사귐이지만 성도 간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입니다. 성도의 교제의 중심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과 더불어 누리는 성도 간의 사귐은 육체의 욕망으로부터 자기를 지켜줌과 동시에 내면 깊숙이 숨어있던 상처나 욕구를 드러나게 해줍니다. 숨어있던 욕구가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면 이 문제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기회를 얻습니다. 그래서 한 발자국 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으로 다가갑니다. 삶의 푯대는 자아실현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부활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입니다.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인 천국 백성처럼 이 땅에서 이미 천국 백성으로서의 삶을 훈련받고 있습니다. 천국의 시민권자에게는 이 세상의 자랑이나 욕망보다 하나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이것이 세상의 어떤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이 됩니다.
마5: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인간의 욕망이나 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록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지만 최선을 다해 이 땅에서 천국 백성의 삶을 실현해갑니다.
골3:2-3“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천국 백성은 안개와 같은 땅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자나 깨나 위의 것 곧 이 욕되고 약한 육의 몸 대신 영광스럽고 강한 신령한 몸을 생각합니다. 영광의 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성도는 성도간의 교제에서 에로스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에로스는 열정에서 비슷한 것 같지만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에로스는 폐쇄적인 둘만의 사랑이라면 우정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는 개방적입니다. 예수님은 남녀노소를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우정을 나누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누구든지 다 예수님께로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둘만의 폐쇄적인 사랑이 아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것입니다. 우리 또한 진실한 우정의 사귐가운데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우정이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상대방의 유익을 구합니다.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서로 섬기며 서로 힘이 되어줍니다. 24. 3. 3 장기옥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