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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질하지 말고 구제하라-제8계명
20: 15
15.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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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4:28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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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묵상하는 제 8계명은 이웃의 생명보호, 가정보호에 이어 재산 보호와 관련된 계명입니다. 도적질의 범죄는 살인, 간음죄 등과 함께 현시대의 삼대 범죄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적질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금단의 열매를 도적질하므로, 인간 역사의 원초부터 이 죄는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후에 제일 먼저 범한 죄도, 역시 도적질이었습니다. 아간이 범한 도적질의 죄는 ‘아이’ 성의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참담하게 패한 패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는 돈궤에서 도적질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하다가, 결국은 예수님까지 팔아넘긴 수전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아름답기만 했던 초대 교회의 부흥 역사에도 한 가지 오점이 있었으니, 그 죄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도적질이었습니다. (도적과 도둑은 같은 말)
어느 사회 어느 국가이고 도둑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도 얼마 전까지 개인 집에 철조망을 두르고, 깨진 유리병을 담장에 세워놓고 사는 나라였습니다. (교회 사무실 크레딧 카드 도둑질…. 노 목사 자동차 도둑질… 차 도둑, 자전거 도둑, 카드도둑… 도둑들은 직업란에 금속 유통업?…)
미국의 가게들은 일반적으로 도둑질 예상해서 물건을 15% 가격을 높여 정한다고 합니다… 카나다의 주유소는 기름넣고 뺑소니 치는 차량을 5% 감안해서 장사한다고 합니다. 백화점에만 가면 도벽이 발동하는 사람들이 많아 백화점들은 비밀경찰을 많이 채용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대도시마다 소매치기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남의 집 담을 뛰어넘거나 은행을 강탈하지 않을지라도 얼마든지 이 계명을 범할 수가 있습니다.
신 25:13-15“13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14)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이 말씀은 모든 상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분들은 품질, 중량, 재료, 가격, 이런 것에서 속임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우선 살고 봐야 돼! 정직해 가지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절대로 진리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오도된 진리가 많습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해서 못살지, 절대로 정직해서 못살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 증거를 말씀해 볼까요? 일본인들은 문제도 많지만 일본인을 겪어 본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국민성이 매우 정직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 입니다. 그들이 정직해서 못삽니까?
덴마크 같은 나라를 보십시오.
덴마크에서는 형무소 안에 죄수가 한 사람도 없는 날은 흰 깃발을 다는데, 교도소에 흰 깃발이 나부낄 때가 많다고 합니다. 정직해 가지고 못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기 때문에 오히려 잘만 사는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절도의 또 다른 형태가 있습니다.
그것은 정당한 빚을 갚지 않는 경우입니다.
여기 한 사람의 신자가 있습니다. 그의 단골 식료품 가게 주인은 신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신자가 오랫동안 외상값을 가지 않을 때, 애매하게 기독교와 우리 주님이 욕을 먹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전도할 수 없고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웰쉬 지방에 부흥 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 어떤 상인이 처음에 생각하기를 이 부흥 집회도 별것 아니려니 하고 냉소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고객들이 밀려와서 오래 묵은 외상값들을 모두 청산한 것을 보고, 이 부흥회는 무엇인가 다른 데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부흥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고, 결국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오셨습니다. 그 마을에는 키가 작고 매우 인색한 욕심쟁이 유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로마 정부의 세리장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을 착취하여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키가 작은 연고로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서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마 그 후 많은 여리고 사람들은 삭개오의 변화를 보고, 주님께 돌아왔을 것이라고 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한국의 명지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간증입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깊은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어렸을 적에 남의 참외밭에 가서 몰래 참외를 따먹은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자책에 견딜 수 없어서 시장에 나가 참외 값을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그 값에 최대치 이자를 붙였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어렸을 적에 당신네 밭의 참외를 도적질해 먹었습니다.”라는 사연과 함께, 그 돈을 시골에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며칠 후에 그 참외밭 주인이 급히 올라왔습니다. 보낸 수표도 그대로 가지고 오고, 닭도 몇 마리 잡아 가지고 와서 말하기를 “내가 이처럼 기분 좋은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이 돈을 받겠는가? 장난으로 어렸을 때 한 일을 갖고 뭘 그러는가?”라고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아닙니다. 내 마음의 평화와 내 마음의 안식을 위해서 제발 받아 주십시오.”라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참외밭 주인은 할 수 없이 그 돈을 받아 고향으로 내려간 후, 집안의 대소 가족을 모두 불러 모아놓고 “어떻든 오늘부터 모두 교회에 나가야 한다. 예수란 사람 굉장한 사람이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굉장한 분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형태의 도둑이 있습니다.
