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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믿나이다] (55)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 세례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나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중 세례에 관한 신앙 고백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 앞에서 세례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 전체가 세례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모든 죄를 정화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신자를 ‘새사람’이 되게 하며,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 성령의 성전이 되게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66)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례 때 “저는 믿나이다”라며 교회의 신앙을 드러내놓고 첫 고백을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베풀어지는 세례는 가톨릭 신앙이 삼위일체 하느님을 중심으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줍니다.
세례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입문 성사입니다. 이런 이유로 세례를 ‘신앙의 성사’라고 합니다. 이 신앙은 ‘가톨릭교회의 신앙’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신앙, 주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거룩한 교회 안에 계신 성령에 대한 신앙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세례식 때 주례자가 예비 신자에게 “하느님의 교회에 무엇을 청합니까?”라고 물을 때 세례받을 당사자와 그 대부모는 “신앙을 청합니다”고 답합니다. 교회는 ‘신앙의 전달자’입니다.
예수님도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또 부활하신 후에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하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고백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께서는 ‘고난받는 종’이라는 당신의 사명을 수락하시고 그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으며, 이미 그분께서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으로, 피 흘리는 죽음의 ‘세례’를 미리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의로움을 이루시기’(마태 3,15) 위하여 오신다. 곧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따르신다. 몸소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사랑으로 죽음의 세례를 받아들이신다. 이러한 수락에 성부의 목소리가 당신 아들이 마음에 든다고 응답한다. 예수님께서 잉태 때부터 충만하게 지니셨던 그 성령께서 내려와 그분 위에 ‘머무르신다’.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를 위한 성령의 원천이 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담의 죄로 닫혔던 ‘하늘이 열리고’(마태 3,16), 예수님과 성령께서 내려오시어, 물이 거룩하게 되었다. 이는 새로운 창조의 서막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서, 당신 세례 안에서 죽음과 부활을 미리 겪으시는 예수님과 성사적으로 비슷하게 된다. 그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속죄하는 신비 안으로 들어가야 하며, 예수님과 함께 물에 잠겼다가 그분과 함께 다시 올라와야 한다. 그래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자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로마 6,4)”(「가톨릭교회 교리서」 536-537)
이처럼 세례는 물과 말씀으로 죄를 씻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성사입니다. 세례를 통해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그리고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고통, 질병, 죽음 등 죄의 현세적 결과와 죄로 기우는 경향만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로 좌절하거나 슬퍼하거나 죄에 굴복할 이유가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세례받은 이에게 거룩하게 되는 은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성화 은총’은 믿음·희망·사랑의 향주덕을 통해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바라고,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아울러 성화 은총은 성령의 은혜를 통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고 행동할 수 있게 하며, 윤리덕을 통해 선이 성장하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나지안주스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는 세례를 다음과 같이 예찬합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선물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 (⋯) 우리는 이것을 선물, 은총, 기름 바름, 조명, 불멸의 옷, 재생의 목욕, 인호 등 가장 귀중한 모든 명칭으로 부른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는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선물이며, 빚진 자들에게도 주어지기 때문에 은총이며, 죄가 물속에 묻히기 때문에 세례(물에 잠김)이며, 신성하고 왕다운 것이기에 도유하며, 밝은 빛이기에 조명이며,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려 주기에 옷이며, 씻어 주기 때문에 목욕이며, 우리를 지켜 주며 또한 하느님의 주권에 대한 표징이기 때문에 인호하고 한다.”(「강론집」 40,3-4)
그리스도인은 모든 이가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 신앙의 선물을 받도록 그들을 하느님께 데려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세례를 받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특별기고] 교황청 교리 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로 본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 수정 의미“그리스도만이 구원 중개자”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 수정한다
교황청 신앙교리부의 2025년 11월 4일 교리 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는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독자적이지 않은 ‘참여적 중재’임을 강조하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공동 구속자’(Co-Redemptrix)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힌다.
“구속 사업에 있어 그리스도께 대한 마리아의 종속적 역할”을 설명하며 “마리아의 협력을 규정하기 위해 ‘공동 구속자’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부적절하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이 호칭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를 흐리게 할 위험이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 진리의 조화에 혼란과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기”(22항) 때문이다.
