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만 시인의 시집 『시詩의 집을 짓다』
약력
전북 군산 출생
호: 향파鄕
《월간문학》(수필) 신인상 수상(2016)
<월간문학>(시조) 신인상 수상(2018)
한국문인협회, 울산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협회,
한국여성인문학회, 울산시조협회,
나래시조, 전북시조협회, 태화강문학
회, 영축문학회, 울산남구문학회,
하나문학회,에세이울산문학회,
외솔회 회원
계간 《문학과 의식》 시조 동인
경북도민일보 칼럼 연재
논술지도사, 독서지도사, NIE논술사
울산전국시조백일장 장원(2018)
샘터 시조 7월 장원 (2019)
외솔시조문학상 신인상 수상(2023)
하나문학상 수상(2023)
울산문화관광재단 창작장려금 수혜
수필집 『박꽃』(울산문화재단 선정)
시조집 『뫼비우스 띠』, 『간절곶 아침』,
『시詩의 집을 짓다』
E-mail: dongbu7500@daum.net
시인의 말
글 안에는 작년의 나와 더 먼 옛날의 내가
있다.
시의 집을 짓기 위해 곡예하듯 결을 탔다.
나에게 글쓰기는 생활의 의미와 동일하며,
언제나 나의 마음을 두드리고 때린다.
건져 올린 이미지에 색칠하며, 결정체를
만드는 일은 작가의 숙명이라 생각한다.
날이 선 필 끝을 따라 시의 집을 지을 수
있어서 조금은 위안을 얻는다.
한 줄의 글이라도 읽는 이의 가슴에 전달
되기를 소망하며 편하게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
초저녁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올해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자연의 섭리를
배웠다.
언젠가는 이별을 생각했지만, 켜켜이 쌓아
온 지층이 단단하다.
뒤뜰에 어머니가 심어 놓은 봉숭아는
오늘도 내 안에 서 곱다.
무더운 여름날 글 작업하느라 예민했던
나를 격려해준 남편과 윤정, 윤비에게 감사
함을 전한다.
휴가를 반납하며 책표지를 그려 준 딸,
사랑의 마음을 읽는다.
2024년 10월에
김금만
시 詩 의 집을 짓다
폐자재 무늬목을 밤낮 대패질하여
눈썰미 먹줄 튕겨 곡예하듯 결을 탄다
날이 선 필 끝을 따라 불어넣는 푸른 혼
서랍 속 들춰 가며 찾아낸 낡은 노트
빨간 줄 그어 놓은 행간을 다독인다
망치로 꿰맞춘 얼개 푸덕푸덕 소리나
가을밤 서재 한 칸 임대한 귀뚜라미
달 비친 창가에서 고서를 읽고 있다
또르륵 유리구슬을 밤새 씻어 헹구고
침향이 타들어가 실연기 헝클린다
다관을 끓여대는 참숯불 놋쇠 화로
찻잔을 비우다 보면 새벽빛이 스민다
마감재처럼
늦가을 문전에서 떨어진 열매같이
바람에 팔랑이는 붙박이 잎사귀같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물길같이 빛같이
잘 묶인 배추같이 파마한 머리같이
또 한해 살은 흔적 정산한 가계부같이
당신이 곁에 있어서 믿음 주는 힘같이
녹슬고 구부러진 안 뽑힌 대못같이
내 두 귀 깔때기로 안 걸러진 잡음같이
검은 밤 호돌이 앞에 마음 씻긴 덕담같이
지평선 끝에 서서
가물댄 아지랑이 끝없이 달려온다
무명옷 입으시고 논길 걷는 아버지와
머리에 수건을 쓰신 어머니도 걸어온다
고향 집 지켜주던 허리 굽은 먹감나무
감꽃 뚝뚝 떨어져서 꽃자리 펼치던 날
막내딸 손가락에 끼운 아버지의 감꽃 반지
그리움 번져 가서 장미밭 가꾼 하늘
밀려온 공허감에 반달은 등을 달고
점처럼 날빛 속으로 새 한 마리 날아간다
프리즘에 관한 기억
내장된 유년 화면 리모컨 눌러본다