그것은 명예의 도둑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유형의 재산뿐만 아니라, 무형의 재산도 건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무형의 재산 가운데 명예와 인격처럼 귀중한 재산이 없습니다. 그런데 진실치 못한 사람, 수다스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명예나 인격을 함부로 훼상합니다. 잃어버린 재물은 혹시 되찾을 수 있으나, 그러나 실추된 명예는 좀처럼 되찾기 어렵습니다.
순결의 절도가 있습니다.
비열한 불한당은 순진한 소녀를 꾀어서 정조를 빼앗아 버립니다. 그리하여 그녀의 인생을 망치고, 일생동안 그늘진 인생을 살게 합니다. 이것은 한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도적질하며 철저히 파괴시키는 무섭고 중한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절도도 있습니다….
목발을 집고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서 그 목발을 빼앗아 버려서, 그로 하여금 넘어지게 한다면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의 신앙을 빼앗는 아내, 아내의 신앙을 빼앗는 남편, 자식의 신앙을 빼앗는 부모, 부모의 신앙을 빼앗는 자식들은, 가장 잔인한 신앙의 절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어떤 경우에라도 다른 사람의 신앙에 손해를 끼치고, 신앙을 무너뜨리게 하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하는 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이나, 하나님의 물질, 또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우리의 모든 날들이 주님의 날이지만, 주일은 특별히 주님의 날입니다. 이 날을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해 버리면, 그는 날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주일날 어떤 사람이 펜실바니아에 있는 석탄 탄광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들에 많은 노새가 있는 것을 보고서 그 노새들이 무엇에 소용되는지를 한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그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이 노새들은 일주일 동안 광산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주일날 들판에서 방목되지 않으면 눈이 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주일날을 평상일처럼 다루어서, 우리가 영적인 빛을 구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인 눈은 봉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물질이 또한 주님의 것이지만, 특별히 소득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십일조를 망각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도둑이 된다고 말합니다.
말3:8을 읽어보십시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이어서 3:10에서 그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참존 화장품 김광석 회장(장로)님의 간증을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본래 독실한 불교신자였는데 무허가 약품 제조로 도망 다니면서 양산 통도사 절간에서 범인인 자기를 찾는 신문 기사를 읽고 생전 처음 기도하기를 “하나님, 구해 주시면 하나님 믿겠습니다.”고 기도했답니다. 그후 자수하고 8억 벌과금 처벌을 받은후 교회 나가기 시작했는데 믿은지 얼마 안되어 한 여성도가 이분에게 “사장님, 혹시 십일조 하십니까?”고 도전했다고 합니다. 국민으로 세금안내면 국민 자격이 없고 성도로서 십일조 안내면 성도 자격이 없다고 도전하면서 말 3:8-10을 읽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김광석 회장님은“하나님, 그러면 꼭 한번만 시험하겠습니다. 십일조를 도둑질 안하고 드릴터이니 저를 구체적으로 한번만 축복해 주십시오”기도 했답니다. 그때 이 분이 일년 매출이 1억이었는데 결단하고 십일조 드린후 놀랍게도 8억 매출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하나님은 이분의 모든 삶의 장에 문자 그대로 하늘 문을 열고 부어 주시는 것을 경험했다고 간증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십일조를 습관화해 보십시오. 자녀들에게도 십일조를 가르쳐 보십시오. 물질에서의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것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인생을 바로 잡습니다. 출 20:15에 기록된 십계명의 제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둑질하던 사람이 도둑질을 중단했다고 해서 이 말씀이 온전히 순종되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언제 다시 도둑질을 시작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도둑질하던 사람에게 구제하라고 가르칩니다. … 실제로 진정한 영적 부흥을 체험하고 회개한 사람들의 인생에서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1. 