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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남침 징후 알고서도…
전쟁 발발 전 ‘눈과 귀’ 역할켈
로의 2800 여회 첩보 보고에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
심각한 오판 뒤엔 ‘확증 편향’
자신의 신념과 맞는 정보만 수용
조직 권위 높을수록 두드러져
北의 핵 개발이 이성적?
최근 뉴욕타임스서 “고도의 전략”
60년 지난 지금 ‘데자뷔’ 현상
고(故) 한동목 중령이 6·25전쟁 중 촬영한 사진. 시신 앞에서 오열하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전쟁의 참상이 진하게 느껴진다. 국방일보DB |
최근 뉴욕타임스에 ‘북한이 미친 척하는 고도의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기사가 실렸다. 북한의 핵은 생존을 위한 효과적 방안이며
이런 판단은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정치 평론가와 유명한 학자들의 짧은 평을 인용했다. 나에게
그러한 관점이 맞는지 틀렸는지 판단할 능력은 없다. 하지만 그 주장들은 내가 알고 있는 1차 사료들 중 몇 가지와 상당히 유사하다. 6·25전쟁
초기 CIA 분석가들의 보고서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 전, CIA는 한반도 최전선에서 올라오는 북한의 남침 징후
보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연구한 이들의 논문은 대개 그 이유에 대해서 다음의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전략적 차원에서 미국이 소련의 일본 침공, 중공의 대만 침공에 우선순위를 더 높게 두었기 때문이다. 둘째, 당시 신생 조직이던 CIA의
정보분석요원 1000여 명 중 한반도 문제를 다룬 이는 단 3명뿐이어서 현장의 첩보를 소화할 능력이 없었다.
저 두 가지 이유를
읽어보면 논리적으로는 맞는 것 같은데 뭔가 의아하다. 6·25전쟁 발발 전 CIA의 눈과 귀 역할을 한 것은 켈로(KLO: Korea
Liaison Office)였다. 이들은 북한의 군사력 증강과 심상치 않은 부대 이동에 관한 첩보를 무려 2800여 회나 보고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CIA는 북한의 남침 징후를 무시해 오판한 것과 거의 유사하게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도 낮게 봤다. 심지어
중공군과 미군이 교전을 벌였는데도 ‘중공군은 한반도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6·25전쟁기 CIA가 작성한 대표적인 문서인 ‘주간보고서’. CIA 홈페이지에 주요 파일들이 공개되어 있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들어가면 외부와 연결되지 않은 대형 서버를 통해 더 많은 문서들을 볼 수도 있다. 필자 제공 (출처=미 CIA 홈페이지, https://www.cia.gov) |
다음은 1950년 7월 28일에 작성한 CIA의 주간보고서다.
(전략)
● ‘한반도 문제’
적대 행위가 발발한 이래 지금까지 만주지역으로부터 북한
쪽으로 부대가 이동했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북한 부대에 한국인 출신 중국군들이 증강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부분은 전쟁 유경험자다. (중략)
규모는 약 4만에서 5만 명이 될 것이며 만주로부터 들어와 사상자가 많은 부대에 투입될 것이다. (중략) 소련은 이 한국인들을 투입하는 데에
별다른 정치적 위험이 없다. 소련은 비한국인들을 투입함으로써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 이상의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 ‘대만 문제’
지난 두 달 동안 중국 남부와 남동부에 주목할 만한
군사적 이동이 있었다. 이들은 대만을 상륙공격하기 위해 신속히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집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만에서
가장 가까운 푸젠 해안 쪽으로 작은 배와 정크선들이 모여들면서 항공기용 가솔린과 같은 군사작전 보급품이 집적되고 있다는 보고도 들어왔다. 중국은
대만 공격을 포기할 뜻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중공은 대만의 복속을 공언해 왔기 때문에 대만을 국민당이 장악하고 있는 한 그들의 위신은
손상을 입을 것이다. 중공은 미국이 군사력을 강화하기 전에 반드시 침략을 개시할 것이다.
대만 침략이 성공한다면 그 효과는 첫째,
세계에 공산주의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둘째, 극동 지역에서 소련과 중공의 전략적 위치를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 미국의 공약과 신뢰에 상처를
입히고 비공산주의자들의 저항을 약화시킬 것이다. 대만에 대한 침략이 공산주의 국가와 미국 간의 군사적 분쟁을 확장시킨다 할지라도, 또한 그것이
소련의 개입으로 세계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할지라도, 중공군은 한반도·홍콩·동남아시아보다는 대만에 군사력을 투입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제적인 반대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만주 지역에 중공군이 집결하는 것은 그들 중
한국인을 북한군에 증원하기 위한 것이며, 동북지역에 집결한 중공군은 반드시 대만을 공격할 것이다. 중공은 결코 6·25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 남부 및 남동부에 집결하고 있다고 거론한 부대는, 이제는 널리 알려졌지만 최초 대만 침략을 위해 편성했던 ‘동북변방군’이다.
나중에 ‘인민지원군’ 즉, 인민의 뜻과 마음을 모아서 스스로 나선 군대라는 거짓 호칭으로 6·25전쟁에 개입한 그
부대다.)
문서 전체를 보면 이론적으로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세계정세와 소련의 의도, 중공의 입장을 논리
정연하게 정리하고 그로부터 전제를 제시한 후 여러 가정, 추론을 조합해 ‘중공군은 결코 한반도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문제는 점점 심각해져 갔다.
1950년 9월 30일, 주소련 대사 앨런 커크(Alan G. Kirk)가
모스크바에 있는 정보원으로부터 중국이 6·25전쟁에 개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를 워싱턴으로 타전했다. 베이징의 현지 요원과
연락책도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 그러나 CIA는 주간보고서에 ‘이것은 중공의 블러핑’이라고 결론지었다. CIA는 심지어 중공군 4개 사단이
압록강을 건넌 것으로 확인된 10월 16일에도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10월 20일에는 중공군과 미군이 교전을 벌였는데도
‘그것은 전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속임수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北 핵 보유 후 발사 땐 뭐라 할까?
왜 이렇게까지 심각한 오판을 했던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ory bias)이라고 한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무시하는 것이다. 조직의 권위가
높고 구성원이 완벽을 추구할수록 확증 편향이 심하다. 혹시 뉴욕타임스와 그들이 인용한 분석은 확증 편향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닐까?
정말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것은 생존을 위한 약소국의 당연한 판단인가? 일부 학자들과 언론은 이론을 들어 그렇게 발표했다. 정말
북한이 핵실험을 반복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은 이성적인 고도의 전략인가? 지금 일부 학자들과 언론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다음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충분한 핵을 보유한 뒤에, 핵을 발사하고 난 후에는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북한의 침략 징후를 무시해
전쟁이 발발하고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을 축소 보고해 전쟁이 확대된 후, 60년이 지나서 ‘그것은 오판이었다’고 발표한 CIA처럼 하면 되는
것인가?
<남보람 소령 군사편찬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