책가방 들고 가는 하얀 칼라 예쁜 소녀
그 냇가 서정시 같은 발을 담근 수선화
지킴이 느티나무 삼총사 껴안을 때
통기타 여섯 줄은 화음을 튜닝 했지
가슴이 아린 한 소절 차마 다 못 부르고
졸업반 기차 여행 눈으로 찍은 영상들
발 푹푹 은빛 세상 16mm 영사기엔
음향도 칙칙거리며 흑백 필름 돌고 있다
미완 교향곡
빗물이 유리창에 연서를 쓰는 아침
찻잔을 앞에 놓고 슈베르트를 듣는다
초록 심 새로 깎아서 내 자서전 쓰는 새순
플랫폼 떠난 열차 오르막 향해 달려간다
스치는 차창마다 흑백 필름 되돌릴 때
뚝하고끊긴 한순간 가슴이 꽉 조였고
터치해 넘겨보는 스마트폰 기억 너머
내 유년 오지마을 숲속 학교 다가선다
짹짹짹 참새 꼬맹이 발음들이 정겹다
지금도 돌고 있는 축음기 낡은 LP판
긁히는 무딘 바늘 칙칙 소리 해대지만
숨차는 언덕 위에서 손 흔드는 억새꽃
반구대 암각화
우주인
다녀가며
바위에 새긴 일기
산짐승
대왕고래
서로서로 안으라고
물소리
풀어놓고서
먼 별빛을 줍고 있다
해설
날이 선 필 끝을 따라 불어넣는 푸른 혼
-김금만의 시조 미학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김금만 시인의 새로운 시조집 시의 집을 짓다 (한강출판사, 2024)는 정형성의 기율을 충실하게 지키면서도 활달한 상상력으로 특유의 현대성을 성취하고 있는 미학적 성과로서 다가온다. 우리가 잘 알듯이, 시조의 정형성은 자유로운 시상詩想을 가로막는 불필요한 장벽이 아니라 그러한 형식을 통해 고유한 미학을 가능케 해주는 불가피한 '존재의 집' 이다. 마치 기차가 철로에서 벗어나면 자유가 아니라 탈선인 것처럼, 시조가 정형성을 스스로 이완해 가는 것은 일종의 자기 부정에 이를 수도 있다. 그만큼 시조의 정형성은 부정적인 억압이나 구속이 아니라 시상을 이끌어가는 정연한 질서이자 동인動因이 되는 셈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서정적 공감은 단단하게 짜인 형식 혹은 질서에 의해 섬광과도 같은 감동을 주게 마련이다.
아닌 게 아니라 김금만의 이번 시조집은 자신만의 견고한 시조 미학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예술적 기록으로 생성되고 있다. 단아하고 고전적인, 하지만 저류 底流에는 삶과 사물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표현해낸 산뜻한 결실로 다가온다. 그 안에는 시인의 역동적 안목과 역량이 파동치고 있고, 시인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 사물이나 오랫동안 축적해 온 기억을 대상으로 하여 그것들
이 얼마나 선명한 감각으로 재현 가능한지를 한껏 보여준다.
우리가 천천히 읽어 온 김금만 시인의 시조는 단단한 정격과 유려한 언어 그리고 속 깊은 서정에 감싸인 따뜻하고도 심미적인 세계를 남김없이 보여 주었다. 그 세계를 통해 그는 우리 시조시단에 뚜렷하고도 개성적인 성취를 각인하였다. 시인은 정형성을 충실하게 지켜가면서 우리 시조가 주체와 세계 간의 견고한 균형을 통해 근원적 가치를 탈환하고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들려주
었다. 예컨대 그는 엄정한 정형 안에서 내면적 상황과 반응을 토로하거나, 뭇 사물의 외관과 실질을 관찰하고 묘사하거나, 시조 양식에 대한 섬세한 자의식을 보여 주거나, 자연 사물 속에서 삶의 이법을 발견하는 서정을 우리에게 아름답게 선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