어떻게 하면 도둑의 유혹을 극복 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에서 도둑의 유혹을 극복하려면 먼저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의식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본래 이 계명에서 ‘도둑질’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가나브’(ganab)로 정상적인 아닌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가 다 도둑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뇌물공여에 의한 챙기는 행위, 높은 이자로 부를 획득하는 행위, 빌리고 갚지 않는 행위, 허락 받지 않고 물건을 가져오는 행위, 고용주가 피고용인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행위, 피 고용인이 회사의 자원을 남용하는 행위, 부당한 속임수 거래등 일체의 바르지 못한 이익추구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이씨 조선 시대 배고픈 유생 선비가 남긴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픈데 선비 체면에 도둑질 할수 없는 터에 마침 시장에 갔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습니다. 시장 한편에 좌판이 발려져 있는데 잣이 수북히 쌓여 있기에 묻습니다. “이것이 무엇이요?”했더니 “잣이요”합니다. 그래서 한참 먹다가 다시 좌판 한쪽에 머리에 쓰는 갓들이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은 무엇이요?”묻습니다. “갓이요”하니까, 갔답니다.
상인이 돈 안내고 가느냐고 하니까, 아니 “자시오, 가시오”하지 않았느냐고 했답니다. 만든 유머이겠지만 도둑질의 정신은 허락된 승인없이 땀흘리지 않고 무엇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이런 사람들을 불한당-곧 땀흘림없이 이익을 추구하는 무리라는 말을 사용해
왔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불노소득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정도를 넘어선 지나친 아파트 투기 행위, 도박심리도 넓은 의미로 보면 도둑 심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로 진지한 행복을 누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의 당첨 이후의 인생을 추적하여 연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것으로 행복해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 미국에서 이런 유머까지 유행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3백만불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남편이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면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가 그 남편에게 충격이 안가도록 지혜롭게 통고해 주기로 했습니다.
의사가 이 남편과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일 당신에게 백만불의 복권이 당첨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제게 무슨 그런 행운이 찾아오겠습니까?” “그래도 그런 행운이 찾아 오신다면요?”하니까? “그럼, 세계 여행이나 한번 해보고 그래도 남으면 고생한 제 아내를 위하여 좋은 자동차나 사주지요”하더랍니다. 그래서 “만일 1백만불이나 2백만불도 아니고 3백만불이 당첨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니까 “주저 없이 ”그럼 선생님에게 절반을 드리지요“하더랍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정신과 의사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답니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일하십시오.
땀흘려 일하고 일의 정당한 대가를 누리십시오. 바울은 오늘의 본문 엡4:28에서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시편기자는 시 128편 1-2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행복한 인생의 정체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종교개혁의 중요한 기여의 하나는 직업의 귀천사상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개혁자 루터는 자기 책상 앞에”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말씀을 붙여 놓고 그는 성경번역을 하면서 틈틈히 땀을 흘려 노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인류사의 노동의 철학을 바꾸는 불후의 명언을 남기에 됩니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고. 그런 면에서 저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유형의 투기를 조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릇된 투기는 성공할수록 노동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의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도둑질의 유혹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즐겁게 일하시고 열심히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2. 이 계명을 잘 지키려면 나눔의 삶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두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주로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숙해 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주는 것,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도 사도행전 20:35에서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한 최대의 사건은 무엇일까요?