이는 구원사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명확히 제시하는 의미 깊은 교도권 문헌이며 사목적 차원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활동해 온 레지오 마리애도 그 영향을 받게 된다. 「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은 “교회는 성모님을 (⋯) 은총의 중재자(Mediatrix in grace)로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협력하시는 공동 구속자(Co-Redemptrix in salvation)로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와 닮은 분’이라고도 선언할 수 있는 것”(제7장, 72쪽)이라 강조하는데, 이제 그 진술이 수정될 단계에 온 것이다.
과거의 과장된 마리아 신심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흠숭지례)과 마리아 공경의 신심(상경지례) 수준이 구분되기 어려울 지경이었고, 특히나 성령의 역할이 사실상 마리아에게 양도 혹은 귀속된 것처럼 보이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현재 교본에는 과장된 마리아 신심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교본의 신학적 기조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충분히 쇄신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는 성모 신심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빛에 비춰져 성찰돼야 함을 강조한다.
이에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3개(서울·광주·대구) 세나뚜스는 교본의 새로운 수정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시급한 문제는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이다. 행동단원이 되기 위해서는 입단 선서를 해야 하는데, 선서문은 교본 제15장(141~142쪽)에 정형화된 형태로 나온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시여”로 시작하는데, 이후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계속 성령을 가리키고 있다. 그런데 이 선서문의 두 번째 단락에 신학적 문제가 있다는 점이 한국 교회 안에서 계속 지적돼 왔다.
“당신은 이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려고 오셨으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저희 또한 성모 마리아 없이는 당신을 알아 뵈올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음을 아옵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모든 재능과 성덕과 은총을 내려 주시오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때에,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만큼,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베풀고 계심을 제가 아옵니다.”
이 내용은 레지오의 수호성인 중 한명인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1673~1716)의 책 「성모님께 대한 참된 신심」 25항과 206항에 기반한다. 그는 마리아가 성자와 성령에 대해 거룩한 은총의 관리자요 출납관이며 분배자가 되기에, 인간을 향한 은총의 중개와 분배는 마리아의 뜻에 달렸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글을 오늘날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오직 마리아만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은총의 유일하고 배타적인 통로인가?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에페 1,3) 이러한 관점에서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는 명확한 대답을 제시한다. “그 어떤 인간도, 심지어 사도들이나 복되신 동정녀조차도 은총의 보편적 분배자로서 행동할 수 없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은총을 내려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53항) 따라서 ‘모든 은총의 중재자’ 호칭 사용 역시 제한적이고 주의가 필요하며, 이는 “은총 질서에 있어 마리아의 모성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성화 은총을 받아들이게끔 도움을 준다”(46항)는 의미로 해석돼야 함을 강조한다.
선서문의 두 번째 단락은 수사학적으로 주관적인 강조 어법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선서문이라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고백 형식을 통해 그 내용을 천명하기에 문제가 된다.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서 이뤄지는 성령의 보편적 활동을 모두 마리아의 역할로 양도해 배타적으로 한정시키는 오류가 발견된다. 이는 사실상 마리아가 ‘공동 구속자’이며 ‘모든 은총의 중재자’라고 글자 그대로 인정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진술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따라, 한국 레지오 마리애 3개 세나뚜스는 선서문의 수정 번역 시안을 마련해 주교회의에 제출했고, 2025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승인을 받았다. 2026년부터 전국 교구 레지오 마리애에서 새 번역문 시안이 사용될 것이며, 향후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안을 마련해 주교회의에 다시 제출할 예정이다.
이 시안에서는 선서문 전체의 문장과 표현을 가다듬었다. 두 번째 단락을 ‘내용의 동등성’(dynamic equivalence) 원칙에 따라, 글자 그대로의 번역 대신에 의미 중심의 번역을 했다. 즉 ‘마리아를 통하지 않으면 성령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을 ‘마리아의 도움으로 성령의 풍성한 은총을 받는다’로 바꾸는 방식이다.
선서문의 신학적 문제 제기는 레지오 마리애 운동에 담긴 신앙적 직관의 풍요로움을 감소시키려 함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레지오 활동을 하며 가톨릭 신앙생활을 해나가고 있기에, 한국에서는 레지오가 단순히 하나의 신심 운동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 그 공헌이 지대한 만큼 레지오 신심이 올바른 신학적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특별기고] 교황청 신앙교리부 공지에 따른 레지오 선서문 수정의 의미
주교회의는 2025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 수정 시안을 승인했다. 최근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발표한 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에 비춰, 이번 레지오 마리애 선서문 수정의 의미를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이자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 담당 박준양(요한 세례자) 신부의 기고를 통해 알아본다.