요한 3:16에서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의 사건일 것입니다. 이 소중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그들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3:16을 경험하고 이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얼마나 요일 3:16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라는 신학자는 요한 3:16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이 요일 3:16에 순종하고 있지 않는 한 아직 그의 믿음의 삶은 온전하다고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일 3:16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어지는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십계명의 제 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대한 진정한 순종은 도둑질 안하겠다는 결심만으로 부족합니다. 중단했던 도둑질은 언제든지 다시 재개될수 있습니다. 오히려 도둑질하던 이 손으로 수고하여 일하고 그리고 이 땀의 결실로 이웃들과 적은 것이라도 나누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빼앗는자도, 훔치는 자도 아닌 나누는 자, 축복하는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1907년 평양 대 부흥당시의 평양 대 부흥운동을 목격하고 증언한 스왈른 선교사는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교회에서 부흥을 체험한 성도들은 단순한 통회로만 끝내지 않았다. 다음날 사람들이 거리에서 마을에서 교회에서 죄를 고백하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도둑맞은 물건들이 되돌아 왔다. 잃어버린 지갑도 돌아왔고 오래동안 갚지 않았던 빚도 청산되었으며 부정한 방법들도 시정되었다.” 1904년 웨일즈의부흥 이후에도 이런 일들이 많았습니다. 감옥이 텅텅 비고…도둑이 사라지고… 술집이 문을 닫고, 극장이 소독되고…
5만 번 기도해서 응답받았다고 하는 조지 뮐러가 과거에 뭐하던 사람인지 아십니까? 좀도둑이었습니다. 동네가 다 아는 좀도둑입니다. 그런데 이런 좀도둑이 기도의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까지도 다 구하는, 빵까지도 구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수천 명의 고아를 먹여 살리고 많은 사람의 기도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떼제 공동체에서는 성찬을 나눌 때마다 이런 찬송을 부릅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Ubi caritas et amor Deus ibi est)고.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3. 그러면 우리가 이 계명을 순종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메운다.” 채울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욕심이라는 속담입니다. 톨스토이의 글 중에 “사람에게는 과연 몇 평의 땅이 필요할까?”라는 주제의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땅을 내놓고 하룻길을 걸어 저녁 해가 질 때까지 출발선에 도착하는 만큼의 땅을 거저 주겠다고 했습니다. 주인공은 좀더 땅을 많이 차지하려고 달리고 달려 해 질 때 돌아왔지만, 그만 지쳐 피를 쏟고 그 자리에 죽어버렸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땅은 그가 묻힐 자리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것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반드시 버려야만 합니다.
2) 자족의 정신을 배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 4:11) “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성경은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3: 5에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딤전 6: 7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자족을 배우시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3)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살후 3:16에 “누구든지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고, 잠 6:6에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일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땀 흘리지 않고, 도박이나 복권 같은 것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생각을 단호히 버려 합니다. 게으름은 마귀의 공작실이라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게으름은 온갖 죄악의 온실 같은 것 입니다.
4) 올바른 물질관을 가져야 합니다.
돈은 결코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은 다만 우리의 종으로 부려져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삶의 주된 목적이 돈버는데 만 있다면, 그는 결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말을 들어보셨지요?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으나 잠은 잘 수 없고, 돈으로 책은 살 수 있으나 두뇌는 살 수 없고, 돈으로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식욕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유흥은 살 수 있으나 행복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십자가는 살 수 있으나 구세주는 살 수 없고, 돈으로 예배당은 지을 수 있으나 하늘나라는 살 수 없다!”
우리 모두는 반드시 이러한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도적질은 무섭고 큰 죄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도적질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결코 유업으로 얻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적질은 무서운 죄이긴 하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아닙니다.
십자가상에서 회개한 강도처럼, 또는 세리장 삭개오처럼, 주님께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다음 이웃의 유형한 재산인 돈이나 물건, 또한 무형적인 재산인 이웃의 명예나 순결을, 다시는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날인 주일과, 하나님의 물질인 십일조,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정직한 영의 소유자가 되어서, 8 계명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을 것”이라는 복을 다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