레지오 마리애 교본은, “교회는 성모님을… 은총의 중재자(Mediatrix in grace)로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협력하시는 공동 구속자(Co-Redemptrix in salvation)로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와 닮은 분’이라고도 선언할 수 있는 것”(제7장, 72쪽)이라 강조한다. 하지만 수정이 필요한 때가 왔다.
교황청 신앙교리부가 11월 4일 발표한 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는 마리아의 ‘모성적 중재’는 독자적이지 않은 ‘참여적 중재’임을 강조하면서, ‘공동 구속자’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힌다. 즉, “구속 사업에 있어 그리스도께 대한 마리아의 종속적 역할”을 설명함에 있어, “마리아의 협력을 규정하기 위해 ‘공동 구속자’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부적절하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이 호칭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를 흐리게 할 위험이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도교 신앙 진리의 조화에 있어 혼란과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기”(22항) 때문이다.
이는 구원사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명확히 제시하는 교도권 문헌이며 사목적 차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과거의 과장된 마리아 신심은 하느님께 대한 흠숭지례와 마리아 신심의 상경지례 수준이 구분되기 어려웠고, 특히 성령의 역할이 사실상 마리아에게 양도, 귀속된 것처럼 보이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는 성모 신심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빛에 비추어져 재성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현재 레지오 마리애 교본의 신학적 기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충분히 쇄신되지 못한 상태이다. 그래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3개(서울, 광주, 대구) 세나뚜스는 교본의 새 수정 번역을 진행 중이며, 그중 시급한 문제는 입단 선서문(교본 제15장, 141~142쪽)이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이시여”라고 부르며 시작하는데, 이후 ‘당신’이라는 호칭으로 계속 성령을 가리킨다.
“당신은 이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려고 오셨으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저희 또한 성모 마리아 없이는 당신을 알아 뵈올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음을 아옵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모든 재능과 성덕과 은총을 내려 주시오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때에,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만큼,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베풀고 계심을 제가 아옵니다.”
과연 마리아가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은총의 유일하고 배타적인 통로인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는 명확한 대답을 제시한다. “그 어떤 인간도, 심지어 사도들이나 복되신 동정녀조차도 은총의 보편적 분배자로서 행동할 수 없다. 오직 하느님께서만 은총을 내려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인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53항) 따라서 ‘모든 은총의 중재자’ 호칭 사용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 이는 “은총 질서에 있어 마리아의 모성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성화 은총을 받아들이게끔 도움을 준다”(46항)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서문 둘째 단락을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경륜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보편적 활동을 모두 마리아의 역할로 양도해 배타적으로 한정시키는 오류가 발견된다. 이는 마리아가 ‘공동 구속자’이며 ‘모든 은총의 중재자’라고 글자 그대로 인정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진술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 3개 세나뚜스는 선서문의 수정 번역 시안을 마련해 주교회의에 제출했고 2025년 추계 정기총회를 통해 승인을 받았다. 2026년부터 전국 교구 레지오에서 새 번역문 시안이 사용될 것이며, 향후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주교회의에 최종안을 다시 제출할 예정이다. 한국교회에 대한 공헌이 지대한 만큼, 레지오 마리애 신심이 올바른 신학적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이 시안에서는 선서문 전체의 문장과 표현을 가다듬었고, 내용적으로는 둘째 단락을 ‘내용의 동등성(dynamic equivalence)’ 원칙에 따라, 축자적 번역 대신에 의미 중심의 번역을 했다. 즉, ‘마리아를 통하지 않으면 성령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고 한 것을 ‘마리아의 도움으로 성령의 풍성한 은총을 받는다’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번역하였다.
[생활교리] 마리아는 누구인가?
1. 마리아의 중재. 최근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레오 14세 교황의 승인 아래 공지 『충실한 백성의 어머니』(Mater Populi Fidelis, 2025.11.4)를 발표하며, 성경과 교회 전통 그리고 현대 교황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성모 신심에 관한 교리 문헌을 발표했다. 이 문헌의 핵심 중 하나는 교회 안에서 사용되어 온 몇몇 성모 호칭을 재검토하고 그 사용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제시한 것이다. 특히 ‘공동 구속자’라는 호칭은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며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1티모 2,5)라는 진리를 혼동시킬 수 있기에 ‘부적절’하다고 명시한다.
마리아는 승천 후에도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위해 “부단하고 효과적인 전구”를 계속하며 “우리의 구원과 중재를 위한 당신의 사명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마리아 공경』 56, 18). 그러나 이러한 중재는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자적 역할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그 역할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다(『교회헌장』 60). 따라서 마리아의 중재는 그리스도 구원 사업에 대한 “특별하고 예외적인”(『구세주의 어머니』 39) 협력이면서,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개에 참여하는 ‘종속된 중재’이다. 곧 마리아는 결코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하는 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이 자신 안에서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고 열매를 맺는지 보여”(발터 카스퍼)주는 존재이다.
2. 엄마, 어머니. “자식의 배가 불러야 비로소 배고픈 사람이 어머니”라는 말처럼, 어머니는 늘 자녀의 뒤편에서 침묵과 인내로 버티어 서 있는 큰 나무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그러한 모습과 멀지 않다. 요한복음은 마리아를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되는 카나의 혼인잔치(2,1-12)와, 지상 생애가 마무리되는 십자가 아래(19,25-27)라는 두 결정적 순간에 제시한다. 이는 마리아가 어머니로서 예수님의 처음과 끝을 함께 동반한 분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더불어 교회 전통에서 전해오는 성모칠락(七樂)과 성모칠고(七苦)가 모두 예수님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들의 기쁨과 고통이 곧 어머니의 기쁨과 고통이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곧 마리아는 아들과 깊은 일치를 이루며 그분의 길을 함께 걸어간 어머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모성’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리아는 예수님 승천 이후 제자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에 전념”(사도 1,14)하셨고, 지금도 하느님 앞에서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빌어주시는 영적 어머니, 믿는 이들의 어머니로서 우리 신앙 여정에 늘 동행하시는 분이다.
3. 여정 중에 있는 신앙. 우리는 종종 마리아의 믿음을 처음부터 완전하고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이 전하는 마리아의 삶은 빛과 어둠, 기쁨과 고통이 교차하는 여정이었다. 이는 마리아의 신앙이 “여정 중에 있는 신앙” 곧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그 어둠을 통과하며 성장해야 하는 신앙”(베네딕토 16세)이었음을 보여준다. 신앙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돌을 하나씩 쌓고 한 계단씩 오르듯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걸어가는 여정 안에서 성숙하고 깊어지며 마침내 완성에 이른다. 마리아가 먼저 걸은 그 복된 길, 이제 우리의 발걸음으로 이어질 때 우리의 신앙은 다시 꽃피우고, 다시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
[매주 읽는 단편 교리] 십자 성호
가톨릭신자는 기도의 시작과 끝에 성호를 긋습니다. 십자 성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그 결과인 구원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동작입니다.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그리스도를 닮은 생활을 하겠다는 의지도 표현합니다. 따라서 십자 성호를 그으며 바치는 성호경은 기도의 시작과 끝에 하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그 자체로 훌륭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긋는 십자 성호, 곧 ‘큰 십자 성호’는 5세기경에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넘어가는 그리스식 십자 성호였는데, 13세기부터 서방 전례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라틴식 십자 성호가 전파되었습니다. 십자를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라고 성삼위의 호칭을 부르는 건 중세 초기에 시작되어 전례, 개인기도, 일상생활에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성삼위를 부르는 기도는 초기 교회에서 세례 때 사용하던 신앙고백문에 근거합니다.
오늘날 기도나 전례를 시작할 때 성호경을 바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일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성경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 10,31);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7)”. 또한 성호경은 미사 때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미사는 인간 구원을 이룬 십자가 제사의 재현이므로, 신자들은 이 제사의 시작에 성호경을 바치면서 합당한 마음 자세를 갖추게 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신자들은 세례 때 고백한 신앙을 새롭게 하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도움으로 ‘신앙의 신비’인 미사를 봉헌하게 됩니다. 미사 끝에는 성삼위의 이름으로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사제의 강복을 받습니다.
‘작은 십자 성호’도 있습니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십자표를 그으며 축복하는 동작입니다. 이는 이미 2세기경 시작되었는데, 입교 예식에서 주례자는 예비신자의 이마에 십자 표시를 하였습니다. 4~5세기경부터는 사제가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를 그어 축복하는 관습이 생겨났습니다. 12세기에는 복음을 읽는 부제(또는 사제)가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십자를 긋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미사에 참석한 모든 이가 함께 긋게 되었습니다. 이는 복음 말씀을 믿어 기억하고(이마), 말씀으로 고백하고 선포하며(입),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겠다(가슴)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할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십자 성호를 ‘자주, 분명하게’ 그으면서 가톨릭신자임을 드러내고,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함께하고 계심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